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60
나는 작가다 060화
60화
[안녕하세요, 이준경 작가입니다.]자기 번호를 알려준 강설아에게 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그렇게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앗! 안녕하세요! 강설이라고 해요!] [예, 반가워요. 근데 따로 쓴 판타지 소설도 있으시다고요?] [넹! 혹시 봐주실 수 있을까요?]봐주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난 문자로 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거기로 원고를 보내 달라고 했다. 이후 강설은 내가 알려준 메일로 아직 연재하지 않고 쓴 판타지 소설의 원고를 보내줬다. 추가로 시놉시스도.
‘무슨 초등학생이 시놉시스도 쓸 줄 아는지, 원.’
우연찮게 집을 나서게 된 주인공이 검선이라 불리던 스승으로부터 모든 걸 전수받고 신검의 경지에 오르던 매화신검과 다르게 남작가의 자제가 아카데미에 가서 배움을 받은 뒤 점점 승승장구하며 황제까지 가는 이야기였다.
황위에 오르기 전에 전환점이 되는 내용도 있었다.
주인공이 뛰어난 실력으로 공적을 올리면서 너무 단기간에 공작까지 오르니 황제가 의심한다.
자신의 자리도 노리리라.
그래서 황제는 주인공을 공작까지 자기 손으로 올려놓곤 뒤늦게 처리하려고 든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위기를 잘 해결하며 황위에 오른다.
어찌 보면 흔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강설아의 문장이 어느 정도 독자가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반 권 정도 써놓은 원고를 보면서 느꼈다.
이번에도 역시나 초반에는 주인공이 어릴 때 집안 이야기부터 나왔는데, 이땐 정말 몰입도가 엄청났다.
근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금방 깨달았다.
매화신검에서 나왔던 주인공이 고수가 되기 위해 떠나던 집에서의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애가 맞는 것 같긴 한데…….’
무언가 쪽지를 보낸 말투나 휴대폰이 있단 걸 보고 초등학생이 맞나 싶었는데, 글을 보니 왠지 모르게 내가 키웠던 딸이 떠올랐다.
초등학생이던 수정이가.
왠지 모르게 어린 주인공이 하는 행동들과 상황을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마치 어린 딸의 사랑스러움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현재 강설아가 초등학생 여아인 걸 감안하면 이 장면들을 잘 쓸 수밖에 없었으니까.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잃게 마련인데, 그런 감정 묘사들이 잘 표현된 걸 보면 지금 그녀가 애란 게 확연히 느껴졌다.
이번에도 역시나 강설아에겐 비슷한 평을 남겼다. 그러자 강설아가 섭섭한 투로 답했다.
[에, 결국 다른 어른들처럼 공부나 열심히 하란 거죠?]이거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았다.
보통 어른들은 애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
어차피 연애고, 술이고 대학교만 들어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 공부부터 하라고.
강설아 역시 날 그런 어른들처럼 생각했나 보다.
아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선 십 대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건
[아뇨, 글을 쓰고 싶다면 써야죠. 근데 글만 쓴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요. 경험이 없으면 아무리 글을 잘 써도 독자들은 납득하지 못할 경우 흥미를 잃거든요.]단순히 어른들처럼 우리나라 십 대로 태어났으니 대학교는 가야 한단 소리가 아니라고 밝혔다.
내 말에 어느 정도 납득했는지 강설아가 답했다.
[그러니까 이준경 작가님 말씀은 좀 더 많은 경험이 제게 필요하단 거네요.] [예,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시고요.] [그럼 저 한 번 만나도 돼요?]“응? 이건 뭔 소리야?”
갑자기 뜬금없이 한 번 만나도 되냐니.
나랑?
황당해서 무슨 소리냐는 듯이 답장했다.
[예?] [이준경 작가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 첫 번째로 이준경 작가님을 뵙고 싶어요! 이왕이면 좀 더 가르침도 받고 싶구요! 혹시 어디 사세요?]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경험을 쌓으라고 했다.
그 첫 번째로 날 만나고 싶단다.
이렇게 훅 들어오니 뭐라 반대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궁금한 것도 있었다.
