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96
나는 작가다 096화
96화
영진은 주연인 형제 김태진과 김석진 사이에 있는 일들을 지켜보는 전우인 조연이었다.
때문에 그럴 대사를 했다.
형인 김태진이 있는 북한이나 동생인 김석진이 있는 남한이나 결국 형제고, 가족인데 서로 피터지게 싸우는 전쟁을 벌인다는 걸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같은 형제끼리 총을 겨누는 것에 가장 안타까워하며 분노한다.
그 심경을 담아서 외쳤다.
본래 이 대사 뒤에 조 하사라는 캐릭터가 말이면 다인 줄 아냐며 타박해야만 했다.
그 역은 고진규 감독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진규는 대사를 이어가지 않았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대본 리딩을 위한 미팅 자리에 참석한 이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간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해진 회의실.
그 고요함을 깬 건 고진규의 감탄에 찬 박수 소리였다.
짝짝!
“오, 소름. 작가님, 혹시 연기 배우신 적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타고난 건가요? 멋지군요! 혹시 작가님 시간되시면 영진 역을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완전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본래 영진 역은 좀 코믹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생각했는데, 방금 작가님 연기라면 2인 주인공에서 3인 주인공으로 늘려도 될 것 같은데요? 외모도 훤칠하시니.”
갑자기 내게 영진 역을 제안하는 고진규 감독.
본래 난 배우물을 쓰기 위해서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에 참여할 생각이긴 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내가 영화에 연기자로 참여하려는 건 어디까지나 소설을 위해서다. 그리고 내 소설을 보는 독자들은 영화 제작사에게 10억을 투자해서 쉽게 연기를 따낼 수 있는 과거로 회귀해서 돈이 넘치는 대박 작가가 아니라 만년과장으로 머물다가 부장직을 뺏기는 일반인이다.
판타지 소설은 독자의 대리만족을 채워줘야 하는 작품.
만년과장 이준경이 대리만족하려면 시작부터 잘나가서 좋은 역을 받는 배우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시작해 성장해 나갈 주인공이 더 끌렸다.
즉, 이런 기회가 아닌 난 스스로 엑스트라 자리를 구해서 출연할 생각이었다.
엑스트라부터 시작하는 주인공의 배우 성장기를 쓰기 위해서.
때문에 고진규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가 대본을 본 결과 조연인 영진 역할은 저처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이가 아닌 뛰어난 감초가 되어줄 배우분께서 더 멋있게 소화해 줄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전 고진규 감독님의 제안을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볼 땐 정말 작가님께서 하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끈덕지게도 물어진다.
심지어 이번엔 고진규 감독 말고 배우 장두준마저 합세했다.
“그거 저도 동의합니다. 방금 대본을 읽으신 것만 보면 한 번도 연기를 안 해본 사람이 맞나 싶던데요? 그치, 도빈아?”
고진규 편에 선 장두준이 김도빈의 의사를 물었다.
김도빈 역시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게요. 작가님, 저희랑 같이 연기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난 더더욱 차갑게 끊는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제안은 감사하지만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감독님.”
“예?”
“저희는 딱히 수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감독님이 찍고 싶은 영화를 찍어주셨으면 합니다.”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세 작품 연속 말아먹고 투자자들이 떠나 투자사가 절실한 건 알겠다. 그러니 불러서 수정할 사항이 있으면 즉각 해달라고 했을 터.
하지만 오히려 그런 투자사들의 요구는 항상 작품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뭐, 작품에 어우러지게 광고를 한다든지 하는 건 감독 역량이겠지만.
딱히 우리 회사는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에서 홍보 받을 만한 게 없었다.
끽해야 책인데, 저 시대에 판타지 소설 홍보라니.
터무니없다.
결국 우린 광고도 필요 없으니 투자사 눈치 없이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찍어줬으면 좋겠다.
당연히 최고의 영화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듣고 더욱 열심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고진규는 내 말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야…….”
하지만 여기선 끊고 그만 자리를 떠났다.
“그러니 굳이 제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어 보이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들 대본 리딩 화이팅입니다.”
