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6)
00126 니 안에 뭐 있다 =========================================================================
호송 도중 유지웅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옆을 더듬었다. 부드러운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 정효주였다.
“괜찮아?”
그녀가 나지막하게 끄덕였다. 얼굴이 발갛게 변해 있었다. 그제야 그도 기억났다. 짐승처럼 서로 엉켰던 순간이.
‘왜 그랬지?’
창피함이 밀려 왔다. 변명할 말은 많다. 이성이 날아가버리고 몸이 갑자기 뜨거워져서 저도 모르게 그랬다고.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그렇다 해도 공개적인 야외에서 섹스했다는 수치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대원들이 다 본 거 아냐?’
아무래도 정효주도 그거 때문에 얼굴이 저리 붉어져 있는 것 같았다. 유지웅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살피다가, 차량 한쪽에 앉아 있는 쿤겐을 발견했다. 그녀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쿤겐.”
나지막하게 부르자 그녀가 바로 눈을 떴다. 잠귀가 매우 밝은 모양이었다.
“써, 정신이 드셨습니까?”
“저기, 어떻게 된 거예요?”
“히카리는 일본 쪽으로 도주했습니다. 듣기로는 정부군 진영을 덮치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 이상 자세한 정보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 상황이 지금 심각한 재난 수준이라서요.”
“아아…….”
결국 쓰러뜨리진 못했구나.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욕심 내지 말자. 살아남은 게 어딘가?
‘아!’
그제야 생각났다. 히카리한테 밟혀 죽은 딜러 말이다.
“공격대 사망자는요? 사망자는 어떻게 됐죠?”
“히카리 도주 후 시신들을 수습했습니다.”
“시신들?”
“사망자가 두 명 나왔습니다. 한 명은 제니스 공격대 이정희 딜러, 다른 한 명은 정부 파견인 고재혁 딜러입니다.”
그가 죽는 것을 목격한 딜러는 제니스 공격대 딜러였다. 그는 대원의 죽음에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고재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어도…….”
“인간의 한계입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써.”
유지웅은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겪은, 자기 정공 소속원의 죽음이 가슴을 무겁게 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앞으로 어떡하면 좋을지 막막했다. 유족들에게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정효주가 그를 쿡쿡 찔렀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소리 없이 쿤겐을 가리켰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발개져 있었다. 그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저, 쿤겐. 혹시 아까 우리…… 봤나요?”
“아, 네.”
“봐, 봤다고요?”
“굉장했습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캡틴이 남자다운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존경합니다, 써.”
그런 건 존경 안 해도 돼! 정효주의 얼굴은 아예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 그럼 다른 사람들도 다 본 거예요? 고글로 소리도 다 들리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서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미스 정이 반격할 때 충격파로 고글도 고장이 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설마 그 와중에 두 분이 교미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으아악! 교미라니! 무슨 말이 그래요!”
“아, 단어가 틀렸나요? 제가 한국어에 아직 익숙치 않아서.”
거짓말! 평소에는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잘 하면서!
“아무튼 처음 봤습니다.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부탁할게요. 그리고 교미가 뭐예요? 고상한 단어도 많이 있잖아요.”
“이를 테면 어떤? 제가 한국어에 익숙치 않아서.”
“……알아서 찾아봐요.”
정효주를 보니 그녀는 살았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쿤겐 말고는 본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니, 이보다 다행일 수가 있을까.
철수를 완료하고 공격대 분위기를 살펴 보았다. 첫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인지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사망자와 친분이 있던 이들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슬퍼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격대 결속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 사망자가 나온 것은 괴수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었고, 레이드 투입이 수익을 위한 공격대장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의무였기 때문이었다. 보통 수익을 위한 레이드 도중 사망자가 나오면 아무래도 공격대 분위기는 와해되기 쉽다.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살려내요! 살려내! 으아앙!”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들이 대성통곡했다.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울다가 가슴을 잡고 쓰러졌다. 유지웅은 공격대장으로서 꿋꿋하게 그들을 위로했다.
“절대 그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정희 딜러는 제니스 소속이었다. 때문에 유지웅은 공격대 내규에 따라 유족에게 자기 돈에서 600억 원을 지급했다. 본래는 200억 원만 줘도 되지만, 대원들의 사기를 고려해서 400억을 얹어서 지급했다.
