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64
나는 작가다 064화
64화
“으, 죽겠네.”
어제 성용 형님과 술을 마시고 근처 모텔에서 잤다.
오전 열 시.
성용 형님이 먼저 뻗어서 방 하나 잡아줬는데, 출근이라면 칼같이 하는 사람이니 벌써 나갔으리라.
어쨌거나 샤워를 하고 난 푸른숲 출판사 근처로 가면서 김두식에게 전화했다.
담판을 짓기 위해서.
김두식이 전화를 받았다.
“예, 작가님.”
“저 지금 사무실 근처거든요.”
“아, 지금 사무실 근처시라고요?”
“네.”
“그럼 어디 근처서 이른 점심이나 함께하실까요?”
“아뇨, 됐습니다.”
“아, 됐다고요?”
“점심은 됐고 드릴 이야기가 있으니 사무실에서 뵙죠.”
“아,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이미 통화하면서 푸른숲 출판사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인사했고, 방금 막 회의실로 들어가려면 김두식이 날 쳐다봤다.
“아, 작가님!”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단단히 벼른 듯 말하자 김두식이 곱게 따랐다.
“알겠습니다.”
회의실로 들어간 뒤 김두식과 마주 보며 앉았다.
먼저 입을 연 건 김두식이었다.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장 부장이 그런 식으로 해서 게일 작가를 데려오자고 했거든요. 게일 작가 아시죠? 제이크…….”
누가 뭐래도 게일 작가 작품 중 가장 잘 팔린 건 제이크였다. 시간이 지나도 독자들 사이에서 언급될 정도로.
바람의 마법사를 표절한 질풍의 마도사 이후로 점점 퀄리티가 떨어져서 그냥 손익분기점이나 겨우 맞추는 작가로 전락해 버린 기성작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일이란 작가는.
어쨌거나 현재 기준으로 제이크는 꽤 성공한 사례. 그걸 들먹이며 출판사 입장에선 데려올 수밖에 없던 작가라고 어필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먹힐 사람에게 해야지.
그런 식으로 게일 작가 정도면 출판사 입장에선 데려올 수밖에 없다고 하려는 걸 내가 미연에 차단했다.
“예, 알죠. 표절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움찔!
김두식 역시 게일 작가의 표절설을 모르진 않았나 보다.
뜨끔한 그에게 난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섭섭하네요. 표절이나 하시는 분을 데려오려고 푸른숲 출판사 매출 불려준 절 욕하시다니.”
“그, 그건 장 부장이 그때만 이야기하면 계약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했던 겁니다.”
아까부터 자꾸 장도철이 시켜서 그랬단다.
우습다.
장도철은 부장이고, 김두식은 사장이었다.
사장이 부장 말을 듣는다?
지랄하고 자빠졌다.
당연히 자기가 아니라고 했으면 막고도 남을 사안이었거늘.
헛소리하지 말라며 잘라냈다.
“장 부장 핑계 그만 대시죠. 어쨌거나 결정은 사장님이 내리셨고, 당시 자리에서 저랑 성용 형님이 뒤통수를 쳤다고 언급한 것도 사장님이셨잖습니까?”
“크흠,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을 거다.
거기서 난 단순히 성용 형님이나 나만 기분 나쁜 게 아니란 걸 밝혔다.
“죄송하다고 될 문제는 아니죠. 저뿐만 아니라 지금 성용 형님부터 해서 풀 출판사 직원들 전부가 사장님이 하신 말씀 때문에 불만을 갖고 있거든요.”
“그건 제가 장 부장 시켜서 회식 한 번…….”
“아니, 그 사람들이 무슨 난민도 아니고 밥 한 끼 먹이는 걸로 기분 나빠진 게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럼 어떻게……?”
회식으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니 김두식은 내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슬슬 여기서 준비해 온 패를 꺼냈다.
“거래하시죠.”
“무슨 거래 말씀이십니까?”
“딱 황제 로키 40권까지 써드리겠습니다. 그에 대한 수익 모두 푸른숲에게 넘길 테니, 이후 풀 출판사는 저한테 넘기시죠.”
거래 제안을 할 무렵 장도철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두식이 당황했다.