주먹을 꽉 쥐며 응원한 뒤 난 그대로 회의실에서 나갔다.
회의실 문틈 사이로 설마 이렇게 갈 줄 몰랐단 사람들의 반응이 들려왔다.
“자, 작가님?”
“작가님!”
아예 무시한 채 난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와선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배우들의 대본 리딩 장면을 봐둔 걸 적어두자. 언제 장면으로 써먹을지 모르니까.”
갑작스러운 고진규의 요청으로 영진 역 대본을 읽어 상황이 묘해져 나왔지만, 그전까지 다른 이들이 하던 대본 리딩을 보면서 이미 머릿속으로 소설에 써먹기 위해 저장해 뒀다.
까먹기 전에 그 모습들을 ‘톱스타’ 폴더에다가 옮겼다.
톱스타.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해 줄 세 글자.
배우물의 제목이었다.
* * *
탑물도 쓰고, 판타지스타의 대본도 완료하고 거기서 난 고민을 많이 했다.
본래 배우물에 쓰기 위한 자료로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 엑스트라로 시작할까 했는데, 생각보다 아직 조연급 배우 캐스팅이 늦어지고 있어서 다소 촬영 픽스가 늦어졌다.
“엑스트라를 딴 데서부터 뛰어볼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의 촬영을 기다리는 것보단 미리 겪어보고 배우물을 쓰는 게.
“좋아, 찾아보자.”
난 최근에 촬영을 준비 중인 영화가 뭐 있나 찾아봤다.
그러자 꽤 유명한 영화가 보였다.
“말죽거리 쌍절곤…….”
주연배우인 고상욱의 ‘옥에서 함 ?나 강선아의 ‘한수야, 여기 한 번 만져봐’ 등의 명대사를 남긴 채 오랫동안 회자되는 영화였다.
말죽거리 쌍절곤 제작사 측에서 촬영을 위해 엑스트라를 구하는 중인 걸 볼 수 있었다.
“좋아, 이거다!”
곧장 그곳에 전화해서 엑스트라를 신청했고, 생각보다 많은 고등학생 엑스트라 필요했기에 바로 받아줬다.
어차피 교복 입혀놓고 병풍처럼 세워둘 거니 고등학생처럼 생기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이름하고 번호 그리고 생일을 받아간 뒤 자신이 말한 장소와 날짜에 와서 신분증이나 등본을 보여주면 바로 투입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촬영 날짜는 정확히 2주 뒤.
“그나저나 전라도라니.”
장소를 받은 난 당혹스러웠다.
말죽거리라고 하면 서초구 양재동 양재역사거리 일대를 가리켰다.
근데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쪽에서 촬영할 수가 없었다.
영화의 배경이 70년대인데, 2000년이 넘은 양재동에서 촬영한다는 게 우스운 일.
그저 난 스케줄표에 말죽거리 쌍절곤 촬영을 잡아놓고, 그전에 전라도로 왔다 갔다 하는 걸 감안해서 이틀치 작업량을 미리 더 집중해서 해놓기로 했다.
애당초 이틀 논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는 작업량을 뽑아내던 나였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미루는 것보단 미리 해두는 게 좋았으니까.
그렇게 2주를 보냈다.
본래 귀찮으니 내 차를 끌고 갈까 했지만, 제작사 측에서 준비해 둔 차량이 있다고 했기에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에서 기다리는 차량에 탑승하면 전라도에 있는 촬영장까지 데리고 가준다길래.
이왕지사 엑스트라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심경을 쓰기 위해 시작한 거 이 또한 버스를 이용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여의도로 가서 엑스트라들을 태워 가는 버스를 이용했다.
통로 쪽으로 앉아서 주변 모습들을 살폈다. 그리고 수첩에 묘사하며 적어 내려갈 때였다.
머리를 빡빡 민 덩치 큰 사내가 내 옆자리를 부탁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자리가 여기뿐입니다.”
꽤나 너스레를 떨며 반응하는 사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창가 자리를 내어주려는데, 사내에게서 꽤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괜찮…… 응?”
