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87
나는 작가다 087화
87화
새로운 집필하기 위해 구상한 ‘이 탑의 끝을 잡고’와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을 열심히 집필할 때였다.
띵동.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대충 짐작이 갔다.
“설아인가?”
인터폰에 서니 설아가 보였다.
-싸부, 열어줘요!
“알았다.”
문을 열어주자 설아가 집으로 들어왔다.
대뜸 들어오기 무섭게 설아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외쳤다.
“싸부! 약속 지켜요!”
“무슨 약속?”
“두 시간에 5천 자 이상 쓸 수 있으면 계약시켜 주기로 약속했잖아요!”
“어?”
두 시간에 5천 자.
한동안 4천 자의 벽을 못 넘더니 내가 이탈리아를 오가는 사이 넘겼나 보다.
그에 당황했는데, 설아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뭐예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어디 테스트해 볼까?”
“해보시죠!”
꽤나 자신만만한 설아.
녀석에게 필극을 제안했다.
“좋아, 그럼 두 시간짜리 필극으로 해서 5천 자가 안 되면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계약은 없던 걸로 하고.”
“만약 두 시간 안에 5천 자가 되면 계약시켜 주는 거죠?”
“일단 그렇게 해서 하루 1만 자씩 쓰는 게 가능하다면야.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하나 더 붙을 거야.”
검지를 치켜세우면 아직 조건이 하나가 더 있다고 말했다.
설아 역시 그에 대해 궁금해했다.
“예? 또 무슨 조건요?”
“그건 들어보면 너도 납득할 수밖에 없을걸?”
“어떤 건데요?”
“그건…….”
꿀꺽.
어떤 조건인지 궁금해하면서 침을 삼키는 설아.
녀석에게 난 싱긋 웃었다.
“필극에서 이긴 자만이 들을 수 있지.”
“이익, 이기고 맙니다!”
“그래, 얼른 노트북 세팅하려무나.”
설아는 어떻게든 이번 필극에서 자신이 이기겠다며 노트북을 세팅했고, 이후 나와 함께 두 시간짜리 필극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알람 소리가 났다.
또로롱!
“끝났네. 몇 자야?”
글자수를 묻자 설아가 자랑스레 밝혔다.
“5,130자요!”
진짜인지 문서 정보를 확인했다.
정말로 설아가 말한 것처럼 5,130자가 적혀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칭찬했다.
“오! 정말 이제 두 시간에 5천 자 이상 쓸 수 있게 됐네?”
“이러고 좀 쉬긴 해야 하지만, 쉬었다가 쓰면 5천 자 또 쓸 수 있어요!”
“그렇구나.”
그렇게 필극이 끝낸 설아가 내게 당당히 요구했다.
아까 말한 조건이 무엇인지.
“자, 그럼 이야기해 주세요! 추가 조건이 뭔지!”
“추가 조건은 계약하기 위해선 네가 6권을 준비해야 한다는 거야.”
“네?”
갑작스러운 추가 조건에 당황하는 설아.
그럴 만도 했다.
보통 작가들은 1, 2권만 준비되면 바로 출간하고 3권 집필에 들어갔는데, 자신에겐 6권까지 써오라고 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하지만 그런 추가 조건을 내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미 매화신검은 3권 후반부까지 썼잖아. 곧 3권이 끝나고 4권에 들어갈 텐데, 흔히 4권 즈음이 신인작가들에게 마의 벽이거든.”
일단 설아에게 6권까지 쓴다는 기준이 얼마 남지 않은 거라며 다독인 다음 추가 조건을 내건 이유에 대해 알려줬다.
그 이유에 대해 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의 벽요?”
“그래.”
마의 벽.
그걸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해 줘야 할 게 있었다.
“보통 신인 작가들은 자신이 쓰고픈 글을 갖고 있기에 신선함과 생각해 둔 사건이 많아서 초반 진행은 참 잘해. 그건 설아 너도 마찬가지였고.”
그랬다.
아직 돈벌이가 아닌 쓰고 싶은 글이 있던 신인들에겐 기성 작가들로부터 찾기 어려운 그게 있었다.
틀에 박혀 버린 기성 작가와 다른 참신함과 정말 쓰고 싶어서 쓴다는 욕구.
