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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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알아봐요! 어서요!”
변형택은 화가 나서 유정희를 닦달했고, 그녀는 서둘러서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과 연결되는 그룹 인맥을 닥치는 대로 동원해서 상황 파악에 들어간 것이다.
30분 동안 전화를 돌려 추가로 알아봤지만, 특별히 신통한 내용은 없었다.
“상대는 어제 각성한 힐러라고 하네요. 20대 초반 남자이고 원래는 할 일 없는 백수였대요. 그런데 힐러로 각성하자마자 바로 SNS에 글을 올리고 신문사를 찾아가서 자기 어필을 했대요.”
“자기 어필이요?”
“네, ‘조센징한테 천문학적인 돈을 퍼주고 치료를 받느니 차라리 같은 일본인인 나한테 1,000만 엔씩만 주고 치료를 받는 게 돈도 아끼고 애국하는 길이다.’라고…….”
“…….”
“그, 그 힐러가 한 말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에요. 제가 한 말이 아니에요.”
변형택은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제안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도 금액을 낮춰서 받읍시다. 900만 엔, 아니! 500만 엔 이하로요!”
“그건 우리가 멋대로 결정할 수 없어요. 최소한 회사 승인은 받아야 해요.”
유정희는 본국과 이야기를 한 끝에, 경쟁자가 제시하는 가격의 80% 선에서 가격을 정하라는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예약된 고객들에게 인하된 금액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800만 엔으로 낮아진 금액에도 불구하고, 예약 고객들은 일방적으로 진료를 취소했다. 그 이유는 이른바 괘씸죄였다.
―조센징 힐러는 지금까지 한 번 치료할 때마다 몇 억 엔이 넘는 거금을 받아 챙겼다.
―사실 치유 자체가 조센징 힐러에게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닌데도, 일본에 힐러가 없다는 이점을 이용해 악랄하게 부당한 폭리를 챙겼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조센징 힐러의 폭리 행태가 괘씸해서라도, 몇 백만 엔을 더 지불하는 걸 감수하고 우리 일본인 힐러에게 치유를 받아야겠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치유가 필요했던 일본 부유층 사이에는 수억에서 10억 엔을 상회하는 값비싼 가격에 이미 나름대로 불만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만 천만금을 주고서라도 불구나 장애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새로이 각성한 일본인 힐러가 1,000만 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들고 나오니, 거기에 힘을 실어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바뀐 것이다.
“……다 끝났어.”
변형택은 망연자실해져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본에서 힐 장사로 거금을 벌어들이는 것은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힐을 원하는 부유층은 번호표까지 받아들이고 대기 중이라고 했다.
여기에 최소 수억 엔 이상이라는 거액에 감히 명함도 못 내밀던 중산층 이하 소비층에서도 새로 각성한 일본인 힐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불구나 장애를 고치는데 1,000만 엔(1억 원) 정도라면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돌아가요.”
변형택은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유정희가 그런 그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수천억 원 이상 벌었잖아요. 그걸로 위안을 삼으세요.”
변형택은 이를 악물었다.
짧은 투어 기간 동안 3,000억 원이 넘는 돈을 번 것은 사실이지만, 그중 자기 몫은 1,000억 원에 조금 못 미친다.
한 달만 더 늦게 일이 터졌어도, 수천억 원을 더 벌어들일 수 있었는데.
그 점을 생각하면 억울해 미칠 것만 같았다.
“초반에 잠깐 반짝였다가 금방 끝날 한철 장사인데…… 그게 언제까지나 계속 될 줄 알았나.”
유지웅은 변형택이 쓸쓸히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혀를 찼다.
본래 역사에서도 초기 시절 힐러는 외상으로 인한 장애 치유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긴 했다.
아주 극초반, 극소수의 힐러만이 잠깐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이었다.
힐러 수가 늘어나면서, 천문학적인 치유 비용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거마비 정도에 그치는 수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불과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아주 적은 수의 힐러만이 초반에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평균적으로 수천만 달러 정도였다.
그마저도 레이드가 활성화되면서 다른 힐러들도 금방 따라잡아, 초기에 치유로 꿀을 빤 세대를 굳이 구별해야 할 의미가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변형택 그 친구는 지금까지 2,000억 원 가까이 벌었으니까 뭐…… 그 정도면 꽤 많이 번 거지.”
“보통 힐러가 레이드 한 번에 1.5억 정도 벌고 세금은 안 내니까 몇 년 정도 열심히 레이드 하면 변형택 힐러 정도는 금방 따라잡겠네.”
“그래도 몇 몇 힐러는 초기에 꿀 빨 수 있었는데, 일본 힐러가 너무 일찍 판을 깨버렸네.”
1,000만 엔. 원화로는 1억 원, 미화로는 10만 달러.
일본 힐러는 변형택보다 1/100의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치유 서비스에 대한 기준점을 확 낮춰 버렸다. 앞으로 세계 어디에서 힐러가 각성을 하든, 10만 달러보다 더 많은 돈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이상으로 돈을 낼 바에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것을 택할 것이고, 그 점을 의식한 다른 힐러들도 그 이하로 낮춰서 돈을 받을 테니까.
그리고 힐러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 기준점에서 또 가파르게 떨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일본 힐러는 힐 서비스 가격의 하향평준화를 일찍 앞당겨 버린 셈이었다.