마음 같아서는 1,000억 정도 주고 싶지만, 다른 사망자가 나올 경우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그만큼만 주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망자가 다수 나올 경우 모두에게 600억씩을 주는 것도 어렵다. 그때는 200억만 주게 될 수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미묘해서 금액을 올리는 것은 쉬운데 일단 올라간 금액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 그걸 생각하면 200억만 주고 끝나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첫 사망자라는 것 때문에 좀 더 신경을 쓴 것이다.
「히카리, 일본에 다시 상륙.」
「도쿄 주둔 정부군, 히카리의 습격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 입어.」
「히카리의 재상륙에 일본 극우 웃다.」
종군 기자 등을 통해 어렵사리 전해진 일본 소식에 세계는 다시 한 번 놀랐다. 특히 한국의 활약에 찬사를 보냈다. 한국인들은 비록 히카리를 섬멸하진 못했어도, 일본도 막지 못한 괴수를 한국 공격대가 쫓아냈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히카리와 일본 때문에 여전히 동아시아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하지만 유지웅은 거기에 정신을 팔 여유가 없었다. 정효주가 어떻게 히카리를 물리쳤는지 조사하던 중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50,030.”
결정도 감정 장비의 수치를 보고 둘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감정장비는 녹서스의 돌이 정효주에게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얼마 전 암시장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그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넘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감정을 해보니까 무려 50,030이라는 수치가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도 오만이네.”
“…….”
유지웅도 결정도가 5만이라고 측정된 것이다. 즉 단순계산으로 5조짜리 결정체가 그들의 체내에 각각 있다는 뜻이 된다.
“녹서스의 돌 결정도가 얼마라고 했지?”
“10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딱 합치면 10만이네. 아, 근데 뒤에 붙은 30이 왠지 마음에 걸려.”
“……설마 녹서스의 돌이 둘로 나뉜 거야? 그럼 그때 네 등에 내 손이 달라붙으면서 나한테 옮아간 거?”
“그렇지 않을까?”
“그럼 왜 그 전에 네 몸 검사할 때는 아무 반응이 없었던 거야? 당연히 10만이라고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아니?”
미국한테는 녹서스의 돌 따위 모른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빵빵 쳤는데, 지금까지 정효주의 몸 안에 있었다. 아무래도 칼리타에게 그녀가 먹혔을 때 흡수된 모양이다. 그렇다면 휴스턴을 날렸다는, 녹서스의 돌을 주워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 괴수는 대체 어떤 녀석인가?
“아! 그러고 보니 기억 나? 시골에 내려갔을 때 뱅가들이 서로 잡아먹다가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랭가로 변했잖아.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혹시 괴수들이 서로 잡아먹으면서 결정체가 커지는 거 아닐까?”
“결정체 25짜리 옐로 몹 200마리가 서로 잡아먹으면 5,000짜리 레드 몹이 된다는 거니?”
“그럴 듯 하지 않아?”
“그럼 휴스턴을 날린 몹은?”
“레드 몹끼리 서로 잡아먹었다면?”
“…….”
그럴 듯한 논리에 정효주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참 답답했다. 의심이 가지만 어디 함부로 확인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럼 왜 녹서스의 돌이 나한테만 있었을 때는 감정장비가 반응을 안 보인 걸까?”
“글쎄…….”
“그리고 옐로 몹이 서로 잡아먹고 레드 몹이 된다는 거 말이야, 네 생각이 맞다고 쳐. 그럼 결정체 색은 왜 변하는 걸까?”
“혹시 결정도가 일정 이상 융합되면…… 아! 녹서스의 돌은 블루 결정체 수십 개를 융합해서 겨우 만든 거라고 했어! 이제 더는 만들 수 없다고 말이야. 맞다! 단지 블루 결정체 수십 개를 합쳐 놓은 게 아니라고도 했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심하자 뭔가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단서가 너무 없었다. 조금만 더 정보가 주어지면 뻥 하고 뚫릴 것 같은데…….
“아무튼 녹서스의 돌을 우리 둘이 나눠 갖고 있다는 거네. 그리고 이제는 감정장비로 검출이 가능하다는 거고.”
“그렇지.”
“감정장비 범위가 얼마였지?”
“1미터인가? 2미터인가? 아무튼 바로 근접일 걸?”
