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2)
00132 우리 결혼했어요 =========================================================================
큰아버지는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시골 집 새로 짓는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재석이 너, 그렇게 시치미 뚝 떼고 숨기는 거 아니다.”
“아니, 형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내가 숨기긴 뭘 숨겨요? 그냥 자랑할 게 아니니까 말 안 한 거지.”
“서방님 솔직히 너무 하셨어요. 우리 그이 사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 다 아시면서, 좀 도와주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형수님. 저 돈 없습니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과수원도 큰 거 있으시고 집도 좋은 거 새로 지으셨으면서 너무 그러시면 섭섭해요.”
“과수원이야 아들 녀석이 사준 거고 집도 지어준 겁니다. 우리 부부도 통장에 가진 돈은 없어요.”
“그럼 이 집은 뭐예요? 이거 2조 넘게 들었다면서요? 형제는 사업이 힘들어서 쩔쩔매는데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요?”
“아들 녀석이 지가 번 돈으로 지었는데 뭐가 잘못 됐습니까? 형님도 그래요. 결혼식 끝나자마자 그런 이야기하시면 저 많이 서운합니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 장가 들이고 마음이 시원했던 유재석은 결혼식이 끝난 지 하루 만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째 어제부터 눈치가 심상치 않더라니, 결혼식 익일이 되자마자 형제들이 앓는 소리를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새신부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았다. 너무 낮춰서 받아들인 거 아니냐고 불만이 컸다. 자기들이 더 좋은 신부감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유재석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 며느리 내 맘대로 받겠다는데 뭔 소리야?
슬슬 눈치를 보던 막내동생이 입을 뗐다.
“거, 듣기로 지웅이 재산이 10조 원이 넘는다면서요? 그것도 다 순 현금이라던데.”
“세상에나! 10조?”
“어머나, 세상에!”
친척 어른들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상상이 가지 않는 금액이었다. 기껏 월 몇 백 버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그들에게 10조 원은 별나라 이야기였다.
“까놓고 말하마. 둘째야, 좀 도와다오.”
“형님. 저 돈 없습니다.”
“네 자식이 돈 있잖냐? 네 자식 돈이 곧 네 돈이지 그럼 누구 돈이겠냐?”
“지가 번 돈 당연히 지 돈이지 왜 내 돈입니까. 그리고 장가 보냈으니 이제 뭐라 할 것도 없습니다.”
“형.”
동생까지 나서자 유재석은 얼굴을 더욱 굳혔다.
“형님도 그만 하시고, 막내도 그만 해라. 좋은 날 끝나자마자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형제 사이가 별로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 만큼의 우애는 있는 사이다. 도와줘야 할 상황이라면 그도 아들에게 말해서 도와줬을 것이다. 정말 큰 빚에 허덕이거나 생활이 빈곤한 딱한 상황이라거나.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는 큰형은 남들 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고, 동생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둘 다 유지웅이 레이드를 다니기 전보다 잘 살았다.
결국 힘드니까 도움을 달라는 게 아니라, 너네 돈 많으니까 돈 좀 나눠 달라는 소리 밖에는 안 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2층으로 신혼부부가 아침 인사를 하러 왔다. 한복 대신 둘은 편안한 옷을 입었다. 하던 이야기가 좀 그런지라 큰아버지와 막내삼촌은 헛기침을 하면서 표정 관리를 했다. 유재석 부부는 흐뭇해서 절을 받았다.
“너희 신혼 여행은 안 갈 거냐?”
“좀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근데 뭐 급한 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평생에 한 번인데 좋은 데 좀 다녀오고 그래라.”
“네.”
친척들도 차마 한참 어린 조카에게 돈 달라 소리는 할 수 없었는지 눈길을 피하며 헛기침만 했다. 둘이 나가고 큰어머니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집이 좋긴 정말 좋네요. 무슨 궁전 같아…….”
“그러게요, 형님. 우리 애들도 이 근처 대학 다니는데 그냥 여기에 살게 하고 싶을 정도네요.”
막내 숙모가 유재석 부부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슬쩍 말했다. 그러자 큰어머니가 얼른 권했다.
“동서, 지웅이한테 말해서 그러라고 하는 게 어때? 집도 넓은데 막내댁 애들 여기서 살게 하면 좋잖아. 하숙도 못할 짓인데 말이야.”
“……그래도 신혼인데 어떻게 남을 들여요.”
