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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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가 더 재미있다고?”
유지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상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갑자기 전투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딜러와 가드 탱커, 힐러까지 가세하면서 본대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어림잡아도 200명은 넘어 보인다. 아무래도 예비대 전력을 상당수 끌어온 모양이다.
“장 팀장님이 갑자기 왜?”
아나운서의 설명을 보니 아무래도 장태준이 지금 총지휘권자인 듯했다. 그렇다는 것은 예비대 전력까지 긁어온 것은 장태준의 결정이라는 뜻이 된다.
“빨리 끝내려면 틀린 선택은 아니지만…… 원래 안전을 제일 중요시하는 사람 아니었나? 이렇게 딜러가 많으면 어그로 관리가 힘들 텐데.”
어그로 관리라는 것은 딱히 특별한 방법이 없다.
딜러들 개개인의 감, 혹은 측정된 공격 횟수나 농도 등으로 어림잡아 계산해서 딜을 조절할 수밖에.
원래 시간축에서는 어그로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이 존재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십 년 간 축적된 빅 데이터를 토대로 어림잡아 추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 정도로 강한 탱커가 1분 당 어느 정도의 공격을 몇 번 했을 경우’ 어느 정도의 어그로가 축적되는지를 누적 데이터에 기반해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이다.
딜러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착용한 장비의 종류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말 그대로 어림짐작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보통 딜러들에게 최대한 보수적으로 딜을 하라고 요구하는 게 관행이다. 때문에 순수한 딜만으로 어그로가 튀는 경우는 잘 없다.
“지금 여기 딜러들은 어그로 개념이 희박하니까 지휘자가 알아서 조절해줘야 하는데.”
팀을 짜거나 딜러마다 번호를 붙여서 일일이 딜을 시작해라, 잠시 멈춰라, 그런 지시를 내려줘야 한다.
저렇게 딜러를 몽땅 투입하면 아무리 머리가 좋은 지휘자라 해도 헷갈릴 테고, 그러다가 실수로 과도하게 딜을 넣는 이가 나올 수 있다.
“세키루는 어그로 튀는 적한테 저절로 가시가 날아가는 기술이 있으니까 말이야.”
“이미 그 점은 알아차렸으니까 알아서 잘 대응하게 돼. 안심하고 봐봐. 생각보다 재미있어.”
“알았어.”
그리고 괴수가 쓰러지는 순간까지 영상을 모두 지켜보고 난 유지웅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말이 돼?”
“후후, 재미있었지?”
“아니,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 60명이 넘는 원딜이 한꺼번에 공격하는데 어떻게 한 명도 가시 반격에 안 맞을 수가 있어?”
“나도 신기하더라. 가드 탱커가 보호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건 가시 반격 자체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유지웅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본래 시간축에서도 세키루는 그다지 난이도가 높은 괴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그로 관리가 쉽지 않은 까닭에, 딜 조절을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보통 10번 레이드를 하면 한두 명은 가시 반격에 당해서 기절하곤 한다.
때문에 가시 반격에 당해서 기절하는 딜러가 나와도 크게 탓하지 않는 분위기다.
25인 공격대, 17원딜 기준으로도 그럴 진데, 64명이나 동원했는데도 한 명도 가시 반격에 당하지 않았다니?
“딜 조절을 정말 완벽하게 했어. 64명이나 되는 딜러들한테 일일이 딜 조절을 시킨 거야.”
“그러네. 자세히 보니 번호 붙여서 일일이 딜을 해라 말아라 지시를 내리고 있네.”
“딜러들은 자기 감 따윈 없어. 그냥 장 팀장님이 딜하라고 하면 딜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고 있어.”
딜러들의 공격조절 결정권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장태준이 시키는 대로 기계부품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임의로 딜 시작, 딜 중지를 하는 것도 아니야. 오더 내리는 대상이 전부 뒤죽박죽이야.”
