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088)
1088 < — 소모임 — >
소모임?
총수들의 표정에 저마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갑자기 소모임이 웬 말인가?
“소모임이라 하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10대 재벌 중 끄트머리에 위치한 kts 이시영 회장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는 50대의 비교적 젊은 총수로, kts그룹은 국영에서 민영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아직 재벌의 색채가 약했다.
즉 이 자리에서 연륜이나 회사 규모로 보나 제일 짬이 안 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소모임입니다. 저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내 기득권층과 허심탄회하게 앙금을 풀고 대한민국과 세계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보자는 취지의 정기 모임이죠. 그냥 전경련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 좀 다르려나?”
유지웅이 거듭 설명하자 총수들의 표정에 묘한 안도감이 깃들었다.
그렇게 온갖 수작을 부리고 노력하고 두드리고 할 때는 꿈쩍도 없던 사람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화해를 청하다니.
담성 이형원 부회장은 생각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우위를 차지한 다음에 관계 설정을 해나갈 셈이었을까?’
유지웅이 손을 내민 타이밍이 참으로 공교롭지 않은가.
그가 미국, 황백호와 맺은 긴밀한 관계.
언제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갈지 몰라 전전긍긍해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
전남 결정체 산업단지에 쏟아 부은 막대한 자산.
결정체 독점 생산.
여기에 레이더로서 보여준, 미래의 대 괴수 안보 역할에 대한 중요성과 기대감까지.
결정체 특허권을 가지고 이런저런 작업을 칠 때와 지금 그의 위상은 비교 하는 게 어이없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그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힘을 갖춘 지금에야 비로소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안에 쥐어진 것은 순수한 호의만은 아닐 것이다.
“일단 우리나라 최대 재벌부터 시작하여 50대 재벌 오너 일가 전원을 소모임에 가입시키는 게 제 목표입니다. 아, 물론 경영에 참여하는 인원에만 한정합니다. 집에서 내조에 열중하시는 사모님들이나 아직 학업에 바쁜 자녀들까지 구태여 가입할 필요는 없잖아요.”
총수들은 조용히 눈빛을 교환했다.
무언의 분위기가 자신을 떠밀고 있음을 알아차린 kts 이시영 회장이 다시 질문했다.
“물론 저는 당연히 가입을 할 생각입니다만, 혹시라도 가입을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가입시 알아야 할 중요 내규 같은 게 있습니까?”
“어디까지나 친목과 화합을 위한 소모임이니만큼 특별히 불이익을 드리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가 큰마음 먹고 내민 손을 거부하신 만큼, 제 마음 속에서 영원한 블랙리스트로 남게 되겠죠. 이런 좋은 기회를 두 번은 안 줍니다.”
그게 특별한 불이익이잖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렇게 속으로 외쳤다.
탈퇴는 자유지만, 한 번 탈퇴하면 유지웅과 영원히 대척점에 선다는 것을 뜻한다.
“회비라든가 가입자가 거느린 기업들이 특별히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있습니까?”
“특별히 그런 건 안 정해놨습니다. 친목과 화합을 다지자는 취지의 소모임인데 너무 그런 걸 세세하게 정해놓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너무 딱딱하기도 하고요.”
나중에는 차차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인가.
다들 굳은 얼굴로 분위기를 살폈다. 어쨌거나 자신들 입장에서는 거부해서는 안 되는 제안이다.
유지웅과 화해를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아닌가.
“가입하겠습니다.”
“가입하겠소.”
다들 한 마디씩 입을 열자 유지웅은 진심으로 기쁜 듯이 박수를 가볍게 치다가, 두툼한 책자를 꺼내 펼쳤다.
‘제니스 소모임’이라고 겉표지에 커다랗게 쓰인 책자는 내부 종이가 모두 ‘가입신청서’로 되어 있었다.
“가입 신청서입니다. 여기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와 주소를 써주세요. 그 외의 정부는 안 쓰셔도 됩니다. 저는 불필요한 개인 정보를 수집하지 않거든요.”
담성그룹 이형원 부회장이 떨떠름한 안색으로 제일 먼저 나서서 가입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들은 재계 순위대로 차례차례 모두 서명을 마쳤다.
“자, 이것으로 우리는 모두 소모임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와 인류의 번영을 위해 우리가 먼저 화합하는 것, 그것이 이 소모임의 가장 중요한 목적임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유지웅이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다들 하나둘씩 따라서 박수를 천천히 쳤다.
“그럼 소모임 첫날이니만큼 기념 회식이 빠질 수가 없지요?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결성된 친목 모임이기는 하지만, 다들 크게 나쁘지는 않은 안색이었다.
이것으로 유지웅과 친해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향후 산업 전반을 지배하게 될 결정체 산업에서 낙오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랴.
“결정체를 발견했을 때 딱 하고 알았죠. 아, 이것은 앞으로 인류 문명을 선도할 위대한 어머니 지구의 유산이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했습니다. 과연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손길에서 이 보물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을요. 아무래도 재벌이란 존재들은 목구멍까지 탐욕이 차 있, 아하하, 이거 당사자들 앞에서 본의 아니게 비난을, 아무튼 그래서 저는 결정체의 존재를 당분간 숨기기로 하고 GCS를 먼저 제조해서 팔기 시작한 겁니다. 바로 기반을 쌓기 위해서였죠.”
유지웅은 벌써 네 시간이 넘도록 입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레이더로서의 능력이요? 언제 각성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합니다. 네, 사실 저에게 레이더 능력은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죠. 내가 언제부터 레이더였나, 언제부터 레이더가 나였나, 굳이 그런 걸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혼합일체를 이루고 있었죠. 근데 혼합이 아니라 혼연이었던가요? 누구 사자성어 제대로 아시는 분?”
