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063)
1063 < — 크리스탈 코인 — >
결정체 작물은 최윤이 넝쿨 식물을 유전자 개량 처리를 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종이다. 특별히 대단한 성질은 없다.
병충해에 강하지만 식료품으로 쓰기에는 부적절하고, 특별히 산업적으로 유용한 부산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또 씨앗이나 열매가 맺히지 않고 오로지 줄기 치기로만 번식이 가능하다.
가축 사료로도 활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작물. 하지만 유지웅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성질을 갖추고 있었다.
“가라! 브라우니! 너의 힘을 보여 줘!”
유지웅이 지시를 내리자, 작은 수탉 형상을 한 브라우니가 날개를 활짝 펴고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녀석의 온몸이 빛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브라우니 앞에는 수백 개가 넘는 그린 결정체가 널려 있었다. 녀석은 이따금씩 결정체를 주워 먹으면서, 계속해서 정신 집중 상태를 유지했다.
정효주가 수경 재배 작물 현황을 체크하고 말했다.
“좋아, 안정적으로 전송된 거 같아.”
“수고했어, 브라우니. 이제 그만 쉬어.”
브라우니는 헉헉거리며 날개를 접었다. 강대한 힘을 지닌 녀석이지만 무척 지쳐 보였다. 녀석 앞에 놓여 있던 수백 개의 그린 결정체는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앞발로 스마트폰을 움켜 쥔 브라우니가 발가락으로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이거 꼭 제가 해야 합니까?
“내가 하기에는 두뇌 연산 능력이 딸리잖아. 그렇다고 내가 바보라는 것은 아니야. 니가 이런 대량 단순 반복 작업에 워낙 뛰어난 거지.”
유지웅은 어깨를 으쓱한 뒤, 결정체 작물들을 카메라 영상으로 확인했다.
“브라우니 너 말고 누가 이런 걸 할 수 있겠어?”
명백한 칭찬에 브라우니는 저도 모르게 날갯죽지를 으쓱했다. 자고로 칭찬은 화이트 괴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결정체 작물은 실제로 결정 에너지를 흡수하여 결정체화 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브라우니가 결정체 작물을 향해 결정 에너지를 전송하면, 형상화된 결정체를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게 되는 것뿐이다.
즉 유전자 개량을 조금 하긴 했지만, 다른 식물들에 비해서 특별할 것은 전혀 없다는 소리다.
유전자 개량을 한 이유도 자연에 해를 끼치거나 불필요한 씨앗이나 열매를 맺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한 조치일 뿐이었다. 진짜 작물 자체는 별 거 없다.
결정 에너지가 소나기라면, 결정체 작물은 그저 바닥에 늘어놓은 물그릇이다. 일단 비가 와야 안에 물이 고이지, 그릇 스스로 비를 불러와서 물을 저장하는 능력은 전혀 없으니.
―특정 작물들에만 결정 에너지가 고이게 하도록 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꽤 힘들어요. 그 작물들이 한두 뿌리도 아니고요.
“괜찮아, 지금도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유지웅이 직접 결정 에너지를 전송하여 넝쿨 뿌리에 결정 에너지가 맺히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어차피 난 세심한 컨트롤이 안 되잖아. 내가 했다가는 이 세상이 괴수 천치가 되어 버릴 걸.”
특정 대상에 직접 결정 에너지를 주입하는 게 아닌, 앉은 자리에서 허공을 격하여 특정 작물들의 뿌리에만 결정체가 생기게 하는 것은, 유지웅의 연산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컴퓨터에 준하는 섬세하고 정밀한 연산제어 능력을 갖춘 브라우니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브라우니한테 필요 없는 그린 결정체를 배터지게 먹이는 것이다.
“근데 브라우니, 다른 작물에 쓸데없이 결정체가 열릴 일은 없겠지?”