기성 작가들은 몇 작품 쓰다 보면 자신이 뭘 써야 독자가 좋아하는지 알다 보니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소재만 바꾸며 자가 복제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에 반해 신인은 이제 첫 작품을 쓸 경우 자가 복제가 아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쓰고 싶어 쓴다는 욕구.
기성 작가들 사이에서 이 욕구가 있는 작가들은 참으로 부럽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취미가 직업이 되면서 돈을 벌어야 하니, 먹고 살아야 하니 쓰게 되어 버린 작가들이 많았다.
이들에겐 더 이상 소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취미가 아닌 생계를 위한 돈벌이가 되어 버린다.
당연히 자연스레 그럴 경우 점점 집필은 즐거운 행위가 아니라 고통으로 바뀌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써야만 한다는 노동이었기에.
이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설아.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단 듯이 반응했다.
“에이, 제가요? 맨날 하루에 3천 자도 못 쓴다고 구박하셨으면서!”
아니다.
입으로만 못 믿겠단 듯이 그럴 뿐, 얼굴에는 더 칭찬해 달라고 써 있었다.
피식 웃으며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거야 제자님이 성장하길 바라서 구박한 거고. 네 나이에 무협을 쓰는 것 치고 그 정도면 빨리 쓴 거지.”
“히히, 그래요?”
“응.”
“그래서 제가 초반뿐만 아니라 중후반도 꾸준히 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6권까지 준비하라고요?”
말귀 한 번 밝다.
난 생각보다 하루 1만 자씩 쓰면 6권 채우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란 듯이 이야기했다.
“만약 네가 오늘과 같은 속도만 유지해서 매일 1만 자씩 쓸 수 있다면 두 달도 안 걸려서 출간할 수 있을 거야. 물론, 그 사이에 더욱 집필 속도가 오른다면 한 달도 안 걸릴 수도 있겠지.”
“그럼 이번엔 정말 약속하신 거예요?”
“6권까지 원고를 모아오면 계약해 준다는 거?”
“네!”
“그래, 당연하지.”
“좋아요! 그럼 얼른 6권까지 쓰겠어요!”
“오냐.”
그렇게 설아는 우리 집에서 매화신검을 이어 쓰다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돌아갔다.
* * *
2002년 월드컵까지 사흘.
3주 전 매화신검 4권 초반부를 쓰고 있던 설아가 마의 벽을 깨지 못한 채 4권 후반부에서 헤맸다.
그때였다.
처음 설아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게.
“흐아앙! 이게 뭐예요, 이상해.”
애는 애구나,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우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오히려 그런 설아를 다그쳤다, 위로하기보단.
사부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당근보다 채찍이 더욱 설아를 강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하기에.
“왜 울어? 뭘 잘했다고?”
“더 써야 하는데, 더 쓰지 못하겠어요…….”
결국 마의 벽에 부딪힌 설아.
녀석에게 항상 해오던 조언을 내뱉었다.
“그게 다 너의 경험이 부족해서지. 아직 더욱 많은 작품과 견문으로 네 경험을 늘려야 한다는 걸 이제 느끼겠니? 뚝 그치고 대답해.”
“끅, 결국 여전히 싸부 말씀은 제가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고요?”
“그래.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한데…….”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부딪힌 벽.
그 마의 벽을 뚫을 방법이 존재한다고 하니 설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뭔데요. 그 방법이?!”
“네가 강제로 이어 쓰도록 만들거나 작가를 접거나 둘 중 하나인 방법이지.”
“그래서 그게 뭐예요?!”
얼른 그 방법을 알려달라며 재촉하는 설아.
그녀에게 난 검지를 치켜세웠다.
“출간.”
“네?”
“출간하면 된다고.”
마의 벽을 깨기 위한 방법이 출간이라고 하자 설아가 우물쭈물 거리며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싸부가 출간은 6권까지 써야 된다고…….”
그간 내가 원하는 조건을 채워야 자신이 바라던 걸 얻었던 설아.
한데 이번에는 내가 원했던 것처럼 6권을 쓰지 못했는데, 자신이 원하던 출간을 해야 한다고 하니 뭔가 이상했나 보다.
그토록 바라던 계약을 성사시키고 출간해 주겠다는데 전혀 좋아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설아에겐 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마의 벽을 깨기 위해선.
물론, 이 조치는 약이 될 수도 있었으나 독이 될 수도 있단 걸 밝혔다.
