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92
나는 작가다 092화
92화
‘애국가를 부르며’ 대본을 보고 흥미를 갖게 된 나는 그때부터 극작 쪽의 서적과 철이에게 부탁해서 제작사가 지닌 대본들도 구했다.
설아가 방문하는 날에도 대본에 대해 공부할 때였다.
“싸부, 뭘 그리 보시는 거예요?”
“응? 영화 대본.”
날 부른 설아를 잠시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대본과 서적을 훑었다.
꽤나 집중하고 있는데 설아가 관심을 보였다.
“엣? 영화 대본은 왜 봐요?”
“그냥 공부?”
이번에는 쳐다보지 않고 하던 걸 하며 답했다. 그러자 설아가 자기 좀 보란 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슨 공부요? 소설에 써먹을 공부요?”
동그란 얼굴에, 동그랗고 큰 눈을 지녀 귀엽게 생긴 설아의 얼굴이었지만, 하도 보다 보니 이젠 귀엽단 생각도 잘 안 들었다.
공부하는 게 방해하지 말라며 들고 있던 대본으로 설아의 얼굴을 밀어낸 뒤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것도 그렇고, 대본도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우우!”
뭔가 불만이 있으면 볼을 부풀릴 때 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그냥 늦둥이 친동생 같은 설아였기에 신경도 안 쓰였다.
어차피 우리의 관계에서 아쉬운 사람은 언제나 내가 아니라 설아였으니까.
“저도 그쪽도 관심이 있긴 한데!”
내 관심을 끌기 위한 소리인가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영화 쪽도 배울 생각이 있단 걸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걸 떠올린 난 문득 설아네 어머니가 부탁했던 게 떠올랐다.
설아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달랬다.
본래 한 번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매화신검을 출간한 다음 성적이 어떤지 확인하고서 최대한 공부 쪽에 집중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한데 이쪽으로도 관심을 보인다면 공부하도록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밑밥을 깔았다.
“넌 소설도 아직 부족하면서 이것도 하게?”
소설도 부족하면서 영화 쪽까지 배우려면 공부가 필요하단 식으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한데 방금 전 내 이야기를 들은 설아가 다소 삐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치, 언제는 제 나이에 이 정도면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고선.”
“네 나이에 비해 대단한 거지.”
솔직히 나이에 비해서가 아니라 기성 작가 중에서 비교하면 설아보다도 부족한 이도 많았다.
하지만 설아의 바람은 내 수준에 이르고 싶단 욕망으로 가득 찼다.
그걸 감안하면 아직 부족하긴 했다.
이건 많은 사람과 경험을 겪는 수밖에 없었다.
설아가 이미 눈치챘다.
“사람도, 경험도 부족하다고요? 알겠다고요. 소설에만 집중할게요. 근데 약속은 지키셔야죠.”
대본 쪽도 배우려면 뭘 해야 할지 알아서 대답한 설아.
근데 갑자기 약속 타령을 한다.
손에 들고 있던 대본만 집중하던 난 설아를 쳐다봤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약속?”
“오늘로서 싸부가 말씀하셨던 분량 다 채웠어요.”
분량을 다 채웠다.
난 뭔지 뒤늦게 깨달았다.
출간을 위해서 채워오라고 시켰던 분량에 대한 언급이었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걸 다 채웠단 설아.
꽤나 놀란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어? 벌써?”
대본만 보던 내가 드디어 자신을 쳐다보자 흡족한 미소를 보이던 설아였는데, 방금 전 내 반응을 떠올리더니 너무하단 듯이 양손으로 책상 위를 탕! 치며 빽 외쳤다.
“벌써라뇨! 제가 이거 완성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래, 고생 많았네.”
“어디 한 번 써온 것 좀 볼까?”
“네!”
그렇게 난 설아가 내준 과제에 맞춰 온 매화신검 원고를 쭉 읽었다.
매화신검 원고를 본 난 꽤 놀랐다.
처음 봤을 때와는 정말 완전 다르게 성장한 모습에.
