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62
나는 작가다 062화
62화
“응?”
분명 방금 인터폰에서 들린 목소리는 강설아의 것이었다. 그래, 강설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당연했다.
두 중년 남녀만 확인하느라 보지 못한 가운데에 빼꼼 강설아의 얼굴이 보였으니까.
강설아와 두 중년 남녀.
뭔가 약간 비슷한 인상.
거기서 직감했다.
‘부모님?’
도대체 부모님을 데리고 왜 내 집에 온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그걸 떠나서 우리 집은 어떻게 온 건지가 더 궁금하다.
혹여나 찾아올까 봐 강설아에게 집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근데 우리 집에 강설아네 가족이 찾아왔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지.
일단 찾아왔으니 열어줄 수밖에.
?
인터폰에 있던 버튼을 눌러서 공동 현관부터 열어줬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강설아네 가족이 현관까지 왔다.
문을 열자 강설아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설아 아버집니다.”
“예, 이준경이라고 합니다.”
“혹시 허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한데 좀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예, 들어오시죠.”
거실에는 휴식 공간으로 만들고, 가끔 누군가 재울 때를 생각해서 고급 가죽으로 된 소파 베드가 있었다. 평상시에는 소파고, 등받이를 눕히면 침대가 되는.
그곳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 뒤 난 음료를 준비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탄산은 끊고 커피와 생과일주스로 채워놓은 냉장고.
거기서 강설아랑 내가 마실 주스와 부모에게 건넬 커피를 준비해 갔다.
강설아의 부모 앞에 커피를 놓자 그들이 고마워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손님이 오셨으니 대접해야죠.”
강설아에게 주스를 건네며 말했다.
그러자 강설아 아버지가 꽤나 흡족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인성이 바른 분이군요, 우리 딸 사부님께선.”
나 역시 그 미소에 싱긋 웃으며 화답했다. 그러면서 자리에 앉은 뒤 정말 궁금하단 듯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나저나 저희 집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강설아에게 말해주지도 않은 내 집 주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묻자 방금 전까지 미소를 짓던 강설아의 아버지가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우리 딸이 자꾸 누굴 만난다고 하길래 알아보니 나이차가 꽤 나는 성인 남성이다 보니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뒷조사라…….”
이거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누군가가 내 뒷조사를 했다는게.
그 감정을 모르진 않은지 강설아의 아버지가 다시금 사과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직업도 직업인 데다 우리 설아가 외동이라 언제나 조심히 키우고 있어서 말이죠.”
자신의 직업과 강설아가 외동이란 점을 강조한다.
대관절 직업이 무엇이기에 저러나 싶었다.
“직업이 어떤 것이길래……?”
물어본 건 강설아의 아버지한테만 한 건데, 부모가 양쪽에서 전부 명함을 꺼냈다.
“아, 대법관 강찬욱이라고 합니다.”
“전 변호사예요. 제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우리 딸 사부님이시니 잘 봐드릴게요.”
한쪽은 대한민국에 13인밖에 없는 대법관이고, 다른 한쪽은 대한민국 삼 대 로펌 중 가장 큰 규모를 지닌 광해의 변호사.
너무나도 화려한 ‘사’ 자 직업인 부모님 덕분에 할 말을 잠시간 잃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그래서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제 뒷조사를 하신 거군요.”
사실 직업이 대법관이건, 변호사건 그게 내 뒷조사를 한 이유가 되나 싶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유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뿐인 외동딸.
혹여나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금이야 옥이야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할 수밖에.
같은 외동딸을 뒀던 아버지로서 그 심정 백분 이해가 갔다.
반면 어느 정도 이해한 나와 다르게 강설아의 아버지는 정말 조심스럽게 나왔다.
또 내게 사과를 하며.
“우리 설아 사부님을 오해한 건 아니고, 조심하잔 생각에 했습니다. 아직도 기분이 언짢다면 내 한 번 더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정도까지 사과하니 오히려 뒷조사 당한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어쨌거나 대법관이나 될 정도면 나랑 나이 차이가 띠동갑은 훌쩍 넘었을 텐데, 그런 내게 계속 사과하니 사람이 참 됐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그만하라며 손사래 쳤다.
“아니에요. 그러실 수도 있죠.”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법원에 있다 보면 아이들을 노리는 범죄자들도 많이 보고, 저나 이 사람에게 억하심정을 가진 이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예, 근데 뒷조사를 떠나서 어제 우리 설아가 하는 행동을 보곤 꽤나 인성도 바르고 착하신 분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 분을 의심한 제가 너무 죄송스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너무 부담스러우니 그만하란 듯이 할 무렵.
