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98
나는 작가다 098화
98화
“예? 이걸 왜 저한테…….”
내게 왜 대본을 건네나 싶었다.
그런 내게 신하 감독이 어찌 된 상황인지 알려줬다.
“동환이가 무릎 나가서 촬영 못 하게 돼서 상준 역이 필요해. 근데 엑스트라 중에 자네 페이스가 가장 부잣집 도련님 같거든. 그래, 바로 해보라고 하면 무리인가? 보고 대사 몇 개 할 만하다 싶으면 옆으로 넘어와서 해봐.”
“저, 저기요?”
갑자기 내게 상준 역을 해보라고 한 뒤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 신하 감독.
이후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졌다.
부러움에 찬 눈빛들이.
부담스럽다.
“아니, 갑자기 이걸 왜 나한테…….”
괜히 부담돼서 혼자 머쓱해하며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웅철 형님이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내가 말했잖냐? 네 외모 꽤 잘났다니까?”
“그래도 제가 할 역할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기회라면 이미 한 번 왔었다.
‘애국가를 부르며’ 대본 리딩 때.
그 때 역시 너무 갑작스러운 경험이 나중에 쓸 배우물을 망치지 않을까 싶었다.
때문에 고진규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번에도 너무 갑작스러운 기회이다 보니 이게 괜히 배우물에 타격이 오지 않을까 싶어 거절하는 쪽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근데 갑자기 웅철 형님이 내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해라.”
나더러 감독이 던지고 간 상준 역을 하라는 웅철 형님.
꽤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웅철 형님을 쳐다봤다.
“예?”
“네가 그걸 해야 오늘 촬영이 쫑 안 나고, 나도 도시락 먹다가 뒤통수를 맞고 가지.”
그러고 보니 상준 역이 도시락을 후루룩 먹는 웅철형님의 뒤통수를 때렸지.
더더욱 난감한 역이란 입장을 밝혔다.
“제가 어떻게 형님 뒤통수를…….”
“인마! 연기에 형님, 동생이 어디 있어? 하면 하는 거지.”
연기에는 형님, 동생이 없다.
나쁘지 않은 말이다.
배우물에 써먹잔 생각으로 잠시 머릿속에 새겨놨다.
웅철 형님과 대화 중에 수첩을 꺼내서 쓰는 건 좀 그랬으니까.
어쨌거나 연기에 형님, 동생이 없으니 때려도 된다는 웅철 형님에게 난 끝끝내 상준 역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제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은…….”
상준 역을 맡지 않으려고 하자 갑자기 웅철 형님이 꽤나 진지해진 표정으로 날 불렀다.
“준경아.”
“예?”
“넌 여기 있는 사람들을 우습게 만들 생각인 거냐?”
갑자기 주변을 보란 듯이 팔 한 번 거하게 휘두르며 묻는 웅철 형님.
엑스트라 대기 인원들을 모두 가리키며 그들 전부를 우습게 만들 거냔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뭘 했다고 그들을 우습게 만든다는 건지.
“그게 무슨……?”
바로 이해 못한 내게 웅철 형님이 방금 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줬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너 같은 기회를 받길 수일, 수 달, 수년을 기다렸다. 그런데 넌 그 기회를 잡았어. 한데 네가 이 기회를 포기하겠다고? 넌 우리뿐만 아니라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두를 욕보이고 싶은 거냐?”
정작 바라는 이들 앞에서 기회를 얻어놓고 차버린다.
이보다 엑스트라로 온 배우들을 무시하는 일은 없단다.
더욱이 내가 기회를 포기할 경우 촬영마저 무산돼서 다들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있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돌아갈 수도 있다니.
너무 심각하게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부담되는 상황에 난 당황한 기색을 내비췄다.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돼요?”
내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자 웅철 형님은 주변에 있는 엑스트라들에게 물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웅철 형님의 물음에 엑스트라들이 하나같이 입을 맞췄다.
“맞아요. 그냥 해요.”
“그래, 청년이 해줘야 우리도 오늘 치 촬영 제대로 찍고 돌아가지.”
다들 나더러 하란다.
이건 비단 나만의 기회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며.
본인이 했던 말을 입증시킨 웅철 형님이 내게 물었다.
