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62)
— —
유지웅은 생각하는 것 대신 사다리를 굴리기로 했다.
팔당호 오염 사실을 어떤 식으로 알릴지 다양한 방법을 여러 개 적은 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김범석에 대한 믿음이 어지간히 크지 않고서는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볼펜끝이 사다리를 타고 끝까지 내려갔다.
“좋아! 뭐냐?”
「방송에서 일부러 실수인 척 단서만 흘린 뒤 방송을 종료. 시청자로 하여금 혼란과 패닉을 품게 한 뒤 여론에서 자기들끼리 온갖 음모론과 짤방을 무한히 재생성하게 만들도록 유도하기.」
“오케이, 바로 방송 켜야겠어. 그나마 가장 짧고 간단한 게 걸렸군.”
이게 가장 짧고 간단한 거면 가장 길고 복잡한 것이 어떤 건지는 알아서 상상하도록 하자.
유지웅이 방송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안녕, 동생들? 제법 오랜만이야? 그동안 많이 심심했지?”
―기다렸습니다, 형님!
―브라질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제니스 컴퍼니가 국제 선물 시장에서 떼돈을 벌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가축 사료값 폭등하면 고기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겠죠? 진짜 앞으로 이제 흙수저들은 고기 한 점도 마음껏 못 먹는 세상이 오나요?
“오, 동생들. 걱정하지 마. 고기가 없으면 달걀을 먹으면 되잖아. 달걀도 훌륭한 단백질이라고.”
―지웅이 형님은 돼지고기가 없으면 다금바리회를 먹으면 된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의 소소한 반전이네.
―근데 형님 말씀이 의미심장한데? 달걀을 대신 먹으면 된다고 하시는 걸 보니 고기값이 폭등하긴 하려나 보다.
―바짝 새겨듣자. 최대한 고기값 오르기 전에 많이 먹어두자. 특히 흙수저들 전부 명심해.
“그나저나 동생들, 지금 고기반찬 걱정할 때가 아닌 거 몰라? 당장 먹을 물이 없어서 난리가 날 판인데 무슨 고기반찬을 걱정하고 있어.”
―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캐치했다. 지금 지웅이 형님이 우리를 향해 시그널을 보내고 계신다!
―뭐야, 뭐야? 지금 무슨 암호를 보내신 거야?
“동생들, 켜자마자 미안한데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효주가 부르고 있네. 미안.”
―형님, 사모님은 지금 제니스 타운에 계시잖아요. 근데 어떻게 형님을 방송 중에 부를 수 있…….
유지웅은 곧바로 카메라를 끈 채,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방송을 완전히 끈 건 아니었다. 카메라는 껐지만 마이크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즉 시청자들한테는 ‘방송을 급히 끌려고 했지만 실수로 카메라만 꺼버린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유지웅은 마이크가 켜진 것도, 방송이 아직 종료된 것도 모르는 스트리머의 역할에 몰입했다.
“그래, 김 이사. 지금 환자들 상태가 어떻다고? 많이 위험한가?”
“어쩔 수 없지. 일단 내 사재라도 털어.”
“괜찮겠냐고? 그건 나도 장담 못해. 별 수 있겠나? 나도 신이 아닌 것을…….”
“방송? 아아, 괜찮아. 지금은 껐어. 시청자들한테는 와이파이 호출이라고 대충 둘러댔지. 걱정 말게. 시청자들은 눈치 채지 못했을 거야.”
“자네도 빨리 뜨게. 그곳은 안전하지 못해.”
그리고 유지웅은 일부러 소리 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직 청각으로만 방송을 접하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방송이 안 꺼진 줄 모른 채 진지하게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조용히 자리를 뜨는 것처럼 인식되었을 것이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야? 지웅이 형님, 방금 누구랑 대화한 겨?
―김 이사라는 사람이 누구지? 하필이면 또 김씨야. 세상 천치에 널리고 널린 김씨!
―대화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았어. 환자? 위험? 사재를 털어? 시청자들은 눈치 채지 못했을 거다? 대체 김 이사라는 사람하고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그보다 이거 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왠지 한국 상황이 위험하다고 한 것 같은데…….
어느덧 시간 종료로 인해 자동으로 방송이 꺼졌다.
시청자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시청자 전용 커뮤니티로 옮겨가서 심도 깊은 토론을 시작했다.
김 이사라는 사람은 누구이며, 유지웅은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에서 언급된 정체불명의 위험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한편 김범석은…….
“김 이사? 누구지? 나는 대체 누구와 주인님의 총애를 다투고 있는 거지?”
김범석은 유지웅 방송의 가장 열렬한 애청자다. 물론 그는 후원 풍선은 쏘지 않는다.
어떻게 감히 미천한 종 따위가 고결한 주인을 ‘후원’할 수 있단 말인가. 발칙하고 불경한 짓이다. 자신은 그저 주인이 내려주시는 은총을 감사히 받아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주인님이 대하시는 말씀을 보면…… 여간 신뢰하는 종이 아니야. 으드득! 나도 질 수 없다! 지금보다 더욱 정진해서 주인님의 가장 큰 총애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본의 아닌 미러전(Mirror戰)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지웅이 방송에서 슬쩍 흘린 단서는 당연히 청와대에도 흘러들어갔다.
정보 분석 전문가들은 유지웅이 무심코 흘린 말, 그리고 방송을 종료한 후에 측근으로 추정되는 이와 나눈 대화의 내용을 다각도에서 정밀히 분석한 후 김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서울에 뭔가 위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니스 컴퍼니는 이미 그걸 감지한 듯합니다.”
