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97
나는 작가다 097화
97화
“엥? 내가?”
조웅철은 갑자기 자신을 소설 주인공으로 써도 되겠냐고 물으니 검지로 본인 얼굴까지 가리키며 반문했다.
사실 나도 말하곤 아차 싶었다.
그냥 조웅철이란 배우를 우연찮게 만나서 좋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가 제대로 조연급 이상으로 데뷔하는 건 앞으로도 꽤 있어야 하는 걸로 알았다.
뭐, 나와의 인연으로 본인이 좀 더 의지를 가진다면 또 미래가 어찌 바뀔지야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이미 내뱉은 말이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형님 정도면 꽤 특색 있는 주인공이 되지 않겠습니까?”
“뭐야, 보통 그런 이야기는 못 생긴 사람들한테 하는 거지 않냐? 잘생기진 않았으니 잘생겼다곤 할 수 없으니까.”
그렇긴 하다.
예쁘지 않은 여자나 남자에겐 귀엽다거나 개성이 있다고 말하곤 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난 팩트를 꽂아 넣었다.
“잘생기지 않으신 건 맞긴 하죠.”
“뭐어?!”
설마 이런 식으로 사실에 근거해 말할 줄 몰랐는지 꽤나 오버하며 당황하는 조웅철.
그에게 난 실실 웃으며 말했다.
“흐흐, 꼭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잘됐을 때 제가 주인공이나 소설에 형님을 써도 뭐라 하시기 없기 어떻습니까?”
“흠흠, 그야 내가 잘된다면야…….”
막상 자신이 영화배우로서 잘될 걸 생각도 하고 있었나 보다.
꽤나 내 이야기에 흡족해하는 기색을 내비췄다.
여기서 기회를 놓치면 내가 아니지.
잘된다면 공짜로라도 써먹을 수 있게 해주겠단 반응하니 바로 물었다.
“진짜입니다?”
막상 내가 되묻자 조웅철은 자신이 잘될 때를 떠올렸다.
“아, 아니, 잠시만. 생각해 보니 잘되면 돈 받고 쓰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에이, 엑스트라를 하는 형님이 잘될 거라고 믿어주는 팬 1호에게 너무 박한 거 아닙니까?”
이왕이면 팬 1호인데 싸게 가자고 이야기하려는데, 조웅철이 꽤나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인마! 이래 봬도 내가 연극 쪽에선 팬층이 꽤 있거든?”
그러고 보니 연극에서 영화판으로 넘어왔던가?
이미 팬이 꽤 있단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쉽사리 자신이 잘됐을 땔 상상하는 조웅철이.
그래도 모든 미래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다.
나처럼 회귀해서 알지 않는 이상.
어쨌거나 난 한 가지 사실을 더 짚고 넘어갔다.
“연극이지, 영화는 아니잖습니까?”
그래, 연극과 영화는 달랐다.
배우가 서는 장소란 건 같았지만, 꽤 두 개의 차이가 간극이 벌어진다고 알았다.
조웅철 역시 내가 사실을 집으니 소심해졌다.
“아니, 뭐. 그리 이야기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만…….”
생각해 보면 은근히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기도 했다.
덩치와 맞지 않게 소심한 면모를 보여 은근히 귀엽다고도 느끼는 연기.
사실 이게 연기가 아니라 본인 성격이었던 걸까?
어쨌거나 난 조웅철이 소심해졌을 때가 기회라 생각했다.
“어때요? 잘되면 기분이다 생각하고 저한테도 기회 한 번 주실 수 있는 거지 않습니까?”
“짜식, 알겠다. 내 기분이다. 잘되면 마음껏 날 써라, 써! 됐냐?”
“약속하시죠.”
이렇게 받아낸 약속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난 엄지와 소지만 펼쳤다.
나중엔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까진 약속할 때 사람들이 흔히 쓰던 제스처다.
갑자기 내 행위에 조웅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약속?”
“에이, 계약서는 안 써도 우리의 만남을 기념할 겸 이 정도 서약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약이란 게 요새 국민학생들이나 할 법한 거냐?”
국민학생이라니.
초등학생으로 바뀐 게 1996년이다.
내가 과거로 회귀하기도 한참 전에 바뀐 이름을 아직도 쓰는 조웅철에게 뭐라 했다.
“요새 누가 국민학생이라고 합니까? 초등학생이지. 그럼 형님 아저씨 소리 들어요.”
“크흠, 알았다. 초등학생! 자, 됐냐?”
내가 뻗었던 손과 똑같이 한 다음 새끼손가락을 건 조웅철.
그에게 난 엄지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지장도 찍으셔야죠.”
“옛다.”
꾹!
