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89
나는 작가다 089화
89화
“예? 판타지스타 1, 2권만 1만 부씩 증판이라고요?”
성용 형님과 통화하던 난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1, 2권만.”
이게 뭔가 싶었다.
이미 8권 1부 완결이 난 작품인 판타지스타.
“근데 왜 1, 2권만……?”
“아, 그게 일반적인 경로가 아니라서 그래.”
“일반적인 경로가 아니라뇨?”
“진중문고로 달라더라.”
진중문고?
“그거 군대에서…….”
“맞아, 국방부에서 요청이 왔어.”
“보통 판타지 소설 같은 건 안 되고, 거의 베스트셀러인 작품들 위주로 받을 텐데…….”
“그러게? 우리나라에서는 아닌데, 이탈리아 베스트셀러라 뽑힌 건가? 근데 아직 보도 자료나 뉴스 안 나갔을 텐데.”
보도 자료나 뉴스.
이탈리아 베스트셀러가 된 최초의 대한민국 소설이란 타이틀로 각종 방송사와 신문사들이 인터뷰와 보도 요청을 해왔단다.
하지만 난 인터뷰는 전부 거절했고, 굳이 보도를 해준다는 데 거부할 필요가 없기에 작품 소식은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해주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겠다던 매체들이 많았는데, 워낙 경쟁들이 붙다 보니 이젠 인터뷰 없어도 되니 기사만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아직 내 팬들만 아는 이탈리아의 베스트셀러가 된 판타지스타의 소식.
그걸 국방부에서 어떻게 알고 진중문고로 달라 한 건지 모르겠다.
성용 형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단지 긍정적인 방향만 보잔다.
“뭐, 진중문고로 만 부씩 팔리면 좋지. 수십만에 이르는 군인들이 보고 재밌으면 다음 권도 살 테니까.”
“그렇겠네요.”
둘 다 잘되기만 바랄 뿐이었다.
* * *
성용 형님과 잘되길 바라던 건 2002년이란 해에 월드컵 못지않은 사건까지 낳았다.
국방부로 인해 수십만 국군 장병이 보면서 판타지스타의 판매 부수는 10만에 이르렀고, 이후 뉴스와 각종 신문에서 보도되며 30만에 이르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난 공영방송 중 한 곳인 MBS 채널을 고정시켰다.
곧 ‘물음표’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물음표.
워낙 국민 독서량이 낮은 대한민국이기에 도서를 권장하는 프로그램으로 이 시기 소개된 책들은 대다수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오늘 방송에서 소개될 책은 ‘판타지스타’였다.
국민MC가 될 개그맨 베짱이 류재식과 만두맨 강두만이 저번 주에 방송을 타서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여덟 살 인생’과 내가 쓴 ‘판타지스타’를 들곤 군부대에 찾아갔다.
강두만이 위병소 입구에 서 있던 군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충성!
군기가 바짝 든 위병소 근무자.
평상시에도 군기가 잡혀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위병소였지만,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모습이 비춰져서인지 꽤나 작위적으로 군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병장인데 저 정도 군기면 사기극이지, 사기극이야.”
아마 일병이나 상병이면 몰랐을까.
위병소 근무를 선 병장을 보곤 딱 봐도 방송용 설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현역으로 만기 전역했던 군인이었으니까.
위병소 근무자에게 강두만이 물었다.
-혹시 평소에 책 많이 읽습니까?
-많이 읽습니다!
-오, 주로 어떤 책을 읽나요?
-사실 예전에는 책을 잘 읽진 않았는데, 물음표에서 소개해 주는 책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책을 자주 읽느냐고 물어봤더니 다짜고짜 물음표 광고를 하는 위병소 근무자.
덕분에 류재식과 강두만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는데, 그 상황을 베짱이 류재식이 수월하게 풀어냈다.
-하하, 카메라 앞이라 긴장했나 봅니다. 우리 군인 아저씨가.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죠. 그나저나 물음표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많이 읽으신다고요?
-맞습니다!
국민MC가 되는 류재식이 한창 물오르기 시작한 시기답게 꽤나 유들유들하게 잘 넘기며 진행해 나갔다.
-그럼 저번 주에 소개된 책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여덟 살 인생입니다!
-작가가 누구죠?
-이지철 작가님이십니다!
-이야, 잘 아시네요. 그럼 혹시 이 책은 읽어봤나요?
