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9
나는 작가다 009화
9화
출판사들의 비상은 비단 직원들만 걸린 게 아니다.
작품을 직접 보고 컨택하는 사장들은 아예 비상 신호를 걸었다. 그중 하나로 꼽히는 푸른숲 출판사 사장 김두식이 그랬다.
김두식은 두 눈을 몇 번이나 깜빡거렸다.
순간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여전히 떡하니 박혀 있는 황제 로키란 작품의 성적.
“도대체 어떻게 썼길래 올린 지 하루도 안 된 작품 성적이 이래?”
만약 글마저 좋다면 어떻게든 데려오겠단 생각으로 김두식은 황제 로키를 읽어나갔다.
서장부터 딱 느낌이 왔다.
“황제가 되어주마…….”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김두식의 읊조림.
단 한 줄뿐인 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에서 잠들어 있던 전구에 불이 팟! 하고 들어왔다.
“서장이 고작 한 줄인데 느낌이 오는군. 어디 다음 편도 한 번 보자.”
그렇게 김두식이 한 줄의 서장부터 시작해서 황제 로키의 10장까지 읽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김두식에겐 오히려 다행이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몰입했으니까.
푸른숲 출판사는 특이하게 사장이 부장과 같은 공간을 썼다. 그래서 양 과장이 직원들에게 실세처럼 굴 수 있던 거였고.
항상 사장인 김두식이 9시 정각에 출근을 하니 임원실이라고 지정한 방에 부장 장도철도 일찍 나왔다.
근데 황제 로키를 읽는 김두식에겐 바로 건너편 장도철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오직 모든 신경이 황제 로키란 작품의 원고에 집중됐기에.
마지막 화인 걸 알면서도 김두식은 우측에 있는 ‘다음’ 버튼을 눌렀다.
딸칵딸칵!
연신 눌러댔으나 다음 편은 나오지 않았다.
방금 읽은 원고가 연재된 마지막 편이었으니까.
“젠장,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건데?!”
너무 궁금해서 욕까지 튀어나왔다.
그런 김두식의 격한 반응에 건너편 장도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장도철을 김두식이 불렀다.
“장 부장, 이리 와봐!”
사장이 까라면 까야지.
장도철은 출근하면 신문부터 읽었는데, 읽던 신문을 접은 채 책상 위로 올린 김두식에게 갔다.
책상 건너편에 선 장도철 부장이 물었다.
“왜요?”
그에게 김두식은 검지로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와서 봐.”
대관절 뭘 보란 건지.
의아한 표정으로 장도철이 이동했다.
그가 옆에 오기 무섭게 김두식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 작가 잡아와!”
“난 또 뭔가 했더니 컨택하란 겁니까?”
평상시에도 김두식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면 자신에게 시키곤 했다.
작가 컨택을.
대다수 김두식의 눈에 든 작가들은 꽤나 잘나갔다.
사장인 그의 마음에 들면 푸른숲 출판사에서 작가가 확인할 수 있는 선에선 전폭적으로 밀어줬으니까.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작가를 컨택하라는 건지.
장도철은 김두식이 가리킨 작품을 확인했다.
황제 로키
작가 이준경.
이미 김두식이 컨택하라고 하면 성적과 상관없이 데려와야만 했다.
그래서 장도철은 작품의 제목과 작가만 확인했는데, 어디서 본듯한 이름에 반응을 보였다.
“어? 이준경?”
마치 아는 듯한 장도철의 반응에 김두식이 물었다.
“아는 작가야?”
분명 이준경이란 작가는 신인이었다.
이 정도로 글을 쓸 줄 아는 기성인데, 오랫동안 장르시장에 있던 김두식 본인이 모를 리가 만무했으니까.
혹여나 필명을 바꾼 걸까?
아니다.
자신이 봤던 어느 작가도 이처럼 센스 있게 쓰지 못했다.
보통 장르시장의 작가들은 액기스라고 불릴 만한 부분을 한 챕터에서 한두 번 보여주고 말았다.
한데 이준경 작가의 황제 로키는 매 편마다 액기스를 담고 있었다.
자신이 봐왔던 어떤 작가의 글보다도 호흡이 빠르면서도 매 화마다 재미를 안겨줬다.
