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050)
1050 < — 건축주 스트리머 — >
김성철은 유지웅이 올린 스트리밍 영상을 보고 기함했다.
영상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미 5,000만 뷰를 돌파한 뒤였다. 30개가 넘는 국가 언어로 다양한 자막을 달아놨기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클릭이 빗발친 덕분이다.
“이, 이게 무슨……!”
손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마터면 또 한 번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김성철은 가까스로 버텨냈다.
옆에서 측근 임원들이 걱정스러운 눈,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네.”
김성철이 단호하게 입을 열자 임원들은 당황했다.
“그럼 이 영상의 목소리가 회장님이 아니고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을 조작했단 말씀이십니까?”
그게 가능해, 라고 묻고 싶은 얼굴이다. 김성철은 오해를 풀기 위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내가 한 말은 전부 맞네. 하지만 난 이런 의도를 가지고 말한 적이 없어.”
임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해놓고, 이번에는 자기가 한 말은 맞다고? 하지만 이런 의도는 없었다고?
김성철은 분노로 얼굴이 벌게진 채 열을 냈다.
“이 영상은 편집, 아니 조작된 거야! 말 그대로 악마의 편집이란 말일세!”
“회, 회장님…….”
“내가 한 말은 맞지만, 대화 순서나 문장의 배치가 완전히 뒤죽박죽이란 말이야! 그래서 대화 전체 맥락이 완전히 이상하게 변해버렸어! 이건 마치 내가 제철사업부를 제니스 컴퍼니에 넘긴다는 대화처럼 되어버렸지 않나!”
그제야 임원들은 김성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김성철은 기억이 나는 대로 자신이 했던 말과 유지웅이 했던 말을 짜 맞춰서 알려주었다.
귀 기울여 듣고 난 임원들은 저마다 창백한 안색으로 혀를 내둘렀다.
‘진짜 절묘한 악마의 편집이다!’
이 정도면 정말 고의 아닌가?
김성철은 붉으락푸르락한 안색으로 가슴을 쳤다.
“이건 날조나 마찬가지라고!”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동영상을 본 이들은 김성철과 유지웅이 빅딜을 체결한 것으로 믿었다. 보스코그룹 직원들은 회장의 통 큰 결단에 깊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으며, 제니스 컴퍼니와의 협업이 하루빨리 시작되기를 기원했다.
보스코 그룹 주주들은 완전치 않은 협상에 조금 불만을 가졌다. GC-2로 인한 직접적인 이익이 회사에 귀속되지 않고 100% 직원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GC-2로 얻은 수익만 배당하지 않는 거지, 거래 자체는 회사를 이롭게 하니까. 뭐…….”
“매출과 직원 사기도 오를 테고, 당연히 회사 가치도 껑충 오를 테고.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들도 사람인지라 불편한 감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김성철 회장이 어쩔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GC-2가 대체품이 없는 건 사실이고, 만약 제니스 컴퍼니가 따로 철강업체를 차린다면 우리가 가진 주식이 나중에는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아까워도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김성철 회장이 나름 합리적인 결단을 내린 거 같아.”
그렇게 주주들은 아쉬움 섞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다른 국내 철강업체들은 난리가 났다. 스트리밍 영상을 본 그들은 극도로 분노했으며, 또한 지독한 배신감에 휩싸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김성철 회장이 우리와 합의한 것을 어기고 단독으로 거래를 추진하는 거야!”
미래제철 회장은 극도로 분노해서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분풀이로 마구 집어던졌다.
그의 입장에서 김성철의 행동은 배신이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단합을 저버리고, 새파란 애송이에게 덥석 붙어버리다니.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정원석 회장을 보필한 비서실장이 용기를 내어 간언했다.
“보스코제철을 얻은 이상 제니스 컴퍼니가 더욱 기고만장해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치고 나가야 합니다.”
“치고 나가자니?”
“후순위로 열외 신세가 되느니 2등이라도 차지해야 회사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지금 중공업 산업은 GC-2를 확보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다른 경쟁업체들만 GC-2를 확보하고, 우리 회사는 거기에 끼지 못하는 미래입니다.”
그제야 정원석 회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서실장은 빠른 리듬으로 말을 계속했다.
“보스코그룹이 협의를 어기고 먼저 치고 나간 이상, 이미 그전의 단합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간이 열렸습니다. 우리도 서둘러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그럼 어떡하지?”
“회장님께서 직접 유지웅 의장을 만나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김성철 회장은 직통 전화로 유지웅 의장과 구두 계약을 맺었으니, 회장님은 그보다 더 강하고 적극적으로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직접?”
정원석 회장은 내키지 않은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임원들의 표정을 보고 할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풀었다.
지금은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정말로 회사의 미래가 바람 앞의 성냥불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물론입니다. 저는 얼마든지 미래제철의 합류를 환영할 수 있습니다.”
예상 외로 정원석 회장은 유지웅의 환대를 받았다.
어느 정도 수모나 기가 막힌 상황을 각오했던 정원석 회장이 오히려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수행 자격으로 따라온 최현식 사장이 연신 정원석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보스코제철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지만, 산업기반 구축 초기에 시간을 절약하려면 미래제철도 함께 하는 게 낫겠지요.”
“그럼 조건은…….”
“물론 제가 본래 내걸었던 조건은 이제 안 되죠. 방송에서 제가 말했다시피 이미 그건 끝난 이야기니까요. 보스코제철과 당연히 동일한 조건으로 진행이 될 겁니다.”
제철사업부의 지분 51%를 넘길 것.
