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12)
— —
강석현은 패닉에 빠졌다.
분명 청문회 출석 첫날 당돌한 질문을 던졌던 그 기자가 맞았다. 처음 보는 언론사 명찰을 달고 있어, 그저 어디 영세한 독립 언론사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자신이 최형식이라고 밝혔다. 탱커와 근접 딜러만이 보일 수 있는 가공할 근력도 증명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얼굴이 달랐다. 모델이라고 해도 믿어질 듯 잘빠진 얼굴은, 원래 자신이 알던 최형식의 얼굴과는 비슷한 점이 없었다.
“아, 성형 수술 따위는 안 했다. 애초에 몸이 단단해서 메스가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아.”
“어,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과 체격이 점점 바뀌더군. 이 나이 먹고 키가 더 커질 줄은 몰랐어. 뱃살도 들어가고, 여러 모로 몸이 최적화되는 거 같더군.”
최형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차피 알려지게 될 일,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어서 말해주는 거다.”
그는 자기 집이라도 온 것처럼 쇼파에 태연히 앉았다. 언제 꺼내왔는지, 미니바에 있던 최고급 위스키도 한 병 꺼내 와서 이미 오픈한 채였다.
큰 물컵에 위스키를 듬뿍 따른 후, 그는 마치 물을 마시듯이 벌컥벌컥 마셨다. 순식간에 한 병을 비워버린 후, 강석현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술도 취하지 않아. 아무리 독한 술을 마셔도.”
“…….”
“탱커가 되니 이런 나쁜 점도 있더군. 하지만 상관없어. 다른 장점들이 워낙 압도적이잖아?”
“……나한텐 무슨 용무요?”
강석현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최형식이 나타났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그는 스스로의 기준으로 정한, 죽어 마땅한 사람을 살해하러 다니는 테러리스트이니까.
총기도 생화학 병기도 통하지 않는 생체 괴물 앞에서 맨몸인 자신이 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섞는 것만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글쎄, 원래는 널 죽이러 왔지. 여러 번 생각을 해봐도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없어지는 게 더 나은 적폐니까 말이야.”
“…….”
“하지만 조금은 고민이 돼. 꼭 널 죽여야만 할까? 살려두고 이용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당신이 원하는 목적……?”
“이 사회의 모든 암 덩어리들을 쓸어버리는 거다. 여당 의원들을 쓸어버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지.”
“하지만 야당이라고 모두 선하진 않소. 정치인들은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이오.”
“아니지. 토착왜구들로 바글바글거리는 여당은 다른 당과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악취가 풍기는 암덩어리였지.”
최형식은 빈컵을 들어올린 채 약을 올리듯이 가볍게 흔들며, 차갑게 물었다.
“지금부터 널 죽이겠다.”
“사, 살려 주시오! 제발!”
강석현은 재빨리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댔다. 허튼 소리가 아니다. 이미 재벌 회장 일가와 100명이 넘는 중진 의원들을 살해해버린 살인마다.
목숨이 소중하다면 허튼 자존심 따위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강석현은 그 점에서 판단이 빨랐다.
“살려주십시오.”
“뭐야, 그래도 육군 참모총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런 강단도 없는 건가? 이 나라 군대는 참 어쩌려는 건지…….”
“살려주십시오.”
“담성그룹과 짝짜꿍해서 수십 년 동안 수십 조 원이 넘는 방산비리를 저질렀고, 그 대가로 너도 수백억 원이 넘는 국고를 횡령했다. 한 나라의 참모총장씩이나 되는 자가 그런 나라를 팔아넘기는 짓을 했다. 그런데 왜 살려둬야 하지?”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
이상하리만치 최형식은 조용했다. 그 침묵이 불길함인지 희망인지 해석의 혼란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드디어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살고 싶나?”
“예! 살고 싶습니다!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강석현은 다시 한 번 머리를 쾅쾅 바닥에 찧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재앙 그 자체다. 그 앞에서 어떤 논리도, 설득도,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그저 분노한 하늘에 제사를 지내듯이 일방적으로 용서를 청할 뿐이다.
“내일 청문회에서 담성그룹과 얽혀 저지른 모든 비리를 폭로해라. 실제로 네가 알고 있는 것의 배 이상으로 부풀려라. 비리 금액이든 연관된 담성그룹 임원의 수든, 그들이 따로 빼돌린 돈이든 뭐든 배 이상으로.”
“알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증언이 흡족하다면 한 번은 살려줄 것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족까지 모두 죽이겠다.”
“반드시 뜻대로 하겠습니다!”
강석현은 끝도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상대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강석현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언제 사라졌는지, 최형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그제야 강석현은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자기 목숨이 제일 중요한 인간이지. 신념 따위는 없는.”
돈에 사명감을 팔아넘긴 인간이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본인의 생명이자 안락함이다. 돈에 넘어가 자신의 본분을 저버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본인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방증이므로.
담성그룹과 수십 년 동안 방산비리를 저지르며 수백억 대의 재산을 챙긴 참모총장. 본인의 목숨을 향한 애정의 크기는 그 이상이리라.
호텔을 흘끗 올려다본 최형식은 성큼성큼 그 자리를 이탈했다.
다음 날, 청문회는 개시부터 폭탄이 터졌다.