갑자기 강설아의 아버지가 내게 쇼핑백 세 개를 들이밀었다.
전부 눈에 익다.
어제 강설아가 부모님 몰래 가져왔던 속수례랍시고 건네려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밀어 넣으며 강설아의 아버지가 딸에게 물었다.
“이건 사죄의 뜻으로 가져왔습니다. 어제 설아가 가져갔던 속수례?”
“응! 속수례야!”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 양복은 따로 주문 제작한 겁니다. 아무래도 이제 갓 이십 대 초반인 사부님에겐 사십 대 중반인 제 양복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죠.”
심지어 양복은 내게 맞춰서 따로 주문했단다.
뭐, 이리 부담스럽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다소 부담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강설아의 어머니가 농을 던졌다.
“게다가 패션 감각이라곤 쥐뿔만큼도 없는 저이 대신 제가 구매한 거니 괜찮을 거예요.”
“여보, 너무하구만.”
“뭘요, 진짠데? 그치, 설아야?”
“응!”
아주 유쾌한 분위기로 떠드는 강 씨 가족.
그러나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이에도 뭔가 품위가 느껴지는 이들이었다.
어쩐지 배우인 강설아를 보면 내 스타일이 아니기에 예쁘단 생각은 안 들어도 나이에 비해 완숙함과 고귀함을 지닌 매력이 느끼곤 했다.
그게 다 이제 보니 가정에서부터 몸에 익어온 거였다.
어쨌거나 강 씨 가족이 일부러 내가 선물을 쉽게 받을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들의 선물을 사양했다. 굳이 이런 걸 받지 않아도 내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었으니까.
“아니, 이건 제가 부담스러워서 사양하겠습니다.”
속수례랍시고 건넨 물건들을 사양하며 밀어냈다. 그러자 강설아 아버지가 다시 내게 들이밀며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전래동화 중 금도끼, 은도끼라고 있잖습니까? 원래 착하게 살면 상을 받는 법이죠.”
착한 사람이니 상을 받아야 한다.
권선징악이나 신상필벌을 말하고 싶은 건가?
거기에 대해서 난 전래동화의 문학적 가치로 받아쳤다.
“그건 자기 쇠도끼를 빠뜨린 나무꾼이 진실만 말해서 상을 받고, 거짓을 고한 나무꾼에겐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 하는 벌을 주는 신상필벌, 혹 권선징악과도 관련된 이야기지요. 하지만 전 빠뜨린 쇠도끼가 없으니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여기 벌 받아야 할 꼬마 도둑이 있잖습니까? 그러니 필벌은 됐으니 신상이 있어야지요.”
뭔가 오묘하게 잘 끼어 맞춘 듯한 예시에 난 감탄하면서도 여전히 선물은 거부했다.
“이거 참, 법적으로 종사하시는 분이라 그러신 지 상벌이 명확하시네요.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지만요. 그래도 역시 부담스러우니 거절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속수례랍시고 가져온 선물을 끝까지 거절하자 강설아의 아버지가 난감해했다.
“곤란한데요.”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사실 이준경 작가님에 대해 조사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재밌는 사실요?”
“예, 수능 만점이시더군요.”
“아, 그랬었죠.”
정말 기가 차다.
그 뒷조사 어디서 한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내가 수능 만점인 건 어떻게 알아냈나 싶었는데, 거기서 강설아의 아버지가 난처해하는 이유를 밝혔다.
“사실 이 선물을 드리면서 저희 딸 과외를 좀 부탁하면 어떨까 싶었거든요. 인성 바른 스승 밑에서 공부도 배우면 참 좋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건 곤란합니다.”
선배 작가로서 후배가 될 강설아에게 조언을 주는 것까진 도의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과외는 다르다.
이건 내가 해줄 일이 아니었다.
거절할 명분은 충분했다.
내가 강설아를 과외할 경우 생기는 기회비용에 대해 읊으면 그만.
한데 그걸 강설아의 아버지가 선수쳤다.
“압니다. 저희 딸 과외시킬 시간에 차라리 본인 작품을 쓰시는 게 더 버시죠?”
강설아를 과외시킬 시간에 글을 쓰는 게 더 번다.
황제 로키의 기준으로 보자면 권당 5천만 원 정도를 벌었다. 이걸 시간으로 따지자면 24시간 정도가 걸렸다.
즉, 시간당 내가 버는 돈은 200만 원가량.
내게 일주일에 이틀, 매일 두 시간씩 과외를 부탁한다면 이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단순 계산만 해도 매달 3200만 원을 지불해야만 했다.
