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007)
01007 %3C프리시즌 헬조선편%3E 한 번 물면 놓지 않아요 =========================================================================
유지웅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 혹은 거미줄의 진동을 느낀 독거미처럼.
“그럼 누군가 저 아이 뒤에 있다는 거네?”
“아니, 그건 좀 막 나갔고.”
“막 나가긴! 너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정효주는 조금 당황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소녀의 뒤에 뭔가 배후가 있을 거란 의심은 든다. 하지만 그 의심을 구체화시키는 건 곤란하다. ‘배후가 있다니!’하고, 그가 떳떳하게 폭주할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히 저런 어린 아이를 이용하려 하다니!”
“야, 우리 좀 신중하게 생각을…….”
“용서 안 해!”
* * *
정효주는 당장이라도 유지웅이 폭주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그는 분노를 터트린 이후 잠잠했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세 잊어버렸거나, 마음이 바뀐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정효주는 알았다. 유지웅은 지금 그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폭풍 전야의 고요라고 할까. 지금 유지웅이 지닌 평온함의 정체성이었다.
소녀는 매일같이 보드판을 들고 와서 섰다. 소녀를 보거나, 혹은 사진을 찍는 구경꾼도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매일 같이 홀로 간청하는 어린 소녀의 가슴 아픈 사연, 그 내용은?」
「화상으로 고통 받는 어린 동생을 위한 언니의 눈물.」
슬슬 소녀를 주목하는 기사가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소녀의 존재를 조금씩 알리는 수준의 미약한 움직임이었다. 소녀가 시위를 한 지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호오, 슬슬 입질이 오고 있어. 좋아, 아주 좋아…….”
“지웅아?”
“응?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 나갈게!”
그리고 다시 오일쯤 지났을 땐…….
「매일 GCS 본점을 찾아와서 시위를 하는 어린 소녀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눈물을 짓게 하고 있다. 최한별 양은 어린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몇 년 전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대로는 성장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기 불가능할 정도다. 최한별 양은 GCS가 화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GCS 본점까지 찾아와서 GCS를 나눠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중이다…….」
「언니의 눈물로 사기에는 너무 비싼 GCS.」
「GCS는 모든 화상 환자들의 꿈이다. 흉터가 완벽하게 재생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환자들이 사기에 GCS는 너무 비싸다. 경매 최저 입찰가가 보통 20억 이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화상도 치료하지 못하는 세상, 참으로 씁쓸하구나.
―근데 GCS는 입욕제 비슷한 거 아니었냐? 언제부터 만능 피부 치료제로 바뀐 거지?
―GCS사측에서 GCS를 만능 피부 치료제라고 해서 팔고 있는 거 아니냐?
―경매 안내에 보면 ‘액상 비누’라고 되어 있는데?
―아 몰라. 아무튼 GCS는 만능 피부 치료제가 맞아.
슬슬 소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던 인터넷 신문사들이 하나둘씩 소녀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었다.
주요 논점은 어린 여동생을 위한 언니의 눈물 젖은 노력, 가여운 언니가 가지기에는 너무 비싼 GCS의 가격이었다.
―근데 GCS는 왜 저리 비싼 거야?
―비싼 가격을 유지하려고 일부러 경매로만 판매한다는 말이 있어.
―와, 너무 하네. 고통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좀 좋은 일을 하면 안 돼?
드디어 여론은 화살촉을 GCS사측으로 돌렸다.
신문사들이 하나둘씩 ‘GCS의 매정함’에 관해서 논평을 내놓기 시작했다. 여론이 형성된 이상, 이제는 방향을 잡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GCS는 많은 피부 질환 환자들을 위한 꿈의 약이다. 그러나 너무 비싼 가격 탓에 실질적으로 많은 이들이 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GCS사 측의 지나친 독점으로, 환자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부당함이 우려 된다.」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가? 특허 강제 공개를 실시해라!」
GCS의 비싼 가격. GCS의 판매 수익으로 유지웅과 정효주가 누리고 있는 호사스러운 생활. 그에 대조되듯이, 매일 같이 보드판을 들고 애절한 부탁을 하는 어린 소녀.
―에잇, 더러운 세상! 캭~ 뒛!
―니들만 잘 먹고 잘 사면 다냐!
GCS 홈페이지에는 매일같이 공격적인 비난, 혹은 악플이 달렸다. 어린 소녀가 동생을 걱정해서 매일같이 시위를 하는데도, 피도 눈물도 없는 거냐고 조롱을 받았다.
GCS를 향해 반감과 악의를 품은 여론이 형성되었을 때, 드디어 유지웅은 가게를 나서 소녀와 조우했다.
“안녕? 난 유지웅이라고 해. 저 가게 주인이란다.”
소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더 잘 보라는 듯이 보드판을 낑낑거리며 높이 들어 올렸다.
구경꾼들이 발길을 멈췄다. 그들은 유지웅이 GCS 오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과연 무슨 말이 오고 갈지 모두 궁금한 듯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이러고 있니?”
“엄마 아빠는 일 가셨어요. 동생이 많이 아파요. 동생을 도와주세요.”
“엄마와 아빠가 너 이러는 건 아니?”
