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67
나는 작가다 067화
67화
“그, 그렇죠?”
감봉이란 단어에 놀라는 김재민.
하기야 봉급쟁이에게 감봉이란 단어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근데 감봉이 있긴 해야만 했다.
방금 성용 형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제대로 케어하지 않고 담당 작가만 늘려서 자기 이익만 챙길 수도 있었으니까.
이건 작가와 담당자 그리고 독자 모두가 상부상조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작가 역시 담당자가 케어를 잘해줄 때 더욱 좋은 작품 활동이 가능했고, 담당자 역시 그런 노력의 대가로 인센티브를 받았다.
이렇게 작가와 담당자의 관계가 굳건해지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면 돈 내고 보는 독자 입장에선 당연히 환영할 일이리라.
볼만한 작품이 늘어나는 거니까.
그렇게 일반적인 종이책 기준에 대한 설명을 끝낸 성용 형님이 다음 조항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저희는 전자책 수익의 경우 7.3:2.7 그리고 2차 창작의 경우 작가 본인이 계약을 따오게 된 경우 8:2, 저희가 직접 연결해 줄 경우 전자책 수익과 동일한 7.3:2.7로 갈 겁니다.”
종이책 시장이 아닌 전자책 시장과 나중에 활발해질 2차 저작에 관한 조항.
거기에 대해서 김재민이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그 애매한 0.3은 뭡니까?”
“기본적으로 작가분들에게 정산비 7할 정도 드리는 게 회사 순수익상 가장 효율적이지만, 전자책 및 2차 저작권에 대한 담당자 정산비율을 위해서 만든 수치입니다.”
0.2가 담당자들의 인센티브를 위한 수치라고 하자 김재민은 회사의 이익 쪽으로 이야기했다.
“그럼 작가님들 비율을 6.8로 하고, 0.2를 담당자에게 주면 되지 않을까요?”
솔직히 가능하긴 했다.
아직 전자책 시장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꽤나 정산비가 엄청 작가에게 손해 보는 기준으로 되어 있었다.
나중에 전자책 시장이 안정화되면서 7:3이 관례처럼 됐지만, 지금은 작가가 가져가는 몫이 70%가 아니라 35%였으니까. 물론, 지금 시장 기준으로 전자책에 연연하는 작가가 없으니 크게 신경들을 쓰지 않았다만.
“최대한 작가님들을 배려해 주는 회사로 이미지메이킹 하기 위해서 조금 손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일할 직원들에게도요.”
회사가 얻어갈 부분을 줄여서 작가와 담당자에게 준다는 식으로 하니 김재민이 물었다.
“너무 퍼주는 회사인 건 아닐까요?”
확실히 그리 생각하고도 남았다.
지금 시장 기준으로 보면 퍼주는 것처럼 여길 수 있는 조건들.
근데 이걸 모든 작가에게 평등하게 한다면 그리 손해 보는 건 아니었다.
잘 버는 작가들 위주로 회사를 꾸릴 수만 있다면.
유료연재 혹 전자책 시장이 열리면서 이름값 좀 나가는 작가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출판사마다 소속 작가들 몰래 다른 조건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00만 원 벌어주는 작가랑 1억 벌어주는 작가가 같을 순 없는 거니까.
하지만 난 언제나 출판사들 사이에 이 조항을 밝히지 못하도록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주제넘게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조건을 요구하는 작가들이 있었으니까.
근데 그런 작가들이 있으면 사실에 근거하여 쏘아붙이면 됐다.
이 작가의 경우 1억을 벌어주니 플랫폼이 떼어가고, 8:2를 하더라도 회사에 남는 돈이 천만 원이 넘지만, 작가님은 7:3을 해도 회사에 남는 돈이 100만 원이 매출이면 10만 원을 겨우 넘긴다고.
만약 이 조건을 받고 싶으면 그만큼 벌어다 주는 작가가 되라고 말하리라.
근데 지금 계약서는 이 모든 걸 입 아프게 떠들지 않아도 됐다.
더 벌기 위해 좋은 조건을 받고 싶으면 팔릴 작품으로 계약하면 됐으니까.
어쨌거나 이 모든 걸 선순환하기 위해 준비한 계약서였다.
퍼줘도 남는 회사.
만약 퍼줘서 적자를 본다면 존재가치가 없어졌다.
기업의 존재 가치는 어쨌거나 흑자를 봐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성용 형님은 우려하는 김재민에게 씨익 웃었다.
“그런 회사가 되지 않도록 정말 작품성 있는 작가님들을 컨택하고 케어해 주셔야죠.”
