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61
나는 작가다 061화
61화
“피자 맛있어요?”
근처 피자핫에 왔다.
거기서 강설아와 함께 신제품 라지 한 판을 주문해서 먹는데, 이 아이가 참 엄청나게 복스럽게도 먹는다.
처음에는 포크랑 나이프로 잘라먹더니 지금은 손으로 한 조각씩 들어서 후루룩 마시듯 먹고 있었다.
방금 전 맛있냐는 물음에 대답도 힘차게 했다.
“네!”
이렇게 잘 먹은 건 방금 전 내가 한 말 때문이었다.
‘난 잘 먹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그래야 뭔가 가르쳐 줄 보람도 느끼고’라고 말하니 그 때부터 내숭 떨던 모습이 사라졌다.
‘그래, 이게 진짜지.’
‘화산파 설아’라는 키워드로 애간장에서 강설아가 말했다.
자신은 정말 다이어트를 빡세게 하지 않으면 배우가 될 수 없다고.
원래 살도 잘 찌는 체질인데, 배우가 되기 전까지 혼자서 치킨이고 피자고 다 먹었단다.
이후 배우가 되면서 몸매 관리를 해야만 하기에 줄였을 뿐.
그러니 피자 한 조각도 포크와 나이프로 조금씩 잘라먹는 걸 보곤 내숭이란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까처럼 이야기한 거고, 이후 강설아가 내숭 없이 평소 페이스대로 먹어댔다.
‘대단하긴 하네.’
정말 대단했다.
내가 한 조각 반을 먹는 사이 강설아가 벌써 다섯 조각째를 먹고 있었다.
1인 1치킨, 1인 1피자를 기본으로 한다더니 그 식성이 초등학생인 지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렇게 다섯 번째 조각마저 먹은 강설아가 난 힐끔 쳐다봤다.
“왜요?”
“이제 원고 다시 봐도 돼요?”
“그것도 마저 먹어요.”
턱짓으로 남은 한 조각을 가리켰다.
“아니에요, 이건 이준경 작가님께서 드셔야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남은 조각을 힐끗거리는 걸 봤다.
“전 이 두 조각으로도 배부르니 먹어도 돼요. 전 잘 먹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보면 흐뭇하잖아요?”
“그, 그럼…….”
수줍은 모습과 함께 마지막 조각까지 드는 강설아.
그렇게 마지막 조각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식사를 다 했으니 다시 카페로 가서 마저 원고에 대해 이야기나 나눌까 싶었다.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갈 때였다.
내가 지갑을 꺼내자 갑자기 말리는 강설아.
“잠깐만요!”
“음?”
“제가 낼게요!”
강설아가 자신이 내겠다면서 지갑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보곤 내가 피식 웃었다.
“됐네요. 계산해 주세요.”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자 강설아가 안 되나며 소리쳤다.
“아니, 아까 카페에서도 얻어먹었으니 여긴 제가 내야 하는데!”
“됐네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을 테니 제가 살게요.”
“택시타고 와서 그리 고생 안 했는데…… 그럼 이번에 가는 카페에선 제가 살게요!”
이미 직원이 내 카드로 계산한 걸 보고 이제 갈 카페에선 자기가 사겠다는 강설아.
하지만 어떻게 애들 코 묻은 돈으로 얻어먹겠는가?
난 됐다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됐네요. 정 사주고 싶으면 나중에 자기 돈 벌어서 사줘요.”
“이거 제 돈인데요!”
그래, 본인이 갖고 있으니 자기 돈이긴 하겠지.
하지만 초등학생인 그녀가 직접 번 돈일 리는 만무했다.
“에이, 용돈이나 세뱃돈 받은 거 모았겠죠.”
“그건 그런데…….”
차마 자신이 지닌 돈에 대해서 반박하지 못하는 강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 직접 벌면 그때 사요.”
“에에, 알겠어요.”
“자, 다음 원고 이야기 나누러 가죠.”
“네!”
그렇게 난 강설아와 아까 만났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2차적으로 강설아의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어느 정도 당장 해줄 만한 것들을 조언해 준 뒤 말했다.
“자, 이 정도면 당장 고쳐야 할 점들만 해도 산더미니까 돌아가서 열심히 해요.”
“감사합니다!”
