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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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특하긴 하네.’
카오리는 자신을 억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다짜고짜 꺼낸 경고가 아닌, 조건을 건 위협이었다.
구정부를 몰아내는데 탱커 전력을 투입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경제적 압박으로 일본을 질식하게 만들어버리겠다.
그런 (카오리 입장에서는) 부당한 요구를 철회하라는 압박을 주기 위한 한 말이었으니. 게다가 철회한다면 믿고 그냥 보내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적이지만 그런 면모는 칭찬할 만했다.
‘그런데 왜 공대 이름에 욱일이라는 그런 전범의 잔재를 가져다 쓴 거야? 역시 전범그룹 후계자라서 어쩔 수가 없는 건가?’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웅은 몸을 풀듯이 팔을 가볍게 돌리면서 카오리를 돌아봤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나가요?”
“밖에서 몸을 풀자는 말씀은…….”
“내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일단 그러고 나야 우리가 비로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카오리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동료 레이더들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외교적 결례인 걸 알면서도 큭큭 소리 내어 웃었다.
유지웅은 웃지 않고 가만히 카오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표정에 카오리는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는 표정을 다잡았다.
“저는 탱커입니다.”
“들었어요.”
“의장님은 원거리 딜러시고요. 물론 원거리 딜러치고 몸이 민첩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거리 딜러가 탱커를 상대로 이길 수는…….”
“누가 정한 거죠? 내가 원거리 딜러라고?”
“……?”
“내 실력을 확인시켜주겠다는 겁니다. 궁금하지 않아요?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 일본의 절반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
카오리는 묵묵히 유지웅을 노려보듯 주시하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방법은?”
“마음 같아서는 욱일공격대 전원 다 덤비라고 하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이니 전원 소집은 불가능하겠죠? 일단 원하는 만큼 다 나오라고 하세요. 귀 원수가 동원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동원하세요.”
“…….”
카오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지웅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원거리 딜러가 단독으로 다수의 레이더를 상대로 승기를 자신하다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녀는 불현듯 중국에서 핵폭발 속에서도 살아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황백호 탱커가 유지웅과 정효주를 필사적으로 보호해서 무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유지웅을 한 번 더 떠보았다.
“정말 얼마든지 불러도 상관없습니까?”
“그럼요.”
“장소는 관저 정원에서 해도 되겠죠?”
“관저가 날아가면 곤란한데…… 뭐, 그건 제가 힘 조절을 한 번 잘 해보죠.”
“…….”
아무리 봐도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정말로 자신이 있는 것일까?
‘만약 거짓말이 아니라면…….’
카오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지웅이 지금 보이는 태도가 허세가 아니라 진짜라면 오히려 더 큰일이다.
“좋아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뭐, 혼자서요?”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죠. 따라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카오리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복도가 아닌, 창문을 뛰어내려서 나갈 모양이다.
뛰어내리기 전 그녀는 흘끔 뒤를 돌아보며 도발하듯이 말했다.
“설마 절 따라오는 게 무서운 건 아니겠죠?”
그 말만을 남기고, 그녀는 사뿐히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살짝 굳은 채로 서 있던 유지웅은 두 손으로 배를 잡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와, 이 양반이 이걸 또 이렇게 도발을 거시네. 아하하, 유쾌하다, 유쾌해.”
황당함이 지나치면 오히려 즐거운 웃음으로 승화된다.
유지웅은 카오리가 뛰어내린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카오리가 안내한 곳은 고쿄(황거), 일왕이 거처하는 곳이자 과거 에도성이었던 지역의 한 공원이었다.
가로 약 1.4km, 세로 약 2.2km 정도 크기의 땅이 도시 한가운데 섬처럼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데다가 일왕 가문이 멸문된 터라,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말끔했지만 곳곳에 부서진 건물 잔해가 이곳에 일어난 참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카오리는 두 팔을 살짝 벌린 채 감회에 젖듯이 고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때 황거였던 곳이에요. 이제는 과거의 잔재에 지나지 않지만.”
“기록물로서 가치는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할 생각이죠?”
“글쎄요. 일왕을 숭배하는 사상이 미래의 일본에게 과연 필요할까요? 유물적 가치야 있겠지만 굳이 과거의 잔재를 남겨서 후환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나한테 파는 건 어때요?”
“그럴 순 없죠. 여긴 상징적인 곳이니까. 고쿄 터전의 토지소유권을 민간인, 그것도 타국에 매각할 순 없어요.”
“토지를 팔라는 게 아니고 여기 고쿄의 시설을 팔라는 거죠. 유물로서 가치는 있으니까 우리 집에 가져다 두고 싶어서 그럽니다.”
여기 건물 시설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가져가겠다는 뜻인가?
현대 건축 기술을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어마어마한 대노동이 될 것이다.
“생각은 해보죠. 물론 합당한 대가를 약속하셔야겠지만요.”
“확실히 당신한테 과거 제국주의 정신 같은 건 없군요.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니.”
“그런 정신은 정상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그런데 왜 공격대 이름은 욱일로 지었나요?”
“정치인, 자위대, 그리고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국민들…… 그들을 꾀는데 적당한 이름이니까요. 반정을 함께 한 동료들 중에서도 그 이름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는 친구들도 제법 많이 있거든요.”
유지웅은 불현듯 느꼈다.