“알겠습니다.”
앞으로 K E&M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납득한 김재민.
거기서 곽정아가 물었다.
“로맨스도 동일한가요?”
“예, 동일합니다. 단, 현 시장에 맞는 부수와 계약조건은 저보다 곽 팀장님이 더 잘 아실 테니 기획서 좀 만들어주세요.”
“아직 담당해야 할 작품이 별로 없으니 기획서나 만들면 되겠네요. 안 그래도 이준경 작가님 인세로 월급 받으면서 일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죠.”
“풀 출판사 때보다 더욱 바빠질 겁니다. 지향하는 목표가 생긴 ‘우리’ 회사니까요.”
“네!”
이후 성용 형님은 직원들에게 더 알려줘야 할 사항들과 오늘부터 해야 할 업무들을 지정해 줬다. 그리고 회의를 끝낸 뒤 나와 단둘이 남았다.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앉는 성용 형님.
“후우, 일어서서 회의를 주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만.”
“그래도 꽤 대표님 티 좀 나던데요?”
멋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에 성용 형님은 됐다며 손사래 쳤다.
“대표님 티는 무슨. 결국 네가 정해준 걸 그대로 읊은 것밖에 없는데.”
“어쨌거나 깔끔하게 정리해서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그 모든 걸 진행한 건 형님이시잖아요? 전 어디까지나 우리 회사가 작가, 담당자, 독자 모두에게 좋은 곳이 되길 바라며 건의만 했을 뿐이고요.”
“그냥 네가 대표하지 그러냐?”
첫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도 내게 했던 말이다.
어떤 안건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잡아줬더니 아무래도 자신보다 내가 더 대표에 어울릴 것 같다며.
하지만 난 정한 자리가 있었다.
“저도 대표잖아요? ‘대표’ 작가니까.”
그래, 내 자리는 어디까지나 작가였다.
K E&M의 간판이 되어줄 대표 작가.
성용 형님은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날 보곤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혀, 말이나 못하면. 그러면서 컨택할 작가랑 작품은 왜 검수부터 받으란 거냐?”
“그야 제 회사이기도 하니까요. 잘돼야죠.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작가들은 인성이 어떤지 알아보고, 작품은 어떤지와 컨택한 담당자가 어느 방향으로 케어할지 확인은 필수하고 생각합니다.”
“그게 완전 대표잖아!”
새로이 계약할 작가나 작품에 대한 최종 컨펌을 받으란 내용에 대표나 다름없다고 한다.
“흐흐, 그것 말고 나머지 업무에 대해선 형님에게 전권을 넘기지 않았습니까? 어디까지나 거기에 관한 최종 컨펌은 작가로서 저도 검토하는 것뿐이고요.”
이리 말하니 할 말이 없는지 성용 형님은 그만 이야기를 끝냈다.
“하여간 또 회의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말해줘라. 그때까진 지금 정해진 업무로 빡세게 굴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자.”
“예.”
성용 형님과 함께 회의실에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지이잉.
회의하는 도중 휴대폰이 울려서 방해하면 곤란했다. 그래서 매너모드로 해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무슨 연락이 온 건가 싶어 휴대폰을 확인해 봤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누구지?”
없는 번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성용 형님이 물었다.
“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네요. 저 통화 좀 하고 나갈 테니, 형님 먼저 나가시겠어요?”
“그래, 난 일해야지.”
“예, 수고하세요.”
“예, 받았습니다.”
모르는 번호긴 했으나 일단 받고 봤다.
“여보세요?”
“아, 준경아! 넷째 큰아빠다.”
찬우의 아버지.
친척들 번호라곤 또래들 번호나 있지, 어른들 번호는 하나도 없었다.
넷째 큰아버지와 번호를 교환한 적은 없으나 전에 큰집에서 명함을 나눠줬으니 그걸 보고 연락했으리라.
“아, 예!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
“찬우 일 때문에 전화 좀 했다.”
“찬우 일요?”
“그래, 찬우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데 괜찮은 학원 아는 데가 있니?”
“어, 괜찮은 학원이라……. 일단 그건 제가 찬우랑 연락해 볼게요.”
막상 그리 물어봐도 내가 해줄 건 없었지만, 큰집에서 찬우를 도와주겠다고 대답한 만큼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넷째 큰아버지도 안심하며 찬우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내가 찬우랑 따로 이야기한다고 하자 넷째 큰아버지가 부탁했다.
“부탁 좀 하마.”
자식이 잘되기 바라는 건 아버지라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이랄까.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내게 부탁하는 넷째 큰아버지를 보곤 은은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예.”
