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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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리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가, 이내 깨달았다.
곧 그녀의 표정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게 자신이 따라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모두 나와!”
카오리는 흥분에 찬 음성으로 외쳤고, 곧이어 어둠 속에 몸을 숨겼던 네 남녀가 쭈뼛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총리관저에서부터 유지웅을 안내하고, 대담하는 자리에서도 동석했던 이들이었다.
“호오, 철저한데?”
유지웅은 흥미롭다는 듯이 그들의 위아래를 살폈다.
그들은 맨몸이 아니었다. 바로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근거리에서 짧은 시간 동안 적에게 많은 탄환을 퍼부을 수 있는 무기다.
카오리는 그들을 보고 화를 냈다.
“내가 따라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 하지만 대장. 우리는 그냥 걱정이 돼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었어요. 만약 대장이 위험에 처하면 그때 나설 마음으로…….”
“그럼 처음부터 다 본 거야?”
카오리가 쏘아붙이듯이 묻자 그들은 난처해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웅을 훔쳐보는 시선에 묻어나는 조심스러움과 불안함을 보니, 아무래도 처음부터 본 게 맞는 것 같다.
“오히려 잘 됐군. 다섯이서 한꺼번에 덤벼요.”
“…….”
카오리는 말문을 열지 못했다. 유지웅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무위라면, 탱커 다섯이 덤벼도 정말 거뜬히 막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의장님은 복합 능력자인가요?”
동료 탱커 중 한 명이 긴장한 음색으로 물었다. 통역 내용을 확인한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그걸 말해줄 거라 생각하지?”
“…….”
“빨리 덤비기나 해.”
유지웅은 왼손 검지를 수직으로 세워 보였다. 다들 그게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동원해서 맞서라. 난 이 손가락 하나로만 상대해주지. 이 자리에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게 하면, 당신들의 승리다.”
“……!”
“날 패배시킨다면 제니스 컴퍼니, 북한, 국제공격대연합, 미국이 카오리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제한 없는 원조를 받게 해줄 것이다. 또한 나 개인적으로 카오리 정권에 1,000억 달러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
카오리를 제외한 넷의 눈빛이 변했다.
그저 한 발자국만 움직이게 하면 그 엄청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카오리 정부는 그 어떤 방해에도 흔들림 없이 일본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설마 처음부터 우리를 도와주려고 명분을 만든 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을까.
유지웅이 보인 무위는 대단했지만, 다섯이서 힘을 합치면 한 발자국을 움직이게 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듯이 보였다.
‘안 돼!’
반면 카오리는 그런 동료들의 착각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녀는 확실히 알았다. 유지웅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은 만용이나 베풀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순수한 확신에서 기인한 태도라는 것을.
그에게는 진다는 가정 자체가 없는 것이다.
동료 탱커 넷이 눈빛을 교환한 뒤, 거의 동시에 유지웅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방향을 네 갈래로 나누고 사방에서 유지웅을 덮쳤다.
“훗.”
유지웅은 왼손의 검지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 순간 손가락 끝에서 보이지 않는 돌풍이 일어나며, 그들의 몸이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수십 미터 넘게 나가떨어진 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유지웅을 바라봤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유지웅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을 더욱 까딱까딱 해보였다.
그런 행동에 자존심이 상한 네 탱커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카오리를 돌아보며 외쳤다.
“대장! 같이 합세해요! 우리 다섯이라면 저 자를 패배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겨우 한 발짝 움직이게 하는 게 패배 요건이라는 게 우습지만.
카오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더 이상 승리라는 글자는 없었다.
하지만 이왕 이리 된 거, 유지웅의 진정한 힘을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힘껏 달려들었다.
유지웅이 비웃음을 베어 물며 왼손 검지를 세웠다. 카오리는 손가락 끝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것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놓치지 않으려 살폈다.
‘뭐야?’
유지웅을 향해 달려들면서, 카오리는 불현듯 이상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그가 손가락을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그는 손가락을 세운 채 비웃음을 짓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됐다!”
다섯 명의 공격이 사방에서 쇄도하며, 동료 탱커 중 한 명이 기쁨의 함성을 외쳤다.
거의 동시에 그들의 공격이 유지웅의 몸을 덮쳤다.
그 순간 주먹에서 엄청난 반발력이 터져 나오며, 극통이 팔을 타고 온몸을 꿰뚫었다. 다섯 탱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몇 미터 넘게 나가떨어져 뒹굴었다.
“크, 크으윽……!”
“으어억……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그들은 고통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눈을 들어 유지웅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동료 한 명이 비틀거리며 자리를 이탈했다. 그가 향한 곳은 휴대한 기관단총을 내려놓은 지점이었다.
양손에 기관단총을 쥔 그는 비틀거리며 유지웅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카오리가 그걸 보고 외쳤다.
“아, 안 돼! 그만 둬!”
“어차피 저 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잖아!”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지. 친구, 제법 마음에 드는데?”