“알고 있어요. 동생이 많이 아파요. 동생을 도와주세요.”
“혹시 너 여기 오기 전에, 너네 집에 양복 입은 키 큰 아저씨들이 막 찾아오거나 하진 않았니?”
“그랬던 것 같아요. 동생이 많이 아파요. 동생을 도와주세요.”
“아빠 전화번호 아니? 너네 아빠 만나보고 싶어.”
“…….”
소녀는 난처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유지웅은 가볍게 혀를 차며 거듭 물었다.
“아빠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연락 안 되면 동생은 평생 못 낫는다고 해.”
“왜요? 동생 아픈데, 동생 안 도와주실 거예요?”
“응. 니 아빠 연락 안 되면, 안 도와줄 거야.”
“아빠 번호 알려드릴게요.”
유지웅은 소녀가 알려준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한별이 아버지 되시나요? 저 유지웅이라고 합니다. 댁의 따님이 지금 제 가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어서요.”
「아. 사람을 잘못…….」
“지금 전화 끊으면 모든 게 끝입니다. 델지그룹이 뭐라고 설득을 했는지 모르지만, 재벌놈과 재벌놈의 하수인들 논리주장이야 뻔하죠. 전 조만간 가게 정리해서 해외로 이주할 생각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GCS는 10억 이하로는 팔지 않을 생각이라서요. 그리 되길 바라시나요?”
「…….」
통화 너머 상대방이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유지웅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인내심이 많이 약해서요. 좋게 어른 대접해드릴 때 저한테 붙는 쪽이 유리하실 겁니다만?”
「저어, 제가 그러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딸아이를 위해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들이 GCS를 사준다고 해서…….」
“그래서 결정은요?”
「……제가 그쪽에 협조하면, 혹시…….」
“이봐요, 난 지금 댁들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너그러이 만회할 기회를 주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보상부터 언급합니까? 나 같으면 열정적으로 나를 위해 몸 바쳐 협조해서 모두 태워버린 다음,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보든가 하겠네.”
「……협조하겠습니다.」
“지금 내 가게로 와요. 당장.”
* * *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소녀의 아버지는 헐레벌떡 종로 가게로 찾아왔다. 그는 유지웅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유지웅이 묻는 말에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델지그룹에서 온 사람들이 큰딸을 시켜서 이렇게 시위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GCS를 사주겠다고요?”
“델지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자기들 정체를 밝히진 않았으니까요.”
“그럼 뭘 믿고 이 거래에 응했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증금을 줬습니다.”
“보증금?”
“예, 오천만 원을 현금으로 주고 갔습니다. 그걸 보고 믿었습니다. GCS를 줄 거라고…….”
“내가 보기엔 그 오천만 원으로 이미 끝난 것 같은데.”
“…….”
소녀의 아버지, 최현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해본 모양이었다.
“아무튼 걔네 델지그룹이 틀림없어요.”
“어떻게 그리 확신하시는지……?”
“지금 내가 델지랑 싸우고 있는데, 이렇게 엿을 먹이고 있는 놈들이 델지 말고 그럼 누가 또 있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최현수 씨가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됩니까?”
“폭로하세요. 판을 내가 깔아드릴 테니까, 이 모든 게 델지그룹에서 시켜서 한 일이다, 난 딸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폭로하세요. 그리고 델지를 비난하세요. 비판 말고 비난하세요. 진흙탕에서 뒹구시란 말입니다.”
최현수는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저어, 이 나라에서 재벌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내 심기를 건드리는 건 괜찮고요?”
“…….”
“GCS를 그럼 거저먹으려고 했어요?”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이봐요. 전 지금 댁한테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라, 델지한테 한 방 먹이려고 댁을 이용하려는 겁니다. 이용 가치를 입증 못하면 댁이랑 바이바이라고요.”
“하, 하지만…….”
“전면에 나서서 다 폭로해요. 델지그룹에 있는 욕, 없는 욕 다 퍼부어요. 그렇게 어그로 끌고 여론도 진흙탕으로 만들어놔요. 그러면 내가 GCS 하나 줄 테니까.”
최현수는 직감했다. 재벌을 거스르는 것보다, 눈앞의 이 청년을 거스르는 게 더 위험하다고.
“아, 알겠습니다.”
“곧 판 깔아드릴 테니까, 최선을 다하세요.”
유지웅은 일단 최현수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한쪽에 세워둔 캠코더를 확인했다. 녹화를 중지한 후, 그는 처음부터 모든 영상을 돌려 보았다. 녹화 영상은 그가 최한별에게 다가갈 때부터 찍히고 있었다.
“좋아,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델지.”
자극하는 대로 반응을 보여주니, 이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을까. 유지웅은 델지가 뜻대로, 아니 자기 기대 이상으로 움직여주는 게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명분만 하나 걸려 봐. 내가 그냥 콱! 효주도 어쩔 수 없을 걸?”
소중한 듯이 캠코더를 쓰다듬던 유지웅은 문득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근데 델지가 이거 한 방으로 훅 가면 안 되는데.”
============================ 작품 후기 ============================
누가 진짜 나쁜 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