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88
나는 작가다 088화
88화
2002년 6월 18일 화요일.
대한민국 역사상 진짜로 본선을 진출한 첫 월드컵 경기 날이었다.
이 날 한반도는 붉게 물들었다.
국민 대부분이 붉은 악마가 되어.
국가대표팀은 그에 보답하듯 승리했다.
축구 강국 중 한 곳인 이탈리아를 상대로.
전반전 18분 이탈리아 피에르 선수의 선제골로 다들 여기까지인가 싶을 때, 후반전 설재한 선수가 동점골을 넣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장전.
12분 안지훈 선수의 골든골이 들어갔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월드컵 기록인 본선 진출을 갈아치운 골든골.
붉은 지진이 일었다.
8강 진출을 만끽하는 국민들의 함성 소리에.
다들 나흘 뒤 22일만 기다리게 된 상황.
월드컵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불꽃과도 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붉게 타오를 때, 본래 이탈리아는 단 한 번 본선도 진출하지 못한 아시아의 한 국가에게 패했단 사실에 암운이 드리웠다.
어둡지 그지없는 상황으로.
그 어둠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자신들을 8강에 가지 못하게 만든 안지훈 선수에게 향했다.
이탈리아팀에 속했으면서 자국을 월드컵에서 떨어뜨린 장본인이기에.
그랬다.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하지만 지금의 이탈리아는 달랐다.
오히려 안지훈과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차라리 자신들을 이겼으니 우승까지 가라며.
이 모든 게 이준경 작가의 소설 판타지스타 덕분이었다.
이탈리아 전역의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권씩 소장했으며, 그러한 지인들로 인해 한 부씩 갖게 된 판타지스타.
월드컵으로 인해 이미 5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이탈리아 최고 베스트셀러 작품이 3년에 걸쳐 누적으로 500만 부를 찍은 걸 감안하면 가히 인간이 아닌 신의 경지라 칭송받을 정도였다.
칠리아노 보스가 아주 입이 귀에 걸린 채 한국으로 직접 칠리아노 출판사 사장하고 이준경 작가를 찾아오기까지 했다.
좀 부담스럽긴 했으나 이번 판매에는 칠리아노 보스의 역할도 꽤 있었으니 좋게 받아들였다.
축구팬 마피아 보스가 적극 추천하는 소설이라면서 여기저기 이탈리아 축구선수들부터해서 유명인사들이 전부 홍보해줬으니까.
덕분에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 출간될 예정이 앞당겨지기까지 했다.
반면 이로 인해 독자들은 의문을 품었다.
‘설마 이준경 작가, 노스트라다무스의 환생이 아닐까?’
비록 대한민국에서 골을 넣은 게 전부 안지훈이란 소설적 내용과는 달랐지만, 득점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채 똑같았다.
모두가 판타지스타를 월드컵 예언서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예언은 당연히 8강에서도 적중했다.
이 때까지 판타지스타의 파급은 엄청났다.
축구를 좋아하던 국방부 장관이 같이 팬을 하던 벗에게 추천받아 소설에 적힌 제2연평해전도 일어나는 게 아니란 우려하여 해안 경비를 삼엄하게 해야 한다며 보고할 정도로.
하지만 판타지스타의 예언서란 딱지는 4강에서 떨어져 나갔다.
* * *
“……뭐야, 이거?”
회사 사람들과 함께 4강 경기를 보던 난 당황해서 들고 있던 맥주캔을 놓쳤다.
퉁.
촤아악!
나도 모르게 놓쳐 버린 맥주캔은 사무실 바닥에다가 황금빛 수를 놓았다.
그걸 본 성용 형님과 직원들이 다들 빽 소리를 질렀다.
“야, 준경아! 뭐하는 거야?”
“작가님!”
“아무리 네 예언이 틀렸거니 사무실에서 이리 횡포를 부리면 안 되지!”
그랬다.
내 예언이 틀렸다.
아니, 예언이 아니지.
역사가 달라졌다.
방금 끝난 2002년 월드컵 4강 경기.
2002년 6월 25일.
후반전 독일 선수에게 골을 허용해서 졌었다.
그래, 이것까진 내가 알던 대로 흘러갔다.
‘분명 졌어야 하는데…….’
