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29)
— 프리시즌 헬조선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
일본 사분지계를 이룬 후, 유지웅은 갑자기 한가해졌다.
“할 게 없네, 할 게 없어.”
홋카이도 지원은 국방부와 담성물산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었다.
기갑부대 지원과 식량, 생필품, 기타 물자 등의 무역도 어려움 없이 이뤄졌다. 제니스 컴퍼니는 그저 송금만 하면 되었다.
유구 제도(오키나와) 독립도 일본전쟁 중에 별다른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제니스 컴퍼니가 유구 제도에 대규모로 투자한 게 알려지면서, 동서일본 양 정부는 유구에 대한 제재를 사실상 포기했다.
유지웅이 뒤에서 지원해주는 이상, 지금 당장 유구를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일단 눈앞에 있는, 본토의 종주권을 다투는 적 진영을 무너뜨리는 것부터 집중해야 했다.
동서로 나뉜 일본은 과거 한국이 그랬듯이 기약 없는 내전을 벌이고 있었고, 그간 쌓아올린 국력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소모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카오리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증오하지 않을까?
“많이 심심한가 봐?”
“응, 할 게 없어. 그냥 나 신원 숨기고 일본에 PMC 용병으로 참전할까?”
“그러다가 들통 나면 무슨 망신이니. 농담으로 알고 있을게.”
“그만큼 심심하단 말이야. 으아아.”
유지웅은 머리를 움켜쥐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정효주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게 심심하면 연구소 가서 박사님들이나 좀 쪼아대든가. 그럼 돈벌이 아이템이라도 툭툭 튀어나올 거 아냐.”
“어제도 이미 실컷 괴롭히고 왔어. 세 분 다 눈 아래 다크써클 범벅 돼서 돌아왔지만.”
“그럼 류이한 사장님은?”
“괴롭히러 갔는데 안 계시더라고. 응급실에서 링거 맞고 있다고 해서 쓸쓸히 돌아왔지.”
“순관 신순 사장님들은?”
“커피 마시면서 야근 중이라서 말도 못 붙이고 돌아 나왔어. 직원들 말로는 사흘째 자발적 철야 중이었대. 철 다루는 분들이라 철야를 밥 먹듯이 하나 봐. 하하하.”
“……설마 그거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범석이는 자지러지게 웃던데? 난 사람이 웃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봤어.”
“…….”
참고로 김순관과 박신순은 본래 국내 제철업계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 유지웅에게 섭외되어, 현재는 아이언제니스를 맡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게 심심하면 언더 커버 보스나 하던지.”
“할 데가 없어. 제니스 컴퍼니는 지금 너무 잘 돌아가서 문제라고. 내가 잠행해서 뭔가 잡아낼 게 있어야 보람이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단 말이야.”
“꼭 제니스 컴퍼니에서만 잠행할 필요 있니? 그냥 임시 알바라도 뛰어 봐. 택배상하차 같은 거라도 한 번 체험해보다 보면 재밌는 방송거리 하나 생기지 않을까?”
“나 방송 컨셉 거리가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거든!”
“아니었어?”
“아아, 심심하다. 심심해. 누가 제발 날 한 대만 딱 하고 때려줬으면.”
결국 정효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유지웅은 시무룩해져서 저택을 나섰다.
“일본 내전을 조금 천천히 진행할 걸 그랬나? 지들끼리 알아서 불붙으니 이제 할 게 없네.”
유지웅은 쓸쓸히 혼자서 단골 호프집을 찾았다. 대충 눈에 붙이는 눈 화장을 하고 가발과 안경을 쓰니 그럴듯한 흔한 청년 남자 한 명이 완성되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가운데, 유지웅은 혼자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제니스 타운은 아니고, 광주 번화가에 있는 맥주집이었다.
“오늘따라 축 처져 보이시네요.”
카운터에서 맥주잔 설거지를 하고 있던 호프집 남자 사장이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참고로 그는 유지웅의 정체를 모른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제법 닮았다고 신기하게 여겼지만, 유지웅의 그럴싸한 거짓말과 얼굴 변장 덕분에 이제는 그냥 ‘목소리만 좀 닮은’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심심해서 그래요.”
“우리 VIP는 뭐가 그렇게 심심한 게 많을까요? 매일 심심하다는 말씀만 달고 사시네.”
“정말 심심해서 그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재밌게 보냈는데 그것도 다 끝나서 이제 놀 거리도 없고, 주변 사람들은 죄다 바쁘다고 놀아주지도 않고.”
“아, 일본 내전은 저도 꽤 흥미진진하게 봤죠. 그래도 요즘도 그쪽에서 이런저런 사건 많이 터지지 않나요? 어쨌거나 전쟁 중인 국가니까.”
