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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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레이더 각성자는 겨우 45명이다. 한국, 북한, 미국, 중국을 모두 포함한 숫자다.
세계 인구를 80억으로 가정하면 177,777,777분의 1의 극악한 각성 비율.
여기에 중화 공격대가 이스라엘의 티라노 레이드에서 19명의 레이더를 잃었기에, 현재까지 남은 레이더는 겨우 26명.
최형식은 그럼에도 꿈을 꾸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레이더가 돼서,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놈들을 다 응징하리라고.
처음에는 그저 무언가 힘을 얻게 되면 세상에 반드시 복수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그 염원은 황백호의 등장으로 인해 좀 더 구체적인 신념을 품게 되었다. 뚜렷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다.
‘내가 탱커가 되면…….’
‘황백호 통령처럼…….’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겠지?’
그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자신이 탱커가 되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떠어떠한 것들을 행할지를 놓고, 진지하고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그것만이 불구가 된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황백호가 각성한 이후 수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최형식의 상상은 더욱 구체적인 흐름을 타며 체계적인 형태를 갖춰 나갔다.
최형식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시나리오를 정리하듯 그것을 모두 기록했다. 틈틈이 수정하고 보강하며, 자신의 이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렇게 환상에 취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을지도 몰랐다.
왼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되었다는 절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아무런 복수도 할 수 없다는 좌절 때문에.
‘레이더가 되고 싶다.’
‘탱커가 되고 싶어.’
‘날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오랫동안 꿈꿔온 간절한 소망.
1억 7,777만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희박한 확률.
그리고 기적이 찾아왔다.
마비된 왼쪽 다리는 아쉽게도 회복되지 않았다. 혹시나 레이더로 각성하면 손상된 신경도 복구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적은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나는 어떤 계열이지?’
그의 시나리오에서 레이더로 각성될 경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어떤 클래스인지 신속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최형식은 자신의 시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것을 확인하며, 선택지를 두 가지로 좁힐 수 있었다.
‘동체시력이 좋아졌다. 원거리 딜러나 힐러는 아니다. 근접 딜러 아니면 탱커다.’
레이더에 관해 열심히 공부한 덕에, 그는 자신이 근딜 아니면 탱커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탱커와 근접 딜러는 동체시력과 운동신경이 일반인을 초월해서 월등히 좋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탱커의 신체 능력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것.
그리고 외부의 충격에 비약적으로 강해진다는 것.
최형식은 목발을 버렸다.
왼발이 마비되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왼발의 지탱 없이 순수한 오른발의 힘만으로 몸의 중심을 쉽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입가에 짜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탱커다!’
그가 가장 원했던 기적이 찾아왔다.
근접 딜러나 원거리 딜러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탱커보다는 못하다. 아무래도 총기라든가 생화학 무기 등에서 자유롭지 못해 체포될 수 있으므로.
하지만 미사일로도 잡을 수 없다고 알려진 탱커라면, 현대 인간의 힘으로는 체포하지 못한다.
“뭐, 뭐야?”
최형식이 목발을 버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서 있자, 감시자들은 당황해서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어리석은 것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최형식은 그들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불구인 그가 목발을 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자 그들은 더욱 당황해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재벌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버러지들……!’
회장 아들 상무놈에게 골프채에 맞던 날, 자신이 반항하거나 도망하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던 놈들이다.
그로 인해 자신이 불구가 되었지만 아무런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고,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마다 에워싸고 낄낄거리며 조롱하던 놈들이다.
이놈들을 어떻게 해줄지, 수십 번이 넘도록 고쳐 생각하며 내린 선택이 있었다.
최형식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자를 손으로 잡아챘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반항하지만, 마치 종잇장이 팔랑거리듯 무력하게 느껴졌다.
온몸에서 끓어 넘치는 힘에 한껏 취한 최형식은 그대로 남자의 왼발을 비틀었다.
순간적으로 왼쪽 다리가 깔끔하게 270도 가까이 돌아갔다가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아왔다. 깔끔하게 뼈가 부러진 다리가 기형적으로 덜렁거렸고, 그제야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 으아악!”
“탱커다! 탱커 각성자야!”
그제야 다른 감시자들은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이미 윤기원의 전례가 있었던 덕분에 이제라도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도, 도망 가!”
“저놈이 사람 죽인다!”
그러나 최형식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재빠르게 쫓아간 최형식은 나머지 감시자들도 각각 잡아채서 깔끔하게 왼쪽 다리를 돌려서 부러뜨렸다.
“신경이 끊겼을 테니, 너희들도 이제 평생 왼발을 못 쓰게 될 거다.”
다리가 부러진 고통에 울부짖는 그들을 향해, 최형식은 차갑고 덤덤히 말했다.
언제나 머릿속에서 상상의 회로를 돌리던 장면이, 지금 자신의 손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뜨거웠으며, 달콤했다.
저들의 다리를 똑같이 불구로 만들어놓은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달콤한데, 진짜 원수의 모든 것을 풍비박산 내면 얼마나 짜릿할 것인가.