하지만 여전히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애써 중견 무협 작가들처럼 쓰려고 노력한 모습은 보였지만, 여전히 연륜이 차지 못한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음, 여전히 어린 티가 나긴 하는데…….”
“설마 이 정도로도 안 된다는 건 아니죠?”
지금 쓴 원고도 출간할 수 없을 수 있단 불안감에 동공이 흔들리는 설아.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아냐, 이 정도면 낼 만하네.”
“정말요?!”
얼마나 좋으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처음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평소 느끼지 못했던 귀엽단 생각이 들었다.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좋냐?”
“헤헷! 좋아요!”
“그래, 고생했다.”
흐뭇한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런 느낌이 언제만일까?
‘우리 수정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 만점 받았다고 자랑하던 때였나?’
그리 생각하니 마냥 좋던 기분이 다소 우울한 기분도 들었다.
‘한동안 잘 잊고 지냈는데…….’
워낙 바쁘게 살아온 덕분에 한동안 잊었던 딸 수정이.
아내였던 강소영은 더 이상 머릿속에서 떠올릴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수정이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해준 내 딸이었으니까.
‘잊자, 잊어. 이제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아이일 테니까.’
그랬다.
만약 내 딸이었더라면 미련을 버리잔 생각 따윌 못했으리라.
하지만 애당초 내 딸이 아닌 아이였다.
내가 강소영과 엮이지 않는 이상 다신 내 딸이 될 수 없었다.
당연히 강소영 같은 여자와 엮일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잊는 게 맞았다.
애써 잊자고 할 때 설아가 소리쳤다.
“근데 단지 출간 때문만은 아니에요!”
“응?”
뭐가 출간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까?
설아가 그간 자신이 얼마나 섭섭했는지 아냐는 목소리로 말했다.
“싸부, 저 머리 엄청 오랜만에 쓰다듬어 준 거 알아요?”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게 오랜만이라니.
“응? 그런가?”
“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수정이를 생각하지 않도록 해준 게 설아였던 것 같다.
나중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로 성장해도 딸 같은 느낌일 것 같았다.
부모가 따로 있긴 하지만, 그런 말이 있잖은가?
군사부일체.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고.
결국 사부인 나 역시 스승과 같으니 아버지처럼 그녀를 돌봐주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니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설아에게 요 근래 섭섭하게 대했구나. 머리 쓰다듬어 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비단 그건 설아만이 아니었다.
딸이었던 수정이 역시 강소영에게 맡기고 열심히 일해서 돈만 보냈던 아버지였을 뿐, 방금 설아처럼 사소한 것도 좋아하며 필요로 할 딸이었단 걸 감안하면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만약 결혼해서 애가 생긴다면 이번엔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네.’
왠지 모를 씁쓸함에 설아의 머리를 좀 더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그게 그리 좋냐?”
“엄청요!”
기뻐하는 설아에게 난 슬슬 매화신검의 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짜식, 하여간 원고 성용 형님한테 보내서 출간해 달라고 할게. 계약서는 저번에 어머니 통해서 작성했으니까.”
“네! 아싸!”
“녀석.”
첫 출간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설아를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다만, 한 편으로는 또 다른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리 기뻐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하도록 만들기 위해 쓴소리도 해야 한단 생각에.
* * *
얼마 있지 않아 설아의 매화신검이 출간됐다.
매화신검 출간한 주의 토요일.
어느 정도 독학을 끝낸 나는 대본 집필에 들어갔다.
내가 지닌 작품들 중 우리나라에서 멀쩡히 영상화할 수 있는 작품이라곤 딱 하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한 축구 소설인 ‘판타지스타’뿐.
나머지는 판타지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영상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싸리 무협을 썼다면 중국 쪽으로 노려볼 법도 했지만, 하나 같이 전부 다 중세 유럽에서 변경된 양식 속의 이야기이다 보니 쉽지가 않아 보였다.
때문에 가장 영상화로 접근하기 수월한 판타지스타를 대본으로 써 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타닥!
물 흐르듯 쉬지 않고 써내려가던 대본 타이핑을 멈춘 난 거실에 있는 인터폰을 쳐다봤다.