“관리인은 그럼 괜찮고? 보니까 관리인도 한둘이 아니던데 사촌동생 몇 명 끼어 산다고 뭐가 달라져? 그리고 걔들은 3층에 산다며? 막내댁 애들 2층 여기에 살게 하면 딱이겠네. 서로 부딪칠 일도 없고 신혼 깰 일도 없고.”
명분상으로는 그렇다. 또 항렬상 아무래도 뒤지다 보니 김남희는 주눅이 들어서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럼 애들한테 말은 해볼게요.”
“그래. 핏줄 좋은 게 뭐야. 애들도 싫어하진 않을 거야.”
“부탁해요, 형님. 애들 자취하는 것도 부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유재석은 탐탁하지 않았으나 그런 것까지 자기가 나서서 딱 자르기에는 너무 매정해 보여서 아무 말도 못했다.
“형부. 형부우. 집 너무 좋더라. 저도 그런 그림 같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그럼 2층에 방 하나 줄까?”
“에이, 그래도 신혼인데 제가 눈치 없게 왜 끼어 살아요? 그리고 거기서 살면 통학 거리만 늘어나요.”
결혼식 올리고 첫 아침 인사를 올리러 처가에 왔다. 보통은 신혼여행을 갔다와서 인사를 올려야겠지만, 둘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결혼식 올린 직후에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다. 며칠 쉰 다음에 여행을 가기로 정한 것이다.
“집이 크니까 결혼식을 집에서 하는 것도 좋더구나.”
“그러게요. 식장 시간에 쫓기듯이 하지 않아도 되고.”
절을 올리는 사위 부부를 정재진 부부도 대견하게 바라봤다.
“신혼여행은 근데 안 가니?”
“며칠 있다 가기로 했어요. 친구들이랑 좀 더 놀려고요.”
“중학 동창이란 애들은 그럼 너희 집에서 잤니?”
“네. 지금쯤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유, 그럼 가봐야 하는 거 아니니?”
“괜찮아요. 자기들끼리 잘 놀 거예요. 이따가 저녁에 들어가서 또 놀죠, 뭐.”
정혜주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형부, 새신랑이 너무 친구들이랑 놀면 신부가 싫어해요. 어제 밤에는 새신랑 역할 제대로 하셨어요?”
“조그만 게!”
정효주가 눈을 흘겼다. 정혜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받아쳤다.
“왜애,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나 같으면 새신랑이 신부 내팽개쳐두고 친구들이랑 놀면 속이 탈 것 같은데.”
밤늦게까지 친구들이랑 파티를 하고 논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효주도 같이 놀았다. 다 같은 중학 출신이니 거리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벽에는 신혼 침실로 기어 들어가서 힘도 제대로 썼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정효주는 눈만 흘겼다.
처가에도 인사를 마치고 점심까지 얻어먹고 신혼부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부지에 지은 덕에 집 경계선이 굉장히 넓다. 그들 집은 담이 굉장히 특이하게 돼 있는데, 지표에서 높이 약 1미터 정도 콘크리트를 쌓고 그 위에 높이 6미터에 달하는 강화 유리를 세운 것이다. 이 강화유리도 안에서는 밖이 내다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세스토 엘레멘토가 들어서자 자동 센서가 인식하고 정문을 좌우로 열었다. 두 명의 젊은 경비원이 주인인 것을 알아보고 목례를 했다.
집이 워낙 넓은 탓에 고용 경호원만 60명에다가 3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상주 정원 관리사도 다섯 명을 고용했으며, 요리사를 포함한 가사 도우미가 20여 명이나 되었다. 고용 인력은 전부 별채에서 숙식한다. 별채라 하지만 신축인 데다가 웬만한 신형 고급 빌라보다 시설이 잘 되어 있어 고용인들도 만족했다. 고용주가 아예 가족까지 함께 데려와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층에 들러보니 친척들은 이미 돌아간 뒤였다. 그런데 부모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일은 무슨. 인사는 잘하고 왔니?”
“응.”
조심스럽게 시부모의 안색을 살피던 정효주가 물었다.
“저,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에유,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그러지 마시고 말씀해 보세요. 저희한테 말씀 못하실 게 뭐 있어요?”
“……그게.”
한참을 망설이던 김남희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털어놓았다.
“진석이네 때문에 그래.”
“진석이? 걔가 왜? 사고 쳤어?”
