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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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벌떡 달려온 김범석의 말에 유지웅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탄핵이라니, 그래서?”
“아직 기사는 안 떴습니다. 국회 내부에서 진행 중인 작업이라서요. 30분 안으로 탄핵안 정식으로 올라가고 곧 속보도 뜰 겁니다.”
“김호 대통령이 탄핵 돼봤자 특별히 달라질 건 없을 거 같은데. 애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던 허수아비 대통령 아니었나?”
탄핵이라는 단어에 잠깐 설렜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의 여흥을 북돋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때문에 유지웅의 가슴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김호가 탄핵되면 우리나라 난리 납니다. 뒤집어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토목 건설로 워낙에 해쳐먹은 게 많아서요. 담성그룹도 중간에서 제법 재미 많이 봤습니다.”
“에이, 그래봤자 얼마나 뒤집어진다고. 재벌 그룹 몇 개 더 엮이는 선에서 끝나겠지.”
이미 담성그룹에서 오너 일가를 포함한 600명 이상의 임직원이 제니스 프리즌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담성의 몰락이라는 홍수가 난 마당에 소나기가 조금 더 내린다고 해서 크게 감흥이 일 것은 아니다. 유지웅이 시큰둥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주인님, 이 소나기를 대홍수로 만들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그제야 유지웅은 조금 관심을 보였고, 김범석은 신이 나서 말을 이어 나갔다.
“김호가 불법 이권 배분에 얽힌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아주 꼼꼼하게 해먹었거든요. 제니스 타운에 숟가락을 들이밀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놈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놈들이 차마 여기에는 이권을 차지할 수가 없으니까 변두리에서 야금야금 살점을 발라먹은 게 제법 됩니다.”
“어떤 식으로?”
“제니스 타운 건설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토지 매입 당시부터 고속도로와 강을 새로 정비했어요. 일찍부터 알아보고 준비를 한 겁니다. 그 공사 규모가 120조 원은 될 겁니다. 추경 예산 편성해서 장래 돈을 미리 끌어다 쓰고, 건설업체들에도 죄다 선지급했습니다.”
“근데 왜 나한텐 보고가 안 들어왔지?”
“제니스 컴퍼니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제니스 컴퍼니를 핑계 삼아 나랏돈 지출한 거라 류이한 사장도 그냥 놔뒀을 겁니다.”
월급 사장 입장에서는 회사와 오너한테 아무런 피해가 없는데, 굳이 정권과 정면으로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당이 탄핵 명분으로 삼은 것 중에도 토목건설사업 비리 연루도 있고요. 근데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뭔데?”
“야당이 탄핵을 주도하긴 했지만, 비리 관련 정보를 야당에 흘린 건 재벌들이라는 겁니다.”
“뭐야, 그럼 자기들끼리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거야? 걔들은 또 왜 그런대?”
“10대 재벌들 사이에서 남한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를 못하는 게 김호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있어서라는 말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거 때문입니다.”
야당이 건설사업 이권비리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탄핵안을 내긴 했지만, 결국 그 뒤에는 대재벌들이 있다는 소리다.
“야당도 그걸 모르진 않습니다만, 이 기회에 김호를 끌어내리고 싶겠죠.”
여당이 전멸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기는 했다.
“야당에 바보들이 좀 섞여 있긴 하지만 그래도 토착왜구당보다는 훨씬 낫겠지. 김호 대통령이 일본인이었나?”
“일본 출신일 겁니다.”
“일본이 내전에 고생하는 거 때문에 가슴이 많이 아프겠어. 아무튼 그래서, 범석이 네놈 계획은 뭐냐? 탄핵으로 어떻게 날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냐?”
이미 백신공격대의 활약 때문에 이 나라에 정의가 조금씩이나마 강제로 바로 세워지고 있다.
판사들은 더 이상 법의 권위니, 특권이니 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최형식이 찾아와서 피고와 판사까지 모두 죽여 버린다.
최형식이 진정으로 무서운 점은 직계비속까지 죽여 버린다는 뜻이다. 그의 주장으로는 ‘악의 씨앗을 남겨둘 수 없다. 모두 근절해야 한다.’라는 것.
죄 없는 핏줄까지 죽이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는 말이 많지만, 사람들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명분이나 설득, 대화로 최형식의 행보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최형식은 돌이킬 수 없는 수라의 길을 걷고 있었다.
때문에 최형식의 방문을 받지 않기 위해, 부정한 이들은 자기 자신을 강제로 바꿔야 했다.
판사들은 부유한 이들의 범죄에 엄한 판결을 내려야 했고, 부유한 이들은 애초에 법정에 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강력범죄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이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피해자의 진정한 용서를 받아야 했다.
백신공격대의 존재 때문에 그렇게 상류에서부터 세상이 조금씩 바로잡히고 있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세상에서 자극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 나라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이런데, 토착왜구 대통령 하나가 탄핵 된다고 해서 내가 새삼 즐거워질 만한 원인이 될까?”
세상이 바로 서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유지웅도 기왕이면 사회가 그리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똑바로 잡힌 세상은 자극이 없고 무료하다. 그렇다고 세상이 부정해지기를 바랄 수도 없으니, 그냥 혼자서만 좀이 쑤셔서 몸을 비틀어댈 뿐이다.
“믿어 주십시오. 탄핵 게이트를 통해 주인님이 무료함을 느끼지 않고 즐거워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에 유지웅도 살짝 진지해졌다.
“자신 있냐?”
