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8
나는 작가다 058화
58화
짠!
건넨 잔을 성용 형님이 거칠게 건배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잔에 있던 처르치 17년을 한 번에 들이켰다.
탁!
단번에 잔을 비우고 테이블 위로 내려놓는 성용 형님이 쓰디쓴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반응했다.
“크으.”
도수가 40%나 되는 걸 원샷했으니 저럴 수밖에.
어쨌거나 그걸 원샷할 정도로 무언가 결정이 났으리라.
가만히 성용 형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방금 전 내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반문이 흘러나왔다.
“사장님은 이렇게 될 줄 몰랐나?”
김두식이 보인 행동에 대해 매우 실망한 기색이다.
아마 김두식도 몰랐겠지.
우리가 거기서 마주치다 못해 나와 성용 형님을 욕하던 걸 보게 되리란 걸.
나도 몰랐다.
설마 거기서 마주치다 못해 이렇게 성용 형님과 함께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갈 기회까지 마련해 줄 줄은.
뭐, 어디까지나 성용 형님이 나갈 마음이 있단 전제가 붙긴 했다.
내가 성용 형님의 손까지 뿌리치며 남았으나 푸른숲 출판사에서 부장으로 승진시켜 주지 않았던 김두식.
솔직히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승진도 안 돼, 연봉도 못 올려줘, 거기다가 나가란 소리까지.
심지어 능력이 없단다.
누가?
성용 형님이 있을 때도 푸른숲 출판사에 돈 되는 작가들 영업해온 게 나였다. 이후 성용 형님이 나가고 난 후에도 부장 승진만 바라보고 일했는데, 승진은 개뿔.
제 아들놈을 부장 자리에 앉힌다고 했다.
그래,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무한 출판사, 풀 출판사, 대현 북스까지.
세 차례나 뒤통수를 맞았으니 부장 자리에 차라리 아들을 앉혀두려고 한 거겠지.
근데 성용 형님 손까지 뿌리치고 남은 내 입장에선 이해해 주기엔 고까웠다.
차라리 날 부장으로 올려주고, 자기 아들을 과장으로 앉혔어도 될 텐데 굳이 내 상사로 만들었다.
경력도, 나이도 모두 아래인 놈을.
결국 화가 나서 나간 뒤 새로 회사를 차리겠다고 했더니 이 시장에 발도 못 붙이도록 한다는 쌍욕에 협박까지 했다.
이런 인간을 어찌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이번에는 자기 출판사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주는데, 고작 게일 작가 하나 데려오겠다고 나와 성용 형님을 뒤통수친 배신자마냥 떠들어댔다.
차라리 판타지 삼 대 작가 중 한 명이었다면 이해라도 했을 거다.
그 급수에서 한참 떨어지는 데다가 표절 작가 소리나 듣는 게일 작가 하나 데려오려고 내 욕을 하다니.
근데 또 이게 출판사를 다녔던 몸이라 그런지 한편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긴 했다.
어쨌거나 게일 작가는 망해도 3천 부 이상은 꾸준히 팔았다.
출판사 입장에선 손익분기점을 넘겨주는 작가가 많을수록 좋았으니 그 자리에서 기분 한 번 맞춰주고 데려오면 이득이었다.
시장이 워낙 좁아서 소문이란 게 엄청 잘 퍼졌지만, 그런 만큼 정말 큰일까지 아니고서야 그냥 술 먹고 했던 우스갯소리라고 넘기곤 했으니까.
어쨌거나 중요한 건 김두식을 어떻게 생각하는 내가 아니었다.
성용 형님이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가 제일 중요했다.
난 작가로서 충분히 잘 벌고 있으며, 편집자 업무보다 현재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게 더 재밌다. 물론, 돈도 훨씬 잘 벌고.
이건 정말 축복받은 일이었다.
흔히 기성 작가들이 하는 말이 있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그때부터 힘들어진다.’
맞다.
다들 처음에는 취미로 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나도 한 번쯤 이런 글을 써볼까?’ 아니면 ‘나도 이 정돈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집필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때 취미로 쓸 땐 마냥 즐거우니 글이 술술 써졌다.
하지만 직업이 되고 나면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할 수 없었다.
독자가 즐거워야 작가가 존재할 수 있기에.
작가란 직업을 지닌 채 쓰기 시작하면 고민이 많아졌다.