갑자기 안지훈 선수가 한 골을 넣고, 그것도 모자라 연장전으로 가서 골든골까지 넣어버렸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신화는 결승 신화로 바뀌어버렸다.
멍 때리는 내게 성용 형님이 물었다.
“야, 왜 그래?”
“아, 아니에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서 있자 막내인 김재민이 재빠르게 대걸레를 가져와서 닦아냈다.
날 보며 씨익 웃으며.
“어째요, 작가님? 팬들 사이에선 완전 작가님 이스트라다무스셨는데, 이젠 월드컵 결승을 진출해 버려서 그 이름도 무색해져 버렸네요.”
이스트라다무스.
판타지스타를 보고 월드컵을 본 독자들이 내게 붙인 별명이었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쩌겠어요? 우리나라가 결승을 진출했단 게 국민으로서 뿌듯할 따름입니다.”
오늘 홈피에 올릴 글귀이기도 했다.
***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본디 뛰었어야 할 3, 4위전이 있는 2002년 6월 29일이 아닌 2002년 6월 30일에 결승전을 뛰었다.
그걸 보면서 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아무리 결승까지 진출할 정도로 우리나라 대표팀이 더욱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해도 축구의 최강국 브라질인데…….’
다들 결승까지 왔으니 우승하라고 외쳤지만, 그런 사람들과 달리 난 머릿속이 매우 복잡했다.
그래, 이왕 결승에 진출했으니 우승했으면 좋겠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바라는 일이긴 했다.
문제는 이미 준결승 승리국을 틀리면서 생긴 블랙마켓의 도박 때문이었다.
본디 한국이 4강까지 진출하고 1, 2, 3, 4위 국가를 모두 맞히면 배팅한 금액에 천 배가 넘게 벌 수 있었다.
배팅금이 5억이니 천 배면 5000억이다.
이 돈이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아도 무방한 금액.
근데 이미 4강의 결과가 틀려서 천 배로 받아야 할 보상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300배.
나쁘지 않다.
5억의 300배면 그래도 1500억이다.
문제는 결승전이었다.
이것까지 틀려 버리면 300배가 100배로 확 줄어들었다.
5,000억이 500억이 되는 셈.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되어버렸다.
전반전에 곽지상 선수가 한 골, 후반전 초입에 브라질의 인기스타인 축구선수 호우 선수가 한 골 그리고 마지막 경기의 결정골로 안지훈 선수가 한 골을 넣으면서.
-우와아아아아!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떠나가라 들려오는 함성.
한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그 함성은 몇 분간 끊이지가 않았다.
과장 좀 보태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자 해설위원이 경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한민구우우우욱! 대한민국이 축구 최강국 브라질을 2:1로 꺾고 월드컵에서 우승을 따냈습니다아아아! 대한민국 만세!!!
순간 머릿속에서 4500억이란 돈이 내게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뭐, 아깝긴 해도 공돈 500억이 어디야? 게다가 이번에 치리아노 출판사로부터 들어올 인세까지 생각하면 그거 어떻게 다 쓸지도 고민이지.”
칠리아노 출판사로부터 들어올 인세.
나한테 칠리아노 사장이 찾아온 날 이야기했다.
500만 부 20% 제한으로 둔 이유가 딱 하나라고.
현존하는 이탈리아 베스트셀러 중 가장 많은 판매기록을 만든 작품이 500만 부이기 때문에 정했던 거라고.
그것도 3년에 걸친 누적 판매부수였는데, 그걸 설마 한 달 만에 갈아치울진 생각도 못했다더라.
뿐만인가?
그것도 권당이다.
총 4권까지 쓴 판타지스타인 걸 감안하면 500만 부가 아니라 작품 누적 판매부수는 2천만 부.
이게 권당 2만 원씩 잡으면 총 매출은 2천억.
여기서 내 몫이 인센티브가 붙어서 20%인 400억이었다.
블랙마켓에서 얻을 수익 500억에다가 인세 400억.
총 900억이 생겼다.
본래 월드컵 경기가 알던 대로 흘러갔다면 얻었을 5천 억에 비하자면 적은 돈이나 지금 내게 있어선 이걸 살면서 다 쓸 순 있나 싶을 정도로 큰 액수였다.
“인세야 회사 자금으로 넣는다 그래도 마음껏 쓸 수 있는 돈 500억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지.”
비록 예언가는 아니게 됐지만, 차라리 이게 더 나았다.