그는 등을 돌려, 그룹 본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한때 저곳을 출근할 때는 큰 자랑거리였다. 출퇴근을 할 때마다 가슴에 찬 명찰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1인 시위를 할 때에는 도저히 깰 수 없을 듯한 가파른 절벽이자, 절망의 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에서 높이 우뚝 솟은 본사 건물은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그가 먼저 향한 곳은 상무실이 아닌, 회장실이었다.
바로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의 친아버지이자, 그룹 오너.
어차피 상무놈은 오늘도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젯밤에도 텐프로에서 연예인급 아가씨들을 옆에 끼고 술을 진탕 마신 뒤 지금까지 뻗어있으리라. 원래 그런 놈이었으니.
백성태 상무는 술에 취해 뻗어 있었다.
잠결에 그는 다급히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수행비서가 들어온 모양이다. 그는 술과 잠에 취한 와중에도 짜증이 나서, 더듬더듬 손을 뻗었다.
함께 광란의 밤을 보낸 여자의 맨살이 만져지며, 기분이 한결 풀렸다.
“상무님! 큰일났습니다! 회, 회장님께서! 회장님께서!”
“뭐? 아버지가?”
그 순간 백성태는 잠이 싹 달아나서 일어났다.
세상에서 무서운 게 없는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친아버지인 그룹 회장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왜?’
젊은 시절 한 번씩 이렇게 방탕하게 노는 것도 다 추억이자 훈련이라며 호탕한 양육 방식을 선호하시는 분이다.
어제는 음주운전으로 누구를 치어 죽이지도 않았고, 술집에 불을 지르지도 않았고, 골프채로 누구를 병신으로 만들지도 않았었다. 어제는 그랬는데, 왜?
“도, 돌아가셨습니다!”
“……?”
처음 백성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어디로 돌아가셨단 말인가? 여기는 외국도 아닌데?
백성태가 눈만 깜빡거리자 수행비서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외쳤다.
“살해당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조금 전에 살해당하셨어요!”
“……뭐라고? 아버지가 죽어?”
“회장님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에 계시던 사모님, 그리고 회장님의 친형제분들도 모두 살해당하셨습니다!”
“무슨 말이야?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살해당했다는 거야?”
“회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회장님의 친형제분들이 모두 살해당하셨습니다! 지방이나 외국이 아니라 서울에 있던 분들 전부 다요!”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은 정신이 멍해진다. 백성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부모님과 삼촌, 고모들이 모조리 살해당했다니?
차라리 단체로 전세기 여행 중에 추락 사고로 모조리 죽었다는 말이었으면 좀 더 현실적이리라.
전원 살해라는 단어가 그로 하여금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여기예요! 여기란 말입니다! 여기에 있다구요! 으아아아! 제발 좀 놔줘요!”
문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문이 거세게 뜯겨 나갔다.
평범한 체격의 한 남자가 경호원을 한 손에 쥔 채 뚜벅뚜벅 들어왔다. 90kg이 넘는 건장한 경호원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다니, 보고만 있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엄청난 힘이었다.
수행비서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침입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놈, 저놈입니다! 저놈이 회장님 부부와 회장님 친형제들을 모조리 죽였어요!”
백성태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저 자가 자기 가족들을 죽였다는 말만큼은 똑똑히 귀에 박혔다.
“백성태, 나 기억하지?”
“……모, 몰라.”
백성태는 더듬더듬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최형식은 피식 웃었다.
이미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본인 분노에 취해 누군가를 불구로 만들어도 그때뿐, 상대가 누구인지 기억조차 하지 않는 놈이다. 그런 인성을 가진 놈한테 잘못 걸렸기에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다.
“알아. 그럴 거 같았어. 넌 원래 그런 쓰레기니까.”
최형식은 들고 있던 경호원을 수행비서에게 가볍게 집어 던졌다. 두 사람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뒤엉킨 채 나가 떨어졌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놀라운 힘이었다.
‘탱커?’
비로소 그 단어가 생각난 백성태는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 부친한테 원한을 품은 이가 부모와 삼촌들을 모조리 죽이고, 이제 자신까지 죽이러 온 것 아닌가?
“사, 살려 줘! 난 아무 잘못도 없잖아! 아, 아버지한테 원한이 있으면 그걸로 끄, 끝내야지! 나한테까지 이, 이러는 건……!”
“무슨 개소리야. 내가 원한이 있는 건 넌데.”
최형식은 건성으로 말하며 긴 천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늘 널 죽이진 않는다.”
그것은 끝이 날카롭게 깎인 굵은 대나무였다. 날카로운 끝에는 아직도 굳지 않은 피가 듬뿍 묻어 있었다.
“너도 절망을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오늘 죽이진 않아. 아, 걱정 마. 숙성을 그리 오래 할 마음은 없으니까. 그동안 아랫것들한테 차분하게 들어 봐. 내가 누구고, 왜 이러는지.”
“으, 으아아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카로운 대나무가 왼쪽 허벅지를 관통했다. 최형식은 고통에 발버둥치는 백성태의 모습을 지그시 관찰하다가, 손날을 들어 왼쪽 다리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