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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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컴퍼니 CEO 류이한 사장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 꼭 무언가 중요한 질문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유지웅은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편히 말씀하세요, 사장님.”
“만약 제니스 타운에서 레이더 각성자들이 난리를 피우면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을 듯해서 말입니다.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는지 조금 의논하고 싶어서요.”
“대비하실 것 없습니다. 그냥 지금처럼만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판검사들도 죽어나가는 마당 아닙니까. 마냥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듯한데요.”
“그 죽어나간 판검사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겁니다. 하지만 우리 제니스 타운에는 살인자의 오명을 쓰면서까지 보복해야 할 대상이 없죠. 안 그래요?”
“저, 거액을 들여 모니터링팀을 운용하시는 이유가…….”
“화근이 될 싹은 애초에 울타리 안으로 들이지 않으려는 이유가 컸지요. 제니스 타운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부패한 조태식 검사하고는 전혀 다른 인물들입니다.”
류이한은 어느 정도 공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한 듯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이라면 아무리 세상에 악이 받쳤어도 저나 제니스 타운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겁니다. 그동안 제가 이 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나요?”
“사람이라면, 이라는 말씀은…….”
“물론 사람 아닌 것들이 레이더로 각성해서 난동을 부릴 가능성이 있으니 그것도 대비는 해야죠. 하지만 그런 애들은 보통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애들이라 크게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 겁니다. 여차하면 제가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으면 되니까 문제없어요.”
“정말 의장님은 윤기원 탱커를 잡을 수 있는 복안이 있으신 겁니까?”
“네, 있어요. 아주 쉽게 잡을 수 있죠. 하지만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류이한은 제니스 컴퍼니 CEO를 맡으면서 유지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덕분에 유지웅이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남들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개인의 일탈로 보면 안 된다.’라는 발언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느끼고 있었다.
“의장님은 윤기원 탱커가 붙잡히지 않기를 바라시는군요…….”
“국가, 사회가 지엄한 법률의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에게 범죄를 저질렀고, 그 사람은 아무런 방어수단도 갖지 못한 채 모든 피해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전 그에 대한 정당방위라 보고 있어요. 국가가 개인을 향한 무자비한 범죄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방위.”
“…….”
“제가 윤기원 탱커를 체포해야 할 법률적, 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오히려 전 그 사람이 레지스탕스 조직이라도 이뤘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나 봐요.”
윤기원은 복수를 모두 완료하고 난 뒤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유지웅은 아마 깊은 만족감과 포만감을 느껴서 그러는 것으로 해석했다.
“의장님은 이 나라 시스템이 부서지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북한처럼 한 번 싹 뒤엎은 다음에 새로 만들어나가는 게 편하고 쉽지 않겠습니까?”
“…….”
“뭐, 마음은 일단 그래요. 그래도 그건 너무 시간이 걸리고 하니, 이렇게 제니스 타운이라는 노아의 방주를 건설하는 거죠. 선택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고, 사람의 형태를 한 짐승은 못 들어오는.”
“……청와대와 국회에서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연을 전수조사하고 올바른 보상과 조치가 취해지도록 조사하는 팀을 만들려는 모양입니다.”
“사장님은 그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잘 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면 잘 되지 않을 거라고 예측하시는 겁니까?”
“전자의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솔직히 후자의 개연성이 너무 높아서 별 의미는 없다고 봐요.”
유지웅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친일에 탐욕에 부정부패가 득실거리는 지금의 기득권층이 올바른 자정정화를 취한다?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입니다. 겉으로는 억울한 사회적 피해자들을 조사하고 보상한다는 리액션을 취하면서, 뒤에서는 제2의 윤기원 같은 경우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철저한 제약 시스템을 갖추려 할 거예요.”
제2의 윤기원 같은 경우가 없도록 한다.
긍정적인 수단이 아닌, 부정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으로.
류이한은 유지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고, 표정이 굳어졌다.
“레이더들을 억압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헬조선 기득권층은 원래 그랬습니다. 조만간 관련 법안이 물밑에서 조용히 통과될 겁니다. 레이더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부가 통제하고 만약 사적인 보복을 위해 힘을 사용하면 처벌을 가중하고 연좌제까지 적용하고 어쩌고 뭐 그런 식의 내용이 되겠지요.”
자정 정화가 아니라 더 큰 억압과 통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유지웅이 내놓은 그런 예상에 류이한은 얼이 빠졌다.
그는 잠시나마 이 나라의 부조리함에 긍정의 흐름이 유입될 거라고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유지웅이 보기 좋게 그것을 박살낸 것이다. 꿈 깨라고.
“쯧쯧…… 우리 류이한 사장님은 너무 선량하셔서 가끔 다른 사람 모두도 자기처럼 선량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착각하시는 게 있어요.”
“의장님. 그건…….”
낯 뜨거운 칭찬에 민망해진 류이한이 말을 얼버무렸고, 유지웅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계속했다.
“사람 아닌 것들을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 행동을 예측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죠. 그걸 항상 명심하셔야 합니다.”
