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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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황백호는 유난히 감성에 취해 있는 듯이 보였다.
그 기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닌지라, 유지웅은 잠자코 술만 따랐다.
술잔을 가득 채운 투명한 술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던 황백호가 단숨에 털어 넣은 뒤 말했다.
“마지막으로 술에 취한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탱커는 술에 취하지 않으니까요. 정확히는 취한 즉시 해독을 해버리는 것이지만요.”
“취한 기분을 느끼는 날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겠죠?”
“아니오, 의외로 금방 올 수도 있습니다. 탱커도 취할 수 있는 특수한 술이 개발될 거라 믿습니다.”
“아아, 그런 술이 나오면 참 좋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나오지 않더라도 제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개발을 할 테니까요.”
“총리는 탱커도 아닌데 술에 안 취합니까?”
“잘 안 취하더군요. 저도 언제 취해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로버를 제압할 때, 균열의 붕괴에 이끌려 과거로 떨어진 시점부터가 아닐까 싶다.
황백호는 흐릿한 시선으로 빈 술잔을 훑으며, 중얼거리듯이 천천히 말했다.
“내가 아니었어도 우리 공화국은 결국 제니스 컴퍼니, 그리고 총리 덕분에 지금의 발전을 이뤘을 겁니다. 나는 우연히 마침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에요.”
“그런 말씀마세요. 통령이 있어서 공화국이 이런 단시간에 이만큼이나 온 겁니다.”
“그냥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 인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된 게 전부 총리 덕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공화국을 잘 지켜주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황백호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말한다.
하지만 유지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초의 탱커로서 각성한 것, 그리고 여기에 자가 치유 능력이 더해진 것부터 이미 그는 남다른 특별함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자가 치유 능력이 없었다면 희생을 개의치 않는 북한군의 포격을 맞아 죽었을 것이다.
최형식이 아직까지 무사한 것은 도심의 시가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주변 피해를 도외시하고 미사일을 퍼부으면 아무리 탱커라 해도 살아남지 못한다.
일찍이 북한의 역성혁명을 두려워한 중국이 자강도를 불태워가면서까지 황백호를 죽이려 한 것만 봐도 그렇다.
만약 자가 치유 능력이 없었으면 지금의 황백호 통령은 존재할 수 없었다.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나라를 살리려고 이것저것 열심히 노력을 한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황백호가 걸어온 길.
그 중 어느 것 하나만 빠졌어도 지금의 황백호 통령, 그리고 북한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운명인 거지. 당신은 처음부터 내 빨대가 될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춘 채로 각성해버렸어.’
본인이 빨대라는 자각이 없는 빨대.
유지웅은 그의 얄궂은 운명에 속으로 잔잔한 애도를 표했다.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
지모는 한국 정세의 흐름을 주도면밀하게 파악했다.
비상계엄은 전국으로 확대되었지만, 특별한 제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생업에 종사했고, 문화 활동을 즐겼으며, 때로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계엄군은 가급적 거리에 모습을 보이는 것을 삼갔다. 일반 시민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삼갔다.
때문에 계엄이 선포된 게 정말 맞는지 헷갈려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특히 민주항쟁을 짓밟기 위한 수단으로 발동했던 과거의 잔혹한 계엄 사태를 기억하는 이들은, 무늬만 계엄이 선포된 게 아니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엄의 살벌함은 수면에서만 잔잔했을 뿐이다.
수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름 위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무자비한 보복이 일어나고 있었다.
계엄군은 내란 카르텔 조직을 잡아들인다는 명목으로 유명 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기업가, 정치인, 학자, 시민단체장 등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계엄군의 진짜 목적은 바로 9대 재벌에 있었다. 나머지는 그저 눈속임을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계엄군은 9대 기업에 몸을 담은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로 풀어주었다.
지모는 그 모든 과정을 남김없이 지켜보며 분석했다.
“이거 혼란이 쉽게 해소되진 않겠는데.”
김호의 계엄 조치.
그것은 자신을 엿 먹인 기업가들을 대대적으로 조지지 위한 보복 행사였다.
“과연 김호 대통령이 어디 수준까지 보복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군.”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정황을 보면 제니스 컴퍼니, 정확히는 김범석이 김호의 탄핵 석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이 혼란은 유지웅 의장이 유도한 건가?”
하지만 미국은 그에 관해서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다.
평소 유지웅의 성격이라면 편한 길을 가기 위해 미국을 적극 활용했을 텐데, 일체의 언질도 주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아랫사람들의 무분별한 충성 경쟁이 낳은, 뜻하지 않은 돌발 사건인가?”
결국 지모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북한으로 향했다.
지모가 북한에 도착했을 때, 유지웅은 마침 일본 12개 기업집단과 비밀 거래를 마친 상태였다. 그 계약은 미국 측에서도 파악하고 있었다.
유지웅이 먼저 미국에 부탁을 해왔을 정도다. 이 계약이 설사 누출되더라도 기업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물론 미국은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다.
“아, 지모 대위. 이 먼 곳까지 어쩐 일로 오셨나요?”
“제니스 컴퍼니의 영원한 친우이자 혈맹으로서, 현재 남한 사정에 관해서 설명드릴 게 있어서입니다.”
