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90
나는 작가다 090화
90화
2002년 8월 말, 대한민국은 역대 최고의 강우를 지닌 태풍에 휩쓸렸다.
가장 큰 손해를 본 곳은 강원도 동부 지역이었다.
9월 달에 쉴 새 없이 뉴스와 신문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대급 태풍 피해액 5조 1천억 원.
사망 및 실종 246명, 이재민 6만 3000여 명이란 엄청난 대한민국의 아픔을 만들어낸 태풍 루사.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루사보다 내년에 있을 매미를 많이 기억했었지.”
가장 강력한 풍속을 지녔기에 겉으로 보이는 피해가 더 컸던 2003년 벌어질 태풍인 매미.
하지만 실제 피해액이나 인명피해는 현재 2002년에 벌어진 루사가 더욱 컸다.
그렇게 태풍 루사와 매미를 떠올린 난 문득 북피아의 전설적인 작품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산해경 작가가 태풍 매미를 소재로 사건을 하나 벌였었는데…….”
태풍 매미로 피해를 본 지역의 이재민들이 머물 공간을 무상 제공하는 방식으로 비업무용 부동산 매입에 힘쓰던 주인공.
일반적으로 기업은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어마어마한 세금이 물리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국가에 원조하는 형태로 가면 괜찮다고 했던 것 같았다.
“그 주인공처럼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지닌 돈이면 오백억이 아니라 천억 정돈 쏠 수 있긴 한데…….”
내 작품들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소설에서나 쓰일 법한 에피소드를 현실에서 적용해 볼까 싶었다.
지금 내 인생이 소설 주인공 못지않게 잘나갔으니까.
“좋아, 한 번 해보자.”
* * *
성용 형님에겐 이번 태풍 루사로 피해 본 사람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기부를 하면서 K E&M의 기업 이미지를 좋게 만들자고 했다.
당연히 이 계획은 단순히 성용 형님하고 나만 움직여선 안 됐다.
철이에게 이런 식으로 하려고 하는데 가능한지 물어봤다.
좀 더 법적으로 전문적인 건 우리 회사와 전속으로 계약하게 된 법무법인 광해에게 자문을 구하며.
이번에는 액수가 크다 보니 설아네 어머니가 직접 나섰다.
“그러니까 이번 태풍 루사로 인한 이재민들에게 K E&M 이름으로 천억 원을 지원해서 머물 집들을 마련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하시겠다고요?”
“예.”
“우리 설아네 싸부, 작가님이 아니라 기업인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어요?”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잘나가시는 작가님이 하신 거지.
물론, 여기서 난 한술 더 뜰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보험을 들이면 만약 이게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경우 몇 배로 보상받을 경우 세금이나 법적으로 문제될 만한 게 있나요?”
“전혀 없을걸요? 아니, 애당초 이런 재난 수준의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테니 보험은 포기하셔야 할걸요?”
안타깝게도 그 재난 수준의 일은 내년에 또 벌어집니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내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럼 보험을 들여서 보상까지 받고 나면 아예 지금 들인 돈을 기부해도 몇 배나 이윤이 남는단 거네요.”
“만약 내년에도 같은 재난이 일어나서 K E&M이 원조 목적으로 샀던 건물들이 전부 피해를 입는다면 그렇겠죠?”
입는다, 무조건.
설아네 어머니에게 잘해 주길 부탁했다.
“그쪽으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천억 원의 거금을 재난대책본부에 비업무용 부동산으로다가 투자란 이름을 숨긴 원조로 밀어 넣는다.
꽤 나쁘지 않은 소스라고 생각했는지 설아네 어머니가 써먹으려고 했다.
“이왕이면 기사도 내드릴까요? 이 정도면 거의 국보급 귀인이 되시겠는데요?”
“거기에 광해 이름도 살짝쿵 얹으시게요?”
“그야 작가님께서 허락만 하시면요?”
