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86
나는 작가다 086화
86화
“예?”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당황하는 이경수.
그에게 다시금 말했다.
“스카웃 제의하는 거예요. 만약 LT노벨에서 이경수 팀장님이 원하는 그림을 펼칠 수 없다면 K E&M에서 도와드리겠다는 겁니다.”
“정말 제안은 감사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해서…….”
현재 다원 출판사라면 꽤나 출판사 중에선 안정적인 직장.
때문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로 옮긴다는 게 큰 리스크가 되리라.
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을 덜라며 오히려 연봉 협상으로 나갔다.
“현재 연봉에 20% 더 얹어드리죠.”
“예? 제 연봉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고…….”
얼마인지도 모를 연봉에 20%를 더해준다.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 가지뿐이었다.
“4천 미만일 것 같은데요.”
사실 3천 미만을 부르려고 했다.
출판사 직원 중 연봉이 3천 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그래도 새로운 브랜드를 담당시킨 입지나 좀 더 여유롭게 기준을 잡으려고 내뱉은 연봉 4천.
이경수는 당연히 안 된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렇긴 한데…….”
“그럼 연봉 4천 맞춰 드리죠. 대신 K E&M의 라이트노벨을 열정적으로 키워주세요.”
굳이 다음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세게 불렀다.
아마 연봉 4천이 그에겐 20%를 올려주는 것보다 더 많을 거다.
이경수 역시 4천이라는 연봉에 혹할 수밖에 없는지 읊조리듯 되뇌었다.
“4천…….”
“싫으신가요?”
“제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K E&M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무궁한 영광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이군요.”
“군대에서 많이 들으셨겠죠.”
“그렇네요. 어디서 많이 들었나 했네요. 하지만 그 제안 감사하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잠시 혹하긴 했으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한 이경수.
아무래도 월급 말고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그 이유가 뭔지 물었다.
“어째서요?”
“제가 가면 LT노벨이란 브랜드는 사장될 겁니다. 힘겹게 세상에 빛을 본 제 자식입니다.”
자식이 죽는 걸 볼 수 없다.
이거 반칙이잖아?
작가인 내 입장에서 이리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스카웃 제의를 거절할 만하다며 반응했다.
“그렇군요. 본인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이해해주시는 겁니까?”
이해할 수밖에.
그 이유가 뭔지 밝혔다.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
“실제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 다음으로 방금 이경수 팀장님께서 이야기하신 걸 가장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요?”
“작가님들?”
내가 작가이다 보니 작가를 언급한 건가 싶었다.
오답은 아니지만, 정답도 아니었다.
반 정도 맞춘 정답이랄까?
정확한 답이 뭔지 알려줬다.
“저희도 당연히 포함되죠. 하지만 정확하게는 모든 창작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자…….”
“자신이 만든 자식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 그게 창작자죠. 당연히 작가인 저로선 그게 작품이겠고요. 저 역시 작품이 제대로 안 풀린다고 버리는 건 원치 않을 겁니다. 차라리 짧더라도 마무리를 깔끔하게 지어야죠.”
“짧더라도 마무리를 깔끔하게 짓는다라…….”
뭔가 감경 깊은 목소리.
이건 비단 나나 이경수 팀장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든 창작자들에게 하고픈 이야기였다.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습작들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꽃이란 시가 그랬다.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진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불러줄 때 몸짓은 꽃이 된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그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된다.
작품이 됐다면 끝을 맺어야 한다.
작가인 날 기준으로 삼자면 독자에게 내 자식과도 작품을 보여주고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니 끝까지 책임져야만 했다.
그게 맞았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의 작가들에게 무조건 손가락질하는 건 어려웠다.
전업이라면 곧 작품의 유지가 생계에 직결됐다.
자식도 부모가 잘되어야 잘 성장할 수 있듯 작품도 작가가 일단 굶어죽지 않아야 제대로 된 끝을 볼 수 있었다.
