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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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서재를 침입한 낯선 이의 얼굴을 확인한 겐이치로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는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상대는 바로 유지웅이었던 것이다.
“혹시 한국어 할 줄 알아?”
겐이치로는 젊은 시절, 한국 출신 유학생과 불타는 사랑을 했던 경험이 지금처럼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적인 해외 유학생과 열렬한 사랑을 맺기 위해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붙잡고 끙끙대며 한국어를 배웠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예. 조금 할 줄 압니다.”
“오, 조금 할 줄 아는 정도가 아닌데? 발음만 좀 더 다듬으면 우리나라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도 믿겠어?”
구글 번역기 앱을 막 켜고 있던 유지웅은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혹시 재일교포? 뭐 그런 거야?”
“아닙니다. 한국 유학생과 사귀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하, 그렇군. 나중에라도 그 여자 만나게 되면 감사 인사 꼭 해. 덕분에 몇 대 맞고 시작할 거 생략하고 평화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잖아.”
“때, 때릴 생각이었습니까?”
“내 말 못 알아들었으면 내가 누군지 이해 못했을 테고, 그럼 부하들을 불렀을 테고, 난 살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몽둥이를 휘둘렀을 테지. 눈앞에 보일 듯이 그런 풍경이 그려지지 않아?”
“…….”
겐이치로는 ‘살생’이란 단어에 기겁했다.
“한국말, 못했어도 알아봤을 겁니다. 우리 조직원 중, 빅브라더 얼굴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빅브라더…… 내가 일본 야쿠자 두목한테 그렇게 불릴 날이 올 줄이야. 오이오이,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렇지 않아?”
“오, 오이오이?”
“야쿠자들은 ‘이봐’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며?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유지웅은 가죽 쇼파에 편안하게 앉으며,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지금 형님이 몹시 목마르시다. 술이나 가져와. 가장 비싸고 독한 걸로, 알지?”
겐이치로는 재빨리 움직여서, 술 진열장 중에서 가장 비싸고 애지중지 아꼈던 양주를 꺼내 왔다.
1,000만 엔이 넘어가는 술을 유지웅은 아무렇지 않게 오픈한 뒤, 커다란 맥주잔에 콸콸 따랐다. 겐이치로는 그 모습을 보며 속이 뜯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저게 얼마짜리인데! 구하기도 힘든데!
그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켠 뒤,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게슴츠레하게 노려보았다.
“말해.”
“뭐, 뭘 말입니까?”
“네놈이 아는 거 죄다 말하라고. 명색이 오사카항 관리하는 야쿠자인데 아무것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겐이치로는 말문이 턱턱 막히고 숨이 가빠왔다.
유지웅이 무언가를 알고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감에 의존해서 찔러 보는 것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안 나오면, 오늘 오사카항은 지도에서 영영 사라진다.”
“마, 말하겠습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야쿠자 보스까지 올라온 몸이다.
강자를 알아보는 생존본능은 각인처럼 온몸에 박혀 있었다. 그 덕분에 유지웅이 농담으로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은 한다면 진짜 한다.
“그게 실은…….”
겐이치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가감 없이 그대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그놈도 무섭지만 유지웅은 그놈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두려움,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이야기를 듣고 난 유지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게 다야?”
“……예?”
“난 일본 정부가 탱커나 근딜을 내세워서 뭔가 공작을 펼치고 음모를 펼치고, 그리고 당연히 야쿠자도 소모품으로 여기에 끼워 있고, 뭐 그런 걸 상상했는데. 지금 네놈 말을 들어보니 결국 반한 감정 품은 레이더 한 놈의 일탈이잖아?”
“…….”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봐, 혹시 요즘 오사카에서 특별한 사건사고 같은 건 없어? 잘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알음알음 일어나는 묘한 사건이라던가 하는 거 말이야.”
“어, 없습니다. 그런 게 있다면 제가 모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상하다. 진짜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지웅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당분간 여기 머물러야겠다. 이 서재는 내가 쓰지.”
“하, 하잇! 그렇게 하십시오!”
“하이는 곤니찌와고. 안녕하세요잖아. 그냥 예썰이라고 하던가 해.”
“예, 예썰!”
“보안 철저히 해라.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예썰!”
유지웅은 서재 쇼파에 길게 누운 채 팔베개를 했다.
눈을 감자 불현듯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8년 전 과거로 막 돌아왔던 시절, 무적 근딜로서 한창 활약하던 시절, 미국에서 마피아를 상대로 후려쳤던 경험이 이렇게 쏠쏠하게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이런 저질 범죄자들은 존중해줄 필요가 없어. 자근자근 밟아줘야지 알아서 바닥을 긴단 말이야.’
일본에서 편안하게 잠입 수사를 하기에 좋은 아지트는, 역시 야쿠자 보스 서재만한 곳이 없다. 유지웅은 자신의 선택에 흡족해하며 잠을 청했다.
“으, 간지러워.”
한창 달게 자던 중 갑자기 이마에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그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벌레라도 앉았었나? 청결 상태가 왜 이래.”
그는 다시 쿨쿨 잠이 들었다. 바닥에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구겨진 라이플 탄환은 보지 못한 채.
창밖 저 멀리에서 난리가 났다.
“혀, 형님!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분명히 이마에 정확히 맞췄는데!”