“그래요?”
유지웅은 의자를 끌고 와서 앉으며, 경청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김호 대통령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자기한테 등을 돌린 기업가들을 박살내고 싶은 겁니다. 이미 9대 기업 총수 일가가 계엄군에 체포된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계엄 조치를 해제하기 위해 국회 계엄 해제 조치를 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계엄군도 필사적으로 국회 무력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요. 이미 국회는 출입이 불가능해진 상태입니다.”
“저런, 명분이 없을 텐데요.”
“내란 카르텔이 국회 내부에도 뻗어 있다는 거지요. 여기에 국회 내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핑계로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출입만 뚫리면 곧바로 계엄은 해제되겠네요.”
“계엄군은 그것까지 감안해서 대비 작전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윤지우 계엄사령관은 그런 계엄의 진짜 목적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일반 시내 질서 행정만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모는 설명을 이어나가면서 유지웅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표정에는 특별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의장님, 저대로 방치하실 겁니까?”
“음…… 자기들끼리 싸우는 건데 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지 않을까요?”
지모는 바짝 긴장하면서도 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안색을 유지했다.
“저는 누가 제니스 타운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특별히 나서서 뭘 할 마음이 없어요.”
“그렇다면 현재의 준내전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만약 조속한 해결을 원하신다면 우리 미국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습니다.”
“놔두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서로 틀어져서 싸우는 애들은 그냥 양쪽 다 터질 때까지 실컷 싸우게 놔둬야지, 억지로 말리면 속으로 화병이 쌓여서 나중에 더 탈이 납니다.”
“…….”
“그리고 재밌잖아요. 전 김호 대통령이 ‘이것은 한일전이다’라고 했을 때 엄청 웃었는데. 지모 대위는 안 웃겼어요?”
비상계엄 조치가 전국으로 확대되었지만, 정부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었다.
일단 계엄 자체가 일반 시민들에게는 전혀 영향을 발휘하지 않은 점이 컸다. 막말로 시위를 하고 가두행진을 벌여도 계엄군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폭동으로 변할 조짐이 보이면 말로서 설득을 할 뿐이었다.
계엄군이 오히려 더 신사적이고 비폭력적으로 나오니, 죽음까지 각오했던 시위대가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느 계엄군 장교들과 시위대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햄버거를 먹으며 같이 푸념을 나누는 사진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계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희한하고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다른 의미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럼 의장님은 김호 대통령과 보복 대상이 된 자본가들 중 어느 쪽이 승리하든 개의치 않으신다는 뜻인가요?”
“네, 맞아요. 관심 없습니다. 아, 물론 구경하는 것은 매우 흥미가 많아요.”
지모는 유지웅이 키득거리는 표정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봤다.
‘역시 이 사람은…….’
정신세계가 보통이 아니야.
가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문득문득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깨닫고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마인드를 다잡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했는지 모른다.
지모는 슬쩍 미끼를 던져 보았다.
“김호 대통령이 제니스 컴퍼니의 은밀한 지원을 받는다는 말이 재계에서 돌고 있습니다.”
“그래요? 몰랐어요.”
유지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정말 자연스럽게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모는 확신했다.
‘역시! 알고 있었잖아!’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헬스장개 삼년이면 뒷발 스쿼트를 한다고 했다.
지모가 유지웅 옆에 머무르며 메신저 역할을 한 것도 제법 오래 되었다. 그는 유지웅의 표정에 담겨 있는 시치미 떼기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그렇다고 내색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은 미국의 친우에 대한 외교적 결례다.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체 넘어가야 할 때가 있다.
“정재계에서 돌고 있는 소문일 뿐입니다. 제니스 컴퍼니에서 헌법재판관들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말이 있고요. 그래도 언론에서 대놓고 다루지는 않고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의혹으로 제니스 컴퍼니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이거 괜히 오해받지 않으려면 당분간 한국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지모는 적당한 거짓말로 넘어갔고, 유지웅도 그에 호응했다.
“북공화국에는 얼마나 머무르실 생각이신가요?”
“이번에 총리로서 하러 온 일은 다 끝났어요. 일본 제조업들 귀화시키는 작업이요. 그래도 계엄 사태가 대충 자기들끼리 정리될 때까지는 저도 소나기를 피해 있어야 하니……. 이걸 어쩐다.”
지모는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날 뻔했다.
본인이 초대형 허리케인이면서 정작 소나기를 피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왠지 조금 웃겼다.
“계엄군이 시민들에는 피해를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 정보부도 민간인에 대한 발포는 절대 없을 거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김호 대통령이 특히 그 부분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그건 저도 알…… 아니, 그랬나요? 처음 들었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혹시 우리 제니스 타운에 헬기부대가 들이닥치면 어떡해야 하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유지웅이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아, 그럼 당분간 미국에나 머물러야겠어요.”
“미국이요?”
“네, 여차하면 백악관 찾아가서 도움 청하기에도 좋잖아요.”
지모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미국에 머물러도 별 일 안 생기겠지?’
“알겠습니다. 맞이함에 소홀함이 없도록 지금 바로 본국에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