“……그나마 다행이구나.”
정효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지웅도 따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슐 씨가 뭐라도 좀 알아내면 좋을 텐데.”
“나 같이 FM하게 네가 허락해주면 좋아서 더 열심히 조사해주지 않을까?”
“절대 안 돼!”
“왜에, 돈 부족한 것도 아닌데? 나 돈 많잖아.”
“너 게임에 빠져서 가정 등한시하는 남편, 아내 기사에서 못 봤니? 난 그 꼴 못 봐. 절대로 안 돼.”
그게 이유였다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다. 유지웅은 크게 낙심했다.
히카리와 일본 내전 상황은 어느 나라 국민이든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찾아보고, 또 제일 먼저 보도되는 소식이었다. 세계 1위의 결정체 수입 국가인 일본의 내환은 세계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정체뿐만 아니라 정밀부품 수출에도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라, 일본 부품에 의존하는 많은 국가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또 상호 무역 의존 관계도 상당한 터라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손해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아시아에서 일본의 공백을 대행할 수 있는 유일한 첨단산업국가로서 일부 기업들은 오히려 활황을 이루기도 했다.
물론 그런 사정은 유지웅의 관심 밖이었다. 지금 그는 보험사 때문에 한창 속을 썩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아, 왜 돈을 안 준다는 거예요? 여기 보험 들어놨잖아요. 보험료도 꼬박꼬박 냈잖아요? 이거 내가 가진대요? 우리 사망한 대원 유족한테 줘야 할 돈이라고요!”
“고객님, 여기 보험 계약 조항에 보시면 공격대의 자발적인 상업용 레이드에서 사망한 경우여야 보험사고에 해당이 됩니다. 사망하신 이정희 분께서는 거기에 해당이 되지 않으세요. 법적으로 이정희 분께서는 제니스 공격대 레이드 도중에 사망하신 게 아니니까요.”
“아니, 히카리 막으려고 내가 제니스 대원들 끌고 갔는데 그게 제니스 레이드가 아니면 뭐라는 건데요?”
“표면적으로 제니스 공격대 대원들께서 주도하시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법적으로는 국가가 소집한 동원 공격대이지, 제니스 공격대는 아니었으니까요. 죄송합니다만 관련 판례도 이미 나와 있고 사안이 너무 명백해서…….”
말은즉슨 이렇다.
대부분의 정공은 레이드 사망보험을 들어둔다.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정공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레이드에서, 정규 인원이든 임시 인원이든 간에 해당 정공에 참가한 대원이 사망해야 한다. 즉 제니스 공격대의 레이드에서 제니스 공격대 소속으로 참가한 인물이 죽었을 때, 보험 처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히카리 레이드는 법적 성질을 따져 보면 제니스 공격대의 레이드가 아니었다. 국가에서 편의상 제니스 공격대 ‘소속원’ 전부를 소집한 것뿐이다. 제니스 공격대가 대부분을 주도하긴 했지만, 민간 정공이 아니라 ‘국가 동원 공격대’의 레이드였던 것이다.
이 경우는 당연히 ‘제니스 공격대’의 레이드가 아니라 ‘국가 동원 공격대’의 레이드이므로 보험책임이 없다는 것. 지나치게 보험사에 유리한 해석이라며 많은 반발이 있지만, 실제로 관련 판례도 이미 여러 번 나왔다.
유지웅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와, 그냥 자그마한 보험 계약이라고 변호사 없이 내가 혼자 들었더니,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치시네. 알았어요, 알았어. 그깟 200억 내가 그냥 주고 만다. 지금까지 낸 보험료가 몇 억인데 그걸 입 싹 씻으려고 하시네.”
“죄송합니다.”
“됐어요. 나 일성보험이랑 거래 끊을래요. 공격대 보험 바로 해지해주시고, 건강보험이랑 화재보험, 노후보험, 차 보험 들어둔 것도 싹 해지해줘요.”
“고객님. 잠시만요. 저희측에서 좀 더…….”
“됐어요. 나 딴데 보험들 거야. 아니! 그냥 내가 보험사를 하나 사고 말지! 여기랑 안 해! 진짜 날강도네.”
아직 파릇한 스무 살은 그렇게 보험사의 갑질을 처음 겪고 큰 상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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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을 흘려 넘기지 마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