고민은 곧 스트레스가 되어 버리고, 취미일 때처럼 즐겁게 쓰긴 매우 힘들었다.
보는 독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
이게 마냥 작가가 그냥 즐거워서 쓰는데 독자가 좋아한다면 다행이었다.
그건 ‘천재’다.
하지만 천재가 아닌 이들은 수없이 노력해야만 했다.
독자가 원하는 글을.
근데 난 그 노력해야 하는 부분을 이미 채운 상태였다.
수없이 많은 글을 보고, 편집했으며 심지어 리라이팅으로 쓰기까지 했기에.
그래서 성공한 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글을 쓰고 싶다 생각했던 청년이 쓴 황제 로키가.
15년간 부족했던 점들을 채울 수 있는 경험이 있었기에.
덕분에 작가란 직업으로서의 고통이 적었다.
가끔씩 나도 글을 쓰다 보면 턱하고 막힐 때가 있었지만, 그 또한 내가 봐왔던 수많은 작가들이 지닌 창작의 고통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았다.
고로 만약 회사를 차린다면 도울 게 있으면 도와줄지언정 작가라는 포지션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즉, 출판사를 차리게 된다면 그 대표로 성용 형님이 일을 해줘야만 가능하단 소리.
하지만 강요는 안 됐다.
성용 형님의 인생은 본인이 챙겨야지.
계속 푸른숲 출판사와 김두식을 욕하며 성용 형님이 나오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성용 형님의 인생을 강제로 바꾸고 싶진 않았다.
때문에 작가 이준경으로서가 아니라 편집자였던 날 떠올리며 어느 정도 게일 작가와 만나고 있던 김두식과 장도철의 행동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란 듯이 이야기했다.
“망해도 3천 부 이상은 팔리는 작가니까 데려오려고 했겠죠.”
“그래도 그렇지. 그 열 배를 벌어주는 널 욕하면서까지 데려올 가치가 있단 거야?”
이미 기분이 잔뜩 상하긴 했나 보다.
성용 형님도 편집자로 좀 지냈으니 납득할 법한 이야기였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의 주된 목표는 동일했다.
최저의 투자로 최대의 매출을 뽑는 것.
때문에 김두식이 우리 욕만 하면 게일 작가를 데려올 수 있어서 한 거라면 납득은 갔다.
우리가 이해해 줄 필요가 없을 뿐이지.
나야 직원이 아니니 상관없다지만, 직원인 성용 형님은 참 난처할 거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김두식이 그랬단 사실에 꽤 충격을 먹은 것 같았다.
그럴 법도 하다.
김두식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나한테 잘하더니 정작 다른 작가한테선 뒷담화나 까댔으니까.
막상 그걸 감안하면 단순히 김두식 작품은 아닌 것 같았다.
분명히 그 자리에는 장도철도 있었다.
“뭐, 장 부장님이 잘 설득한 거 아닐까요? 그 자리에 형님하고 제 욕 한 번만 하면 그래도 돈 되는 작가를 데려올 수 있다고.”
“양 과장도 아니고 장 부장님이? 도대체 왜?”
“양 과장님 하고 장 부장님 하고 친한가 보죠.”
“아냐, 예전이라면 모를까.”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해할 수 없단 듯이 쳐다봤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장도철과 양경철은 푸른숲 출판사에서 서로 없인 못 살 정도로 착 달라붙어 다녔다.
근데 장도철 하고 양경철 하고 지금은 친하지 않단 듯이 이야기했다.
“요새 두 분 사이가 엄청 데면데면해졌거든.”
“그래요?”
“응.”
성용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서 찢어졌거나 아니면 장 부장이 무한 출판사를 차리기 위해서 나가려고 수작을 부리는 걸 수도 있긴 한데…….’
막상 생각해 보니 둘 다 나쁘지 않았다.
만약 둘이 싸웠다면 싸운 대로 재밌는 구경거리였고, 무한 출판사를 만들기 위해 싸운 척한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김두식에게 한 방 먹이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난 좀 더 성용 형님과 양주를 나누면서 푸른숲 출판사 내부 이야기와 생각을 물었다.
평소라면 출판사 내부 이야기는 내가 묻지도, 성용 형님도 말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말해주지 않아도 난 대충 파악이 됐었고, 그로 인해 내가 물어볼 일이 없으니 말할 일도 없었던 거지만 말이다.
근데 방금 들었던 장도철과 양경철 사이의 관계가 틀어진 건 모르는 사실이었으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부터 해서 좀 더 우리 사이는 돈독해졌다.