“이제부터는 무제한 물자 소모전인데요, 뭐. 누가누가 먼저 파산하느냐 싸움. 더 볼 거 없어요. 심심해서 매일매일이 미쳐 버릴 것만 같아요.”
“나도 손님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매일매일 심심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건 어떤 기분일까요?”
참고로 호프집 사장은 유지웅을 금수저로 알고 있었다.
“호텔 사업은 잘 되시죠?”
“그럼요. 공실 하나 없이 꽉 찼어요. 역시 우리 부모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다니까.”
유지웅은 호프집 사장한테 적당히 거짓말을 둘러댔다.
광주에서 호텔 사업을 하셨던 부모님이 남겨주신 호텔과 콘도가 있어서 그걸로 먹고 산다고 말이다.
“요즘 광주 숙박업체들, 빈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던데 말이에요.”
“늘 만실이긴 하지만 우리 호텔은 특별히 숙박료를 올리지 않거든요. 관광객 뜯어먹고 사는 일이라지만 공생할 줄 알아야죠. 그러다가 나중에 아무도 안 찾아주면 어쩌려고.”
“맞는 말씀입니다.”
마침 가게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살해혐의로 1심에서 5년 형을 선고받은 범인과 선고를 내린 판사가 피살되었다는 뉴스였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잡힐 일도 없을 것이다.
“또 백신공격대인가 봐요.”
“저 판사는 간도 크네.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저런 솜방망이 처벌을? 저건 피고도 죽고 자기도 죽는 길인데.”
유지웅이 뉴스를 보고 혀를 찼다. 아직 시대적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판사인가 보다.
흉악범죄 유죄 판결시 형량이 터무니없이 낮게 나오면 백신 공격대에서 사냥을 하러 온다. 사냥 대상은 바로 판결을 내린 판사와 피고다.
최초로 방문한 사건은 바로 강도살인범죄였다.
20대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현금 30만원을 훔친 20대에게 징역 8년이 선고된 것이다. 판결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판사와 피고는 백신 공격대의 방문을 받고 심장에 죽창을 맞았다.
그 이후 법원은 살인 같은 흉악범죄에 대해서 웬만하면 형량을 높이는 추세였다.
특히 계획적 살인이나 강도살인, 강간살인 같은 경우는 적어도 무기징역을 선고해야 백신 공격대의 방문을 안 받는다.
“제니스 프리즌에도 공실이 꽤 많은 걸로 아는데, 그냥 형량 과감하게 때려버리지.”
“교화주의 같은 건 그냥 없애버렸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안 바뀌는데 말이죠.”
“바뀌고 안 바뀌고를 떠나서, 사람을 죽였으면 평생 죽은 듯이 살아야지 반성 좀 한다고 사회에 풀어놔주는 게 어딨어요. 살해당한 사람만 억울하지. 이 재밌는 세상 더 살아보지도 못하고 일찍 갔는데.”
유지웅은 맥주를 연거푸 마시면서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사장과 잡담을 나눴다.
“그래도 백신공격대 때문에 세상이 좋게 바뀌고 있는 거 같아요.”
“사장님도 친백신파인가요?”
“그럼요. 전 법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면 초법적인 수단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신 공격대는 수십 년 간 이 사회가 잘못된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터져 나온 우리 사회의 업보잖아요.”
사장은 빈 잔을 보고 새 병을 꺼내 와서 마개를 오픈하고 옆에 내려놓았다.
“착하게 살 필요도 없고, 아주 나쁘게만 살지 않으면 백신공격대와 마주칠 일이 없잖아요. 백신 공격대가 사냥하는 놈들도 죄다 이 사회에 없는 게 나은 나쁜 놈들이고요. 법을 벗어나서 움직이는 게 뭐 대수인가요? 그게 무서우면 진작 정치인과 판검사놈들이 떡값 받아 처먹지 말고 법 집행이나 잘하던가.”
유지웅은 피식거리며 술잔을 들었다.
그때, 갑자기 바깥에 경찰차가 나타났다. 사장은 무슨 일인가 싶어 살피다가 갑자기 경찰 둘이 안으로 들어서자 당황했다.
“무슨 일이시죠?”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여기 미성년자들이…… 아, 쟤들인가? 김 순경, 가서 확인해 바.”
“예.”
후임으로 보이는 경찰이 한 테이블로 다가가서 민증을 확인했다. 유지웅이 힐끗 보고 물었다.
“저 팀, 아까 민증 확인하지 않았어요?”
“네, 전원 확인했죠. 젊어 보여서 아무래도 누가 신고를 넣은 모양인데…….”
그때 신분 검사를 마친 후임 순경이 돌아왔다.