“푸, 풀 출판사를 달라뇨? 그게 무슨…….”
김두식이 당황하건, 말건 난 장도철에게 말했다.
“아, 커피 고맙습니다.”
커피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 날 장도철이 방금 전 김두식의 말을 들어서인지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장도철이 커피를 주지 않자 물었다.
“저 주시려고 가져오신 거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 사장님, 여기 커피 있습니다.”
“그래, 나가봐.”
커피를 받기 무섭게 김두식은 장도철을 내보내려고 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방금 전까지 어떻게든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던 대상이 장도철이었다.
근데 내 입에서 방금 김두식 본인이 한 이야기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풀 출판사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신뢰를 잃으리라.
그러니 내쫓으려는 게 보였다.
하지만 장도철은 방금 전 이야기를 들어서 꽤 중요한 자리가 될 거라고 여긴 건지 나가지 않았다.
“예? 중요한 자리인 것 같은데 저도 같이…….”
합석하겠다고 말하는데 김두식이 단칼에 끊었다.
“나가라고.”
“……알겠습니다.”
두 번이나 나가라고 했는데, 더 버티는 건 부장이 사장을 무시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장도철 역시 그걸 모르지 않기에 결국 김두식이 시킨 대로 회의실에서 나갔다.
덕분에 나야 무기를 하나 더 쥘 수 있었다.
“이미 직원들에게 사장님 신뢰도는 바닥이고, 저 또한 절 욕하는 작가와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방금 이야기가 장 부장한테 들어가면 어떨까요?”
“아니, 그건 진짜 장 부장이 기획한 일이라니까요.”
새로이 쥔 무기를 꺼내자 반박하는 김두식.
그래, 기획이야 장도철이 했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란 걸 잘 알 텐데.
“기획이 아니라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단 걸 알면요?”
“지금 저 협박하는 겁니까?”
“아뇨, 협박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게 있는데요. 단지 풀 출판사 직원들이 현재 장 부장님이 방금 전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도 더 사장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단 거죠. 장 부장이야 적당히 사장님 대신 총대를 매준 정도가 되겠지만, 지금 풀 출판사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서 유배당한 것 같아도 옮겼는데, 충성하고 있던 회사가 자신들을 뒤통수치고 나간 배신자로 만들었으니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방금 쥔 무기로 김두식의 가슴팍을 마구 찔렀다.
그로 인해 현재 풀 출판사로 간 직원들이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그래서 풀 출판사를 거저 드시겠다는 겁니까?”
결국 내가 거래를 무르지 않을 거라고 판단이 섰나 보다.
김두식 입에서 원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거기서 난 살살 구슬렸다.
“아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전 그래도 사장님의 배려를 알고 있다니까요?”
난 어느 정도 네게 호의적이다.
그러한 듯이 나오니 김두식 역시 거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럼 풀 출판사를 가져가는 대신 제겐 뭘 주실 겁니까?”
“황제 로키를 40권까지 써서 돈 좀 벌어드리겠습니다. 세금은 풀 출판사에서 부담하고, 제 인세를 제외하고 나머지 수익 전부를 푸른숲 출판사에게 넘겨드리죠.”
내가 제안한 거래 조건에 김두식은 흐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한 번 튕겼다.
“만약 제가 이 조건을 안 받아들이면요?”
조건을 안 받아들이면 내가 해야 할 협박은 정해져 있었다.
“다음 권으로 황제 로키는 조기 종결 칠 겁니다.”
잘 나가고 있는 작품을 조기 종결 치겠다.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갑질 중 최고였다.
출판사 입장에선 돈 벌어다주는 작품이 조기 종결되면 곤란했으니까.
사실 편집자였던 내 입장에서도 썩 좋아하는 갑질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갑질로 풀 출판사 직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몇 번이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담당자인 성용 형님은 담당 작가인 내 갑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니 더욱 챙길 수밖에.
거기서 김두식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드래곤 나이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드래곤 나이트. 그러고 보니 차기작으로 미리 계약해서 권당 보장을 받고 있었지.
거기에 대해서도 거래 여하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이야기했다.