류이한은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 아들보다 어린 고용주한테 이런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왠지 어색했다. 심지어 틀린 말도 아니다.
“아마 재벌들이 먼저 나서서 그런 레이더 제약 시스템을 만들려고 할 겁니다. 제목과 내용은 적당히 교묘하게 포장해서 내놓겠지요. 윤기원 탱커 같은 경우가 한 번 더 터지면 충분한 명분이 될 수도 있을 테고요.”
“의장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니, 우리 제니스 그룹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지웅은 잠시 류이한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예, 우리는 그저 지켜만 봅니다. 목소리만 냅니다. 하지만 그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
류이한은 이해할 수 없었다.
유지웅은 충분히 사회를 이끌어나갈 힘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북한의 황백호 통령 이상의 영향력으로 이 나라를 움직이고 조율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스트리밍 방송을 통해 열심히 목소리를 내는 것에 열중하건, 소모임을 통해 재벌들을 골리는 것에 열중할 뿐, 사회 개혁을 위해 진지하고 대국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변화와 개혁은 희생을 딛고 이뤄내야 가치 있는 법입니다. 강자가 거저 손에 쥐어주면 약자들은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해요.”
“…….”
“이름 없는 풀뿌리들은 이제 산의 주인인 맹수들한테 저항할 수 있는 비대칭적 전력을 얻었습니다. 탐욕만을 누린 맹수들은 이제 그 보복을 받게 될 거고, 이 또한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 순리를 억지로 비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너무 어긋나지만 않게 지켜보는 선에서 그쳐야지요.”
“앞으로 우리 제니스 타운이 이 나라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지 방향을 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제니스 타운은 모든 ‘사람다운 사람’을 위한 보금자리이자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류이한은 오늘 유지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최형식은 하반신 불구 환자였다.
허리 아래 왼쪽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 살갗을 바늘로 찔러도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한다. 오른쪽 다리는 다행히도 이상이 없어, 목발을 의지하면 걸을 수는 있다.
왼쪽 다리가 마비된 것은 선천적인 원인이나 사고가 아니었다.
그는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여기 맷값이다. 빨리 엎드려!
대기업 평직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사소한 이유로 재벌 2세인 상무의 심기를 건드렸다. 평소 분노조절장애로 유명한 재벌 2세는 맷값이라며 백만원 권 수표 여러 장을 던지고는, 그에게 엎드리게 했다.
그는 당연히 저항했다. 이런 대우를 받을 바에는 회사를 박차고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무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뭐? 그만 둔다고? 그만 두더라도 내 맷값은 받고 그만둬야지, 어디 노예 새끼가 니 마음대로 그만둔다 만다 해? 저 새끼 빨리 꿇려!
상무의 측근과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를 강제로 엎드리게 만들었다. 우악스러운 힘이 강제로 붙드니 그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골프채를 든 채 번들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 악마 같은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그는 허리 아래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골프채에 얻어맞았고, 그 후유증이 너무 커서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의사는 신경이 손상돼서 평생 걸을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는 경찰과 검찰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상무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절망을 절감한 그는 언론에도 알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그룹 본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매몰찼다.
누구도 그를 돌아봐주지 않았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으면 경호원들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그를 에워싼다. 가림막 등을 펼쳐 사람들로부터 교묘하게 시야를 가리지만, 한쪽 다리를 못 쓰는 그로서는 마땅히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봐요, 최형식 씨. 이렇게 힘들게 살지 말고 좋게 합의하라니까. 상무님이 미안하다고 5억 준다잖아.”
자신이 불구가 되던 날, 상무놈이 편하게 골프채를 휘두를 수 있도록 사지를 결박했던 놈들이었다.
그놈들의 비아냥거림에 최형식은 식도가 뒤집어질 듯한 구역질을 느꼈다.
“니들이 사람이냐!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 있어!”
“우리? 사람 맞지. 근데 최형식 씨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지.”
“그리고 상무님은 우리하고는 전혀 딴 세계 사람이시고. 그 차이를 몰라서 어떻게 세상 살아가려고 그래?”
“이렇게 불편하게 굴지 말고 편하게 처리합시다. 당신도 언제까지 망가진 몸으로 여기 서 있을 거요?”
“차라리 레이더로 각성해서 복수하러 오는 게 더 낫겠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들의 비아냥거림에 최형식은 속에서 열불이 났다.
몸이 뜨겁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쌓이고 축적되었던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워지며, 최형식은 피를 토했다.
감시자들이 깜짝 놀라서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아이 씨, 이 새끼 왜 피는 토하고 지랄이야.”
“찍지 마! 이봐 거기, 찍지 말라고! 저거 막아!”
어지러움이 가라앉으며, 최형식은 정신을 차렸다. 순간 그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어?’
안경 초점이 전혀 맞지 않았다.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모든 사물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안경을 벗고 닦으려다가, 문득 들어온 풍경에 그만 굳어버렸다.
자신의 시력은 렌즈도수 -10이 넘는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 미터 떨어진 작은 간판의 글씨까지 생생하게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