카오리는 확실히 정치적 자질, 그리고 야망이 뛰어나다. 이용할 수만 있다면 몹쓸 과거의 잔재라도 어떻게든 재활용한다.
유혈도, 체면도, 명분도, 그 어떤 것이든 도움이 된다면 과감하게 손을 뻗는다.
그런 그녀가 독재하게 된다면 일본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만큼 민주주의의 성숙은 상처투성이가 될 테지만.
“자, 보여줘요. 손가락 한 번 튕겨서 일본의 절반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당신의 힘을.”
얼핏 듣기에는 조롱이나 비아냥거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눈빛은 묘한 긴장감에 젖어 있었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에 대해 초조함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유지웅은 실소했다.
“내 말을 아주 못 믿는 건 아니셨군?”
“…….”
“그래서 굳이 여기까지 혼자 온 것이고. 맞습니까?”
유지웅은 카오리의 의도를 꿰뚫어봤다.
만약 그가 한 말이 사실이어서 카오리 본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을 대비한 정보 통제, 그를 위해 굳이 이곳까지 와서 혼자 상대하는 것이다.
“재미있네.”
“…….”
“그럼 당신의 눈썰미가 얼마나 좋은지 한 번 볼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인지, 아니면 멀리서 호랑이 그림자만 봐도 바로 알아보고 도망치는 똑똑한 사람인지.”
유지웅은 허리를 숙여, 긴 풀잎 하나를 뿌리째 뽑았다.
길이 30cm 가량의 힘없이 축 늘어진 풀잎을 흔들자, 카오리는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해서 주시했다.
“설마 그 풀잎으로 날 상대하겠다는 건가요?”
“컴온. 롸잇 나우.”
유지웅은 풀잎의 양쪽 끝을 두 손으로 잡은 채 팽팽하게 편 채로 도발했다. 발끈한 카오리는 잠시 몸을 낮췄다가, 있는 힘껏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지웅이 풀잎을 들어 가드하듯이 막아냈고, 카오리는 일부러 풀잎을 향해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저 풀잎으로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확인할 참이었다.
카강!
풀잎에 주먹이 부딪치는 순간, 카오리는 둔탁한 충격을 느끼고 눈을 부릅떴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풀잎이 자신의 주먹을 고스란히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반작용을 밟고 뒤로 도약한 카오리는 가볍게 착지한 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풀잎을 노려봤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자, 얼마든지 덤벼보세요. 그래야 나중에 다른 말이 더 안 나오지.”
카오리는 이를 악물고 다시 덤볐다. 허공으로 힘껏 도약한 뒤, 체중을 실어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풀잎에 부딪치는 순간 둔탁한 반발력이 돌아왔다. 다리가 부서질 듯한 통증을 밟고, 카오리는 허공에서 몸을 뱅그르르 돌려 착지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저 가느다란 풀잎 하나로, 탱커인 자신이 이런 육체적 통증을 느끼게 하다니.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풀잎에 레이더의 능력을 주입해서 강화시킨 것인가? 하지만 그런 능력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몇 번이고 다시 돌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유지웅은 비웃기라도 하듯이 풀잎으로 공격을 번번이 막아냈다. 이제는 오기가 생긴 카오리는 전력을 쥐어짜내어 일부러 풀잎을 공격하기도 해봤고, 풀잎을 피해서 그의 몸을 노리기도 해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막혔다. 유지웅의 반사 신경은 탱커인 그녀가 보기에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정말 원딜이 맞는 거야?’
아까 그는 분명히 말했었다.
자신이 원거리 딜러라고 누가 정했느냐고.
‘혹시 탱커? 아니, 탱 원딜 복합 능력자?’
그렇다면 저 풀잎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 좀 더 재미나게 놀아볼까요?”
유지웅은 풀잎을 한 움큼 뜯어냈다. 카오리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몰라 긴장해서 바라봤다.
다음 순간 그가 왼손에 쥔 풀잎들을 던졌다. 놀랍게도 풀잎들은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그녀를 향해 꼿꼿하게 선 채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뒤로 점프했고, 풀잎들이 그녀가 있던 자리에 박혔다. 동시에 굉음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폭탄이 터진 듯한 폭발이었다. 탱커가 아닌 이가 저 폭발에 휩쓸린다면 아마 온몸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카오리는 마른침을 삼킨 채, 폭발로 뒤집힌 땅을 내려다보았다.
“참고로 지금 것은 일부러 출력을 낮게 조절한 겁니다.”
“진짜 제대로 하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죠?”
“도쿄 전체가 날아갈 텐데, 그래도 해볼까요?”
“…….”
“이번에는 내가 갑니다.”
그 말을 남기고 유지웅의 모습이 사라졌다. 카오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딜 봅니까?”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카오리는 화들짝 놀라 몸을 던졌고, 유지웅은 씩 웃으며 손목을 붙잡았다.
손목을 잡힌 카오리는 있는 힘을 다해 반항했다.
하지만 전차의 장갑판도 맨손으로 찢는 탱커의 괴력으로도, 그의 팔을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가항력 그 자체, 세계 격투기 챔피언과 3살 아이가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유지웅은 싱겁다는 듯이 손을 놓았고, 카오리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부여잡은 채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숨을 몰아쉬는데, 유지웅의 시선이 이상했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다.
“카오리 원수는 좋은 친구들을 뒀군요. 아무래도 다들 걱정이 된 모양인데…….”
“……뭐라고요?”
“다들 그만 숨고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