정원석 회장은 속이 쓰라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GC-2의 국내 물량을 보스코제철이 독점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제니스 컴퍼니는 미국에 대는 물량만 해도 허덕일 게 분명하다. 국내에 풀리는 물량은 그리 많지 않을 거야.’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물량이니만큼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야 했다. 예상을 넘어서는 많은 양을 확보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고.
“잘 됐습니다. 그럼 오신 김에 계약서 작성이나 하고 가시죠.”
“계약서를요?”
당황한 정원석 회장 대신 최현식 사장이 얼른 나섰다.
오늘 이 자리는 큰 합의를 하러 온 자리다. 계약서는 세밀한 조항의 협의가 필요한 만큼, 즉석에서 체결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요? 오늘 돌아가셔서 생각 바꾸실 건가요? 뭐 그러면 계약서 안 쓰셔도 상관없고요.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마음 바뀌는 거야 늘 있는 일 아니겠어요?”
그 말은 마치 지금 계약을 하지 않으면 유지웅 본인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정원석 회장은 더 이상 생각할 것 없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아니, 하겠소!”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유지웅은 류이한 사장을 시켜 곧바로 계약서를 준비하게끔 했다. 그리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나선 정원석 회장은 그걸 보고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미리 계약서를 준비해둔 것에 대한 떨떠름함이 아니라, 유지웅이 나서지 않고 류이한 사장이 나선 것에 대한 떨떠름함이었다.
“유지웅 의장이 직접 서명하지 않는 거요?”
“저는 소유할 뿐, 경영하지 않으니까요.”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하고 정원석은 잠시 어이가 없었다. 경영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그럼 지금까지 한 짓은 뭔데?
“사실 제니스 컴퍼니가 개인사업체에서 얼마 전에 법인 전환을 했습니다. 세금은 면세라서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앞으로 국내에서만 네 자릿수 이상의 회사를 거느릴 텐데 개인사업체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좀 그렇잖아요?”
지금 뭐라고 했어?
네 자릿수 넘는 회사를 거느릴 예정이라고? 그것도 세계가 아니라 국내에서만?
“류이한 사장님이 제니스 컴퍼니의 공식적인 대표이사이시니 당연히 류이한 사장님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는 게 맞죠. 물론 그로 인한 모든 책임은 당연히 저에게 귀속되구요. 제가 유일한 주주이나 오너이니까요. 자, 이제 서명하세요.”
정원석은 여전히 떨떠름했지만, 이제 와서 초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했다.
약식 계약서이다 보니 그 내용은 무척 간단했다.
1. 미래제철그룹은 제니스 컴퍼니에 제철사업 관련 지분 51%를 양도한다. 매도가는 현 계약 당일 평균 시세로 한다.
2. 제니스 컴퍼니는 미래제철그룹에 GC-2를 원활히 공급한다.
3. 본 계약은 약식계약이며, 세부 조항을 비롯한 정식 계약을 한 달 안으로 성실히 마무리 짓는다.
계약 위반에 대한 패널티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정원석 회장은 그런 게 아무 소용없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미래제철이 계약을 위반하거나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 제니스 컴퍼니는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다.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도 되고, 그냥 질질 끌어도 된다. 아쉬운 것은 미래제철이니까.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국내 철강업체 중에서는 최초로 저희와 계약을 맺었군요.”
“우리가 최초라고? 그럼 보스코그룹은?”
“아, 거기는 말로는 알았다 해놓고 아직까지 시간을 질질 끌고 있지 뭐예요. 그래서 지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제가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정원석 회장은 그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보스코그룹한테 뒤통수를 맞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서두르게 된 계약이지만, 최초 타이틀이 미래제철에 주어졌다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프리미엄 자격을 획득한 느낌이랄까.
정원석 회장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부터 거칠게 쿵쾅거리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지웅은 느긋하게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거칠게 열리고, 보스코그룹 회장 김성철이 씩씩거리면서 들어섰다.
“유 의장! 그 스트리밍 방송인가 하는 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아아, 오셨군요. 일단 고정하시고 여기 앉으시지요.”
“대체 그렇게 악의적으로 편집을 한 이유가 뭐요! 덕분에 내가 얼마나 난처한 상황에 빠졌는지 아시오!”
“그 난처한 상황이 뭔지 궁금하네요. 동종업체 회장님들이 혹시 왜 단합을 깨고 멋대로 앞서 나가느냐고 항의라도 하셨나요?”
맞는 말로 찔러 들어오자 김성철은 잠시 찔끔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눈알을 부라렸다.
그런 악마의 편집으로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 이 어린 친구에게 한바탕 호통이라도 퍼붓지 않으면, 여기까지 숨차게 뛰어온 자신의 두 발에 면목이 없을 것 같았…….
“조금 전에 정 회장님이 왔다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철사업의 51%를 넘기겠다고 계약서까지 쓰고 가셨죠. 바로 왜 멋대로 단합을 깨느냐고 항의한 동종업체 회장님이 말입니다.”
……는데.
“제가 대기업 철강업체가 많이 필요하진 않거든요. 한 자리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서 보스코제철에 먼저 기회를 드렸는데, 미래제철에서 이렇게 선수를 치고 나오시네요?”
“마, 말도 안 돼!”
“말 돼요. 여기 사본 있는데 읽어보실래요?”
짤막한 사본의 내용을 확인한 김성철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건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악마의 편집을 구실삼아 양도 지분의 비율을 1%라도 낮춰 보려던 속셈이었는데, 모든 게 무산이 돼버렸다.
망연자실한 채 넋이 나간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차던 유지웅은 조용히 빈 계약서를 내밀었다.
“안쓰러워서 제가 한 번만 막차 뒤돌립니다. 서명하세요. 진짜 마지막입니다.”
김성철은 조용히 계약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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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은 과연 언젠가 먼 훗날 이 날을 어떻게 회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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