“거래를 받아들이신다면 그것도 한 20권까지 써드리죠. 대신 두 작품 모두 완결을 침과 동시에 저작권은 모두 회수하겠습니다. 물론,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면 드래곤 나이트는 계약서에 적힌 최소 권수인 6권으로 조기 종결 칠 겁니다.”
작품에 대한 조건부를 밝히자 김두식은 조금 다르게 제안했다.
“흠, 근데 꼭 풀 출판사를 가지셔야 하겠습니까?”
“무슨 의미시죠?”
“차라리 지분을 돌려주시고 다들 데리고 나가시죠.”
풀 출판사 자체는 포기할 수 없지만, 직원들은 데려가겠다면 놓아주겠다. 아무래도 세금 문제로 만들어놓은 회사이다 보니 넘기기 그랬나 보다.
이진우가 풀 출판사를 가지고 있을 땐 세무조사로 협박했으니 어쩔 수 없이 내줬지만, 지금 상황에선 굳이 그런 게 아니니 풀 출판사 자체를 가져갈 필요까진 없었다.
게다가 김두식이 욕심을 부려서 풀 출판사를 그대로 갖고 있는다면 폭탄 하나 안겨둔 채 넘겨주는 거기도 했고 말이다.
굳이 폭탄을 해체하도록 도와줄 의리까진 없었다.
그저 난 좋게 끝내고 현 풀 출판사의 직원들만 데리고 나가서 좋은 회사를 차리면 그만이었으니까.
대신 풀 출판사를 넘긴다는 건 나와 성용 형님이 반씩 가지고 있는 지분을 넘겨야 한단 소리였다.
거기에 대해서 난 직원들을 챙기는 쪽으로 움직였다.
“흐음,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대신 저와 성용 형님의 지분에 대한 대가로 현 풀 출판사의 직원들 퇴직금을 두둑이 주시죠.”
“그렇게 데려간 뒤 출판사를 따로 차릴 생각입니까?”
“직원들 불만을 들어보니 차라리 그게 낫겠더군요. 다들 더 이상 사장님 밑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대답 대신 직원들이 여기 안 남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두식은 확신에 찼다.
내가 풀 출판사의 직원들을 데리고 나가서 출판사를 따로 차릴 거란 걸.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출판사란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뭐, 쉽지 않으면 제 작품만 돌리죠. 어느 정도 메울 돈은 벌었으니까요.”
어느 정도 거래의 내용이 정리되자 김두식이 손을 내밀었다.
“흠, 좋습니다. 그럼 방금 이야기한 대로 진행하죠.”
그 손을 맞잡았다.
“예, 그럼 황제 로키랑 드래곤 나이트까지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두식과의 거래를 끝낸 후 난 근처에 있던 풀 출판사로 찾아갔다. 그리고 성용 형님과 직원들에게 오늘 나눈 이야기들을 밝혔다.
그들을 위해서 내가 꽤 많은 걸 포기했다고 여긴 성용 형님이 말했다.
“야, 굳이 네가 그리 손해 보면서까지 할 필요는…….”
손해를 봤다.
아니다.
비록 내가 어느 정도 많이 양보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 모든 건 손해가 아니라 새롭게 차릴 출판사에 대한 투자였다.
그걸 정확히 집고 넘어갈 생각으로 성용 형님의 말을 끊었다.
“손해가 아닌데요. 전 여러분에게 투자한 겁니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퇴직금 받고 딴 데 가셔도 돼요. 근데 설마 성용 형님이 떠나시진 않을 거죠?”
다른 사람은 퇴직금 받고 딴 데 가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성용 형님은 안됐다.
나 대신 출판사를 대신 운영해 줘야 할 사람으로 꼭 필요했으니까.
성용 형님이 답했다.
“이제 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는데, 어디로 떠나?”
거기에 부사수 김재민도 손을 들어올렸다.
“저도요!”
그렇게 판무팀인 두 사람이 함께하겠다고 하자 난 나머지 로맨스팀 두 여직원을 쳐다봤다.
“두 분은 어떻게 하실래요? 일단 김 사장님이 퇴직금은 챙겨주시기로 했어요.”
“그렇게 받아먹고 도망가면 천하의 나쁜 년이죠.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저도요!”
로맨스팀 두 여직원도 합류했다.
그들에게 난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습니다. 다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