차라리 이 돈이면 한국대 입학생들에게 고액 과외를 시키는 게 더 저렴하다.
아마 내가 시간당 7천 자를 쓴다는 건 몰라도 얼추 작품 활동으로 얼마나 버는지도 알아본 걸 보고 대단하다 여겼다.
“제 수익도 뒷조사가 가능했던 겁니까? 그 뒷조사 맡긴 곳이 어딘지 저도 좀 알려주시겠어요? 일 한 번 잘하네요.”
이건 순수하게 감탄한 거다.
도대체 어디다가 맡겼길래 나에 대한 별의별 정보를 다 아는 건지.
하지만 이건 뒷조사가 아니라고 했다.
“아, 이건 뒷조사라기보단 우리 설아가 계산한 겁니다.”
“예?”
“자기 사부가 쓰고 다니는 글을 보곤 어렴풋이 계산해내더군요.”
내가 자신을 과외할 경우에 대한 기회비용은 강설아를 통해 알았다.
난 강설아가 어찌 알아낸 거냐며 물었다.
“넌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
“도서 갤러리에서 누가 유동으로 싸부의 조건을 올렸고, 싸부 사이월드 홈피에서 말씀하신 증쇄랑 계산하면 나오던데요? 우리 아빠가 자꾸 싸부한테 과외를 시키려고 해서 제가 반박했어요, 잘했죠?!”
이거 왠지 공부하기 싫어서 반박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것보단 대법관인 아버지와 변호사인 어머니 상대로 이의를 제기했단 걸 보고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허, 대법관님하고 변호사님 사이에서 난 딸답구만.”
“칭찬이죠?
“그래, 칭찬이다.”
“히힛!”
내 칭찬에 기뻐하는 강설아.
그걸 본 강설아의 아버지가 섭섭한 듯이 반응했다.
“어째 설아, 너는 이 아빠가 칭찬해 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피, 아빠가 언제 칭찬을 했다고.”
“그, 그래도 자주 해주지 않았나?”
“아니거든!”
꽤나 시끄러운 부녀 싸움.
그걸 말린 건 강설아의 어머니였다.
“으이그, 부녀 싸움은 그만하시죠.”
아내한테 핀잔을 듣고서야 강설아의 아버지가 그만 주책 부렸다.
“흠흠.”
남편의 주책이 멈추자 그녀가 날 쳐다봤다.
“이 작가님.”
“예?”
“그럼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이건 이 작가님한테 맞춰서 제작한 거라 저희가 어디다가 쓸 수도 없거든요.”
자기들이 준비한 선물을 내가 부담스러워하니 양복 하나라도 받아가라는 강설아의 엄마.
그녀에게 어쩔 수 없단 듯이 답했다.
“정 그리 이야기하시니 양복만 받겠습니다.”
“호호, 고마워요. 아마 입어보시면 잘 받았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예, 그럼 이 두 개는 가져가시고 제가 찾아오신 일은 다 보신 건가요?”
“다 됐어요! 이제 엄마, 아빠 얼른 가! 나 싸부한테 가르침 받아야 한다구!”
자신들을 쫓아내려는 딸 강설아를 보곤 부모 둘 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았다.”
“이래서 딸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니까.”
“가, 가!”
계속해서 자기 부모님을 쫓아내려는 강설아.
그런 딸의 압박에 못이긴 척 강설아의 부모가 들고 온 양주와 소고기를 든 채 집에서 나갔다.
엘레베이터를 타는 것까지 마중했는데, 갑자기 강설아의 아버지가 날 불렀다.
“아! 이준경 작가님.”
“예?”
“참고로 전 싸부로는 인정하지만, 오빠나 아빠를 인정한 건 아닙니다.”
“으이구, 주책은!”
짝!
“이크!”
“그럼 가볼게요.”
“하.하.하, 예.”
어색한 미소와 함께 강설아의 부모가 탄 엘레베이터가 닫히는 걸 쳐다봤다. 이후 난 별 걱정을 다 한단 생각으로 오직 강설아를 어린 후배 작가로만 대하며 가르침을 주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드디어 홀로 남은 집에서 난 거실 소파에 드러누운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뭔가 피곤한 하루였구만.”
그때였다.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찾아왔다.
또로롱.
“응? 누구지?”
발신자는 성용 형님이었다.
“예, 형님.”
전화를 받자 성용 형님이 꽤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경아.”
“예.”
“술 한잔할까?”
이 형님이 먼저 술을 마시자고 하다니.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내 물음에 성용 형님이 가까스로 화를 참는 건지, 아니면 울분을 참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답했다.
“도저히 더 이상 여기 못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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