안 그래도 계속 인터뷰하고 싶단 곳들이 넘친다고 자꾸 회사에 요청한다며 성용 형님이나 칠리아노 출판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직 딱히 어딘가 노출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전부 거절하던 차에 예언가 딱지를 떼어냈으니 그나마 덜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덕분에 난 더욱 엄청난 대박 작가로 거듭나서 기쁠 뿐이었다.
운과 타이밍이 뒤받쳐 줘야 가능한 대박.
마치 게임판타지가 범람할 때 독자들이 그냥 진득하게 읽을 작품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운 좋게 타이밍을 맞춰 나와서 대한민국 3대 판타지 작가의 네임밸류를 갈아치운 작가처럼.
나 역시 운과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회귀라는 운과 월드컵이라는 타이밍이.
그나저나 참 난감했다.
얼마 전 칠리아노 보스와 출판사 사장이 와서 부탁한 게 있었다.
꼭 해 달란 건 아니지만 해줬으면 좋겠다던 부탁에 난 볼을 긁적거렸다.
“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들 했으니까.”
내 컴퓨터가 있는 자리로 돌아가서 한글 파일을 하나 만들었다.
한글 파일의 이름을 수정했다.
‘판타지스타 9권.’
* * *
모두가 판타지스타에 적힌 것과 다르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우승하자 이준경 작가가 예언자는 아니었다고 하던 무렵.
판타지소설 같은 건 읽지 않을 것 같은 사람 한 명이 판타지스타 8권과 TV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TV에서는 뉴스가 틀어져 있었는데, 거기서 월드컵 우승과 더불어 있었던 그날 저녁의 사건을 보도했다.
-월드컵 우승으로 모두가 기쁨을 만끽하던 무렵 큰 사건이 있었다고요?
-예, 맞습니다.
-그게 무슨 사건이죠?
-연평도 해변에서 북한군의 경비정이 송골매388정을 공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월드컵 우승이 있던 날 그런 사건이 있었군요? 그래서 우리 송골매388정의 피해는 어땠습니까?
-얼마 전 국방부의 이동신 장관님께서 경비체제를 강화하신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완벽히 대처했다고 합니다.
-이동신 국방부 장관님께서 아주 큰일을 해내셨군요.
-예,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만약 이 경비체제의 강화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또 한 번 아픔의 상처가 남겨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예측…….
뉴스를 보던 사람이 리모컨으로 TV전원을 껐다.
그가 바로 방금 뉴스에서 보도된 국방부장관 이동신이었다.
이동신 국방부장관은 판타지스타를 보면서 말했다.
“예언서가 아니라고? 그래, 예언서가 아니라 구원서지. 도대체 이걸 쓴 작가는 어떻게 북한의 도발을 예상했던 건지 …….”
얼마 있지 않아 이동신 국방부장관의 책상 위에 있던 전화가 울렸다.
삐익.
그 울림에 이동신 국방부장관이 버튼을 눌렀다.
“장관님,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이 전화했습니다.”
“연결해.”
“예.”
연결하란 말에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의 목소리가 이어서 나왔다.
“충성! 장관님. 찾으셨습니까?”
“내 부탁 하나만 합세.”
“부, 부탁 말씀이십니까?”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연했다.
평소 국방부장관이 자신에게 부탁할 만한 일은 딱히 없었으니까.
부탁이란 말에 당황하는 그에게 이동신 국방부장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어떤 것입니까?”
“진중문고에 내가 추천하는 책 한 권 좀 넣어주게.”
“어떤 것입니까?”
“진중문고 제한이 있으니 더도, 덜도 말고 ‘판타지스타’란 소설의 1권과 2권을 만 부씩만 뿌려주게.”
“지, 진중문고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번에 월드컵으로 다들 기운찰 때 재밌게 읽을만한 축구소설인 것 같아서 추천하는 걸세.”
“일단 검토는 해보겠습니다.”
“알겠네, 수고하게나.”
“수고하십시오, 충성!”
이동신 국방부장관은 잘 알고 있었다.
말로나 검토지, 자신이 추천한 이상 꼭 넣을 거란걸.
국방정책자문위원장과의 통화를 마친 이동신 국방부장관이 앞에 놓인 판타지스타 8권에 적힌 ‘이준경’이란 이름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구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