정효주가 묻자 브라우니는 발톱으로 열심히 액정을 두드렸다. 잠시 후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결정체 작물의 유전 패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작물에 결정 에너지가 전송될 일은 없어요. 전송 된다 하더라도 다시 없애버리면 그만이에요.
“다행이네. 도둑맞게 한 결정체 작물에 결정체가 열릴 일은 없겠구나.”
“도둑맞았다고 하면 되지, 도둑맞게 했다고 굳이 강조할 건 뭐야.”
유지웅이 투덜거렸다.
도둑맞은 결정체 작물은 모두 세 뿌리. 하지만 그 세 뿌리를 전부 한 곳에서 훔친 것은 아니었다.
먼저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성공적으로 한 뿌리를 훔쳤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좀 더 많은 양을 가지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관할팀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너무 많은 양을 훔쳤다가 상대가 알게 되면 곤란해진다. 한 뿌리가 적당해.’
‘우리만 결정체 작물을 노리진 않을 거다. 그러니 최대한 보수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얼마든지 더 훔칠 수 있었지만, 흔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한 뿌리만 훔쳤던 것이다. 보안이 철저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공작이 쉬웠기에, 다음 기회를 얼마든지 노려도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국가정보원이 손에 넣은 결정체 작물은 담성그룹 유전 공학 연구소에 은밀히 반입되었다. 그리고 한국 최고의 유전 공학 분석 기술을 총동원해서, 결정체 작물이 가진 유전적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국정원 외에 결정체 작물을 훔친 곳은 바로 일본과 중국 공작 기관이었다. 그들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한 뿌리만 훔쳤다.
“괜히 흔적을 남겨서 경각심을 줄 필요는 없다. 한두 뿌리 정도면 관리를 잘못한 거라고 착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결정체 작물을 훔친 후에도 결정체 수경재배시설의 보안 시설은 변화가 없었다. 제니스 컴퍼니는 도둑맞았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도난당한 결정체 작물 세 뿌리는 각각 한중일이 보유한 최고의 유전자 공학 기술에 의해 낱낱이 도난당했다.
그리고 속속들이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단 자연적인 식물이 아닌, 명백한 유전자 개조를 거친 GMO입니다.”
“음, 역시.”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한 유전형질 변이를 거친 작물이라는 사실에 세 나라는 모두 흡족해했다.
만약 100% 자연적인 식물이라면 오히려 실망감을 금치 못했겠지만, GMO라는 사실 덕분에 오히려 신뢰가 생겼다.
“결정 에너지라는 것을 축적할 수 있도록 특별한 유전적 개량을 거친 게 틀림없다! 결정체 작물이 지닌 모든 유전적 정보를 낱낱이 해독해야 한다! 그것을 가장 먼저 해내는 곳이 차세대 문명의 패권을 쥐게 될 것이다!”
한중일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유지웅이 결정체 작물에 유전적 개조를 가한 이유는 열매나 씨앗이 생기지 않게 하고 관리가 용이하도록 한 것도 있지만, 작물을 훔쳐간 이들이 그런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 위한 함정을 파기 위해서라는 것도.
북한이 입에 게거품을 물거나 말거나, 세상이 혼란에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말거나, 제니스 타운의 결정체 재배시설에서는 수많은 결정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작물 뿌리에 열린 결정체는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 크기로 맺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점점 커지며, 빛깔의 농도도 선명해진다.
그리고 완전히 성숙한 크기가 되면 뿌리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와 물에 둥둥 떠오른다. 그러면 재배용수의 흐름에 따라 한곳으로 모여 채집망에 걸린다.
각 결정체 작물은 지지대에 고정돼 있기에 재배용수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만약 결정체가 떠내려가다가 다른 작물에 걸리면 지지대가 그 작물만 살짝 들어올려서, 걸린 결정체가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생산되는 양은 한 달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1,800kg의 GC-2(철강 강화제)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즉 미국 철강계가 필요로 하는 물량과, 제니스 컴퍼니가 인수한 종합반도체생산업체인 AND가 필요로 하는 물량을 맞추기에 적절한 양이었던 것이다.