1번에서 10번까지 딜을 시키고, 11번부터 20번까지는 중단시키고, 그런 로테이션을 반복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로테이션의 반복으로 어그로 조절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에 달렸다.
개개인마다 순간 딜, 지속딜, 심지어 공격 속도마저 전부 다르기 때문에 어그로가 쌓이는 게 제각각이다. 여기에 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들어갔는지, 빗나가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도 전부 따져봐야 한다.
“리카운트(recount)도 없는 세상인데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리카운트란 누적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전황을 수집하여 추정 어그로를 계산해주는 경보 프로그램을 말한다.
괴수의 속마음을 읽는 게 아니라 정황을 토대로 추정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정확하지 않다.
그 정확도는 대충 65% 정도다. 때문에 딜러들은 리카운트에 나타난 수치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어그로 관리를 한다.
“이건 무슨 꼭 눈에 리카운트라도 설치한 것 같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 장 팀장님, 정말 대단한 분 아니야?”
“그저 직감만으로 이 정도 전투 지휘가 가능하다면…… 정말 한낱 전술사무장으로 남겨둘 그릇이 아니야.”
국제공격대연합의 전술사무장이라는 자리만 해도 사실 엄청난 것이지만, 유지웅한테는 성이 차지 않았다.
“이런 분한테는 더 큰 역할을 맡겨드려야 해.”
본래 시간축에서는 왜 이런 재능이 두드러지지 않았는지, 유지웅은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가 퍼뜩 어떤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사실은 원래 세상에서도 저랬었는데 내가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맞아! 사실 장 팀장님이 레이드 지휘를 하면 정말 물 흘러가듯이 매끄럽게 전개가 되곤 했었어!’
유지웅은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장 팀장님이 지휘 능력 면에서 너무 고수이다 보니까 허접 초보 하수들 데리고 하는 전투에서 그 진가가 극대화돼서 드러난 거야! 맞아, 틀림없어!’
어쨌거나 장태준이 지닌 장점이 이런 식으로 드러난 것은 기쁜 일이다.
앞으로 연합 전술사무국이 많이 바빠질 것 같다.
제니스 타운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어느덧 인구가 400만을 돌파하며 부산을 제쳤다. 인구수로만 따지면 서울 다음 가는 대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서울의 절반도 되지 않아 무턱대고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400만 인구의 대부분이 50세 이하의 젊은층이라는 사실을 알면, 누구나 놀라게 된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인구만 따졌을 때 400만이다. 탈모 치료를 위해 찾는 이들까지 합치면 1,000만은 거뜬히 넘어간다.
해외 탈모 환자들은 최소 9박 이상 일정을 잡고 제니스 타운을 방문한다. 그들은 탈모 치료 전에 반드시 제니스 팰리스를 들러 합장을 하며 쾌유를 기원한다.
이른바 ‘반짝반짝 인사’라는 의식이다. 참고로 이 의식의 이름은 순수한 한국어로 지어졌으며,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한국어로 ‘반짝반짝 인사’라고 부른다.
“근데 왜 좋고 좋은 우리말도 많은데 하필이면 반짝반짝 인사라고 붙은 거야?”
“한국어 초급 배우는 미국놈이 지은 이름이 유명세 타서 그렇게 붙은 거라든데.”
“하여튼 미국놈들은!”
경건한 의식을 치른 뒤 그들은 다음에 제니스저축은행 카드발급소를 들러 체크카드를 발급받는다. 그리고 계좌에 치료비를 이체한다.
치료비는 일 년에 299만원.
풍성의 운명을 타고 난 이들은 폭리라고 하지만, 이미 탈모 치료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이들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반박한다.
“니들이 탈모의 고통을 알긴 해!”
“일 년에 겨우 299만 원을 내는 것만으로 탈모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재물을 바치겠어. 근데 재물이 맞아, 제물이 맞아?”
“돈이라는 의미라면 재물, 제사 제단에 바치는 공양물이라면 제물.”