“물론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네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묻지 않으마. 역시 스포일러는 피하는 게 좋겠지?”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알았어, 제니스 컴퍼니를 움직일 수 있는 전권을 주마. 류이한 사장님한테도 그렇게 전해.”
“예, 알겠습니다.”
김범석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나갔고, 유지웅은 궁금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고작해야 허수아비 대통령 탄핵일 뿐인데. 어떤 식으로 대홍수로 만든다는 거지?’
여당이 사라진 지금 대통령은 자기 뜻대로 국정을 주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당에서 작정하고 반대하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10대 재벌들이 탄핵을 유도한 것도 애초에 북한 투자 개발에 발을 들이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대통령 탄핵, 일반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정치적 대격변을 동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 분위기에서 김호의 탄핵이 불러올 풍파는 그리 크지 않다.
김범석은 그 풍파를 어떻게, 얼마만큼, 어디까지 크게 일으킬 셈인 것일까?
“지켜보마, 범석아. 믿고 있을게.”
유지웅은 유능한 모사꾼이자 충견인 김범석이 자신을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했는지, 그 선물꾸러미를 풀어볼 날이 몹시 기다려졌다.
탄핵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보궐선거가 끝난 지금, 제1야당은 전체 의석 300석 중 272석을 확보한 상태였다.
여당은 사실상 해체 상태이다 보니 단 한 명의 후보도 내보내지 못했고, 제1야당 및 기타 군소정당으로만 이뤄진, 역사상 다시 없을 기이한 국회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제1야당이 마음만 먹으면 개헌이든 뭐든 이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10대 재벌들이 은밀히 제공한 온갖 비리 정도 덕분에 김호를 공격할 명분을 얻은 야당은 비로소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바로 가결되고, 곧바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넘어갔다. 이제 9명의 헌법재판관들이 탄핵안을 가결하면 김호는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된다.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검찰이 청와대를 기습적으로 들이닥쳐서 닥치는 대로 자료를 쓸어갔다. 청와대 측은 자료들을 소각할 틈도 없이 눈을 뜨고 앉은 채 고스란히 모든 것을 내줘야 했다.
“엄청난 피바람이 불겠어.”
“야당에서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거야. 김호 측 라인은 이제 끝났다고 봐야 돼.”
“이번에 김호 대통령 감옥에 들어가면 아마 평생 바깥을 보지 못할 거다.”
“주변 인사들도 자기들한테 튈 불똥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던데.”
청와대 인사 중에서 피난을 위해 출국을 시도하는 이들도 더러 나왔다. 하지만 이미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라 공항에서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재벌 자본가들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과정에 만족스러워했다.
김호 대통령이 실각하고 보궐 선거에서 야당 출신 대통령이 청와대를 차지하면, 북한도 투자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기업가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내가 입을 열면 다칠 사람들이 몇 만은 될 걸? 물론 가족까지 다 합친 숫자지요.”
그간 변호인만 내세울 뿐 묵묵부답으로 탄핵 재판에 임하던 김호 대통령은 최후 선고를 얼마 남지 않은 공판 도중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입을 열어야 할 거 같아요. 나 혼자 죽기에는 너무 억울해서 안 되겠어.”
그는 자신에게 청탁을 해온 기업가들의 이름, 청탁 내역, 청탁 규모 등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마치 사전에 정리한 내용을 암기한 것처럼 전혀 막힘없이 진술을 이어 나갔다.
헌법재판소 정식 공판 중에 행해진 진술은 여과 없이 그대로 세상에 보도되었고, 여론이 들끓어 올랐다.
청탁이 받아들여진 것,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구분할 거 없이 그 전체 규모가 무려 수백조 원이 넘었던 것이다. 20대 재벌 일가 중에 언급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죄를 심판할 거면 이들 전부도 포함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 정의가 바로 서는 거지, 안 그런가요?”
검찰은 어쩔 수 없이 수사에 착수해야 했다.
알려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수사를 하지 않으면, 바로 백신공격대가 검찰을 찾아온다.
윗대가리부터 시작해서 죽창을 맞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 수사에 임해야 한다.
한편 김호 대통령의 진술에 재계는 난리가 났다.
담성그룹을 제외한 10대 기업 사장단이 비밀리에 급히 모여서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김호가 미친 거 아닙니까? 가만히 있으면 최소한 자기 가족들은 건사할 수 있을 텐데, 나중에 특별사면도 노릴 수 있을 텐데, 다 같이 죽자고 나서다니요!”
“탄핵이 인용되면 최형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간 최형식은 이상하리만치 청와대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입법부와 사법부에 큰 타격을 준 상황에서 행정부까지 날려버리면 이 나라가 흔들리게 되니까요.”
최형식이 김호의 퇴임 이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추론이다. 물론 최형식은 지금까지 특정 목표물을 노린다고 미리 예보한 적은 없다.
그가 죽창을 남기고 난 뒤에야 세상은 그가 누구를 노렸는지를 알게 될 뿐이다.
“근데 이상합니다. 김호가 담성그룹 측 청탁은 한 마디도 밝히지 않았어요.”
“그거야 담성그룹은 이미 박살난 상황이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600이 넘는 임직원들이 구속되었는데요.”
“담성그룹 임원 중 김범석이라는 인물이 김호의 최측근 박형오 전 실장을 몰래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틀 전입니다.”
“뭐야, 설마 담성그룹이 지금 자기들 침몰 피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겁니까? 김호를 이용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