그렇게 넷째 큰아버지와 연락을 마친 난 곧장 찬우에게 연락했다.
“준경 형! 무슨 일이야?”
“너 그림 배울 곳 찾고 있냐?”
“어, 그냥 아빠한테 적당히 가까운 데 가겠다고 했더니 형한테 물어보자고 하더라구.”
집에서 가까운 만화 아카데미 같은 데를 가려고 했나 보다.
근데 이미 찬우의 경우 기본적인 건 독학으로 습득한 것 같았다.
수많은 작품들의 표지를 따내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일러스트들을 봐온 내 입장에선 그게 딱 보였다.
이제 찬우에게 필요한 건 기초적인 것보다도 더욱 퀄리티 있게 그리는 거라고 판단했다.
과연 나 말고 녀석은 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건지 물어봤다.
“뭘 배우려는 건데?”
“어떻게 손그림은 그리겠는데, 이게 컴퓨터로 그리는 게 쉽지 않아서 배울까 하고.”
컴퓨터로 그리는 게 쉽지 않다.
연필로만 그리다가 타블렛으로 그리려니 어색하단 소리에 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컴퓨터로 그리는 거라……. 아!”
“응?”
내 반응에 찬우가 의아해했다.
반면 난 씨익 웃으며 한 떠올린 사람이 있는 걸 밝혔다.
“잘하면 네게 좋은 스승님을 연결해 줄 수도 있긴 하겠다. 너 혹시 포트폴리오로 쓸 만한 그림 좀 있냐?”
“어, 형 거 드래곤 나이트랑 만선이란 작가의 용사무적이 재밌어서 그린 게 몇 장 있긴 한데…….”
뜨끔!
용사무적이 내 작품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찬우가 용사무적을 보고 그린 그림이 있다고 하니 왠지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통화 중이니 목소리로만 내색하지 않으면 들킬 염려가 없었다.
난 아주 태연하게 찬우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그건 다 손그림이지?”
“응!”
“그거 사진 찍어서 나한테 문자나 메일 좀 보내봐.”
“알았어!”
찬우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지이잉.
-형, 메일로 보냈어!
메일로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냈다는 찬우.
“어디 한 번 봐볼까?”
찬우가 보낸 그림들을 훑어봤다.
예전에 봤던 그림들보다 더욱 퀄리티가 올라갔다.
아마도 나로 인해 부모님이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리는 걸 허락하면서 좀 더 평온해져서지 않을까 싶었다.
예술은 육체적 건강도 중요했지만, 정신적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봤다.
멘탈이 흔들리면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퀄리티가 예전에 보던 것보단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프로로 데뷔할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한데 뭔가 느껴졌다.
“음, 다른 그림도 보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그리 말하면서 난 찬우의 그림을 메일 한 곳에 보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을 넣었다.
임형우에게.
-형우 형님, 바쁘실까 봐 문자로 보내요. 제 친척 동생 놈인데 타블렛으로 그림 그리는 걸 배우고 싶다는데, 메일로 녀석 그림 좀 보냈는데 가능성이 보이면 좀 키워주시면 안 될까요? 만약 별로면 그냥 무시하셔도 되고요.
문자를 보내기 무섭게 전화가 왔다.
“야, 그냥 전화하면 되지. 뭘 또 문자를 하고 그러냐?”
“일하시느라 바쁠까봐 그랬죠.”
“나야 뭐 언제나 바쁘니 신경 안 써도 돼. 그나저나 지금 친척 동생이 그렸다는 그림 좀 보고 있거든?”
메일로 보낸 찬우의 그림을 보고 있단다.
“오, 어때요?”
“흠, 기본적인 구도는 어째 맞추긴 했는데 살짝 어긋나는 부분들이 보이고 퀄리티가 그리 높지 않네.”
생각보다 평이 좋지 않았다.
나쁘게 말하진 않았으나 내 친척 동생이라고 말한 걸 감안하면 별로라는 건가 싶었다.
“재능이 없나요?”
“아니, 재능은 있어.”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퀄리티가 그리 높지 않다면서 재능이 있다니?
“초보 치고 잘 그려요?”
“방금 이야기했다시피 퀄리티는 그냥 무난해. 잘한다고도, 못 한다고도 할 수 없듯이.”
“근데 재능이 있다고요?”
이해가 안 갔다.
무난한데 재능이 있다니.
“일러스트 퀄리티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데 그게 있거든.”
“그게 뭐예요?”
찬우의 재능에 대해 물어본 내게 형우 형님이 딱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야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