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9
나는 작가다 059화
59화
매화신검.
이 작품은 책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근데 내가 이 작가를 어떻게 알까?
만나본 적이 있어서?
아니다.
난 매화신검을 쓴 작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본 적은 있구나. TV에서 봤었으니까. 단지 실제로 본 적이 없을 뿐.
그랬다.
이 매화신검이란 작품은 쓴 작가는 TV에 나왔다. 뿐만 아니라 영화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배우였으니까.
지금은 아니고 아주 나중에 데뷔를 하게 되는.
“강설아였지?”
강설아.
막 여배우라고 예쁘다, 라는 느낌보단 건강미가 넘치고 매력적이랄까? 뭐, 이건 개인의 취향일 수 있겠지만.
언제 데뷔한 지는 모르겠다.
그냥 스무 살은 넘기고 했단 것만 알았다. 하지만 정확한 데뷔 날짜를 모르는 거지, 그녀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걸 몰랐다면 매화신검의 작가가 그녀란 것도 몰랐으리라.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연예인들이 패널로 나와서 한 가지 키워드를 밝히고 자기에게 있던 에피소드를 푸는 게 있었다.
“‘애간장’이었나?”
애간장 태울 정도로 흥미로운 자신들의 에피소드를 말해서 가장 좋았다고 판단되는 연예인들에게 도금한 트로피를 줬었다.
거기서 강설아의 키워드가 그거였다.
화산파 설아.
다들 이게 무슨 키워드냐고 물어봤더니 강설아가 초등학생 때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협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단 내용의 에피소드였다.
자신에게 꿈이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무협 소설 작가랑 영화 제작 쪽으로.
하지만 전자와 다르게 후자로 마음이 쏠렸고, 그때부터 공부를 해서 제대로 대학교부터 가잔 생각으로 연재하던 걸 지웠다고 한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 인터넷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던가?
지웠다는 강설아의 작품인 매화신검의 일부분을 찾아내선 인터넷에 업로드했다.
읽어보곤 꽤 놀랐다.
초등학생 때 쓴 글치고 필력이 상당했기에.
심지어 내가 2003년도에 컨택했던 특색 있는 무협 소설을 쓰던 장백 작가의 냄새가 났다.
흔하디흔한 무협 소설들과 다르게 감성적으로, 또한 특색적으로 쓰기에 무협 독자들에게 꽤나 호평을 받았던 장백 작가.
한데 초등학생 강설아가 쓴 글에서 장백 작가보다 경험과 필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이 있단 걸 보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배우로서도 능력자였다.
초반에는 좀 묻혀있었지만, ‘허니’란 영화로 빵 떴다.
80년대 교복 자율화가 있던 시절 각기 캐릭터가 다양한 여고생들이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의 노래로 춤 연습을 하던 그 시절과 30년 후를 보여주며 꽤나 훈훈한 옛 청춘과 세월이 흘러 변한 뒤 한 친구의 장례식장에 모여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연습했던 춤을 추며 끝나는.
“참 재밌게 봤었지.”
이후에도 많은 작품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몇몇 웹툰으로 2차 창작이 된 드라마에 출연해서 여배우로서 크게 자리 잡았다.
근데 그녀가 내게 쪽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내게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의 팬이라고 인사하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 글은 작가님처럼 몇만 명이 아니라 천 명이 좀 넘는데, 저한테는 작가로서의 소질이 없는 걸까요? 상상미디어라는 곳에서 계약을 하고 싶다는데, 지금 제 작품의 조회수로 봐선 계약할 정도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작가님께서도 바쁘실 텐데, 이런 쪽지를 보내드려서 귀찮게 했다면 죄송해요. 그래도 혹시나 봐주실 수 있으면 제 작품에 문제점이 뭔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자신의 낮은 조회수를 보고 더욱 무협 소설을 써야 할지 걱정이 많다. 혹여나 문제점이 뭔지 알려줄 수 있냐는 부탁과 함께.
“전에 본 부분만 보자면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였는데.”
오히려 초등학생이 쓴 게 맞냐며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문장과 캐릭터로 감성을 자극할 만한 필력.
경험과 조금 더 실력만 쌓이면 진민화 작가 스타일의 작품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점이 두 가지가 많았다.