“굳이 제가 허락하고 말고가 있을까요? 물론, 저나 회사가 전혀 모르는 방향에서 퍼진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죠. 제 신상정보는 철저히 지켜지면서 이름만 떠돈다면야…….”
밑밥은 깔았다.
설아네 어머니 역시 그걸 못 알아듣진 않았다.
마치 날 능구렁이마냥 쳐다보며 미소를 보였다.
“후훗,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네요.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무슨 부탁요?”
“설아가 이제 그만 공부에 더 집중했으면 하거든요.”
확실히 점점 더 강설아가 잘되는 내 뒤만 바라보며 다른 쪽에 시선을 주지 않고 따르려던 모습이 보이긴 했다.
설아네 어머니는 딸이 소설가가 된단 게 못마땅한 걸까?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법인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은 외동딸이라서?
그에 대해 확인했다.
“글쟁이로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거나 아니면 설아 역시 어머님 뒤를 이어 법조인이 되길 바라시나요?”
“아뇨, 전 딸아이가 굳이 저처럼 힘든 길을 걷게 하고 싶진 않아요. 소설가요? 작가님을 보면 그보다 잘난 직업이 있을까 싶은데 힘들어 보일 리가요.”
날 보면 소설가가 힘들어 보이진 않단다. 그리고 굳이 강설아가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법조계 쪽으로 끌어올 생각도 없단다.
“단지.”
“단지?”
날 통해 강설아가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이유.
그게 뭔지 설아네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싸부께서도 그랬다면서요? 작가를 하려건, 뭘 하려건 공부는 중요하다고요.”
“머리가 나쁘면 소설가도 소설가지만, 세상 살아갈 때 어느 정도 불리한 건 사실이니까요.”
“맞아요, 전 최소한 우리 설아가 좀 더 많은 걸 배웠으면 좋겠어요. 정말 소설가가 될 생각이라면 그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솔직히 다른 데에도 관심이 많았던 아이거든요.”
“다른 데요?”
“뭐, 소설 말고도 영상이나 음악 쪽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렇군요.”
“네, 사실 또 이게 나이를 먹다 보면 하고 싶은 게 바뀔 수도 있거든요. 아직 설아는 그럴 나이잖아요?”
“그렇지 하죠.”
“그러니까 이왕이면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맞는 학과에 가서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님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에 원하는 과를 갈 땐 그 재능보단 수능이 더 중요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대신 설아의 소원을 딱 하나만 들어주려고 합니다.”
“설아의 소원요?”
“녀석이 쓴 무협, 우리 회사를 통해서 책을 내줄 생각이거든요.”
“좋아하겠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설아가 그토록 따르던 싸부와 같은 회사에서 책을 낸다고.”
“뭐, 결과에 따라선 좋아하기보다 싫어질지도 모르죠.”
“음?”
“아직 결과에 따라 감정 기복이 클 나이잖아요?”
“그렇긴 하죠. 뭐,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네요.”
“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어도 방금 제가 부탁한 건 들어주실 수 있죠.”
“알겠어요. 신경 완전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저나 남편이 바빠서 잘 돌보지 못하는 철부지 딸 돌봐주시는 싸부가 더 고생이죠.”
“고생은 무슨요, 첫 제자라 생각하고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쨌거나 이야기는 얼추 끝난 것 같으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부탁하신 게 모두 준비되면 그때 다시 연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난 설아네 어머니와의 자리를 파했다.
* * *
[태풍 루사가 휩쓸고 간 강원도 동부 지역 이재민들의 터전이 마련되기 전까지 머물 수 있도록 재난대책본부에 천억 원을 후원한 익명의 천사!] [대기업들조차 엄두내지 못할 정도의 거액을 이재민들을 위해 쓴 이는 누구인가?] [축구소설 ‘판타지스타’로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 ‘이준경’, 그는 누구이기에 천억 원을 선뜻 내놓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선보인 대기업들과 다르게 자수성가한 판타지 소설 작가!]…….