“들었지? 다들 네가 잡은 기회가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잘되길 바라고 있다. 물론, 네가 그걸 안 해서 오늘 촬영이 무산될까 봐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지. 이래도 안 할 거냐?”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러면 안 할 수가 없잖은가?
결국 거절하려던 걸 포기했다.
“그러니까 제가 이걸 해야 다들 좋단 거죠?”
“당연하지.”
“옳소!”
“알겠어요. 형님이나 다른 분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해보긴 하겠습니다. 단!”
“단?”
검지를 치켜세워 조건을 내걸었다.
다들 내 조건이 뭔지 궁금해했다.
만약을 위한 조건이 뭔지 밝혔다.
“감독님이 보고 별로라 여겨서 제대로 안 되면 전 잘못 없는 겁니다?”
“아무렴. 우리도 연기 개판인 조연하곤 일하고 싶지 않거든? 안 그렇습니까?”
“옳소!”
“끙, 알겠습니다. 그럼 가볼게요.”
방금 전 신하 감독에게 받은 대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내가 신하 감독을 만나려고 하자 웅철 형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연습 안 해?”
“무슨 연습요?”
“상준 역을 좀 연습하고 가야 감독님 눈에 들지, 이 녀석아! 그냥 대충 할 생각이야?”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는데, 내가 연기도 안 하고 건성으로 간다고 여긴 것 같다.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해줄 건 하나뿐이었다.
겁나 세게 웅철 형님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빡!
“컥! 뭐하는 짓이냐!”
갑자기 내가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갈기자 당황하며 양손으로 움켜쥐며 소리 지르는 웅철 형님.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할 말만 내뱉었다.
웅철 형님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면서.
“야, 돼지 새꺄! 도시락 맛있냐? 겁나 잘 처먹네, 내 것도 주랴?”
그제야 웅철 형님의 표정이 의아함에서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변했다.
자기 씬이니 모를 리가 없지.
그랬다.
방금 내가 한 건 웅철 형님이 도시락을 다 먹고 난 걸 본 상준이 하는 대사였다.
뒤늦게 내가 연기를 한 걸 깨닫고선 나무랐다.
“인마, 촬영 들어가면 어차피 때릴 걸 꼭 지금 했어야 했냐?”
“흐흐, 연습이 필요 없단 걸 보여드리려고 한 거죠.”
“잘 봤다, 그래. 가서 욕봐라.”
나쁘지 않은 연기였나 보다.
더 이상 연습하란 말이 아니라 신하 감독에게 다녀오라고 하는 걸 보니.
난 여기서 기다릴 웅철 형님과 엑스트라 배역들에게 말했다.
“이따 뵙죠.”
그렇게 난 신하 감독에게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주, 조연 배우들과 스탭들이 대기하는 교실로 이동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주, 조연 배우들과 스탭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렸다.
아무 허락 없인 엑스트라들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었지만, 다들 뭔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날 쳐다봤다.
사람들의 정신을 차리게 만든 건 신하 감독이었다.
“됐나?”
“됐습니다.”
“해봐.”
이후 난 방금 웅철 형님에게 보인 대사와 중간중간 구경할 수 있었던 상준이란 캐릭터의 연기를 펼쳤다.
내 연기를 같이 보고 있던 배우들이나 스탭들 모두 나지막이 오, 하며 감탄했다.
나쁘지 않은 여기였나 보다.
연기를 보고 상준 역에 날 쓸지, 말지 정할 결정권이 있는 신하 감독만이 격하게 반응을 보였다.
“이야, 기똥차네. 이제부터 자네가 상준이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날 상준 역으로 즉석에서 캐스팅하기 무섭게 신하 감독이 스탭들을 닦달했다.
“스탭들, 뭐하나? 동환이 때문에 날아간 장면들 복구해야제?”
“아, 옙!”
신하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스탭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신동환이 부상을 입으면서 날아간 상준의 장면 모두를 다시 따기 위해 준비했다.
“그럼 전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그라제?”
“필요할 때 불러주세요. 다시 대기하던 자리로 가 있겠습니다.”
“어디 가나?”
“원래 기다렸던 곳으로 가야죠.”
“자네, 이제 조연 배우인데 거기로 가면 쓰겄나? 뭐하냐, 막내야. 동환이 자리 이름표 떼고 저 친구 이름 석 자 박아줘라.”