“걔네가 이 근처 대학 다니잖니. 집이 대전이라 자취하는 모양인데 그거 때문에 여기 집에서 살 수 없겠냐고 동서가 그러더라. 나도 니네 신혼이라 그게 무슨 짓이냐고 거절했는데 집도 크고 방도 많으면서 뭐 그게 어렵냐고 서운하다고 하는데 난처하더라. 우리만 야속한 사람 된 거 같고.”
“어, 그렇긴 하네. 나 옛날에 몇 년 간 큰아빠 집에서 살기도 했으니까.”
“그거 때문에 딱 잘라 거절하기가 그렇더라고.”
물론 집도 크고 방도 많다. 게다가 층이 독립돼 있고, 특히 3층은 유지웅 부부가 아니면 들어올 수도 없다. 자동출입통제 시스템 때문이다. 청소하는 고용인들도 3층은 못 들어가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니 손님용으로 만든 2층에 방 하나쯤 내줘도 문제될 건 없으리라. 어차피 이 큰 집에 둘만 사는 것도 아니고, 백 명 가까이 되는 고용인들도 함께 사니 말이다.
그래도 시댁 사람들이랑 같은 울타리에서 사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하물며 신혼부부인데 말이다. 그래서 김남희가 얘기를 꺼내지 않으려 한 것이다.
마음을 다진 정효주가 말했다.
“그러라고 하세요. 방 하나 내주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어차피 2층은 외부 손님용이니까요.”
“안 돼.”
유지웅이 칼같이 말을 자르고 나섰다. 정효주가 살짝 놀라서 쳐다봤다. 그의 표정이 단호했다.
“나도 옛날에 친척집 신세도 져봤고 진석이랑 사이도 좋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우리 결혼한 지 이제 하루 됐어. 고용인들이야 집이 크니까 관리하려고 들인 사람들이지만 친척은 다르잖아?”
“그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엄마가 잘 말해줄게. 아유, 나도 참. 괜히 이야기를 꺼내서…….”
“우리 전에 살던 집에서 살라고 해. 그럼 될 거야.”
“그 집 판 거 아니었니?”
“팔려고 했는데 사촌들 사정이 그러면 할 수 없지 뭐. 바로 이 근처니까 통학하기에도 편할 거야.”
정효주는 살짝 기막힌 표정으로 바라봤다. 처음으로 구입한 집이라 정이 가서 팔기는 싫고, 그러다고 남 세 주는 것도 싫어서 어쩌나 하고 처치 곤란해 하던 집이었다. 그걸 이런 식으로 치워버리면서 ‘팔려고 했는데 할 수 없지 뭐.’라고 생색을 내고 있지 않은가?
“아유, 그럼 되겠다. 너 큰집에서 몇 년 산 거 때문에 마냥 거절하기도 그래서 난처했는데, 잘 됐네.”
“그 집 디게 비싼 집이야. 30억짜리라고. 그러니까 이제 뭐 해달라고 하지 말라고 해.”
“얘는, 누가 뭘 해달라고 했다고 그러니?”
“분명 그럴 거잖아. 암튼 난 30억짜리 집 내줬으니까 이제 그거 가지고 엄마도 생색 잔뜩 내고 그래. 아, 분명히 말하는데 주는 거 아니고 잠깐 살게 해주는 거니까 나중에 완전히 눌러앉겠다느니 그러면 안 돼.”
김남희가 아침에 친척들과 이야기할 때 살짝 열세였던 것은 유지웅이 서울에 올라와서 살던 때 친척들에게 신세를 진 것 때문이 컸다. 유지웅은 처치 곤란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에서 살게 해줌으로써 그 열세를 대번에 뒤집었다. 이제부터는 오히려 김남희가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효주도 입을 다물었다. 사실 시어머니 앞이라서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남편이 알아서 저지를 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오늘 밤 화끈하게 서비스해줘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신혼여행 어디로 갈까?”
“어디 가고 싶니?”
“몰디브 어때? 거기가 그렇게 지상 낙원이라는데.”
“좋아. 근데 우리 외국 나가도 괜찮을까?”
둘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미국은 일단 둘에게 녹서스의 돌이 없다고 생각하고, 적극 화해하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유지웅이 만나기 귀찮아 하는 까닭에 외교부에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외국에 나가도 딱히 문제가 될 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억류당했던 걸 생각하면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게다가 내전 종료 후 급격히 안정되어 가는 일본도 왠지 걱정된다.
“저번에 암시장 갔을 때처럼 몰래 갔다 오자. 위장 신분 써서 나가면 모를 거야.”
“뭐…… 별 일 없겠지?”
둘은 신혼여행지를 몰디브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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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