서로의 엄지를 맞대며 지장까지 끝낸 약속.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준 조웅철이 물었다.
“됐냐?”
“좋습니다. 형님, 꼭 성공하십시오.”
히죽 웃으며 조웅철의 성공을 바랐다.
그가 성공한다면 꽤 고급 인맥 한 명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조웅철은 자신의 성공을 확실시하며 피식 웃었다.
“너나 내 이름에 먹칠 안 하게 작가로 성공해서 써라. 만약 어중이떠중이 같은 작가인데 써먹었단 봐라. 내가 고소할 거야, 알았어?!”
“흐흐, 그러시지요.”
“으, 어쩌다 이런 놈한테 걸려선.”
나한테 걸렸단 조웅철에게 그가 앉은 자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 자리에 형님이 오셨죠. 여긴 제가 먼저 앉아 있습니다만?”
“아이고, 누가 작가할 놈 아니랄까 봐 말장난 치는 거 보소.”
“덕분에 전라도까지 내려가는데 심심하진 않겠죠?”
“오냐!”
“흐흐.”
그렇게 난 배우 조웅철과 친해졌고,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라도까지 내려갔다.
***
전라북도 군산.
이곳이 말죽거리 쌍절곤의 촬영지였다.
우습다.
제목은 강남 양재동의 말죽거리인데, 정작 촬영은 전라도까지 내려와서 했으니까.
하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70년대 배경을 그리는 영화였으니까.
덕분에 나와 웅철 형님 역시 70년대 까무잡잡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옹기종기 엑스트라들끼리 모여서 조그마한 난로 앞에 앉아서 자기 차례들을 기다렸는데, 그러면서 같이 있던 웅철 형님에게 난 입고 있는 교복을 가리켰다.
“이야, 진짜 이게 언제적 교복인지.”
“그나마 총검술하던 교련복 아닌 게 어디냐? 이 정도면 맛깔나지. 넌 주연해도 되겠다, 뭐 이리 잘 어울려?”
웅철 형님이 내 소매를 잡고 몇 번 이리저리 앞뒤로 흔들며 한 말이다.
오는 말이 고우며 가는 말도 곱다고.
나도 칭찬을 해줬다.
장난 좀 섞어서.
“형님도 잘 어울리네요. 먹는 씬 찍으면 딱이겠어요.”
“이 자식이, 나 살 쪘다고 놀리냐?!”
내 농담에 웅철 형님이 헤드락을 걸었다.
“억, 놔줘요. 형님 팔 엄청 차갑습니다. 그리고 형님 도시락 씬이 있으시잖아요? 전 그냥 구경꾼이라구요.”
한참 겨울인지라 남쪽 지방으로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웠다.
덕분에 다들 난로나 핫팩 없인 버티기가 힘들었다.
여기서 난 엑스트라의 고충을 느끼기도 했다.
주연 배우들이 있는 곳은 보면 의자에 방석도 모자라 한 명당 난로가 하나씩 배당됐다.
엑스트라인 우리들은 수십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난로 하나로 버텨야만 했는데 말이다.
하기야 우리나라 영화 제작비의 대부분은 출연료로 빠진다고 한 것처럼 주연 배우들이 귀한 몸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덕분에 난 수첩에다가 그것들에 관한 이런저런 감정 묘사와 현재 상황 묘사 등을 적어놨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정리해 둘 생각으로.
어쨌거나 내게 헤드락을 걸어서 난리치니 다들 째려봤다.
다들 대기하느라 힘든 처지에 난리치지 말란 듯이.
덕분에 웅철 형님이 머쓱해하며 날 놓아줬다.
“별수 없지, 날이 이리 찬데. 흠흠, 그나저나 도시락 먹방이라니.”
“왜요? 별로예요?”
“아니, 별로긴. 저 눈빛들 봐라. 다들 날 부러워하잖아.”
“다들 춥고 배고프니 주연 배우 옆에서 밥 먹는 거라 부러워하시나?”
“인마, 그게 아니라 도시락 먹는 씬이어도 주연 배우 옆에서 하면 촬영될 가능성이 높으니 부러워하는 거다.”
“아아, 그렇군요!”
“그래, 다들 한 컷이라도 나오고 싶어서 안달이니까. 솔직히 엑스트라 입장에선 다들 똑같이 몇 시간에서 하루 꼬박 기다릴 때가 태반인데 한 컷이라도 길게 잡히면 좋은 거지.”
“하기사 이런 수준일 줄은 저도 생각지도 못했어요. 주연 배우들 싸우면 뒤에서 구경 좀 하곤 대기라니.”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래도 감독님이 은근히 너 쳐다보던데?”
“예? 전 왜요?”
“글? 와꾸가 돼서 그런 거 아닐까?”