“옙!”
막내라고 불린 스탭이 갑자기 내게 오더니 물었다.
“혹시 죄송한데 성함이……?”
조심스레 내게 이름을 물어본 스탭.
그에게 말죽거리 쌍절곤의 상준 역으로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내 이름을 알려줬다.
“‘이준경’입니다.”
* * *
“이놈, 물건이구마.”
말죽거리 쌍절곤의 촬영을 마치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온 신하가 찍었던 걸 돌려 보면서 감탄했다.
모니터에선 상준 역을 맡게 된 이준경 작가가 연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 한 사내가 신하 감독의 사무실로 들어오기 무섭게 감탄하는 걸 보곤 물었다.
“뭐가 물건이냐?”
“아, 진규! 오면 온다고 말 좀 혀라.”
신하 감독의 사무실에 찾아온 사내는 ‘애국가를 부르며’의 감독인 고진규였다.
감독 데뷔로서는 고진규가 한참 후배였지만, 한 살 차이다 보니 그냥 또래 감독 중 친구처럼 지내던 두 사람이었다.
“이번에 조연으로 왔던 동환이가 다쳤다 아이냐? 그래서 엑스트라 중 한 놈 페이스 괜찮길래 대타 박았제. 근디 이놈이 물건이데.”
“누군데? 나도 보고 괜찮으면 좀 쓰자.”
안 그래도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에 쓸 배우가 부족한 상황이었으니 괜찮다면 쓸 의향이 넘쳤다.
아무리 엑스트라라고 하더라도 신하가 조연 배우를 대타 세울 정도면 그만큼 연기력은 입증됐단 거니까.
신하는 자신이 조연에 올린 엑스트라의 이름을 밝혔다.
“이준경이라고 있다.”
“뭐?”
순간 고진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에.
반면 신하는 못 알아들어서 묻나 싶어 다시 말했다.
“이준경이.”
이름을 듣고 난 고진규는 동명이인이겠거니 하면서도 왠지 모를 촉이 느껴졌다.
신하를 살짝 밀쳐내며 화면을 보려고 했다.
“야, 비켜봐. 생긴 것 좀 보자.”
“와 이라노?”
“내가 아는 사람이랑 이름이 비슷해서 어찌 생겼나 볼라 그런다, 왜?”
“알았다. 봐라, 봐.”
마음껏 보란 듯이 모니터를 고진규 쪽으로 돌린 신하.
“아, 아니! 왜 작가님이 여기 있어?”
모니터를 본 고진규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동명이인이겠거니 했던 이준경이란 배우가 자신이 알던 그 작가 이준경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준경 작가를 알지 못하는 신하의 이방에선 이게 지금 뭐라는 건가 싶었다.
“작가님? 몬 작가님?”
“인마, 이준경 작가 몰라?”
“이준경 작가가 누고?”
“아, 답답한 놈. 뉴스 안 보냐? 저번에 태풍 때문에 난리 났을 때 한참 시끄러웠던 작가님 있잖아?”
“아, 그 이준경이? 근데 와 아한테 그 작가님이라고 하노?”
턱짓으로 모니터에 있는 이준경을 가리키며 묻는 신하 감독.
그에게 고진규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 자식아, 이분이 그 작가님이라고!”
“뭐라꼬? 그 잘난 작가가 와 엑스트라나 하고 있는디?”
태풍 루사가 지나간 이후 대기업보다도 더 많은 금액을 원조한 이준경 작가다.
그가 고작 엑스트라나 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신하보다도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인 건 고진규였다.
“내가 아냐? 우리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할 땐 생각 없다더니 왜 여기서 엑스트라를 하고 있는 거지?”
“엑스트라 아이다. 우리 조연 배우다 안 카나?”
갑자기 자신이 발굴한 배우가 엄청난 인물이란 걸 알게 되자 싸고도는 신하.
고진규가 신하를 나무랐다.
“자식아, 방금 네가 엑스트라나 하고 있냐고 물어봤으면서 그딴 말이 나오냐?”
“그라긴 하지.”
“그니까 맞잖아, 엑스트라!”
“아니, 근디 와 그 대단한 작가 양반이 엑스트라나 하는 긴데?”
정말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의 신하.
그에게 고진규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알면 무당이지, 자식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