아니나 다를까.
장도철의 입에선 신인이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 엊그제 우리 출판사에 왔던 투고 작가 하나 왔잖습니까?”
김두식 역시 본 기억이 있었다.
단지 투고를 하는 작가들은 계약하기 전까진 장도철 선에서 처리했기에 이름이 뭔지 몰랐다.
때문에 갑자기 새파랗게 어려 보이던 작가를 왜 언급하나 싶었다.
“걔는 왜?”
“보고받기로 그 작가 이름이 이준경으로 들었거든요.”
어제 방문한 투고 작가의 이름이 뭔지 들은 김두식의 시선은 다시금 모니터로 향했다.
마우스로 뒤로 가기를 눌러서 작품 페이지로 돌아갔다.
그걸 턱짓으로 가리키며 장도철에게 물었다.
“이 정도 성적 낼 작가가 투고를 왜 해? 그냥 동명이인 아니야?”
김두식의 말에 장도철은 모니터를 쳐다봤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이미 황제 로키란 작품은 조회수가 더 올라서 20만을 넘겼다.
그걸 보니 확실히 말이 안 되긴 했다.
이 성적을 낼 수 있으면 굳이 투고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한데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뭐, 사장님 말씀도 일리가 있긴 한데…….”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장도철.
답답해서 김두식이 중간에 끊고 본론만 말하라는 듯이 쏘아붙였다.
“왜?”
“투고했던 원고 제목도 황제 로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름도 같아요, 제목도 같단다.
작품 페이지와 장도철은 두어 번 번갈아보던 김두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그럼 같은 작가야?”
“양 과장한테 확인해 보겠습니다.”
황제 로키란 작품을 쓴 이준경 작가가 투고하러 왔다고만 보고했지, 미팅 결과는 아직 들은 바가 없었으니 겸사겸사 확인하기로 했다.
김두식은 이준경 작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장도철을 부추겼다.
“얼른 확인해!”
“예.”
불호령에 임원실에서 잽싸게 나간 장도철 부장.
나오기 무섭게 양경철부터 찾았다.
“야, 양 과장!”
하지만 양 과장은 아직 출근하기 전이었다.
그에 대해서 홍성용이 이야기했다.
“어제 총판 사장님들하고 미팅이 있으셔서 오늘 좀 늦을 거라고 했습니다.”
또 영업하느라 밤새 술 마셔서 늦는단 소리였다.
장도철은 그 소리를 듣곤 크게 말했다.
“거 새끼, 사장님이나 부장님도 정시 출근인데 과장이란 놈이 아주 출퇴근이 제멋대로예요. 누가 보면 지가 사장인 줄 알겠어?”
출근을 제때 안 한 양경철 때문에 꽤 화가 난 모습이다.
덕분에 직원들은 다들 눈치만 볼 뿐.
비록 쓰레기 같아도 양경철은 가벼운 사람인지라 정말 분위기가 다운됐을 때 빼곤 눈치를 보지 않았다.
반면 사장인 김두식이나 장도철은 달랐다.
대리 이하인 직원들에겐 높은 위치에 있는 상급자이다 보니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전부 신경 쓰였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임원실이랍시고 함께 쓰는 건 푸른숲 출판사에서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직원들 기준으로 말이다.
어쨌거나 양경철의 늦은 출근에 장도철 부장이 화난 것 같자 빠르게 대처하는 홍성용.
“출근하면 부장님께서 찾으셨다고 말할까요?”
“아니다, 내가 전화해 볼게. 어?”
휴대폰을 꺼내던 장도철은 생각해 보니 투고해서 왔던 이준경 작가를 양경철뿐만 아니라 홍성용도 같이 미팅했던 걸 떠올랐다.
심지어 투고했던 원고도 그가 담당해서 확인했던 걸로 보고를 받았다.
그렇다면 아까 김두식이 잡아오라고 시킨 이준경 작가가 어제 방문한 인물과 같은지 알고 있을 터.
“홍 대리.”
“예, 부장님.”
“너 오늘 북조아 들어가 봤냐?”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 연재사이트 투베 확인인데 당연히 봤죠.”
“하여간 겁나 성실해요. 야, 그럼 지금 북조아 투베 1위 있잖아.”