근데 굶지 않으면서도 자식을 나 몰라라 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강정호였다.
지금이야 책을 써내야 돈을 받으니 버티니 아득바득 끝까지 쓰지만, 유료연재 시장이 열린 후로는 그냥 써서 조회수가 차면 돈이고 떨어지면 차라리 필명을 갈아서 딴 걸 써서 초반에 바짝 버는 게 이득이 되니 그렇게 버린 연중한 채 버린 작품이 열 개도 넘었다.
필명만 스무 개에 달하며, 유료화시킨 작품만 수십 개.
개중에 제대로 완결 낸 작품은 이미 종이책으로 끝마쳤던 게 아니면 3할이 채 안 됐다.
솔직히 이건 대표적으로 악랄한 작가였고, 이보다는 덜하더라도 꽤 많았다.
필명을 바꾼 채 돈이 안 되는 작품에서 손 떼고 신작으로 나서는 작가들이.
무조건 버리는 건 아니었다.
마치 고아원에 맡기는 부모처럼 자기합리화를 시켰다.
‘돈 벌고 잘되면 그때 꼭 마무리 지어줄게.’
이 말을 지키는 작가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못 지키는 작가가 더 많았다.
이미 한 번 망한 작가는 둘 중 하나였다.
계속 망해서 작가를 그만두거나 아니면 망하더라도 꾸준히 써서 무언가 하나 터뜨리던가.
후자의 작가 중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계가 어려워 중단했던 작품을 끝맺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 돈 버는 작품을 쓰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것처럼 그 작품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돈 벌던 작품이 완결나면 여유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 번 돈맛을 봤기에 망한 작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묻혀둔 채 새 작품으로 옮겼다.
더 벌어야 하기에.
사람 욕심이란 게 끝이 없단 소리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어쨌거나 이왕지사 창작자라면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해 끝맺음을 지었으면 했다.
이경수는 그런 내 말에 내포된 뜻을 듣더니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혹여나 제가 지금 있는 LT노벨에 벌려놓은 걸 모두 마무리 짓고, 그러고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면 그땐 받아주시겠습니까?”
어쨌거나 현재 만들어놓은 건 마무리는 무조건 지을 것이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받아달라.
오히려 그게 내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했다.
제대로 키우지도 못한 자식을 두고 온 부모가 어찌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단지 중요한 건 ‘시기’였다.
만약 이경수를 데려오려면 ‘아카츠키 키요의 우울’을 가져오기 전에 데려와야만 했다.
그 시기를 놓쳐 버리면 이경수란 경력직 관리자는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중에 게임 라이트노벨을 성행하게 만든 역대급 성적의 작품인 ‘스펠 아트 온라인’이 나오기 전까지 국내 라이트노벨 판매 성적 1위의 작품인 ‘아카츠키 키요의 우울’.
우리가 팔면 좋겠단 생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이경수가 LT노벨에서 그걸 공수해 올 경우 더 이상 우리 회사로 불러들이기 어려워졌다.
그걸로 LT노벨의 브랜드 값어치는 사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고, 그 공신인 이경수를 절대 놓아주지 않기 위해 다원 출판사가 엄청난 지원을 해줄 테니까.
당연히 그리 된다면 우리 쪽에서 더 준다고 해도 넘어오지 않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식인 LT노벨이 승승장구하는 데 굳이 옮길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조금 재촉하듯 이경수에게 말했다.
“이왕이면 잘 마무리 지어서 둘째를 더욱 잘 키우셨으면 좋겠네요.”
“하하…….”
“잠시 이야기가 딴 데로 새긴 했는데, 어쨌거나 전 계약 조건은 변경하지 않겠습니다.”
좋게 좋게 가자면 계약 조건을 변경해 주는 거겠지만, 분명 이러면 윗선에서 이경수를 못마땅하게 여길지도 몰랐다.
좀 더 벌 수 있는 상황인데 작가 하나 설득하지 못한 무능력자로 보면서.