“담성그룹 계열사 장부 열람으로 털어버린다는 건 잘 돼가고 있어?”
“계획대로 돼가는 중이야. 지금 담성그룹 계열사들은 장부 조사 받느라고 다들 정신이 없어. 거의 업무 마비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제대로 털면 우수수 쏟아질 테니까. 가뜩이나 대처해야 할 놈들이 구치소에 처박혀 있으니, 원. 쯧쯧.”
유지웅은 어깨를 으쓱하며 혀를 찼다.
“어떻게 된 게 여기 헬조선은 우리가 살던 대한민국보다 더 지옥인 거 같아. 그래서 국명도 헬조선이라고 하나 봐.”
“지웅아, 내가 그거 좀 알아봤는데. 사실 알고 보니까 헬조선이라는 것은…….”
“아, 잠시만. 야당 원내대표 연락 왔다. 지금 우리집에 들어왔대.”
유지웅이 말을 끊자 정효주도 의아해서 반문했다.
“야당 원내대표? 우리집에 왔다고?”
“응, 이야기할 게 있어서 내가 집으로 불렀어. 너도 같이 만날래?”
“그래, 알았어.”
잠시 후 야당 원내대표가 수행원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서재로 들어왔다.
유지웅의 저택을 처음 방문하는 그는 어린아이처럼 여기저기서 신기하다는 눈길을 떼지 못했다. 수행원 자격으로 온 측근 의원들과 보좌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아이고, 반갑습니다. 유지웅 의장님. 이렇게 귀한 곳에 누추한 저희를 다 초대해 주시고…… 정말 영광입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원내대표인 백춘호 의원은 저택에 대한 찬사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의장님의 저택이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방문해서 눈으로 보고, 또 내부까지 들어오니 그 말이 절대 과한 게 아님을 알겠습니다. 뒤뜰을 전용 공항과 전용 격납고로 꾸미고 관제탑까지 놓은 저택은 아마 의장님의 저택이 전무후무할 겁니다.”
“하하, 요즘 좀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 치고 마당에 활주로 안 깔아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적어도 부자라면 활주로가 깔린 저택은 기본 옵션으로 가져가는 거지요.”
눈도 한 번 깜빡하지 않은 채 진심으로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 백춘호 의원은 속으로 두려운 감정마저 느꼈다.
‘이 사람의 머릿속은 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가.’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인 줄 모르고 덤볐으니, 여당과 재벌, 그리고 행정부에서 그렇게 깨진 게 당연했다.
백춘호는 야당만큼은 절대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저번에 말씀드린 레이더 통제 법안 말입니다.”
“네, 수정해서 통과될 분위기라고 들었는데요.”
“예, 아무래도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레이더에 대한 관리와 통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어서…… 백신 공격대가 임시 의사당에 쳐들어와서 우리 모두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못한다는 게 내부 중론입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엄격한 비밀입니다.”
레이더 범죄자들을 예방하고 통제하며, 효과적으로 체포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중점을 둔 법안. 재계에서 자신 있게 밀어붙였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잠시 계류 중이었다.
최형식이 거리낌없이 날뛰고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야당 의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법안 통과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최형식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까지 여론에는 반대 입장인 척 비밀로 부치고 있었다.
“전 그 법안은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예?”
백춘호는 의아해서 유지웅의 눈치를 살폈다.
그도 레이더인 만큼 자신을 구속할 수도 있는 법안 통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추측이 어긋났다.
“그러니까 레이더 능력으로 테러 범죄 같은 것만 저지르지 않으면 그 법안이 저한테 구속력을 발동할 일은 없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 그렇습니다만. 어쨌거나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어차피 제가 작정하고 날뛰면 그깟 법률 조항으로는 아무것도 못 막습니다, 하하.”
“…….”
“설마 제가 최형식보다 약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제가 한다면 최형식보다 더 잘할 자신 있습니다.”
유지웅이 웃으면서 물어보자 백춘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금방이라도 유지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백신 공격대 가입이나 지지를 선언하는 것은 아닌지, 정수리가 뾰족하게 곤두섰다.
“뭐, 레이더 통제 법안은 사실 제가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여차하면 국가의 부당한 구속과 통제에 저항한다는 명분으로 내걸고 내전을 벌일 명분이 되니까, 오히려 그런 ‘귀여운’ 족쇄쯤은 놔두는 게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요.”
“내, 내전이요?”
백춘호는 물론이고 수행을 위해 따라온 다른 의원과 보좌관 역시 화들짝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아, 그렇잖아요? 나중에 짜증이 막 치밀어 올라서 한 번 들어 엎고 싶은데, 그러니까 제니스 타운을 거점 삼아서 내전 한 번 화끈하게 벌여서 국가를 리부트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들고 일어서자니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을 거 같은 그럴 때, 이런 ‘족쇄 법안’이 있느냐 없느냐가 내전 명분 만들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요.”
“…….”
“적당히 국회와 청와대에 공작해서 법안 가지고 살살 장난치게 만들면 들고 일어날 명분이 되잖아요.”
“그, 그것은 내란입니다!”
“괜찮아요. 제가 그런 전개까지 고려할 정도면 이미 나라가 망했거나, 차라리 망하는 게 더 낫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삼각관계 썰을 풀듯이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에, 백춘호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 대단한 재벌들이 유지웅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소모임 회식만 다녀오면 벌벌거리는지 그 비밀을 조금이나마 엿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