정말로 지금 시기의 강설아가 초등학생인지.
어디 사냐는 강설아의 질문에 답했다.
[일단 청담동에 있긴 합니다만.] [앗! 다행! 서울이시네요! 그럼 제가 한 번 찾아뵐게요!]다짜고짜 찾아오겠다는 강설아.
“무슨 초등학생이 이래?”
뭔가 행동력이 초등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릿하다. 그렇다고 초등학생이 아닌 것 같진 않았다. 왠지 문자에서 점점 초등학생의 그것이 느껴졌다.
거기서 난 강설아가 찾아온다고 해서 청담역 근처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아무리 초등학생이라고 한들 처음 보는 여자를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초대한단 건 말이 안 됐으니까.
강설아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잡고 통화를 마쳤다.
휴대폰은 책상에 올리면서 말했다.
“흠, 잘나가시던 배우님 초등학생 실물을 보겠구만.”
***
강설아와 약속을 잡았던 날이 다가왔다.
12시에 보기로 했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멀리서 오니 점심이나 먹여서 보내려고.
오전 작업을 마치고 11시가 좀 넘은 걸 본 나는 씻은 뒤 밖으로 나갔다. 서류봉투 하나를 챙긴 채.
강설아에게 찾아오라고 했던 카페로 향했다.
거기서 아메리카노를 시킨 채 기다렸다.
그러자 카페를 방문할 것 같지 않은 초등학생 아이가 하나 들어왔다.
둥글둥글한 얼굴과 다소 통통한 체형.
체형만 보자면 탄탄해 보이던 배우 강설아를 떠올리긴 어려웠지만, 둥글둥글한 얼굴과 그 속에 있는 눈가와 입술이 그녀임을 입증했다.
강설아는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사람이 꽤 많아 누가 나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나 보다.
곧장 목에 걸고 있던 휴대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기 무섭게 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이잉.
굳이 받지 않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쪽 강설아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내가 다가오니 강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 이준경 작가님?”
뭔가 배우 강설아에게서 느낄 수 있던 매력은 없었지만, 초등학생인 그녀의 귀여움이 묻어났다.
왠지 딸 같아 싱긋 웃었다.
“맞아요, 제가 이준경입니다. 강설 작가님이죠?”
손을 내밀며 강설아에게 인사했다. 거기서 강설아가 얼굴을 붉혔다.
“자, 작가는 무슨요. 그냥 글쟁이죠.”
말은 그렇게 해도 작가라고 불린 게 기분이 좋은지 얼굴을 붉혔다.
‘귀엽네.’
수줍은 소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일단 주문부터 하죠. 멀리서 왔으니 제가 사줄게요.”
“에, 아니에요! 제 건 제가 살게요!”
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꺼내려는 거 보고 말렸다.
“됐어요. 제가 사줄 테니 주문만 해요. 초등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저 돈 많은데!”
“떽! 어른이 사준다고 할 땐 어린이는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는 거예요.”
“에에, 그래도 절 도와주기로 하셨는데…….”
“그럼 안 도와주고 그냥 갈까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강설아가 주문을 했다.
“그럼 전 아이스초코요!”
“그래요. 여기 아이스초코 하나 주세요.”
“예.”
계산을 끝낸 직원이 카드를 돌려줬다.
“카드 여기 있습니다. 나오면 알려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그럼 저흰 자리를 잡을까요?”
“네!”
강설아와 함께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자리로 갔다.
반대편에 강설아가 착석한 걸 본 나는 챙겨왔던 서류봉투를 열었다.
“일단 기본적인 평가에 대해선 쪽지나 문자로 나눴으니까. 잠시 시간 내서 보내줬던 판타지 소설 원고의 편집적인 부분을 좀 손봤어요.”
서류봉투에서 꺼낸 A4용지.
강설아가 보내줬던 판타지 소설을 인쇄한 용지였다. 그리고 거기다가 편집자 이준경으로서 오탈자와 비문 교정과 내용에 대한 평가를 적어놨다.
용지는 빨간펜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많은 지분을 ‘V’ 자가 차지했다.