첫째, 여작가 특유의 글이라 마초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무협 독자들에겐 적응하기 어려웠다.
만약 좀 더 경험을 가다듬고서 남성들을 따라할 수 없는 여성적인 감성을 좀 더 다채롭게 해서 모든 이의 감성을 자극하게 된다면 무협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은 있긴 했다.
장백 작가처럼.
그만큼 잘만 다듬으면 옥석이 아닌 보석이 될 수 있으리라.
둘째, 내가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단 것이다.
충분히 작가를 할 깜냥은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가 된다.
잘나가는 배우.
지금 시장의 작가들이 비빌 수도 없거니와 시장이 정말 커졌다고 표현하는 유료연재의 장이 열려도 그녀처럼 벌 수 없었다.
유료연재 시장에서 가장 파이가 큰 플래폼은 코코아톡과 서비스를 연동해서 엄청난 구독자수를 모았던 코코아페이지였다.
잘나가는 작가의 경우 한 달에 1억도 넘게 벌었다.
근데 잘나가는 여배우와 비교할려고 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푼돈이지, 배우들한텐.”
당연했다.
잘나가는 배우들은 하루 날 잡고 광고 하나만 찍어도 수천에서 수억이 넘는 수익을 받아냈다.
근데 뻔히 강설아가 잘나가는 배우로 성장할 걸 아는데 그녀를 무협 작가로 만든다?
사람 인생 하나 바보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유료연재 시장이 왔으니 망정이지.
2012년도부터 파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전 시장은 2008년도부터 서서히 죽어서 2009년부터 2011년 사이까지 한 권을 써도 50만 원도 채 못 받는 작가들이 수두룩했다.
아마 지금 초등학생이면 장르 시장 암흑기 시기가 그녀에겐 인생에서 가장 청춘기인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일 무렵.
그 시기에 성공할 수 있는 강설아의 미래를 내가 부술 수는 없었다.
지금 시장에서 초등학생인 그녀를 지도해서 최소한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는 작가로 만들 순 있을지 몰라도 유명 여배우 수준까진 어려웠다.
“뭐, 시장이 좁으니 초등학생 때 무협 작가가 된 신동으로 유명해지는 정도겠지.”
아니면 아예 나처럼 벌면 모를까.
근데 나처럼 번다는게 쉽지 않았다.
대박을 쳐야 하는 건 기본 요소이고, 최소 한 시간에 6, 7천 자씩 정해놓은 이야기를 써야만 가능했다.
내가 봐도 사기적인 속도였지만, 의외로 작가들 중 이게 가능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대박을 치지 않아도 매우 높은 가치가 매겨지던 작가들이었다.
작가들에게 언제나 하던 이야기지만, 필력이 좋은 것보다도 성실함이야말로 최고의 무기였으니까.
어쨌거나 그 성실함에 속도가 더해진 작가들.
수많은 작가들을 봐온 입장에서 원고를 빠르게 쓸 수 있는 것도 타고나야만 했다.
정확하게는 빠르게 쓴다의 개념이 아니라 집중력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집중력 하나는 타고 났지, 정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전국에서 딱 둘뿐인 만점자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다른 한 명이 외고에서 나온 걸 감안하면 엄청난 성적.
친척들이 그렇게 내가 전문대를 간 걸로 나무랐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내 수능 만점을 엄청 자랑했었으니까.
근데 어쩌겠는가?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이 수능 만점을 받았으면 자랑할 만하지.
자식 자랑만큼 부모에게 가장 큰 자랑이 또 있을까?
만약 내가 강설아를 키워서 번듯한 무협 작가가 된다면 그 자랑도 꽤 큰 자랑이 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처럼 빨리 쓰지 않는 이상 배우가 그녀를 위해서도 좋았다.
하지만 정말 집필에 뜻이 있다면 선배 작가로서 조언 정돈 해줘도 되겠거니.
대신 호평보다 혹평을 주로 할 생각이었다.
칭찬을 최대한 피하려는 이유도 있긴 했다.
어리거나 작가가 되기 위한 지망생들은 자주 선배 작가들에게, 계약한 작가들 중 아직 감을 잡지 못한 신인들은 편집자들에게 작품 좀 봐달라고 부탁한다.
