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71
나는 작가다 071화
71화
강설아의 필극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
한 시간 내 만 자.
평소 시간당 7천 자 이상을 뽑아내기 위해서 작업 외 시간에는 시놉시스를 짰다.
하지만 그 한계가 9천 자였다.
심지어 강설아를 보낸 이후로 몇 시간을 해봤지만, 그 9천 자의 벽을 넘기란 쉽지가 않았다.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만 자를 찍을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한 방법은 빠르게 쓰는 거였지만, 이미 그 빠르게 쓰는 걸로 한계의 벽에 부딪힌 상황.
다른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이 벽은 뚫지 못하리라.
거기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좀 더 시놉시스를 구체적으로 써볼까?’
현재 내가 시놉시스를 쓸 땐 한 회차에서 일어나야 할 사건과 키포인트가 되어줄 대사 하나만 집어냈다.
이제 그 대사 하나와 사건 전개를 위해서 채워 나가기만 하면 됐는데, 이런 식으로 시간당 7천 자 이상을 쓰고 있었다.
주로 쓰다 보면 가끔씩 앞에 쓴 사건과 설정이 다르지 않나 고민하느라 중간씩 흐름이 끊기곤 했다.
금방 흐름을 되찾아 쓰긴 했다만.
‘그 중간중간 끊기는 흐름만 잘 잡으면 천 자를 더 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고민해 봐야 무엇하겠는가?
해보는 게 우선이라.
난 식사할 때랑 사이클을 탈 때 적어둔 시놉시스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세밀한 작업을 해뒀다.
앞내용이나 설정과 충돌하지 않도록.
그리고 한 시간을 잡고 집필에 들어갔다.
휴대폰으로 켜뒀던 스톱워치.
설정해 둔 한 시간이 지나자 알람음이 흘러나왔다.
또로롱.
“됐구나.”
난 글자수를 확인했다.
‘컨트롤, Q, I.’
글자수를 본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쾌재를 부르며.
“나이스!”
날 신나게 만든 모니터에 나타난 글자수는 이랬다.
글자 : 10,213자
* * *
다음 날도 매일 오기로 약속한 강설아가 왔다.
오기 무섭게 강설아는 내게 당당히 밥을 차려주길 요구했다.
필극의 대가로 방문할 때마다 한 끼씩 차려주기로 했기에.
기분 좋게 차려줬다.
이것도 이제 몇 번 안 남았으니까.
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강설아가 수첩에다가 시놉시스를 적었다.
같이 식사하면서 내가 하던 걸 보고 배운 것이다.
이래서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기도 했다.
자기 집에선 식사를 하며 수첩에다가 글을 끼적이면 아버지가 뭐라 한다나?
어쨌거나 내가 차려준 밥으로 식사를 마친 강설아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싸부, 필극하시죠!”
아직도 자신이 이길 거라고 자신하는 강설아.
난 피식 웃었다.
“좋아, 하자.”
내 반응이 평소와 다르단 걸 느꼈는지 강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하지만 굳이 내 자신만만한 이유를 밝혀줄 필요 따윈 없었다.
모르는 척하며 반문했다.
“왜?”
“아, 아니에요! 그럼 저 노트북 세팅할 테니 필극해요!”
“그래.”
나와 강설아는 같이 식사를 하고 난 식탁을 치우고, 거기다가 같이 노트북을 세팅했다.
서로 마주 보며 노트북 세팅을 끝낸 뒤 이야기했다.
“자, 이제 시작하자고. 제한 시간은 한 시간, 그 안에 내가 만 자를 쓰면 내 승리.”
“못 채우시면 제 승리죠.”
“그래.”
“그럼 시작해요!”
“오냐.”
휴대폰으로 한 시간 스톱워치를 설정한 뒤 우린 필극을 시작했다.
타다다닥!
시간 내에 많은 글을 쓰기 위한 키보드의 향연.
백색소음처럼 서로의 집중력을 향상시켜 줬다.
무아지경.
정신을 오직 원고에만 집중했다.
그 흐름을 끊은 건 한 시간이 지나자 울린 알람 소리였다.
또로롱.
알람 소리가 필극의 끝을 알리기 무섭게 강설아가 말했다.
“손 떼요!”
한 자라도 더 써서 내가 만 자를 넘기기라도 하면 안 되니 칼같이 막아서는 강설아.
만 자를 넘기지 못했을 때 그 모습이 얄미웠는데, 왠지 오늘은 그 모습이 참 귀엽게 보였다.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보란 듯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 모습에 강설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예요, 싸부.”