의외로 오타는 별로 없는데, 띄어쓰기를 틀린 게 많았다.
강설아 역시 내가 건넨 용지를 보곤 어마어마하게 틀린 띄어쓰기를 보곤 기겁했다.
“에? 띄, 띄어쓰기를 다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네, 좀 어색한 것들도 있죠?”
띄어쓰기.
한국어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은 요소였다.
생각보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알고 쓰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과반수는 띄어쓰기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에 손목을 걸 수 있었다.
이건 15년간 편집자를 해왔던 내 경험이 말해줬다.
편집자 생활 15년.
당연히 내가 만나온 이들은 전부 작가였다.
백 명도 넘는 작가를 만나고, 그들의 원고를 교정했다.
하지만 그 반의반도…… 아니, 반의반이 뭔가?
그냥 십중팔구는 띄어쓰기를 틀렸다.
일반인 기준으로 알 법한 것들은 맞아도, 좀 더 세심하게 들어가야 알 수 있는 띄어쓰기를 틀리곤 했다. 아니면 아예 자신이 쓰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느끼거나.
여러 작품을 쓴 기성작가들조차 쉽지 않은 게 그 띄어쓰기란 놈인데, 아직 초등학생인 강설아가 제대로 알고 있으면 그건 신동이었다. 한국어 신동.
하지만 강설아는 한국어 신동이 아니었다.
띄어쓰기를 꽤나 많이 틀렸다. 그래도 또래들 수준에서는 꽤나 뛰어난 편이라고 봤다.
근데 내 기준과 다르게 강설아는 편집해 준 원고를 보곤 꽤 놀란 것 같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강설아를 위로해 줬다.
“너무 충격 먹지 말아요. 대부분 기성작가들도 그 정도로 틀리니까요.”
내 위로의 말에 강설아의 표정이 환해졌다.
“정말요?”
“제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죠?”
“히히, 그나저나 이건 왜 비문인 거예요?”
띄어쓰기는 제쳐두고 다른 빨간펜 체크가 된 곳들을 물어보기 시작한 강설아.
그녀에게 친절하게 체크한 부분들의 문제점을 알려줬다.
너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강설아를 보곤 이래도 되나 싶었다.
괜히 이러다가 정말 무협 작가가 되겠다고 해서 배우의 길을 못 걷게 되는 건 아닐까 우려됐다.
근데 성심성의껏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초등학생인 그녀가 작품을 잘 쓰고 싶어서 노력한다.
이 모습이 예쁜데, 어찌 매정하게 무시하겠는가?
그저 작가 선배로서 후배에게 도움을 준다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좀 있다가 나온 아이스초코를 가져온 뒤 한 시간가량 더 강설아에게 이런저런 가르침을 줄 때였다.
꼬르륵.
강설아의 배가 허기지다고 아우성쳤다.
어느새 아예 옆자리로 와서 알려주던 난 그 소리에 강설아에게 물었다.
“배고파요?”
“아, 아뇨!”
창피하단 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강설아.
그녀의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에이, 배는 아니라는데?”
“이준경 작가님의 가르침 때문에 지식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걸요!”
“얼씨구? 정말 초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의 멘트네요.”
“칭찬이죠?”
“칭찬이죠.”
“히힛!”
칭찬에 기분 좋아하는 강설아.
하지만 그녀에게 밥은 먹어야 한다고 일러뒀다.
“그래도 어릴 때 잘 먹어둬야 나중에 건강한 어른이 되는 거예요. 나머지는 밥부터 먹고 하죠.”
“저는 밥보다 지금이 더 좋은데…….”
좀 더 배움을 받고 싶다는 강설아였지만, 그래도 밥은 제때 먹여야 내 마음이 편했다.
만약 안 먹겠다면 더 이상의 가르침은 없다고 협박성 멘트를 날렸다.
“그럼 아예 지금 헤어질까요? 저 때문에 밥을 못 먹는 것 같으니?”
협박의 효과는 엄청났다.
강설아가 서류봉투에 보고 있던 용지를 넣곤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대답했다.
“아뇨! 밥 먹으러 가요!”
왠지 그 모습이 귀여워서 흐뭇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