“이준경 작가님요?”
“그 작가, 우리 출판사에 투고했던 작가 맞냐?”
“맞을 겁니다.”
현재 북조아 1위를 먹고 있는 이준경 작가가 어제 투고해서 계약하러 왔던 그란다.
그렇다고 하니 장도철은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뭐? 그럼 지금 연재 중인 황제 로키, 그거 불발난 거냐?”
보통 투고로 계약한 원고는 편집부 회의를 거친 뒤 공개하도록 되어 있었다.
만약 계약을 성사시켰다면 이준경 작가는 연재가 아니라 원고를 수정하는 지옥에 들어가 있어야만 했다.
즉, 자신들에게 투고했던 원고로 연재를 한다는 건 어제 계약이 무산됐단 소리였다.
홍성용은 장도철 부장의 생각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맞습니다.”
“아니, 왜 계약이 파토난 건데?”
투고하러 왔던 이준경 작가와의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단 사실에 장도철 부장은 도끼눈을 부릅떴다.
이걸 사장 김두식에게 보고하면 된통 깨질 게 뻔했다.
거기서 홍성용이 어째서 계약을 안 한 건지 알려줬다.
“연재해서 성적으로 증명하신다고 했습니다.”
“뭐? 계약하고 싶다면서 투고했는데, 갑자기 연재 성적으로 증명을 왜 해?”
“그게…….”
홍성용은 이준경 작가와의 미팅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거기서 장도철은 꽤 언짢은 표정으로 홍성용을 째려봤다.
어쨌거나 미팅에서 잘못한 건 양경철이었으나 같이 자리했던 홍성용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여긴 걸까?
하지만 들은 이야기 내에선 누가 봐도 전적으로 양경철 잘못이었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더니 휴대폰으로 계속 양경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뻗어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장도철은 짜증 어린 목소리로 화를 냈다.
“양 과장, 그 새끼는 짬이 몇 년 차인데 이게 뜰 원고인지 못 뜰 원고인지 구분도 못해서 황금알을 걷어차? 이 미친 새끼, 왜 전화를 안 받아?”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안 그래도 사장인 김두식이나 부장인 장도철 눈치를 보는 직원들이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홍성용은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장도철을 불렀다.
“아, 부장님!”
“왜?”
“근데 좀 이상합니다.”
“뭐가?”
계속 양경철에게 전화를 걸면서 말해보란 듯이 턱을 까닥거렸다.
뭐가 이상한 건지 홍성용이 밝혔다.
“저랑 양 과장님이 봤을 땐 원고 상태가 이렇지가 않았습니다.”
원고 상태가 이렇지 않았다.
그 말은 수정을 했단 소리였다.
방금 장도철이 말한 것처럼 양경철은 자신 밑에서 꽤 이 시장 짬밥 좀 먹었던 놈이다.
때문에 미팅 자리에서 홍성용에게 들은 것처럼 행동했을 터.
즉, 수정 전 원고는 아주 볼품없었단 소리였다.
한데 수정 후 원고는 북조아에서 여태 본 적 없던 성적을 이뤄냈다.
그 이야기에 장도철이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뭐 우리랑 계약이 파토나고서 이틀 만에 퇴고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거야?”
“예.”
“그게 말이 돼? 신인이라며?”
“그래서 저도 좀 의문이긴 한데…….”
“아, 됐고. 지금 중요한 건 사장님이 꽂히셨다고. 아, 이 새끼가 미쳤나. 전화를 안 받네. 홍 대리, 양 과장 출근하면 임원실로 튀어오라 그래.”
“알겠습니다.”
홍성용의 대답을 끝으로 장도철이 임원실로 들어갔다.
사장 김두식에게 깨질 각오를 하고.
그때 일반사원으로 있던 편집자 이진우가 의자를 홍성용 쪽으로 움직인 뒤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대리님. 이게 무슨 일이래요?”
“뭔진 몰라도 하나는 확실하다.”
“뭐가요?”
갑자기 뭐가 확실하다는 건지.
이진우에게 홍성용이 씨익 웃으며 확실한 사실 하나를 밝혔다.
“이번 달 개미라이더 피규어를 살 수 있단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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