“왜 그럽니까? 제가 너무 살이 쪄서 부담됩니까?”
자신의 뱃살을 한 번 쭉 당겼다가 떼면서 말하는 사내.
너무 젊어 보이긴 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나중에 사극 드라마 ‘밀본’에서 이도의 호위무관인 무휼 역을 맡았던 조웅철이었다.
그 이후에는 ‘헤르츠’라고 무전기의 주파수 헤르츠가 과거와 연결되면서 형사 사건들을 다루던 드라마로 인기몰이를 크게 했던.
내가 생각하는 조웅철이 맞는지 확인해 봤다.
“아닙니다. 혹시 성함이……?”
“조웅철이라고 합니다.”
조웅철이 맞았다.
자신의 소개를 부탁하니 자연스레 손을 내미는 조웅철.
나 역시 그의 손을 맞잡고 악수하며 인사했다.
“그렇군요. 저는 이준경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앉지 않고 악수나 하자 운전기사가 소리쳤다.
“이봐요, 이제 출발해야 하니 앉아요!”
“아이고, 앉읍시다.”
“예.”
조웅철을 창가에 앉고, 난 통로 쪽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버스는 전라도로 향했다.
주행 중인 버스 안에서 조웅철이 내게 물었다.
“저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고등학생?”
“아닙니다. 이제 스물셋입니다.”
“나랑 다섯 살 차이 나군요.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전라도까지 내려가려면 좀 걸릴 텐데.”
전라도까지 가는 시간이 꽤 걸리는 걸 생각해서 편히 대화나 나누잔다.
내 입장에선 이보다 더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유명해질 배우와 친해져서 나쁠 게 없으니까.
“예, 형님 편하신 대로 하시죠.”
“쿨해서 좋네, 배우가 꿈?”
자신과 같은 배우가 꿈이라 엑스트라를 지원했는지 물었다.
거기에 대해서 난 조금 내 자신을 숨기며 답했다.
“꿈이라기보단 공부 차원에서 왔습니다.”
“공부? 꿈이 감독이신가, 젊은 친구?”
“아뇨, 작가가 꿈입니다.”
이미 작가였으나 이준경이란 이름에다가 작가라고 하면 날 알아볼지도 모른단 생각에 아직 꿈인 것처럼 꾸몄다. 그에 대해서 조웅철이 말했다.
“이야, 요 근래 큰일하신 작가님하고 이름이 같네? 아주 큰사람이 되겠어.”
역시나 날 알고 있다.
거기에 대해선 난 아무 말 없이 좋다는 듯 웃어넘겼다.
“하하!”
“그나저나 작가가 꿈인데 엑스트라로 무슨 공부를?”
“배우를 주인공으로 써보고 싶거든요.”
“그럼 당연히 모델은 주연인 고상욱 씨?”
누가 뭐래도 이 영화에서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연인 고상욱이었다.
하지만 내가 쓰려는 주인공의 모델은 그가 아니라고 했다.
“제 주인공은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서 성장해 나가는 인물이거든요.”
엑스트라부터 톱스타까지.
마치 엑스트라를 뛰어가는 날 주인공으로 투영한 게 아닐까 싶었는지 조웅철이 물었다.
“혹시 본인이 그러고 싶은 건 아니고?”
“에이, 제가 무슨요.”
전혀 그럴 생각은 없단 듯이 손을 휙휙 내저었다.
“아냐, 내가 봤을 때 주연급 와꾸인데? 혹시 알아? 이번에 유상 감독님 눈에 들어서 배우로 데뷔할지?”
“소설 쓸 거예요.”
“뚝심 한 번 굳건하구만. 멋있어.”
그저 이번 엑스트라는 오로지 소설을 위한 자료일 뿐이라고 밝히자 조웅철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문득 난 조웅철을 보고 있자니 판타지스타의 안지훈이 떠올랐다.
비록 성공가도까지 오르는 데 좀 걸리는 조웅철이었지만, 그 정도 인물을 가지고 드라마를 그린다면 멋지지 않을까?
난 조웅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웅철 형님이 제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주시는 건 어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