사실상 그들에겐 몇 년만 참으면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인데 말이다.
이경수는 내가 계약을 변경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알겠다며 대답했다.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럼 더 이상 증쇄는 없겠네요.”
“그럴 것 같습니다. 13,000부까지의 조건을 계산해서 추가 인세를 지급하라고 전달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음?”
“어쨌거나 이준경 작가님 덕분에 제 안목이 통했단 걸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 물론, 이준경 작가님의 네임밸류로 오롯이 이루신 걸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에이, 아무리 네임밸류가 높아도 작품이 별로면 안 통하는 걸요. 전 이경수 팀장님의 안목이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걸 제 회사가 아닌 작가님에게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흐흐, 제가 소속된 회사는 그런 이경수 팀장님의 안목을 높이 살 겁니다.”
마지막까지 이경수에게 달콤한 미끼를 던져줬다.
그게 싫진 않은지 이경수가 좋게 반응했다.
“큭, 마지막까지 악마의 속삭임을 하시는군요.”
“하하! 안 통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럼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시죠. 제 주 장르가 아닌 라이트노벨로도 성공했단 기념주를 이경수 팀장님과 함께하고 싶네요.”
“시간 날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전 백수니까 언제나 오케이입니다.”
“옙, 그럼 이만 끊으시죠.”
“수고하세요.”
“옙!”
그렇게 이경수와의 통화를 마쳤다.
방금 들은 용사무적의 총 판매 부수를 떠올리며.
“후우, 13,000부라……. 이것도 때를 봐서 저작권은 무조건 회수해야지.”
2권부턴 계약 조건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같은 소재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푸른숲 출판사처럼 저작권 회수를 조건으로 걸었다면 바로 회수한 뒤 최소한의 도리를 따져서 일 년 정도 기간을 두고 다음 내용으로 이어 붙였겠지만, 다원 출판사는 푸른숲 출판사처럼 그리 쉽게 거래를 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푸른숲 출판사야 사장인 김두식과 직접적인 커넥션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거고, LT노벨이야 총괄은 이경수가 한다고 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자인 다원 출판사의 사장이니까.
어쨌거나 용사무적을 쭉 이어서 내려면 아무리 봐도 3년 후 저작권 회수 말곤 답이 없어 보였다.
그리 생각하니 신작의 욕심이 났다.
“라이트 노벨 장르로 하나 더 쓸까……?”
하지만 욕심이 난다고 막 저지를 수는 없었다.
일단 소재고, 뭐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물론, 거기서 난 별문제 없단 듯이 이야기했다.
“그럼 밤새 새 작품을 구상해 볼까?”
그래, 없으면 만들면 되지.
난 밤새 새로운 라이트 노벨의 장르로 쓸 만한 작품을 떠올려봤다.
그러던 차에 문득 한 가지 장르가 떠올랐다.
“흠, 게임 시스템이 적용된 탑물을 써볼까?”
게임 시스템이 적용된 탑물.
탑물.
흔히 레이드물이라 불리는 장르가 나오면서 탑이란 배경 안에서 벌어지는 장르였다.
솔직히 조금 걸리긴 했다.
내가 봤던 탑물 중에선 제대로 성공한 게 없었다.
굳이 하나 수작으로 꼽자면 ‘헬 모드가 끝나지 않아’ 정도?
반면 라이트 노벨이나 애니메이션에선 꽤 다뤄졌다.
작가들 추천으로 봤던 것 중 하나가 ‘탑에서 인연을 만들어 가면 안 되는 걸까?’였다.
이것도 꽤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다.
라이트노벨로도 나왔으며, 판타지에서도 종종 쓰여 온 탑물.
소재를 정한 난 제목을 이것저것 적다가 유명한 가요 제목과 합쳤다.
그렇게 소재 노트에 난 새로운 라이트 노벨의 제목을 적어 내렸다.
‘이 탑의 끝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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