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83
나는 작가다 083화
83화
아무리 봐도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켰다.
칠리아노 보스.
“아니, 이 아저씨가 나한테 왜 이래? 딴 데 원고 뿌리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메일로 칠리아노 보스에게 약속도 안 지키는 사람이셨냐고 전달해 달란 답장만 보냈다.
이후 원고를 쓸 때였다.
또로롱.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음? 누구지?”
휴대폰 액정을 보니 김 변호사였다.
“예, 받았습니다.”
“자, 작가님.”
당황한 듯한 김 변호사의 목소리.
이 아저씨는 왜 이러나 싶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한 번 쳐다봤다가 대답했다.
“예?”
“도, 도대체 뭘 하신 겁니까?”
“뭐가요?”
“칠리아노 보스가 노발대발해서 전화했습니다. 당장 이탈리아로 오든지, 아니면 납치라도 해오겠다고.”
“나더러요?”
“예.”
나더러 이탈리아로 오든지, 아니면 납치라도 하겠다니.
대관절 칠리아노 보스가 왜 그러나 싶었다.
“왜요?”
“그야 저야 모르죠. 어쨌거나 가끔씩 안부도 비서 통해서나 하시던 분인데, 직접 자기 번호로 전화하실 정도면 꽤나 화가 나신 것 같던데요? 뭐, 생각나는 거 없으십니까?”
아까 칠리아노 출판사에서 왔던 메일에다가 보낸 답장이 떠올랐다.
“생각나는 거라면……. 약속도 안 지키는 사람이냐고 뭐라 했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들은 김 변호사가 머리가 지끈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아이고, 두야.”
“왜요? 약속 안 지키길래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한 건데, 그게 뭐 잘못됐습니까?”
“칠리아노 보스는 신의를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생각하시는데, 그런 분에게 약속도 안 지키는 사람이라뇨?”
신의 둘째가라면 서럽다니.
그런 사람이 내 원고를 출판사에 보여줬다는 게 참 모순이 짙었다.
분명 원고는 본인만 보기로 약속했으니까.
“아니, 내 원고 딴 데 보여주지 말고 본인만 보라고 했는데 칠리아노 출판사인가 뭔가에다가 보여줘선 계약 메일 따윌 보냈습니다만?”
“칠리아노 출판사면 700년 전통이라고 조직의 가문을 자랑하는 보스가 유일하게 양지에서 가문의 이름까지 걸고 200년간 유지해 왔다며 자랑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탈리아에서 만났을 때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거니와 이번에 받은 출판사 메일에도 번역해서 팔고 싶단 말밖에 없었다.
난 전혀 처음 듣는다며 반응했다.
“그래요?”
“예! 결국 그 출판사가 보스란 말입니다.”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조직폭력배 두목이 출판사 돈이나 대주겠지,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컨텍하거나 교정 봐주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어떻게 자라셨기에 이십 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순간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조용하던 김 변호사의 질문.
내 생각에 무슨 문제가 있단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요?”
“칠리아노는 그냥 동네 조직폭력배가 아니란 말입니다. 이탈리아 최대 규모를 지닌 마피아라고요, 마피아! 근데 이준경 작가님은 그 거대한 조직을 고작 조직폭력배 따위로 받아들이시니 황당하군요.”
이탈리아의 최대 규모 마피아 조직을 고작 한국의 조폭 정도로 취급했단 사실이 놀라웠나 보다.
근데 한국어로 치면 거길 뭐라고 부른단 말인가?
김 변호사 역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인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그럼 한국인이 조폭을 조폭이라 부르지, 야쿠자라고 부를 순 없잖아요?”
“아니, 그리 이야기하시면 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쵸?”
“어쨌거나 저랑 같이 이탈리아 한 번 더 가시죠.”
칠리아노 보스가 당장 오라고 할 정도면 어떤 것보다도 급하다고 여겼는지 이탈리아에 가자는 김 변호사.
그에게 내가 굳이 그래야 하냐는 듯이 말했다.
“제가요?”
“예!”
“에이, 볼일 있는 분이 찾아오시라고 전하세요.”
“작가님, 방금 제 이야기 어떻게 들으신 겁니까?”
“예?”