“뭐가?”
“오늘 왜 그리 징그럽게 웃으세요!”
“인마, 싸부한테 징그럽다니.”
“여튼 글자수 보여주세요!”
쪼르르 내 옆으로 다가와서 자기가 직접 글자수를 확인하는 강설아.
“마, 말도 안 돼…….”
강설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를 기겁하게 만든 건 모니터에 나타난 글자수였다.
글자 : 10,820자
드디어 필극의 조건인 만 자를 내가 뛰어넘은 것이었다.
“싸부, 미리 써둔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그, 근데 어떻게 만 자를 넘겨요!”
“못 넘길 거야 없지. 9천 자씩 썼었는데.”
“막 써서 채운 거 아니에요?!”
“읽어보던가.”
“좋아요!”
강설아는 내가 원고를 대충 쓴 게 아닌지 확인했다.
그렇게 원고를 읽는 내내 얼굴의 표정이 다양하게 바뀌어 나갔다.
원고를 보고 확인하기 위한 감시관 같은 게 아닌 아예 독자로서 읽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원고 상태를 확인한다던 강설아는 재밌게 읽어 버린 자신을 깨닫곤 아차 싶었다.
“앗!”
당황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그런 강설아에게 난 물었다.
“어때? 대충 쓴 것 같아?”
“아, 아뇨…….”
꼬리를 마는 강설아.
직접 두 눈으로 원고 상태를 확인하다 못해 재밌게 봤으니까.
“자, 그럼 오늘 필극의 승자는 나네?”
“그, 그렇죠. 글자수를 낮추실 거예요?”
필극의 조건으로 글자수를 낮춘다.
“아니, 그건 너무 양심이 없는 것 같고.”
그래, 양심이 없긴 했다.
무조건 내가 이기는 조건이었으니까.
때문에 대가로 필극의 조건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니 강설아가 물었다.
“그럼요?”
“이제 다시 우리 집 방문하는 날을 주말로 바꾸겠어!”
“으아아! 차라리 딴 걸 해요!”
매일 우리 집으로 도망치듯 와서 글만 쓰는 강설아.
공부하란 건 과외하는 걸로 퉁치면서.
필극의 대가였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젠 그걸 좀 되돌릴 때가 됐다.
“딴 건 무슨. 너 요새 우리 집 와서 나한테 공부한다고 핑계대면서 복습 같은 거 전혀 안 한다며.”
“히잉.”
“왜 한 번 더 할까?”
필극 한 번 더 하자는 물음에 강설아가 고민에 잠겼다.
“으음.”
고민을 하면서 읊조렸다.
“한 번 했으니 진이 빠지셨을 테니까…….”
진이 빠졌을 거라니.
하기야 맨날 필극을 하루에 한 번씩만 했으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 딴에는 하루에 여러 번 필극했는데 다 지면 강설아의 멘탈이 나갈까 봐 한 번씩 했던 건데 말이다.
어쨌거나 강설아는 착각하며 내게 필극을 요구했다.
“좋아요! 한 번 더 해요!”
“오냐.”
그렇게 두 번째 필극을 시작했다.
당연히 결과는…….
“으아아! 뭐야! 말도 안 돼!”
다시금 1만 자를 넘게 쓴 날 보고 강설아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칭얼거렸다.
나 또한 놀랍긴 했다.
혹시 몰라서 해본 건데 또 1만 자를 쓸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시놉시스가 있었기에.
‘이거 설아 덕분에 나도 한 단계 발전한 건가?’
평소 시간당 7천 자 이상 쓰는 것만으로도 엄청나다고 느꼈으니 더 이상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한데 강설아랑 필극을 하다 보니 시간당 만 자까지도 노려보게 된 것이다.
스스로의 발전에 흡족해하면서 난 칭얼거리는 강설아를 나무랐다.
“인마, 눈으로 보고도 말이 안 된다고 하냐?”
“어떻게 두 편 연속으로 한 시간 만에 만 자를 넘게 쓸 수 있어요!”
“너도 한 시간에 2천 자 넘게 쓰잖아, 이제.”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게다가 전 하루에 3천 자 겨우 쓰고 퇴고하느라 바쁘다고요! 싸부는 퇴고도 안 하신다면서요!”
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태 썼던 게 있으니 무협 용어를 꽤나 능수능란하게 다루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가르친 경험의 부재나 부적절한 용어들의 사용이 많았으니까.