당연히 말로는 작품을 더 잘 쓰기 위한 조언이 필요하니 독설도 받아들일 수 있단다.
근데 주로 그들을 보면 독설에 버티지 못했다.
당연하다.
애당초 그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쓴 작품을 상대가 좋다고 칭찬해 주는 걸 바랐으니까.
지금 초등학생인 걸 감안하면 강설아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때문에 칭찬은 최대한 줄일 심산이었다.
괜히 잘못된 선배 작가의 칭찬을 들으면 제멋대로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래, 내 글은 아직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수준이 높아서 그래’ 아니면 ‘아직 많은 독자들이 못 봐서 그렇지, 다들 보면 재밌다고 좋아할 거야.’ 등의 착각을 일삼으며.
난 이런 꼴은 못 봤다.
선배 작가로서 강설아에게 조언을 해주겠지만, 만약 이번에는 그녀가 글에 정말 뜻이 있다면 오히려 독설이 독보단 약으로 작용할 거다.
성장의 계단을 한층 더 오를 수 있는.
난 강설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제목 : 안녕하세요. 이준경 작가입니다.
내용 :
강설 작가님께서 부탁하신 대로 작품을 읽어봤습니다. 일단 필력은 좋으시네요.
하지만 나이가 아직 어리신 것 같습니다.
상당히 글에 경험의 부재가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글을 더 쓰실 거라면 좀 더 많은 경험과 공부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독설만 했으니 칭찬을 하나 할게요.
주인공이 스승을 만나기 전 집에서 나갈 때까지, 이건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근데 이 부분은 왠지 자기 경험에서 나온 것 같더군요. 제가 이리 말씀드리는 건 이 부분에선 경험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웠는데, 막상 이후 사건들의 전개나 캐릭터들 사이에 이뤄져야 할 것들이 꽤 어색합니다.
문장을 쓰는 것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하나같이 경험이 적은 티가 너무 납니다. 혹시 학생이신가요? 그렇다면 일단 전 공부를 하시고, 대학교에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뭐, 그전에 아르바이트를 해보셔도 좋고요.
일단 강설 작가님에겐 많은 사람들도 만나보고, 이런저런 일들도 겪으셔야 더욱 나은 작품을 집필하실 것 같습니다.
작가가 작품을 갈고닦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요소는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곤 하나 이 세 가지 못지않게 경험이란 건 중요하니까요.
그럼 제가 조언을 드리는 건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건필하세요.
강설아도 너무 여자 이름 같은 필명으로 무협을 쓰면 이상하다고 여겼던 건지, 자신의 이름 말미에 ‘아’자를 뺀 ‘강설’이란 필명으로 ‘매화신검’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우 강설아가 아닌 무협을 좋아하는 작가 강설에게 보낸 쪽지.
“어떻게 나오려나?”
생각보다 칭찬이랍시고 쓴 것들은 전부 형식적으로 썼다. 심지어 중간에 추가한 호평마저도 혹평으로 뒤덮었다.
과연 아직 초등학생인 강설아가 내가 보낸 쪽지를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얼마 있지 않아 내게 강설아가 답장을 보냈다.
보통 어린 나이에 칭찬을 바라고 한 행동이 원한 대로 되지 않으면 기분 나빠했다.
근데 생각보다 강설아는 초등학생 주제에 꽤 성숙한 편이 있었다.
제목 : 감사합니다.
내용 :
맞아요, 저 학생이라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워낙 잘나가시는 분이셔서 무시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쓴 판타지도 있는데, 그것도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이준경 작가님께서 바쁘시다면 안 봐주셔도 상관은 없어요! 혹시 봐주실 수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 부탁드릴게요! 제 번호는 ‘011-xxx-xxxx’예요!
자기 번호까지 밝히면서 따로 쓴 판타지 소설을 봐달라는 강설아.
나이에 비해 꽤나 멘탈이 강한 것 같았다.
경험이 부족해서 글쓰기보단 좀 더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나이를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걸 받아들일 자세가 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추가로 다른 작품의 조언도 구하며 자기 번호까지 달아뒀다.
아니, 근데 얘 초등학생 아닌가?
난 답장에 적힌 강설아의 번호를 보면서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무슨 초등학생이 벌써 휴대폰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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