같은 출판사에서 일할 때야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도 하고, 끝나면 술도 마시니 엄청나게 친한 형님 동생처럼 지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그걸 오늘 다 푸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최고의 안주는 공공의 적인 것 같았다.
***
“으, 죽겠네.”
침대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머리가 띵해서 한 말이다.
안주가 너무 맛있어서 씹고 뜯으며 맛보다 보니 새벽 4시까지 달려 버렸다.
성용 형님은 집까지 갔다가 돌아오기 애매하니 출판사 구석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눈을 조금만 붙인다며 떠났고, 난 택시를 타고 청담동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견디셔 하나 마시고 잤는데도 영 깨지 않아서 하나를 떠 마셨다.
그래도 여전히 골이 당겼다.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더 누워 있는 다고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이리저리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면 낫겠거니 했다.
“으, 원고보단 연재나 좀 해야겠다.”
현재 내가 연재 중인 작품은 하나뿐이었다.
‘만선’이란 필명으로 쓰고 있는 ‘용사무적’.
처음에는 성적이 미미했지만, 지금은 각 연재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투데이 베스트 1위를 차지하니 여기저기서 쪽지가 엄청나게 왔다.
자기들이랑 계약하자고.
하지만 용사무적에 대해선 LT노벨의 이경수 팀장과 약속해 둔 바가 있었다.
때문에 쪽지를 싹 무시한 채 연재만 했다.
그러나 방금 내가 말한 연재는 용사무적뿐만이 아니었다.
라이트노벨을 써보겠단 생각으로 집필했기에 용사무적을 10권 완결로 원고를 끝냈다. 그리고 현재 전민화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쓰게 된 일상물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
빠르게 치고 나가면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내용이 궁금토록 만들던 황제 로키나 드래곤 나이트와 다르게 이건 정말 잔잔했다. 물론, 이따금씩 한 방 크게 터뜨리며 임팩트를 주는 부분이 없잖아 있긴 했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대륙에서 천하제일 일인자라고 할 수 있던 소드마스터라는 설정이 있었으니까.
그 설정을 이용해서 이따금씩 검도 들곤 했다.
웬만하면 일상물로 흘러가서 자주 등장하는 씬은 아니었지만.
이걸 쓰면서 전민화 작가와 연락도 주고받았다.
일단 그녀가 보내준 작품들을 모두 읽은 평에 대해 알려줬고, 그 작품들을 보고 쓰게 된 글이 있는데 봐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전민화 작가는 좋다며 흔쾌히 수락했고, 이후 난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 1권을 보내줬다.
평은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내가 쓰던 스타일의 글이 아니어서인지 칭찬 말고도 조언도 꽤 많이 들어왔다.
좀 더 디테일한 상황과 감정의 묘사에 대해서.
캐릭터나 사건 등 스토리와 관련된 것들은 자기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나 아직까지 그런 감성 면에선 조금 부족함이 느껴진다나?
덕분에 감성적인 면도 전민화 작가를 통해서 꽤나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오늘부터 신작인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을 연재할 생각이었다.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의 연재를 끝낸 후 아주 오랜만에 만선이 아닌 이준경 아이디로 북조아에 접속했다.
거기서 새로운 게시판을 팠다.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을 연재할.
연재 게시판을 파놓은 난 좌측을 쳐다봤다.
북조아에 로그인을 하면 좌측에 캐릭터가 나왔고, 그 위로 자신의 블로그처럼 쓰는 ‘마당’ 버튼과 쪽지함으로 갈 수 있는 ‘쪽지’ 버튼이 있었다.
한데 쪽지 버튼에 빨간색 숫자가 100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연재도 안 하는데 무슨 쪽지가 이리 많이 온 거지?”
쪽지함으로 들어가 봤다.
그러자 독자들이 내게 작품 활동에 관한 소식을 묻는 것도 보이고, 몇몇 작가들이 조언을 구하는 쪽지들도 보였다.
하나씩 보던 중 난 익숙한 작품 제목을 하나 볼 수 있었다.
‘매화신검’.
그걸 본 나는 이 작가가 했던 제목에 담긴 뜻을 떠올렸다.
“매화꽃이 휘날리는 장소에서 스승의 죽음으로 마지막 깨달음을 얻고 제자인 주인공이 신검의 경지에 오른다…… 였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