게다가 이것도 시간을 쪼개서 하는 거다.
비록 우리 집에 저녁마다 와서 필극을 하자느니, 짬짬이 나처럼 시놉시스를 쓴다고 해도 꽤나 잘나가는 부모님을 둔 강설아다.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건 다 배워야 하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찌 보면 강설아의 사정을 보면 3천 자도 잘 쓰고 있는 거기도 했다.
단지 작가로서 안정적인 출간을 하려면 하루 5천 자는 기본으로 채워야지.
어쨌거나 퇴고도 안 한다며 날 물고 늘어지는 강설아.
그녀에게 난 피식 웃어 보였다.
“그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왜 할 필요가 없어요!”
“난 편집자를 믿으니까?”
물론, 그 편집자가 나 자신이란 건 비밀이지만 말이다.
“에에…… 저도 편집자 붙여줘요!”
자신도 퇴고할 시간에 원고를 쓰겠다는 생각이리라.
그런 강설아에게 난 편집자를 붙을 깜냥이 아니란 걸 밝혔다.
“계약도 안 했는데 무슨 편집자?”
“그럼 계약해 줘요!”
“내가 말했잖아. 한 달 동안 매일 5천 자 꾸준히 쓰면 해주겠다니까.”
“우으, 내가 치사해서 쓰고 만다.”
“그래, 써라. 그리고 퇴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가 볼 땐 내 원고를 퇴고할 필요가 있어 보이디?”
“그건…….”
자기 수준에서 봤을 땐 퇴고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았으리라.
때문에 답변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강설아.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니 내게 다른 걸로 물고 늘어졌다.
“우으, 그럼 연재라도 그만하세요!”
현재 내가 연재하고 있는 소설은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이었다.
당연히 모든 연재 사이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강설아의 매화신검이나 그녀와 경쟁 중인 작품이 1등을 못한 채 2, 3등을 겨뤘다.
이런 성적인지라 강설아는 여러 군데 출판사에서 컨택이 오긴 했지만, 우리 회사에서 내고 싶어서 계약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애당초 하루 5천 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알려주면서 계약을 함부로 못하게 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자신이 1등하기 위해서 연재 좀 그만하라는 강설아에게 난 말했다.
“청출어람이란 말 모르냐? 나 때문에 1등을 못하는 게 아니라 뛰어넘어서 1등하면 되잖아?”
“말이 돼요?! 싸부를 누가 이겨요, 지금!”
강설아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지금 시장에서 누가 나보다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나 때문에 1등을 못한다며 부들부들거리는 강설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인마, 곧 출간할 거라 연재 그만둘 거니 그때까지 참아.”
“엇?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도 출간하시는 거예요?”
“응.”
“근데 아직도 황제 로키랑 드래곤 나이트는 완결나지 않았잖아요?”
“뭐, 완결권이 출간 안 된 거지. 푸른숲 출판사한텐 이미 완결 원고를 다 넘겼는데?”
이미 원고는 완결까지 다 넘겼단 말에 강설아가 당황했다.
“에엑?! 몇 권 완결인데요?”
“황제 로키는 40권, 드래곤 나이트는 20권.”
“그, 그렇게 많이 썼다고요?”
“많이는 무슨. 출판사 문제만 아니었으면 100권도 썼을걸?”
“그렇게 쓸 수가 있어요?”
쓸 수야 있었다.
한 10권 이후부턴 그냥 관성으로 본다고 해도 무방했다.
대체로 5천 자 중 3분의 2는 다른 캐릭터 이야기를 쓰다가도 나머지에선 주인공 이야기만 쓰면 하차할 경우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종이책 시장인 지금은 흐름이 좀 더 느려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봤다.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쑤셔 박으며 분량을 늘려갔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가 봤던 모든 판타지 소설들의 에피소드를 다 써먹어서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 다음으론 뭘 쓸지가 고민일 뿐.
어쨌거나 내 이야기를 들은 강설아가 기겁한 걸 보곤 씨익 웃었다.
“왜? 싸부가 좀 대단해 보이냐?”
“엄청나긴 한데……. 그럼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은 몇 권까지 쓰실 거예요?”
“일단 20권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증쇄를 하게 된다면 더 늘릴 것도 감안해야지?”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도 증쇄만 잘 되면 몇십 권을 쓸 거라고 하자 강설아가 괴물 보듯 쳐다봤다.
“그게 뭐예요, 무서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