한 달 주기로 결정체가 열리고, 수확되고, 포장되는 광경은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었다. 누구라도 실시간으로 생산과 수확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대중은 물론이고 어느 나라도 결정체가 넝쿨 뿌리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저건 아주 특별한 작물일 거야. 자연에 존재하는 작물은 절대 아닐 거야.”
“최첨단 유전공학기술이 적용된 GMO라는 말이 있어. 일단 자연계에 존재하는 식물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 유전공학처리를 한 사람이 바로 최윤 소장이라던데.”
“25살의 그 결정체 아버지? 그런데 그 사람은 이론물리학자 아니었어? 유전공학은 또 언제 전공했대?”
“이론물리학의 천재는 유전공학의 천재이기도 하다는 거겠지. 최윤, 당신은 도대체…….”
결정체 광맥설은 이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금강산에서 발견된 결정체 조각은 그럼 뭐냐는 반론이 이따금씩 제기되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슈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혹시 저 작물의 원형은 금강산과 설악산에서 서식하던 토종이 아닐까? 두 산이 원래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들이잖아.”
“흠, 일리 있어. 개량되지 않은 원형 작물이기에 완전한 결정체가 아니라 결정체 조각들이 발견된 것일 수도…….”
“어쩌면 두 산에 더 이상의 결정체 작물은 남아 있지 않는 건지도 몰라.”
“내가 유지웅 의장이라면 회수한 작물 이외의 야생종은 씨를 말려 버렸을 거야. 다른 이들이 찾지 못하도록.”
그런 의견은 제법 설득력을 얻었다.
실제로 북한이 대대적으로 인력을 풀어 금강산 일대를 수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아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결정체 작물의 원형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리라.
“유전공학분석이라는 게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닙니다. 유전 정보 분석에만 적어도 몇 년 이상은 꼴아박을 겁니다. 그것도 가장 최첨단 기술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트랩 카드가 제대로 activate됐군요. 그렇지 않나요, 최윤 소장님? 후후…….”
최윤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는 유지웅을 바라보다가, 맨들맨들한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유지웅이 그걸 보고 물었다.
“근데 GC-1은 요즘 안 쓰시네요.”
“아, 어차피 연구 작업 마치고 날 때마다 머리가 다시 빠져 버리니 귀찮아서요. 그냥 외출하기 전에만 GC-1를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연구소에 있을 땐 두발이 없는 게 편합니다. 비듬 관리도 편하고 간지럽지도 않고요.”
“최윤 소장님…….”
유지웅은 울컥할 뻔했다. 이 사람, 이제는 모발이 없는 게 일하는데 편하다고 말하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렇게나 풍성한 삶을 염원하던 이가 말이다.
최윤은 그저 웃었다.
“없는 채로만 계속 살아야 했을 땐 절실했지만, 이제 언제든지 자라나게 할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모발이 필요할 때에만 자라나게 하면 되니까요.”
“역시 최윤 소장님, 당신은…….”
“그런데 곧 기만 작전 2단계를 실시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맞다. 그걸 설명 드리려고 불렀어요.”
기만 작전.
결정체는 식물 뿌리에서 열리는 열매라는 허위 정보를, 세상에 널리 퍼트리고 주입하기 위한 작전을 말한다. 그리고 1단계는 이미 성공리에 자리 잡았다.
“제가 돈을 버는 이유는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기 위해서지, 무작정 재화를 축적해서 세계를 경제 대공황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원활하고 활발한 경제적 흐름은 유지되어야 하고, 그 흐름을 제가 주도하고 싶은 것뿐이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단계 작전과 관계가 어떤 관계가 있나요?”
“결정체 작물을 일반 사람들에게도 팔 겁니다.”
최윤은 잠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거 다른 사람들은 재배해도 결정체를 얻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만 작전 2단계라는 겁니다. 잘 들어보세요.”
최윤은 궁금증이 넘쳐흐른 채로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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