“어느 쪽을 쓰든 말이 되는군. 한국어는 참 어렵고 오묘한 거 같아.”
299만원이면 약 2,990달러다.
하지만 정확히 2,990달러만 넣어두는 이는 거의 없다.
탈모 환자들 사이에서는 제니스저축은행에 얼마나 많은 돈을 충전, 아니 예치해두느냐를 놓고 신앙심을 나타내는 척도라는 문화가 있었다.
그 시초는 어떤 영국인이 SNS에 올린 제니스저축은행 계좌 잔액 인증샷에서 시작되었다.
「잔액 : 299,000달러.」
―29만 9,000달러라니. 이거 실화임?
―원화로 거의 3억이나 되는 돈이네. 아니, 대체 이 많은 돈을 왜 넣어두는 거야?
―금수저 인증이네. 서럽다, 서러워.
원화로 3억 가까운 돈을 일시에 예치한 인증에 돈 많아서 좋겠다는 비아냥거림이 달렸다.
하지만 곧 인증자가 밝힌 사연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 한 채 담보 잡혀서 대출 받은 거 몽땅 넣어둔 거다. 아주 못사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엄청 잘 사는 편도 아니야. 말 그대로 내가 가진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다.
―아니, 왜 전 재산을 한꺼번에 넣어둔 거야? 일 년에 2,990달러면 되는데!
―내 나이 이제 30, 하지만 지금 우리 인류는 100세 시대를 맞이했지. 앞으로 70년은 더 살아가야 할 텐데 그 70년의 세월 동안 풍성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각오 때문에 몽땅 다 넣어둔 거다.
29만 9,000달러 예치 인증자는 한없이 진지했다.
―제니스저축은행에 넣어둔 것은 허영이 아니야. 그것은 내 인생이자, 미래이며, 목숨이다. 바로 모발이라는 것이지.
―아아…….
―(왈칵)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해, 브라더! 너를 부모 잘 만난 맘 편한 금수저라고만 생각한 나를 비난해 줘!
남은 인생을 풍성하게 살아가기 위한 각오를 넣어뒀다는 말에는 부자고 서민이고 한 마음으로 숙연해졌다. 적어도 탈모인이라면 다들 그러했다.
―그런데 70년 더 살 거라면서 왜 100년치를 넣어둔 거야?
―물가 상승을 생각해서 넉넉하게 넣어뒀어.
―아아, 역시! 선견지명이 대단해!
―제니스 병원 탈모사업부에서 1년치만 예약을 받지 말고 70년치도 받아주면 좋을 텐데. 내가 건의해보겠어.
―지웅신이라면 반드시 우리의 그런 소원을 들어주실 거야.
여하튼 그런 사연 때문에 저축은행 계좌를 틀고, 다들 몇 년 치 이상의 치료비를 미리 넉넉하게 넣어둔다.
그 뒤 영리병원을 들러 탈모 치료 시술을 받고, 다시 제니스 팰리스를 찾아 풍성해진 머리를 인증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이 과정에서 인종, 종교, 국적을 넘는 우정을 쌓는 이들도 있고, 눈이 맞아 사랑을 틔우는 이들도 있다.
그 후에 남는 시간 동안 이들은 이왕 한국에 온 김에 제니스 타운을 비롯해서 관광을 즐긴다.
최대한 많은 돈을 쓰고 가는 것이 탈모의 저주를 풀어준 유지웅을 위한 예의이자 존중이며, 공양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빅브라더, 비록 저는 오늘 돌아가지만 내년 이 때쯤 모발 충전을 위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가끔 중간에도 인사드리러 들리겠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 그들은 한 번 더 제니스 팰리스를 찾아서 인사를 올린 후 비행기나 배를 탄다.
제니스저축은행장은 기자 인터뷰에서 다음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탈모 시술비 결제를 목적으로 우리 은행에 계좌를 튼 고객은 국내외를 포함해서 약 1억 8,000만 명입니다. 그리고 총 예치금액은 약 1,800억 달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