“직접 오지 않으면 납치한다고 하셨다니까요?”
이탈리아 최대 규모라고 하면 거의 세계 제일의 규모라고 할 수 있는 칠리아노 마피아.
근데 거기서 납치까지 언급했다.
이건 간단히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반면 난 당당하게 받아쳤다.
“그럼 납치하라고 하세요. 귀찮은 절차 안 밟고 바로 이탈리아 갈 수 있고 좋네.”
“…….”
순간 내 말에 할 말을 잃은 김 변호사.
설마 내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냥 농담이었다고 김 변호사의 긴장감을 풀어줬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냥 판타지를 쓰다 보면 이런저런 대사도 쳐보고 그래야 써먹죠. 아, 그 아저씨 참 귀찮게 하시네. 그래서 언제 갈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럼 이따가 저녁 비행기 잡으세요. 후딱 가서 만나고 오죠, 뭐.”
“알겠습니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귀찮은 건 빠르게 처리해야지.
어쨌거나 가기로 했으니 비용 부담은 오라고 한 사람에게 하라고 시켰다.
“돈이야 오라고 했으니 칠리아노 보스가 내줄 거고. 여권 필요하지 않나요?”
“괜찮습니다. 부 대표님에게 지금 사안에 대해 설명드려서 항공사 측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냥 저번에 있던 기록으로 바로 좌석을 잡아준다고 하더군요.”
광해에서 대준다라.
저번엔 설아네 어머니 덕을 좀 봐서 비즈니스로 탈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나 싶었다.
“저번처럼 비즈니스인가요?”
“아뇨, 칠리아노 보스 때문에 급히 가셔야 하는 걸 고려해서 이번엔 퍼스트 클래스로 잡아드렸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부대표님 끗발보다 저 먼 나라 이탈리아의 마피아 보스 끗발이 더 셌나 보다.
칠리아노 보스가 오라고 한 건이니 퍼스트 클래스까지 내어준단다.
이거 칠리아노 보스 덕분에 생애 단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퍼스트 클래스를 타게 됐단 사실을 즐겼다.
“아이고, 좋아라. 칠리아노 보스 덕분에 호강하네요. 공짜로 퍼스트 클래스를 또 타고.”
“아니, 작가님은 왜 이리 태평하신 겁니까? 저희 놀러가는 게 아닙니다만?”
노발대발할 정도로 화가 난 마피아 보스를 만나러 가는 길을 내가 즐기자 황당해하는 김 변호사.
그에게 해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상황을 즐기시겠다고요?”
“무서워서 덜덜 떠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정말 나이와 맞지 않게 너무 대범하시군요.”
“뭐, 소심한 것보단 낫겠죠. 그나저나 바로 인천공항으로 가면 되나요?”
“제가 픽업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기다릴게요.”
“예, 금방 가겠습니다.”
“에이,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
“작가님…….”
“아니, 알았어요. 얼른 오세요. 덩치도 산만한 분이 왜 이리 간은 콩알만 하신 건지.”
“작가님 간이 수박만 한 겁니다.”
“오, 그 표현 재밌네요. 나중에 소설에 써먹어야지.”
“……그럼 금방 찾아가겠습니다.”
“네.”
얼마 있지 않아 김 변호사가 우리 집을 찾아왔고, 그의 차량에 타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후 저번처럼 같은 절차를 걸쳐서 비행기에 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번엔 이코노미석보다 한 단계 높은 비지니스석이었다면 이번엔 그보다도 높은 퍼스트 클래스에 탔단 점 정도?
확실히 비싼 값은 했다.
모든 서비스가 이노코이나 비지니스보다도 훨씬 좋았다.
꽤나 쾌적한 분위기에서 이탈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미 김 변호사가 칠리아노 보스 쪽에 연락을 해뒀었는지 마중 나온 떡대들이 있었다.
덩치큰 마피아들의 차량에 탄 채 난 날 보고 싶다던 칠리아노 보스와 마주하게 됐다.
처음 보는 마른 체구의 안경을 낀 사십 대 중년과 함께.
통역은 김 변호사가 해줬다.
“리 작가, 나더러 약속도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맞잖아요? 분명 제 원고를 보여드릴 땐 보스만 보시기로 약속했을 텐데요?”