“장태준 전 팀장의 증언은 모두 사실입니다. 저는 임의로 전투지휘권을 빼앗아서 레이드 종결을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국방부가 담성그룹에 잘 보이기 위해서 임의로 추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담성그룹이 레이드 실패로 인해 실추된 이미지 회복을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입니다.”
강석현 참모총장은 언제 발뺌했냐는 듯이 하룻밤 만에 모든 태도를 바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담성그룹과 국방부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군납 비리는 모두 사실입니다. 적어도 30년 이상, 담성그룹은 국방부와 비밀리에 제휴하여 방산 비리를 저질러 왔습니다. 납품가를 일부러 올리고 리베이트를 제공하거나, 혹은 경쟁력을 가진 타 방산업체를 의도적으로 도산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제가 그 과정에서 모두 개입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비리 규모만 적어도 100조 원이 훌쩍 넘습니다.”
아마 지금쯤 담성그룹 회의실에서는 이형원 부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저거 미쳤나!’하면서 테이블을 부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석현은 물론 담성그룹이 무서웠다.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떠올리면 가슴을 죄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일단 살고 봐야지.’
최형식은 공권력이나 여론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판단만으로 사람을 죽인다.
여기서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하고 확실하게 죽는다.
과연 그의 눈을 피해 다닌다고 안전할 수 있을까? 가족들은 어떡한단 말인가?
‘이 판을 아예 처음부터 헝클어뜨려야 한다.’
무턱대고 내지른 진술이 아니었다.
담성그룹과 국방부에 대한 포문을 사정없이 열어 퍼붓는다면, 여론은 충격과 공포,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인지도도 그에 따라 급부상하여, 담성그룹으로서도 섣불리 손을 댈 수 없게 된다.
최형식의 자비도 받고, 담성그룹도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예 철저히 담성그룹을 물어뜯는 악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밤새도록 고민한 끝에 내린,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방산비리에 관련된 담성그룹 인사는 신석진 전무, 최태식 상무, 강경일 상무, 조오팔 이사, 박두한 이사…….”
강석현은 어젯밤에 정리한 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군납 비리에 관련된 모든 인사들의 명단을 읊었다. 아예 밤새 직접 프린트로 정리된 내용을 의원들 앞에서 읽어 내려갔다.
그들이 따로 챙긴 횡령 수익은 생각나는 대로 대충 적거나 혹은 부풀려서 적었다. 제일 작은 규모가 90억 원에 달했다.
한 명이 챙긴 횡령 수익의 규모 중 제일 작은 게 90억 원이라는 뜻이다. 물론 강석현이 임의로 부풀려서 대충 적은 금액이었다.
어차피 진술을 통해 담성그룹에 대한 여론에 분탕질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숫자가 굳이 정확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판을 크게 벌려야 자신이 살 수 있다.
최형식으로부터, 그리고 담성그룹으로부터.
살고 싶었다. 진실로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무모한 방향을 택한 것이다.
심문을 진행하는 야당 의원들마저도 강석현의 성실한 진술과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에 심히 당황했다. 그들은 강석현이 하루아침에 전향한 것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증인, 잠시 진정하시고……. 지금까지 말한 게 모두 사실입니까?”
“네, 저의 명예와 인생, 그리고 목숨을 걸고 감히 사실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증인이 진술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담성그룹 오너는 감옥에서 평생을 썩어야 할 겁니다.”
“법량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성심을 다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 앞에서 털어놓을 뿐입니다. 그것만이 제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이행할 수 있는 최후의 사명이자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비리 장성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국민 여러분 앞에서 최후의 고변을 할 뿐입니다.”
강석현은 잠시 말을 마친 이후, 마이크 옆으로 비켜서서 카메라 앞에 대고 허리를 크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돈에 눈이 멀어서 절대로 저질러선 안 될 짓을 저질렀습니다. 용서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수습을 위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바를 털어놓고, 성실히 조사에 협조하겠습니다.”
약간이나마 숙연한 분위기가 의원들 사이를 감돌았다. 여기저기서 대박이라는 환희를 감추지 못했다.
강석현의 진술이 사실이든 과장이든 거짓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청문회장에서, 온 국민이 보고 있는 앞에서, 육군 참모총장이 저런 진술을 했다는 사실이다.
제아무리 담성그룹이 언론사를 꽉 쥐고 있어도, 이 정도 스캔들이 터졌는데 출혈 없이 피해갈 수는 없다.
“방금 진술한 게 정말 사실인가?”
그때였다.
낯선 목소리가 청문회장을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자 복장을 한 훤칠한 키의 남자가 뚜벅뚜벅 강석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최형식을 본 강석현은 흠칫 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다잡고 말했다.
“모두 사실이오. 혹 내가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없는 사실을 지어낸 적은 없소.”
“이봐! 당신 누구야!”
“어서 끌어내!”
경호원들이 뒤늦게 달려들어 끌어내려 했다. 순간 최형식은 가장 앞에 있는 경호원의 멱살을 잡고 높이 들어올렸다.
90kg이 넘는 거구가 허공에서 버둥거리다가 십여 미터가 넘게 나가떨어지자 다들 그 자리에 못 박히듯 멈췄다.
“태, 탱커?”
찬물을 끼얹은 듯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최형식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차분히 회장을 둘러보았다. 호재를 만난 기자들은 신이 나서 정신없이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강석현 총장이 언급한 담성그룹 비리 임원들에게 몇 가지 요구 사항이 있다. 첫 번째, 지금 즉시…….”
최형식은 손날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일단 자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