사람이 없고 뭔가에 가려져 있었다.
그걸 본 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설아구만.”
초인종 모니터를 가리던 무언가.
그건 금주에 출간됐던 매화신검 1권의 표지였다.
설아가 출간되기 무섭게 보낸 작가 증정용 소설을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문을 열어주기 무섭게 설아가 들어오면서 자랑스레 소리쳤다.
“짜잔! 나왔어요, 싸부!”
“좋냐?”
“짱 좋아요!”
완전 뿌듯해하는 모습.
보는 나도 흐뭇하다.
피식 웃으며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그래, 좋겠지. 자기가 쓴 글이 처음 종이책으로 출간된 걸 보면 뿌듯하니까, 그치?”
“네! 완전 뿌듯해요! 흑흑, 싸부한테 그간 못살게 굴어진 걸 떠올리면…….”
갑자기 콩쥐나 신데렐라처럼 지냈던 것마냥 연기하는 설아.
누가 미래의 여배우 아니랄까 봐 참 불쌍한 척 연기 한 번 징글맞게 잘했다.
제삼자가 보면 진짜 내가 못살게 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기서 설아에게 나만큼 잘해 준 사람이 어디 있냐고 따졌다.
“야! 내가 언제 널 못살게 굴었어?”
내 반응에 설아가 울상이던 표정에서 금방 히죽거리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히히, 농담이에요!”
“여하튼 들어와.”
“네!”
설아가 안으로 들어온 뒤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들고 있던 매화신검 1권 말고도 2권까지 꺼내서 올렸다. 뿐만 아니라 네임펜도 하나 꺼냈다.
“웬 펜이냐?”
“제1호 사인은 당연히 싸부가 가지셔야죠!”
그리 말하더니 책 앞장 여백에 꽤나 유려한 사인을 휘갈겼다.
일필휘지.
절대 쉬워 보이지 않으면서 유려한 사인.
딱 봐도 이거 하나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을지가 훤히 보였다.
작가들 중 출간이 돼서 지인들에게 사인본을 줘야 할 때 노력하던 이들처럼.
고심해서 만든 사인을 적어내린 매화신검 1, 2권.
난 그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먼저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에이, 그런 건 부모님을 드려야지.”
“엄마, 아빠는 바빠서 잘 들어오지도 않는 걸요!”
“큭, 그래서 내가 1호인 거냐?”
부모님 보기가 어려워서 1호라는 건가?
하지만 설아는 절대 아니라며 양손으로 크게 손사래 쳤다.
“아니, 꼭 그게 아니더라도 제 사인본 1호는 무조건 싸부에게 드릴 거라고 생각했죠!”
“오냐, 고맙다.”
“어때요, 제 사인?”
“야, 이거 만들라고 며칠 고민했냐?”
못해도 저번에 나랑 만났던 때부터 준비했을 것 같았다, 최소 6일에서 7일 정도.
근데 그 전부터 준비했단다.
“헤헤, 분량 채우면 출간해 준다고 했을 때부터요! 짱 멋있죠?!”
자신이 적어 내린 사인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설아.
그 모습이 참 귀엽다.
“무협 작가다운 사인이네.”
“빙고! 바로 그걸 노렸죠! 자, 여기 있습니다. 제 사인본 1호 독자님!”
“아이고!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렇게 사인본을 받고 출간 기념으로 맛있는 식사를 사준 뒤 돌려보냈다.
마지막으로 설아를 돌려보낼 때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최대한 자신의 부족함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핑계 대며 한마디 해야 했으니까.
설아네 어머니와 좀 더 긴밀하게 지내기 위해선 꼭 해야만 했다.
그 약속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몸담은 모든 식구들에게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2주 뒤 성용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설아 3권 출간 부수가 정해지면 즉각 알려 달라고 했길래.
근데 성용 형님이 말하길.
“야, 매화신검 추가 주문이 들어왔는데?”
손해는 안 보긴 해도 어느 정도 반품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내 생각과 다르게 매화신검은 증쇄 작품이 되어 버렸다.
“……이럼 뭐라고 해야 하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