“아참, 형님도 와꾸가 뭡니까? 외모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자식, 작가가 꿈이라더니 아주 세종대왕님 납시겠네.”
“흐흐, 사실 해본 말입니다. 저도 간간히 쓰는데요. 특히 군대 은어 많이 썼죠. 짬이나 가라 같은 거…….”
“솔직히 고치면 좋겠지만, 아는 사람들끼린 그 단어가 좀 더 와 닿으니까.”
“흠, 그리 생각하니 왠지 제가 한 번 대한민국을 뒤집어놔야겠군요.”
“뭘 뒤집어놔?”
“은어들을 싹 다 우리말로 바꿔야겠습니다.”
“하면 네가 내 형님이다.”
“흐흐, 제가 형님 합니까?”
“정말 할 수 있겠냐?”
“그냥 해본 말이죠. 각자 자기들끼리 형성된 곳에서 쓰는 은어를 어떻게 제가 바꾸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들끼리 쓰는 은어를 우리말로 쓰게 만든다는 건.
어쨌거나 그 은어가 주로 일본에서 따와서 불편할 때가 있긴 했지만, 그들 사이에선 오히려 우리말보다 더욱 와닿도록 사용하는 말들이었으니까.
그래도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단 생각도 없잖아 있긴 했다.
나중에 목표로 삼잔 생각으로 수첩에다가 끄적였다.
‘우리말 사용하기를 목표로’.
그렇게 목표로 할 무렵 스탭 한 명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말했다.
“자, 한수반 학생들이랑 족제비 패거리들 다들 옆 반으로 와주세요.”
그쪽에 낀 엑스트라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옆 반으로 갔다.
난 그냥 장문고 동급생 구경꾼4였으니 대기해야만 했는데, 그런 날 보며 웅철 형님이 엄지를 치켜세운 뒤 옆 반으로 넘어갔다.
“다녀오마.”
“아주 다 씹어 먹어 버리고 오십쇼.”
“도시락이 한 톨도 남지 않도록 싹 쓸어먹고 오마.”
“흐흐, 그래요.”
그렇게 웅철 형님과 엑스트라들이 우르르 나갈 때였다.
퍽!
“으아악!”
갑자기 뭔가 엄청난 부딪힌 소리와 함께한 남자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덕분에 대기해야 했던 나나 나머지 엑스트라들 모두 무슨 일인가 해서 반에서 나갔다.
괜히 내가 아는 사람이 다치면 어쩌나 싶어 웅철 형님부터 찾게 됐다.
다행히 웅철 형님은 방금 나가던 교실 앞에 서 있었다.
웅철 형님이 날 보기 무섭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입니까, 형님?”
“그게 조연 중 한 명이 교실에서 나오다가 턱에 걸려서 엎어졌어.”
턱짓으로 방금 다친 조연을 가리켰다.
그곳엔 부잣집 도련님인 상준 역할을 맡았던 배우 신동환이 쓰러져 있었다.
“으으윽!”
“동환 씨,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힘겹게 일어나려고 하는 신동환.
그러나 제대로 몸을 겨누지 못한 채 다시 쓰러졌다.
풀썩.
주저앉은 채 무릎을 움켜쥔 채 새우등처럼 구부리며 신음 소리를 흘렸다.
“끄으윽!”
“뭐야?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야, 조감독.”
“예, 감독님.”
“동환 씨 데리고 병원 갔다 와.”
“알겠습니다.”
“잠시 촬영 중단할게요. 다들 원래 대기 위치로 가주십쇼.”
감독이 조감독에게 신동환을 맡긴 뒤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에게 잠시 촬영이 중단된 걸 알렸다.
덕분에 다들 원래 있던 각자 대기 장소로 움직였다.
“아, 미치겠네. 하필이면 내 씬 앞두고 일이 나냐?”
“그래도 조금 정리되면 다시 하지 않을까요?”
“안 돼. 내가 도시락 빠르게 먹는 걸 보고 뒤통수 후려치는 게 상준이란 말이야.”
“혹시 신동환 씨가 크게 다친 거면…….”
“내가 곱게 도시락을 처먹던가, 아니면 장면이 빠지던가 하겠지. 아, 제발…….”
어떻게든 자기 장면이 살길 바라는 웅철 형님.
얼마나 궁하면 양손을 꽉 낀 채 기도하듯 기다렸다.
그때였다.
엑스트라들이 있는 장소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말죽거리 쌍절곤을 총괄하는 감독 신하였다.
감독 신하는 갑자기 천천히 우리가 대기하던 자리로 오더니 갑자기 대본 하나를 내밀었다.
“자네, 여기 체크된 거 읽어봐.”
대본의 끝은 한 명을 가리켰다.
바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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