유지웅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린 후, 곧바로 팔짱을 끼었다. 마치 쏴볼 테면 쏴보라는 듯한 태도에 기관단총을 겨눈 탱커는 이를 악물었다.
‘이게 먹힐 거 같지 않아.’
그도 기관단총 따위가 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는가.
“으아아아아!”
그는 마치 자신이 총에 맞는 것처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기관단총에서 총탄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카오리 이하 동료들은 분명히 보았다.
탄환이 유지웅의 다리, 팔, 복부, 가슴, 목, 이마에 마구 맞아 튕겨져 나오는 광경을.
하지만 그의 몸은 전혀 끄떡도 하지 않는다.
탱커가 맨몸으로 총알을 견딘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통증은 느낀다. 피부에 일시적인 자국도 남는다.
그러나 지금 유지웅은 마치 공기 방울 탄환을 맞는 것처럼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침내 총알이 떨어졌고, 기관단총을 난사한 탱커는 숨을 헐떡이며 총을 떨어뜨렸다.
얼마나 높은지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절벽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그들은 측정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격차를 실감했다.
저도 모르게 하나둘씩 무릎을 꿇으며, 힘없는 눈으로 유지웅을 올려다봤다.
카오리는 그제야 유지웅이 왜 홀로 적진이나 다름없는 이곳에 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겁박을 강요했는지 이해했다.
저만한 힘이 있는 자라면 자신의 발언을 현실로 관철시킬 수 있을 테니까.
동시에 미국이 어째서 유지웅을 그토록 편애하는지(사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미국 대통령이라 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아니, 미국의 국가지도부를 족족 제거해, 미국을 무정부국가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괴수…… 차라리 그렇다고 해줘.’
그것이 지금 카오리의 심정이었다.
유지웅은 절망에 점철된 그들을 흡족한 듯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우리가 좀 더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카오리 원수?”
승자는 유지웅이었다.
카오리는 동료 탱커 넷이 자신을 따라온 것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 혼자만의 결정으로 유지웅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다면, 대원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을 테니까.
그들이 아무리 자신을 믿고 따른다 하더라도, 이제는 정치적 상황이 변했다. 동료들은 이제 권력이 무엇인지 안다.
지금까지는 서로 등을 내줄 수 있는 동료이자 공동 창업자이지만, 앞으로는 경쟁도 하고 음모술수도 부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혼자 주장하는 것보다 다른 넷이 힘을 실어준다면 동료들도 더욱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보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고쿄 정원 한쪽에 있는 벤치에 둘러앉아 있었다.
일본의 미래가 좌지우지되는 중요한 회담이 이런 정원 야외 벤치에서 열리다니, 운명이란 참으로 짓궂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은 재건위원회를 도울 겁니다. 그들은 일본의 서쪽을 차지하기로 이미 합의가 돼 있어요. 미국은 일본이 구정부와 신정부 둘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아주 몰아낼 생각은 없다는 건가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이 더 잘 알고 있죠.”
“그럼 차라리 우리를 도와서 미일동맹관계를 새로이 구축하면 될 텐데요.”
동료 탱커 한 명이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고, 카오리는 어두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일본을 놓고 새로이 형성된 한미, 아니 제니스―미국 구도의 이해관계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뭐, 그건 미국에 가서 물어보시고. 저는 그래도 카오리 정부가 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민당 애들은 원래 싸가지가 없어요. 아니, 인성 자체가 사람이긴 한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
“마음 같아서는 구정부가 완전히 뿌리 뽑히고 일본이 새로이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미국이 그건 곤란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리 되면 미국도 이만저만 손해가 큰가 봐요.”
“그럼 우리 일본은…….”
“서일본은 구정부가, 동일본은 신정부가, 이렇게 동서로 분단되는 형태가 되겠죠. 그래도 신정부가 훨씬 유리할 겁니다. 태평양 진출을 쉽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구정부는 해로 이용이 매우 고달플 겁니다.”
서일본은 해로를 이용하려면 한반도 남해, 혹은 동해 북쪽 지역을 이용해야 한다. 동일본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들을 바다에서 괴롭힐 수 있다.
반대로 동일본(카오리 정부)은 서일본의 방해 없이 태평양으로 바로 진출하면 그만이다. 바다 이용에서 이처럼 동일본이 월등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정말 제니스 컴퍼니에서 우리를 도와줄 건가요?”
“미국이 서일본을 돕기로 했으니까요. 나라도 동일본을 도와야지 서일본이 일본 전체를 집어삼키고 또다시 헛짓거리 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동료 탱커들은 그 대가가 결코 적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럼 이제 조건을 말하겠습니다. 일본 내전에 탱커를 투입하지 마세요. 그리고 홋카이도를 영구적으로 분리독립 시키세요.”
“탱커를 투입하지 말라는 것 정도야 뭐…… 하지만 홋카이도 독립은 너무 과합니다.”
내전에 탱커를 투입하지 말라는 것. 그것은 끝없는 소모전을 감당하라는 의미였다.
카오리는 동료들이 과연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홋카이도 독립 요구에만 집중하는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