류재식이 이번 주 소개 책인 내가 집필한 판타지스타를 꺼내 보였다.
안지훈의 모습이 박혀 있는 축구 소설인 판타지스타.
그걸 본 위병소 근무자가 대답했다.
-읽어봤습니다! 지금 부대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운 소설입니다!
-오, 그래요?
-예, 진중문고로 들어와서 다들 보겠다며 순번표까지 뽑아놓고 대기 중입니다!
소개하려는 책이 이미 부대에 진중문고로 들어와서 다들 재밌게 보고 있단다.
작가인 내 입장에서 매우 뿌듯한 일.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미 부대에서 유명한 책이라고 이야기를 듣자 강두만이 끼어들었다.
-오오, 유명하군요. 이번 주에 소개하려는 판타지스타란 소설이?
-정말 재밌습니다! 여태까지 물음표에서 소개된 소설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야, 그 정도예요?
-그 정도입니다!
-그럼 우리 근무 서시는 분이 말한 것처럼 유명한지 이제 그만 부대 내에 있는 병사분들에게도 물어봐야겠군요.
-유명합니다!
-알았어요. 그럼 근무 잘 서세요.
-알겠습니다, 충성!
류재식과 강두만은 그렇게 위병소를 넘어가 부대 연병장에 섰다.
이미 그곳에는 일곱 명의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병사들을 보면서 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정말 작위적이구만.”
공병부대 연병장에 있는 아홉 명의 병사들.
그들 옆에는 장갑조립교라고 불리는 M2 부품들이 있었다.
특별한 기계의 도움 없이 전부 병사들 본연의 힘으로 몇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철근 구조물을 조립해서 탱크도 지나갈 수 있는 대교를 만드는 부품들.
나 역시 공병부대를 나왔기에 그게 뭔지 잘 알았는데, 현재 방송 중에 보이는 부품이나 인원으론 절대 완성할 수 없었다.
그저 잠시 들어 올려서 옮기는 정도로 얼마나 힘든 훈련을 하는지만 보여줄 뿐.
류재식과 강두만이 전두 지휘하는 병장에게 다가가 말을 거니 그제야 비로소 이리저리 옮기던 M2 부품들에서부터 한 곳으로 모였다.
-집합!
-집합!
복명복창하며 병장의 옆으로 주르륵 선 병사들.
강두만이 병장에게 물었다.
-우리 병장님은 책 많이 읽습니까?
-많이 읽습니다!
-오, 그래요?
-예! 물음표를 좋아합니다!
또다시 나온 물음표 광고.
거기에 대해서 강두만은 의아하게 쳐다봤다.
-근데 다른 방송이 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물음표만 볼 수 있나요?
-제가 제일 고참이기에 리모컨은 저만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 병장의 특권이지.
리모컨을 쥐고 있단 병장에게 강두만이 물었다.
-오, 그렇군요! 우리 최고참 병장님은 전역이 언제입니까?
-보름 뒤입니다!
딱 말년 휴가에다가 포상 하나 붙이면 끝인 기간.
강두만 역시 금방이란 듯이 이야기했다.
-허, 곧 전역이네요. 그럼?
-맞습니다!
-그나저나 책은 요새 뭘 읽나요?
교묘하게 대화 주제를 책으로 바꿨다.
거기서 병장은 꽤 자연스럽게 답했다.
-최근에 소개된 여덟 살 인생을 오늘 새벽에 다 읽었습니다!
-이야! 정말 물음표를 좋아하는군요?
-좋아합니다!
-그럼 우리 병장님 말고 다른 부대원들도 책을 많이 읽나요?
-그렇습니다!
-혹시 병장님은 부대원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알고 있나요?
-이 친구는 저저번 주에 물음표에서 방송된 ‘마당에서 암탉이 운다’를 읽고, 저 친구는 ‘혼자 살면 재미가 없다’를 읽고 있습니다!
분대원 하나하나를 지목하며 그들이 읽는 책들을 소개한 병장.
거기서 류재식이 반가운 표정으로 받아쳤다.
-오, 다 물음표에서 권장했던 도서들이네요?
-제가 읽은 뒤 빌려줬습니다!
-이거 강제로 읽게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마당에서 암탉이 운다는 재밌습니다!
일병이 우렁차게 답했다.
반면 상병인 분대원은 머뭇거렸다.