“아니,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가 비싼 값 주고 산 차도 주고, 자네 작품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우리 출판사가 이탈리아에서 팔아주려고 보인 성의를 너무 이상하게 받아들인 것 아닌가?”
“성의요? 제가 좋게 받아들여야 성의죠. 말씀도 없이 보스께서 약속을 깨뜨린 건 어디까지나 사실이지 않습니까?”
“끙, 대차구만.”
어느 누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을까?
오히려 당당하게 나오니 칠리아노 보스 입장에선 저걸 어째야 하나 싶었다.
반면 칠리아노 보스 옆에 있던 사내는 재밌다는 듯이 박수를 한 번 짝! 쳤다.
“이야, 이거 형님이 한 방 먹었소? 저 청년도 대단하구만. 이탈리아 대통령도 만나면 설설 기는 형님 앞에서 저리 당당히 이야기하고 말입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 뭐, 그게 재밌어서 흥미로운 친구지만 말일세.”
칠리아노 보스와 옆에 있는 중년 사내가 둘이 이탈리아어로 계속 대화하자 김 변호사에게 물었다.
“저기 둘이서 뭐라는 겁니까?”
“작가님이 참 대단하시답니다.”
뭔가 말로만 들으면 칭찬인데 어투가 묘하다.
“어째 뉘앙스가 비꼬시는 것 같습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황당해서 그럽니다, 황당해서.”
“뭐가 황당해요?”
“저 옆엣분 말마따나 칠리아노 보스를 앞에 두고 이리 당당할 수 있단 게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습니까?”
비현실적이다라, 그 말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
“전 비현실을 다루는 작가니까 그래도 됩니다.”
“…….”
너무 당당한 내 모습에 침묵하는 김 변호사.
그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사과하라고 하세요.”
“예?”
“사과하시면 약속 안 지키신 건 용서해 드린다고 하시라고요.”
“자, 작가님, 그건 좀…….”
칠리아노 보스에게 사과시키는 말을 전하기 어려운지 통역하질 않는다.
내가 이탈리아어로만 대화하니 궁금했던 것처럼 칠리아노 보스 역시 궁금한 표정으로 갑자기 뒤에 있는 사내를 불렀다.
“조, 쟤네 뭐라는 거냐?”
“그, 그게…….”
“뭐라는데? 내 욕이라도 했냐?”
“보스더러 사과하랍니다.”
“뭐?”
“사과하면 약속 안 지킨 건 용서해 드린다고…….”
“크, 크핫핫!”
조라고 부른 사내와 대화를 나누더니 아주 박장대소하는 칠리아노 보스.
“또 신나셨네, 저 아재.”
“오냐! 내가 사과하마. 미안하다, 됐냐?”
김 변호사를 통해 사과했단 걸 들었다.
“뭔가 사과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위치가 있으신 분이 그 정도로 만족하겠습니다.”
“이야, 한 번을 안 지네. 그래서 계약은 할 건지, 말 건지나 좀 궁금하군?”
“칠리아노 출판사에서 번역해서 판매할 테니 계약할 생각 없냐고 했던 거요?”
“그래, 우리 이탈리아 축구 팬들이 재밌게 읽을 것 같아서 여기 내 대신 칠리아노 출판사를 맡고 있는 친구에게 말한 거네.”
사과도 받았으니 계약을 진행해 볼까 싶었다.
이탈리아 번역 후 판매.
솔직히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만약 칠리아노 보스에게 보여줬던 원고가 새어 나간 게 아니라 내 작품을 보고 계약하길 바랐다면 무조건적으로 체결했으리라.
어쨌거나 칠리아노 보스의 사과도 들었으니 계약을 진행할 겸 조건이 어떤 지 확인했다.
“조건은요?”
내 물음에 칠리아노 보스가 출판사를 맡고 있는 사내에게 물었고, 이후 판타지스타를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팔지 이야기가 나왔다.
“조건은 어떻게 한다고 했지?”
조건에 관해서 김 변호사가 내게 전달했다.
“두 권을 하나로 합쳐서 우리 나라 돈으로 권당 소비자 정가 2만 원으로 잡을 것이고, 초판 발행 부수는 5만 부로 할 거랍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