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88)
— 프리시즌 헬조선편 다크나이트 —
강수현 기자를 포함한 20여 명의 기자들이 지독한 폭행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 또다시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 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 왔다.
이틀에 걸쳐 50여 명에 달하는 기자들이 운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얻어맞은 것이다. 이에 언론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번에도 같은 놈인가?
―아마 그런 거 같아. CCTV 자료 슬쩍 봤는데 복장과 체격이 같아. 때리는 스타일도 비슷해.
―이번에 남긴 쪽지에는 구구절절 죄질 같은 거 적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럼 뭘 적었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리는 거다, 이렇게만 달랑 적어놨다고 하더라.
―구구절절 적기도 귀찮아진 건가?
―그럴 수도.
―대체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감히 대한민국 공정 사회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우리 기자들을 건드려?
단톡방 등에서 의견을 나누는 기자들은 겉으로는 분노했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최형식과 연관 짓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범행 수법이나 행동 패턴이 최형식과는 너무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형식은 자기 얼굴 까고 당당하게 테러 선언한 거고, 이건 그냥 얼굴 숨기고 자기 맘에 안 드는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죽어라 패는 거고.
―힘이 센 건 알겠는데 탱커나 레이더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조만간 금방 잡히겠다.
―아무튼 다들 이놈 잡히기 전까지는 조심하자. 기자들한테 원한이 단단히 큰 놈 같으니까.
공정한 정의를 위해 펜대를 굴리다 보면 뜻하지 않은 원한을 살 수도 있는 법이다.
기자라는 직업 그 자체에 원한을 가진 이나 이들의 소행으로 추정한 기자들은 절대 불의에 굴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3일차…….
“또야?”
“예, 선배님. 이번에도 40명 가까이 박살났답니다. 그, 그런데…….”
“뭐 특별한 게 있어?”
후배 기자는 선배 기자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서 속삭이듯 말했고, 선배 기자는 화들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게 정말이야?”
“예, 제일 적게 행동한 그룹이 6명, 제일 많이 행동한 그룹이 12명이나 되는데, 그 숫자를 혼자서 때려눕혔습니다. 도망가고 도움 요청하고 그럴 틈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뭐가 번쩍하는가 싶더니 다들 바닥에 쓰러졌다는데요?”
“술이라도 처먹은 거야? 어떻게 한 명한테 다 당해?”
“요즘 이런 분위기에 누가 술 먹겠습니까. 한 방울도 입에 안 댔다고 합니다.”
기자들만 골라서 응급실에 실려 갈 때까지 두들겨 패는 미친놈이 있는 상황, 게다가 피해자만 이미 수십 명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술을 입에 대는 멍청한 기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집에서 문을 잠그고 혼자 조용히 먹는다면 모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2명이나 되는 수를 한 번에 다 쓰러뜨리는 게 말이 돼? 그 사이에 단 한 명도 신고나 도망도 못 갔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선배님, 그게…… 아무래도 범인이 레이더인 듯합니다.”
“뭐?”
선배 기자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배 기자는 곤혹스러움을 품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CCTV 화면을 확인한 경찰에서 흘러나온 말인데요. 도저히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랍니다. 격투기 세계 챔피언도 이런 움직임은 못 보일 거라고 합니다.”
격투기 세계 챔피언이 성인 12명을 때려눕히는 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거나 신고도 못하게끔 일시에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맨몸으로는 말이다.
“근접 딜러 아니면 탱커로 추정되는 모양입니다.”
“……정말 최형식인가? 하지만 최형식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데……. 혹시 윤기원?”
선배 기자는 그렇게 내뱉어놓고 곧바로 말을 부정했다.
“아니야. 애초에 윤기원이가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어.”
“그렇죠. 윤기원은 자기 인생 망가뜨린 사람들만 정확히 집어서 죽이고 잠적했으니까요.”
“최형식이도 아니고 윤기원이도 아니라면, 다른 딜러 각성자?”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 하지만 왜 우리 같은 기자들만 골라서 노리는 거지?”
“저도 그걸 모르겠으니 미치고 환장하겠습니다.”
반사회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저 기자이기만 하면 무조건 패고 있으니. 아니, 기자라고 무조건 패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당한 기자들 모두 베테랑급이지?”
“10년차 미만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선배 기자는 피해를 입은 기자들의 이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업계에서 베테랑이라는 점, 그리고 저널리즘보다는 사익 추구를 우선시한지 오래됐다는 점이다.
‘첫날에는 기자로서 일하면서 지은 잘못을 정리한 종이를 일부러 남겨놓기도 했고…….’
기자 한정으로 정의 구현이라도 추구하는 놈인가? 지금까지 보인 행동 패턴으로는 그렇게 해석된다.
“……큰일이군.”
차라리 근접 딜러라면 다행이다. 적어도 인간이 제압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탱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낮에 버젓이 사람을 패고 다녀도 체포하거나 제압할 수 없으니까.
“이번에도 종이를 남겼나?”
“예, 맞을 짓을 하면서 살았으니까 맞는 거다, 그렇게 한 줄 달랑 적힌 종이를 남겼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프린터 인쇄체입니다.”
“필적을 절대 남기진 않는군.”
기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애초에 명석하지 않으면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가지기가 힘들다.
3일 동안 행해진 범인의 행동에서 범행 목적을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은 지금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범인은 부패한 기자들만 골라서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두들겨 패고 있는 거라고.
“이놈, 언론 개혁이라도 꿈꾸는 건가?”