그걸 본 강두만이 물었다.
-그쪽 상병분은?
-지루합니다!
-읽다 보면 재미가 있을 거다.
자신이 빌려준 책이 지루하다고 한 상병에게 병장이 그리 말하자 나름 상병을 단 지 꽤 됐는지 말대꾸를 했다.
자신의 희망사항으로.
-판타지스타를 읽고 싶습니다!
-읽으면 되지 않나요?
-아직 최 병장님께서 읽고 계셔서 못 읽는 중입니다!
정말 군기 한 번 빠진 소리라고 할 수 있었지만, 내가 볼 땐 저 정도 말년이면 그냥 방송이다 보니 체면 세워주려고 분대장 견장을 빌려준 거고 실제 분대장은 저 상병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빌려준 책 읽고 나면 딱 읽을 수 있겠는데, 그걸 굳이 지금 이야기할 필요가 있냐?
병장이 꽤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하자 상병이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아니, 뭐 죄송할 게 있어요? 재밌는 책을 읽고 싶은 건 다들 같은 마음이죠. 안 그래요?
-맞습니다!
강두만과 류재식은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 풀려는 것처럼 했고, 그런 두 사람에게 병장이 어쩔 수 없단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제가 말년휴가를 다녀오면서 애들 다 볼 수 있게 판타지스타 전 권을 사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병이 좋다며 소리쳤는데, 강두만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손사래 쳤다.
-아니에요. 이렇게들 좋아하시니 저희가 가져온 걸 하나 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 주 소개 책자가 이준경 작가님의 판타지스타였거든요. 자, 받으세요.
강두만이 들고 있던 판타지스타를 상병에게 건넸다.
그걸 받은 상병이 매우 기쁜 목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물음표’에서 소개가 된 판타지스타.
덕분에 쉬지 않고 증쇄에 증쇄를 거듭했다.
본래 2002년 베스트셀러 1위는 누적 판매 부수가 100만 권을 넘겼던 이지철 작가의 여덟 살 인생이란 작품이었다.
하지만 내 판타지스타가 한 번 더 대한민국 역사를 뒤바꿨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우승 신화로 만들어냈다면, 이번엔 100만 부가 넘은 베스트셀러 여덟 살 인생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물음표에서 소개된 당월 권당 50만 부, 누적 판매 부수 400만 부.
몇 개월에 걸쳐 권당 100만 부에 이르며, 누적 판매 부수가 800만 부를 넘겼다.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마법학교와 전설의 돌 못지않은 인지도를 쌓았다.
‘이준경’이란 이름 석 자가.
* * *
판타지스타가 권당 10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 가지 계획이 변경되어 버렸다.
일 년은 지나고 애장판으로 찍으려던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를 좀 더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독자들이 찾기에.
이후 이준경, 이름 석 자가 박힌 소설들은 전부 기본이 4, 50만 부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올렸다.
권당 50만 부.
거의 100권에 이르는 작품을 가진 걸 얼추 계산만 때려도 총매출이 권당 40억인데, 여기에 100을 곱하면 4천억.
실질적으로 인세를 받지 않고 회사에 묶어둔 돈이 1500억에 육박했다.
단, 일 년 사이에 2천억이 넘는 자산가가 될 수 있었다.
한 회사가 아닌 개인이 일궈낸 자산이라고 보면 정말 비현실적인 기록.
그렇게 돈이 생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무실 두세 개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 매입했던 구로공단의 아파트형 공장 상가 두 채, 목표로 삼았던 청담동 건물도 무려 두 채나 매입한 것이었다.
매입한 건물들은 전부 이름을 바꿨다.
‘KN타워’로.
KN타워.
한국 소설이란 코리아 노블의 이니셜을 담은 빌딩.
빌딩을 세운 이후로 ‘K E&M’은 승승장구했다.
내 작품만큼은 아니었으나 계약한 작가들 모두 초창기 나만큼 팔고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었거니와 나로 인해 K E&M의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졌으며, 추가로 계약한 작가들 작품 모두 장르소설 독자들에게 호평일색.
심지어 수십에 이르는 기성 작가들이 자기들 차기작도 계약해 달라기 일쑤였는데, 나와 K E&M 직원들의 칼 같은 심사로 인해 계약하게 된 이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지만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벌어들이던 2002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사건이 찾아오고 있었다.
‘루사’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