“전부 미성년자 맞습니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아까 민증 전부 다 확인했단 말입니다! 얼굴까지 다 비교했어요!”
“위조 된 신분증입니다. 생년월일을 변형시켰어요.”
순경은 사무적으로 통보하듯이 말했고, 사장은 새하얗게 질려서 비틀거렸다.
“조만간 행정처분 나올 겁니다. 기다리고 계세요. 오늘 장사는 이만하시고요.”
유지웅이 벌떡 일어나서 항의했다.
“아니, 경찰관님. 신분증 위조한 건 쟤들인데 왜 사장님이 행정처분을 받아요? 민증 일일이 확인한 거 제가 여기 앉아서 다 봤는데?”
“법이 그렇습니다.”
유지웅을 술 취한 손님으로 봤는지 경찰관들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쟤들은 왜 안 잡아가나요? 공문서 위조 현행범인데?”
“…….”
“야, 니네 다들 이리 와봐.”
유지웅이 손짓을 했지만 미성년자 주객들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것을 보고 유지웅은 피식 웃고는 의자 하나를 들고 맨손으로 일그러뜨렸다.
그 우악스러운 힘을 보고 미성년자 주객들은 물론이고 경찰, 그리고 사장까지 크게 놀랐다.
“나 백신공격대원이야. 너네가 올래, 내가 갈까?”
백신공격대라는 말에 미성년자 주객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후다닥 달려왔다.
백신공격대의 가차 없는 초법률적인 폭력 행사는 이미 이 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어린애들일수록 그 무자비함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사장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소, 손님이 백신공격대원이라니…….”
“있어 봐요.”
유지웅은 손을 들어 말을 끊은 후, 자신 앞에 선 미성년자 주객들을 훑어보고는 차갑게 물었다.
“너네는 민증 위조해서 술 처먹어도 훈방 조치 받고 끝나면 그만이지만, 가게 사장님은 영업 정지에 벌금 수천만 원 맞는다는 거 몰라?”
“모, 몰랐…….”
“뭘 몰라. 알면서 내가 알 바 아니라고, 나만 술 냠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거잖아. 술 판 사장님이 몇 천만 원 손해 보든 말든 알 것 없다고 여긴 거잖아. 누가 모를 줄 알아?”
낮은 일갈이 더 무서웠는지, 미성년자 주객들은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
유지웅은 사장을 돌아보고 물었다.
“사장님, 여기 한 달 매출이 보통 얼마죠?”
“2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중에서 재료비, 임대료, 인건비, 전기수도세 뭐 그런 거 제외하고 사장님한테 순수하게 떨어지는 건요?”
“4, 400만 원 정도 되네요.”
“너네 부모한테 말해서 여기 사장님이 맞게 될 벌금, 영업정지기간 동안 나가는 임대료, 인건비, 정지기간 동안 손해보는 순수익, 여기에 위자료 500만원까지 얹어서 지급해. 나중에 내가 CIA 시켜서 확인하고, 만 원이라도 빼먹으면 찾아간다.”
“히, 히익!”
유지웅이 부서진 의자를 다시 한 번 우그러뜨리자 미성년자 주객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유지웅은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두 경찰을 보며 턱짓했다.
“공문서위조 현행범들인데, 안 잡아갑니까?”
“얘, 애들아. 어서 가자…….”
두 경찰은 기겁을 해서 얼른 미성년자 주객들을 데리고 나갔다. 백신공격대 앞에 이대로 두면 자칫 살해당하거나 죽도록 얻어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시바삐 데리고 나가는 게 저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유지웅은 눈치 보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를 보는 사장의 눈빛이 좀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저, 정말 백신공격대…….”
“아, 당연히 농담이죠. 근딜은 맞아요. 얼마 전에 각성했어요.”
“아하!”
어색한 탄성은 그다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반쯤 백신공격대라고 여기는 듯하다.
유지웅은 일주일 뒤 다시 호프집을 찾았다. 호프집은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다행히 행정처분 안 받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경찰에서 중재를 했나 봐요. 그놈들은 공문서위조로 기소유예 처분 받았고요.”
“해피엔딩이네요.”
“아, 그리고 부모들이 미안하다고 자기들끼리 돈 거둬서 오백만 원 주더라고요. 안 받으려고 했는데 이거라도 안 받으면 자기 자식들이 백신공격대에 죽는다고 울며불며 사정을 해서 할 수 없이…….”
“굿 엔딩이네요.”
유지웅 역시 일상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잠깐 느껴서 제법 만족했다. 물론 갈증 해소는 아주 잠깐이었다.
“아, 제발! 누가 날 한 대만 때려 줘어어어!”
“소, 손님! 많이 취하셨어요! 그만 드시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