“그건 네가 즐겁게 쓰는 상태를 유지했을 때의 이야기고. 현재처럼 막혔을 때 출간하고 나면 마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음 권으로 강제 집필이 가능하지. 물론, 못하면 작가를 그만둘 거고 말이야.”
“진퇴양난, 사면초가, 고립무원 같은 건가요?”
어린 녀석이 무협을 좋아한답시고 사자성어를 쓴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어차피 네게 원고를 받고 교정한 뒤 1, 2권 초판이 나가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이후 3권, 4권 한 달 주기로 내보낸다고 했을 때 충분히 쓸 여유는 되니까. 아니, 여유가 없지. 지금 이 상태라면. 결국 내가 하루에 1만 자 이상 쓸 수 있게 가르친 의미가 없어졌으니까.”
“의미가 없어졌다…….”
꽤나 시무룩해진 설아의 중얼거림.
거기서 불을 붙여줘야 헤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싫어? 싫으면 6권까지 쓰고 계약하던가.”
“아니에요! 할래요!”
“그래?”
“어차피 사부가 특단의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출간이라면서요! 그러니 더더욱 해야겠어요!”
“알았어, 그럼 오늘은 돌아가서 쉰 다음 부모님한테 말해서 회사로 찾아와. 명함에 주소 있으니 찾아올 수 있지?”
“네!”
“그래, 들어가렴.”
“알겠어요. 저 없다고 저녁 거르시지 말고요!”
“알겠으니 원고 준비만 똑바로 해주세요, 강설아 작가님?”
설아에게 부르는 작가란 호칭.
이건 2010년 전에 내가 녀석에게 불러준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었다.
* * *
다음 날 설아는 부모님과 와서 매화신검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이후 완성된 3권까지의 원고를 출판사로 넘겼다.
그걸 받아본 성용 형님은 나한테 이거 정말 설아 작품이 맞냐고 연신 물어봤다.
초등학생이 쓴 무협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녀석이 다른 작가들이 유료연재 시장에서 신인 때 겪는 마의 벽 100화에 이르는 구간이었다.
대체로 신인 작가들이 첫 계약이라고 힘내서 쓰다가 자신이 기성 작가들보다 부족한 경험을 지녔단 걸 깨닫는 마의 벽 100화.
대체로 이걸 뚫느냐, 마느냐에 따라 작가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결정됐다.
억지로 뚫을 수야 있지만, 그럴 경우 대다수 연독률이 떨어지다가 바닥을 쳐서 자신은 작가가 되는 게 어렵단 걸 깨달았다.
이후 노력해서 고치는 이가 있었고, 포기해 버리는 이들이 있었다.
계약을 마치고 설아를 돌려보낸 뒤 난 홀로 사무실 임원실에 있는 내 자리에서 펜을 굴리며 고민했다.
‘설아는 어쩔는지.’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2002년 5월 31일.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국제적인 경기의 개막식이 열렸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처음 출전하는 조별 리그 1차전인 6월 4일 화요일.
판타지스타를 본 모든 이들이 내게 말했다.
정말로 안지훈 선수가 두 골 넣을지 지켜보겠다고.
하지만 조별 리그 1차전에서 안지훈 선수는 골을 넣지 못했고, 사람들은 전부 ‘그럼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소설은 소설이구나’ 하면서.
하지만 처음부터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은 의아함을 품었다.
비록 내 소설처럼 안지훈이 두 골을 넣은 건 아니었지만, 전반전에 한 골과 후반전에 한 골을 넣은 게 같았기에.
하지만 다들 얻어걸린 거겠거니 했다.
전반전에는 안지훈이 아닌 황진호가, 후반전에는 박성찬이 넣었기에.
그리고 두 번째 조별리그 2차전이 있는 2002년 6월 10일 월요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 맨토스가 한 골, 후반전에 안지훈이 한 골을 넣어 무승부가 되며 많은 이들이 의아함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 번째 조별리그 3차전이 있는 2002년 6월 14일 금요일.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후반전에 안지훈이 아닌 곽지상이 한 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은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이때 조별리그 1차전에 의심을 품던 이들은 소수에서 절반 가까이로 불어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 쳤다.
어쨌거나 안지훈이 아닌 곽지상이 넣었으니까.
그리고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내 소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그게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첫 본선 진출이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