“후배를 돕는 건 선배로서 당연한 도리죠.”
내 말에 강설아가 물끄러미 쳐다보며 읊조렸다.
“선배…….”
“왜요? 어색해요?”
선배란 단어가 별로인가?
그건 아니라며 강설아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뇨! 그것보다 전 따로 부르고 싶은 호칭이 있어서요!”
선배 말고 부르고 싶은 호칭이 있다.
그게 뭔가 싶었다.
“음? 무슨 호칭요?”
내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강설아. 이내 그녀의 입에선 날 부르고 싶던 호칭이 뭔지 튀어나왔다.
“싸부!”
***
[싸부! 오늘 싸부네 집에 가도 돼요?!]어제 만난 이후로 강설아가 나더러 ‘싸부’라 부르면서 이런 문자를 보내곤 했다.
[그래도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여자애가 오는 건 좀 그렇지 않니?]카페에서 강설아가 사부로 모시기로 한 이후 다소 말을 편하게 놨다.
하지만 아무리 제자가 되겠다는 초등학생이라지만,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여자를 들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어리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 여자로는 절대 안 보인다고 하더라도.
반면 이런 내 말을 강설아가 곡해했다.
[앗! 싸부, 절 여자로 보는 거예요?] [그럴 리가.] [그럼 상관없잖아요!] [그래도 좀 그렇지.]끝까지 철벽을 치며 집에 못 오게 하자 강설아가 차선책으로 넘어갔다.
[그럼 어제 그 카페에서 봬요! 알려주신 대로 원고 수정해 봤어요!]잠실이라서 택시 타고 금방 온다더니 또 오려고 하는 강설아.
이거 습관 잘못 들이면 곤란할 것 같아서 그 방문 역시 거부했다.
[메일 알잖아, 거기로 보내줘. 그럼 내가 보고 피드백 줄게.] [에에, 전 싸부 얼굴 보면서 듣고 싶은데요!] [싸부 일해야 해.]오늘은 일해야 하니 안 된다고 하자 강설아가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치이, 그럼 내일 저녁에 갈까요?]오늘이 안 되면 내일 오겠다.
하지만 이제 학교를 나가야 하는 입장.
내일부터 평일이 시작됐으니 낮에 방문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저녁에 오겠다는데, 이건 더욱 아니라며 막아섰다.
[그건 더 안 되지. 너 학교 가야 하잖아.] [가서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조금만 듣고 오면 되죠!] [여자애가 혼자 밤에 돌아다니면 안 돼. 특히 초등학생은 더더욱!]내가 평일도 절대 안된다고 하니 강설아가 아예 다음 주로 넘어가며 약속을 잡았다.
[에에, 그럼 다음 주 주말은요?]이렇게까지 하니 나도 그 정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자 강설아로부터 메일이 한 통 왔다.
내게 보여줬던 판타지 소설의 원고를 알려준 대로 고쳤다.
하지만 여전히 경험의 부재가 느껴졌다.
좀 더 디테일하게 수정사항을 적은 뒤 답장으로 보냈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니 일주일 동안 어색하던 강설아의 원고가 꽤나 완벽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수정 6차 원고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 정도면 내일 고생했다고 맛있는 거 사줘도 되겠는데?”
***
강설아가 오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노트북까지 챙겨 나와 원고를 쓰면서.
원고에 집중하는 찰나.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음?”
“왔어요, 싸부!”
강설아다.
일주일 만에 보는데도 반가운 표정.
하지만 내 표정은 그녀와 다르게 굳어졌다.
저번과 다르게 강설아가 뭔가 손에 바리바리 싸들고 있었기에.
“그것들은 다 뭐냐?”
하나같이 내용물이 크다는 걸 알려주듯 널찍한 쇼핑백 세 개.
그걸 강설아가 테이블 위로 올리며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이거 싸부한테 속수례하려고 가져온 거요!”
“속수례?”
“공자가 제자를 받을 때 쓰는 말인데, 무협에서 몇 번 봤어요!”
누가 무협 독자 아니랄까 봐 어른들도 잘 모르는 단어를 쓴다.
그나저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속수례랍시고 강설아가 가져온 물건들.
제자가 스승에게 주는 거니 날 주려고 가져왔단 소리였다.