쉴 새 없이, 끊임없이, 빈틈없이.
“여수 레이드요? 아니죠. 사실 북한에서 필드 드래곤이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저는 저의 운명을 알았습니다. 아, 내가 이런 능력을 얻은 것은 단지 결정체를 잘 키워서 팔아서 돈을 많이 벌고 재벌들을 응징하고 부익부 빈익빈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서 존경받는 역사적 위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수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그래서 여수에서 해양 괴수가 나타난 순간 주저 없이 뛰어든 겁니다. 이미 그전부터 투쟁의 각오를 굳히고 있었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재벌 회장 9인의 표정은 하나같이 피곤함으로 썩어 있었다.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저 주둥이는 좀처럼 끝맺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대체 몇 시간째 입에 장착한 스피커를 끌 생각을 않는 것인가?
“참, 결정체 작물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이야기하려면 제가 설악산을 처음 방문한 그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야 하는데…….”
“저어, 회장님.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제 그만 자리를 정리하시는 게 어떨지…….”
결국 견디다 못한 kts 이시영 회장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다른 회장 8인의 무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총대를 멘 것이다.
참고로 유지웅을 회장이라고 칭한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자리가 소모임이고, 소모임 내에서 그의 직책은 회장이기 때문이다.
“어? 벌써 아침 7시에요? 이야기 몇 마디 좀 했다고 시간이 그새 이렇게 됐나?”
유지웅이 시계를 보며 혼잣말을 하자 다른 회장들은 하마터면 발끈할 뻔했다. 저기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라테그룹 회장이 보이지 않느냐고 외치고 싶었다.
“아쉽지만 그럼 일단 1차는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하죠.”
유지웅이 수긍하는 분위기이자 희색이 막 돌려던 재벌 총수들은 그대로 정지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1차?
“잠시 호텔에서 다같이 쉬었다가 2차 달리겠습니다. 2차 일정은 단챗방 공지사항으로 올려놨으니 천천히 확인하시고, 늦지 않게 와주세요. 그럼 저 먼저 호텔 가서 자리 잡고 눕겠습니다.”
“2차라고요?”
“다 같이 호텔이라고요?”
재벌 회장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
유지웅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모임 오리엔테이션이니만큼 단합을 위해 펜트하우스 스위트룸 잡아놨습니다. 방이 9개고 우리는 10명이니 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방이 하나 모자라긴 하지만 소모임 회장이니만큼 저는 방을 포기하고 거실 쇼파에서 자겠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야.
재벌 총수들은 믿을 수 없었지만, 유지웅이 호텔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을 잡아놓은 것은 사실이었다.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단챗방 공지사항 확인하시고 다들 2차에 늦지 않게 컨디션 조절하세요.”
50~70대를 넘나드는 재벌 총수들이 밤새도록 유지웅의 술상무를 상대한 것만 해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결과물이었다.
이미 그들은 그 자리에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헌데 이게 끝이 아니라고?
유지웅이 자리를 비우자 다들 황급히 입을 열었다. 피곤함에 찌든 표정이 역력했지만,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었다.
“어떡합니까?”
“……뭘 어떡하긴요. 저 자, 아니 회장이 하자는 대로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작정하고 우리를 길들이겠다는 거군요. 허…….”
그들은 유지웅의 의도가 자신들을 상대로 체력적 고문을 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철저히 길들이겠다는 뜻이리라.
미래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이래봬도 왕년에 노가다판에서 인부들과 뒤엉키며 술과 노름으로 다져진 체력이오. 어디 알량한 젊음을 믿고 한 번 길들여보겠다는 건데, 좋아,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체력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오리엔테이션에서 중도 이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 되면 소모임에 가입한 의의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어떻게 해서든 유지웅의 환심을 사서 결정체 산업 끝자락에 발을 걸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재벌 총수들은 늙은 몸과 떨어진 체력에도 불구하고 다들 단단히 결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단챗방에 유지웅이 올린 2차 일정 공지사항을 확인한 순간 그 단단한 표정은 여지없이 깨져 나갔다.
“설악산 등산?”
“참 아름다운 풍경이죠?”
바위에 걸터앉은 유지웅은 싱그러운 자연의 절경을 내려다보며, 가슴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뿌듯함을 토해냈다.
“이 정도면 이 땅의 정기가 모인 명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정체 작물이 설악산에서 최초로 자라난 게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그러고 보니 설악산에는 전설이 하나 있지요. 바로 결정 에너지가 충만한 곳이다 보니 그 에너지를 듬뿍 받고 곰에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전설의 영물이 있다고 하죠. 물론 그 영물은 사람이 되는 걸 포기하고 곰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로 했지만…… 아니, 다들 왜 그렇게 숨을 헉헉 대세요? 왕년에 등산 한 번 안 해보신 분들처럼?”
후들거리는 다리, 단내가 쏟아지는 호흡.
심폐가 찢어져 나갈 고통을 겪으며, 기업 총수들은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을 기다리는 유지웅을 향해 힘겹게 올라갔다.
「공지사항」
1) 우리 소모임은 주1회 회식합니다. 금요일은 소모임을 위해 언제나 비워두세요!
2) 우리 소모임은 월1회 단합을 위해 등반, 행군 등 체력단련을 합니다.
3) 참가는 당연히 자유입니다! 우리 소모임은 민주적인 운영을 지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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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 오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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