선배 기자는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후배 기자는 다음 날부터 선배 기자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네? 형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그이가 어젯밤에 잠시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그만 그놈한테 당해서…… 아이고, 지금 응급실에 있어요. 얼마나 맞았는지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한국의 3대 신문사는 커다란 난관에 처했다.
경력이 쌓인 기자들 대부분이 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터라 업무에 크나큰 누수가 발생한 것이다.
한두 명이 입원한 것도 아니고, 회사마다 80% 이상의 현역 경력 기자들이 입원한 상태였다. 데스크가 원활히 돌아갈 리가 없었다.
경력이 짧은 후임 기자들은 이름 모를 범인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묻지마 폭행’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그 때문에 업무 누수는 악순환의 길을 걸었다.
데스크는 덕분에 예전에 미리 수급했지만 통과되지 않은 기사들 위주로 지면을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전체적인 기사의 질은 매우 떨어졌다.
구독자들의 항의도 빗발쳤다.
―아니, 중국 공격대가 딜러 전부 잃은 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그걸 1면에서 다루고 있음? 난 또 뭔가 새로운 일이 터진 줄 알았는데, 이거 그냥 예전 날짜 기사를 오늘 날짜로 올린 거나 마찬가지잖아?
―담성 공격대가 연봉 많이 받는 거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담성 공격대 창설됐을 때 엄청 호들갑을 떨어놓았으면서 왜 이제 와서 또 그 이야기를 하지?
―북한 희토류 수출 때문에 중국이 희토류 카드가 무력화된 게 언제 일인데 그걸 2면에 싣고 있는 거지?
―요즘 반도일보 일 똑바로 안 하나? 기사들 질이 왜 철지난 과일처럼 하나같이 상태가 안 좋아?
―반도일보 고참 기자들 대부분이 묻지 마 폭행당해서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던데…….
―뭐, 진짜?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요 며칠 동안 반도일보, 아니 반도일보 뿐만 아니라 3대 메이저 일간지 고참 기자들 대부분이 묻지 마 폭행당해서 지금 병원에 드러누워 있다고 하더라. 몇 달은 요양해야 할 정도로 얻어맞았다고 하던데?
―그래서 요즘 3대 일간지 기사 수준이 다 그 모양이었군.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근데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나도 몰라. 기자 아니면 3대 일간지에 원한이 깊은 친구들인가 보지, 뭐.
사건이 퍼지자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사이버 수사대가 신상 파악에 들어갔다.
사이버 자원 수사대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입원한 기자들이 기자의 직위를 이용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그 세세한 내역을 정리하는 업적을 달성했다.
물론 법적인 효력은 없는, 어디까지나 정황 파악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기에는 아주 적절했다.
―이거이거, 처맞고 입원한 기자들 하나같이 기자가 아니고 기레기라고 할 만한 것들이네. 그 중에서도 완전히 중증 기레기.
―어쩐지, 첫날에 앞에는 기레기, 뒤에는 죄질 내역을 써서 종이 남겼다고 하던데, 이해가 간다. 그 다음부터는 자기도 일일이 다 적기 귀찮아진 거겠지?
―성상납에, 돈 받고 허위 기사 쓰고, 재벌이랑 정치인들 빨아주는 건 다반사고, 언론 비판하는 정치인 다 같이 합심해서 병신 만들고, 악질들이잖아?
―범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제대로 정의 구현 했네. 이런 거라면 난 얼마든지 응원한다.
입원한 기자들의 과거 행적들이 속속들이 드러나자 대중은 입을 모아 비난했다. 그에 대한 부수 작용으로 범인에 대한 호감과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레이더겠지?
―그럼 레이더지. 레이더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사람 패고 다니면서 안 잡힐 수가 없다.
―근딜 아니면 탱커일 텐데…… 기자들만 건드리는 걸 봐선 탱커는 아닌가 보다.
―왜 그렇게 생각해?
―재벌이나 이름값 있는 정치인들은 경호원들이 빵빵하잖아. 아무리 근딜이라도 제대로 한 대 맞으면 뻗을 수밖에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건드리기 쉬운 기자들만 골라서 족치는 거 아닐까?
―흠, 그럴 듯한데.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먹이만 골라서 사냥하는 거라면…….
―최형식 수장님은 뭐하시는지. 어서 이분을 스카우트해서 자기 측근으로 삼으셔야 하는데.
―진짜 최형식 수장님은 요새 뭐하시나? 썩어빠진 기업가하고 정치인들 빨리 싹 쓸어버리시면 좋겠는데, 여당 날려버린 다음에는 너무 조용하셔…….
―어디 아프셔서 잠시 숨 고르시는 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수장님이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제대로 된 혁명 조직을 갖추기 위해 한동안 힘을 축적하고 계신 게 틀림없어! 아마 물밑에서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곳하고 접촉하면서 활동 자금이나 자원을 확보하고 계실 거야.
어느덧 사람들은 기자들을 때려눕히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리포터 도살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살인을 한 적은 없지만 기자들을 쓸어버리다시피 병원으로 보내는 것에서 비롯된 별칭이었다.
왜 기자만 공격하는지, 패도 마땅한 기자들을 모두 패버리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의문과 추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탱커인지 근접 딜러인지에 대한 토론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래도 리포터 도살자란 작위는 잘못 된 거 같아. 우리는 그에게 전혀 다른 작위를 수여해야 한다.
―왜?
―그 사람이 방금 중학교에 떴거든.
―아니, 지금 대낮인데? 학교 수업 중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