난 테이블 위에 올라온 쇼핑백을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그래서 이게 다 뭔데?”
“제가 밥 사드리려고 하면 안 받으시니 속수례로 준비한 거예요!”
“…….”
밥을 못 사게 하니 속수례로 준비해 왔다는 것들.
난 살짝 들여다봤다.
하나는 ‘맥켈론1946’이란 양주였고, 다른 하나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소고기 세트였다. 그리고 마지막 쇼핑백은 양복이었다.
내가 봐왔던 양주 중 제일 비싼 거라고 해봐야 ‘로얄샬롯 38년산’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설아가 가져온 ‘맥켈론1946’은 그것보다 훨씬 비싸단 게 느낌적으로 다가왔다.
소고기 세트도 어디 시중에서 막 파는 그런 것들과 차원이 다를 정도의 때깔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양복.
‘아르마딜로’란 브랜드의 제품이었는데, 라벨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즉, ‘블랙라벨’이라 불리던 제품. 잘나가던 작가들한테 입으로만 듣던 물건이었다. 못해도 5, 600만 원을 호가한다던.
그 물건들에 대해서 강설아가 자랑했다.
“아빠가 비싸다고 한 것들 중에서 가져왔어요! 양복은 아버지랑 싸부랑 체형이 비슷할 것 같아서 명주실 대신 들고 왔고요!”
여전히 난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걸 날 주려고 가져왔다고?”
“네! 제 싸부가 되어주신 데에 대한 선물이에요!”
다 합치면 천만 원도 넘을 거라고 생각되는 선물.
이걸 강설아가 모은 용돈으로 샀을 리 없었다.
더욱이 양복은 자기 아버지 걸 가져왔다고 하지 않는가?
딱 봐도 속수례란 명목으로 집에 있는 물건을 몰래 가져왔단 소리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난 표정이 굳은 채 한마디 했다.
“가져가.”
“네?”
“당장 이거 가져가서 부모님한테 죄송하다고 사과드려. 안 그러면 앞으로 안 볼 거니까.”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하자 강설아가 지레 겁먹었다.
“싸, 싸부?”
“너 이거 부모님한테 말 안 하고 가져왔지?”
움찔!
“맞구만. 하아, 설아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 때문에 이 어린아이가 제 부모님 물건이라곤 하나 도둑질을 하다니.
내가 부르자 강설아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네에……?”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 정말 나한테 뭔가 해주고 싶다면 부모님 돈이 아닌 네가 직접 벌어서 하라고. 그때까진 이렇게 찾아오면 내가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할 테니까.”
“그, 그러시긴 했는데…….”
“근데 날 도둑놈 제자를 가르치는 비도덕적인 사부로 만들 생각이야?”
“죄, 죄송해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사과하는 강설아.
덕분에 굳어진 표정은 다소 풀렸으나 확실히 해둘 건 끝맺어야만 했다.
“그래도 잘못한 건 깨달았나 보구나.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긴 하지만, 방금 내가 이야기한 대로 해야 용서해 줄 거야.”
“이거 가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한테 다 말씀드리라고요?”
“응, 난 내 제자가 그런 착한 아이였으면 좋겠어.”
“알겠어요! 싸부한테 부족한 제자가 되지 않게 시키신 대로 할게요!”
당장에라도 내가 시킨 대로 할 기세다.
“그래, 그러고 내일 오면 싸부가 우리 설아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전 그것보단 원고를 더 봐주셨으면…….”
원고에 대한 욕심이 꽤 큰 강설아.
그 또한 걱정 말라며 다독였다.
“그것도 당연히 해주지. 자, 그럼 가야지?”
“네! 다녀올게요!”
“응, 잘못했다고 말씀드려.”
“네!”
그렇게 강설아가 내 말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강설아는 내가 시킨 대로 다 말씀드렸고, 죄송하다고도 했다며 칭찬해 달란 듯이 문자를 보냈다.
내가 시킨 대로 했다고 하니 착하다며 칭찬도 해주고, 내일 오면 먹고 싶은 것도 다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다가왔다.
강설아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점심인 열두 시.
한데 열한 시가 되기 무섭게 누군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인터폰 화면을 쳐다보니 웬 중년 남성과 여성이 서 있었다.
“누구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싸부,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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