정말 쉴 새 없이 이번 기부 형식의 원조 기사들.
덕분에 내 이름은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도배해 나갔다.
하지만 내 지인들을 제외하면 다들 기사의 주인공인 내가 어찌 생겼는지 감도 못 잡았다.
가끔씩 친척들이나 지인들이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도록 소개를 부탁한다고 연락하곤 했다.
당연히 싹 다 거절이다.
그렇게 떠벌리고 다닐 거였다면 애당초 설아네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내 정체를 숨겨 달라고 하지 않았으리라.
한동안 난 조용히 집에서 글만 썼다.
벌려놓은 작품들 정리를 위해서.
애장판을 진행한 황제 로키, 드래곤 나이트 두 작품에 이어서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마저 찍어냈다. 뿐만 아니라 이경수 팀장을 통해 LT노벨과 저작권 관련 내용 정리 후 용사무적 연결권은 우리 회사인 K E&M을 통해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용형님이나 푸른숲 출판사에서 넘어온 직원들이 라이트노벨에 관해선 너무 아는 게 없어서 이경수 팀장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그마저 우리 출판사로 넘어와 라이트노벨 부서 팀장직에 앉았다. 그가 원하는 직원들을 고용하는 조건으로.
이후 판타지 스타는 한국 판형 기준으로 20권, 이탈리아 판형 기준으로 10권 완결을 쳤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은 ‘이 탑의 끝을 잡고’밖에 남지 않았다.
“흠, 이게 습관인가?”
‘이 탑의 끝을 잡고’를 두 편 정도 쓰고 나서 쌓인 분량을 보니 손이 근질거렸다.
신작이 쓰고 싶어서.
평소 두세 작품씩 다루다가 갑자기 한 작품으로 줄어드니 허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작품을 하나 더 구상할 때인 것 같았다.
고민에 잠겼다.
“판타지는 이미 쓴 걸로 충분하고, 라이트노벨은 지금 쓰는 걸로 됐고……. 무협이나 스포츠, 현대물 쪽에서 골라잡아야 하나?”
굳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쓰던 주된 판타지 장르로 쓰자면 못쓸 건 없긴 했다.
하지만 이미 쓴 판타지 작품들만 해도 엔간한 에피소드들을 다 털어 버렸다.
유료연재 시장처럼 5천 자 단위로 있는 없는 에피소드들을 싹 다 써버렸으니 쓰려면 꽤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적당히 세계관, 설정을 비튼 뒤 인물들이 바꿔 써서 에피소드를 재활용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근데 자가 복제를 할 바엔 그냥 딴 걸 쓰고 말지.”
어차피 돈이야 썩어 넘치도록 있었으니 쓰고 싶은 걸 막 써서 망해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항상 내가 작가들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작가가 여유로워야 작품도 잘 나온다고.
지금 나보다 팔자 좋은 작가가 있을까?
없다.
이리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에서 굳이 돈 벌자고 자가 복제나 하며 작품을 써내긴 싫었다.
망하더라도 새로운 걸 쓰고 다 생각했다.
하지만 뭘 쓸지 너무 고민이 많았다.
당장 정통 판타지라고 불리는 장르를 제하고도 너무나도 많은 장르와 소재들이 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결국 난 고민하던 걸 잠시 미룰까 싶었다.
“잠시 인터넷 서핑이나 하면서 머리 좀 식히면서 고민해 볼까?”
그래,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뭔가 신선한 소재라도 뭐 하나 잡히지 않을까?
난 잠시 신작에 대한 생각을 뒤로 미룬 뒤 인터넷 서핑이나 해댔다.
인터넷을 뒤지던 중 난 문득 한 남자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하게 됐다.
배우의 이름은 김도빈.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조각미남 배우 중 한 명으로 강원도 출신이었다.
본가가 이번에 루사가 휩쓸고 간 곳 중 하나인지 그와 관련된 인터뷰를 남겼다.
제목은 이랬다.
‘독서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이준경 작가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