“치, 침착해! 저놈을 총으로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차라리 된 거야! 이따가 아침에 식사 갖다 주는 척 하면서 조용히 총알 회수하는 거다, 알았지?”
“예, 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이 숨겨준 총을 꺼내어 몰래 저격을 시도해봤던 겐이치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야쿠자 본진 한복판에서 혼자 당당히 잠을 청할 때부터 뭔가 있을 거라고는 알아봤지만, 맨몸으로 총알을 맞고도 멀쩡하게 버틸 줄이야.
‘탱커다. 탱커가 틀림없어. 아니, 근데 원거리 딜러잖아? 그럼 혹시 복합 능력자인가?’
“쇼스케. 오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무덤까지 가져가는 거다. 알았지?”
“예, 형님!”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뭐야,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먼 길 오셨는데 시장하실까 봐 아침 일찍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변변치 않지만 맛이라도 좀 보시지요.”
커다란 이동식 테이블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한식진미가 가득 채워진 테이블이 보였고, 그 다음은 일식, 그 다음은 중식, 그 다음은 양식이었다.
테이블당 요리 가짓수가 30개가 넘어간다. 모두 합치면 120개의 가짓수가 넘는, 그야말로 만한전석 부럽지 않은 호화로운 식단이었다.
겐이치로조차 혼자서 이런 호화로운 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 터라, 저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음, 정말 변변치 않구나. 혹시 요즘 힘들어?”
“예, 옛?”
“이런 누추한 곳에 나 같은 귀한 몸이 오셨는데, 이렇게 변변찮은 식사를 내오니까 하는 말이지. 일단 맛이나 볼게.”
유지웅은 젓가락을 들어 몇 가지 맛을 본 뒤,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아주 못 먹을 정도는 아니네. 그만 나가봐.”
“맛있게 드십시오!”
겐이치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보안 유지 때문에 직접 테이블을 밀었던 간부들도 덩달아 허리를 깊이 숙였다.
“혀, 형님…… 도대체 저 사람은 무슨…….”
“쉿, 조용히 해. 그리고 총알 회수는 잘했지?”
“물론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겐이치로는 어제 같이 저격했던 의동생 간부가 몰래 보여준 총알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물증은 회수했다.
야쿠자 겐이치로파 본진에 임시 아지트를 구축하고 사흘이 지났다.
노을이 짙게 깔린 저녁 무렵, 유지웅은 적당히 변장을 한 채 항구에서 수평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한 척의 화물선이 미국 국기를 단 채 항만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10만 톤짜리 배의 갑판에는 컨테이너가 가득 실려 있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나타난다. 야쿠자 놈들만 보안을 철저히 유지했다면 말이지.’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그렇게 확신했다.
‘만약 이번에도 안 나타나면 겐이치로 녀석이 나한테 거짓말을 한 게 되네. 아, 그럼 더 쉬워지겠는데?’
하지만 유지웅은 겐이치로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 앞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던 그 눈빛은 진심이었으니까.
‘차라리 내가 자는 사이에 몰래 저격을 시도했으면 했지, 내 앞에서 금방 들킬 거짓말을 할 놈은 아니야.’
지금 들어오는 화물선은 미국 국기를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 국적의 화물선이었다.
외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미국 선박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모 대위를 통해 사전에 미국의 양해는 구했다.
여기에 저 컨테이너에도 진짜로 희토류 금속들이 실려 있다.
즉 적을 꾀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위장 미끼인 것이다.
‘테러를 피하기 위해서 미국 선박 행세를 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분명히 모습을 드러낼 거야.’
이 정도까지 위장을 했으니, 이쪽이 마련한 함정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유지웅은 그렇게 확신한 채, 날이 더욱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고, 항만의 야간 조명도 최소한만 남기고 모두 꺼질 무렵이 찾아왔다.
어두운 그늘에 숨어 조용히 하품을 하던 유지웅은 불현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왔다, 왔어!’
과연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북한 선박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미국 국기를 달고 있음에도 발걸음에 주저함이 없다.
‘저놈이 범인이라면…….’
유지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봤다.
선박 앞에 잠시 멈춘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약 1분 후, 녀석이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 지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호오? CCTV 사각지대만 골라서 움직이고 있네?’
그리고 미국 선박으로 위장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테러를 가한 것. 위장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증거 아닐까.
유지웅은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끔 은밀히 뒤를 추격했다.
‘자, 누구더냐.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려고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애타게 만드는 것이냐. 어서 나에게 보여 다오.’
주문 같은 독백을 속으로 흥얼거리며, 유지웅은 녀석을 계속 뒤쫓았다.
‘할트로 오피스텔 1301호.’
녀석이 들어간 집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유지웅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신호가 세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지모 대위. 접니다.”
「예, 의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모의 목소리에는 비장한 기운이 가득했다. 지난 사흘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드디어 전화를 했으니, 뭔가 일이 생긴 거라고 직감했으리라.
“아까 들어온 선박, 지금 가라앉고 있죠?”
「맞습니다. 지켜보고 계셨군요.」
“지금 바로 일본 특수경찰부대 동원할 수 있습니까?”
「범인을 잡았습니까?」
“네. 저, 지금 바로 범인이 자기 집에 들어간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범인 집 바로 앞입니다.”
「지금 바로 일본 내각에 협조 공문 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