“위험? 어떤 위험?”
“위험의 종류나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지목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환자들’이라는 단어에 주목했습니다. 또한 ‘고기반찬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먹을 물이 없어서 난리가 날 판이다.’라는 표현에도 집중했습니다.”
“물…….”
물이라는 말에 대통령도 퍼뜩 생각난 게 있었다. 바로 현재 남미 아마존 강에 닥친 위기였다.
“어제부터 서울 시내 종합병원 응급실이 갑자기 실신해서 실려 온 노약자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마존 강 일대에 살던 원주민 부족이 보였던 증상과 정확히 맞아 떨어집니다.”
“설마?”
김호의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고, 국정원장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서울 상수도원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보고를 드린 바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지.”
다수의 실신 환자가 발생했고, 그것이 수돗물에 약을 탄 것 같다는 보고였다. 물론 내용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김호는 그걸 이용해서 계엄 상태에 더욱 명분을 더하고자 했다.
있지도 않은 내란 카르텔을 추적하고 여론을 장악하는 도구로 쓰려 했었다.
“어쩌면 정말 상수도원에 문제가 생긴 건지도 모릅니다.”
“국정원장은 지금 아마존 강에 일어난 것과 같은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조사할 가치, 아니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지웅 의장이 방송에서 실수로 흘린 내용이 너무 심상치 않습니다.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허가하네. 서둘러 알아보게.”
만약 정말 서울 시민들이 먹는 물에 문제가 생긴 거면 큰일이다. 수자원은 도시의 가장 중요한 동맥이다. 사람은 물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수자원이 박살나면 도시는 며칠도 못 가 유령 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연일 뜨거운 공방전이 일어났다.
유지웅이 방송에서 실수로 흘린 내용을 해석하고 끼워 맞추는 사람들 간에 벌어진 의견 대립이었다.
대체로 큰 다툼이 없는 공통점은 한국 어느 도시가 큰 위험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견 없이 인정했다.
다만 그 도시가 어디인지, 그리고 위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놓고는 참으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유지웅조차 상대할 수 없는 괴수의 출현 예고부터 지진 같은 대재앙, 혹은 결정체 에너지 폭발, 심지어는 대규모 씽크홀 예견도 있었다.
머지않아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던 주제 하나가 소거되었다.
“서울이다! 서울이었어!”
“김 이사란 사람은 역시 서울에 살고 있었군!”
“분명해. 서울이 틀림없어. 지금 서울 시내 병원들은 난리가 났어.”
서울 시내에서 갑작스러운 실신 환자들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서울 동부 경기도 지역에서도 일부 환자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수는 주로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다.
“뭐지? 서울에 전염병이라도 돌기 시작한 거야?”
“우리 사촌형이 의사인데 형 말로는 그렇다더라. 지금 병명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고 있대. 병원이 뭔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태래.”
“정말 전염병이 맞긴 한 거야?”
집단 지성은 정녕 위대했다.
네티즌들은 환자의 발생 수, 병의 증상, 그리고 최근 브라질에 일어난 일들과 유지웅이 방송에서 실수로 흘린 단어들을 종합해서, 거의 진실에 가까운 추론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이거 아무래도 과잉 축적 현상 같지 않아?”
“듣고 보니 그러네. 그게 맞는 거 같아.”
“과잉 축적 현상이 틀림없어.”
“그럼 어딘가에서 결정 에너지가 과다하게 유입돼서 체내에 쌓였다는 건데…… 대체 원인이 뭐지?”
“물이야, 물! 수돗물 때문에 저렇게 된 거라고!”
“에이, 설마. 수돗물에 노출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쓰러져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봐봐. 쓰러진 사람들 보면 사는 지역이 특별히 구분되지 않아. 물론 인구 밀도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유의미한 정도는 아니라고 봐. 근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지.”
“뭔데?”
“신체 능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이라는 거지. 특히 고령의 노환질환자들이 많아.”
“정말 한강이 오염되었다는 말이야? 이거 큰일이잖아.”
“근데 왜 우리들은 멀쩡한 거지?”
하지만 그런 의문은 오래 갈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성인들 사이에서도 실신해서 실려 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수돗물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는 공포가 시민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트나 편의점에 파는 생수는 들여놓기가 무섭게 동이 나기 시작했다. 각 지점이나 물류 창고의 재고는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업체는 부랴부랴 생수 유통 물량을 늘렸지만, 하루아침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울에서 생수는 돈 주고도 못 사먹는 희귀 품목이 되었다.
“각하, 확인했습니다. 역시 우리 예측이 맞았습니다.”
“정말로 상수도원이 결정 에너지에 오염된 건가?”
김호 대통령은 흙빛이 돼서 물었고, 국정원장은 어두운 얼굴로 끄덕였다.
“팔당호가 결정 에너지에 오염되었습니다. 제니스 컴퍼니에서 확인해주었습니다.”
“그 사실을 왜 이제 와서…….”
“하루아침에 서울이 혼란이 빠지는 걸 방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과축적이 된다 해서 죽거나 생명이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이 쓰러져 나가는데 생명이 위험하지 않다니?”
“어차피 기절하면 물을 통해 더 이상 결정 에너지를 흡수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이 원인인 걸 알았으니 오염되지 않은 물을 꾸준히 섭취시키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결정 에너지가 배출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초기 환자들은 링거만 놓았을 뿐인데 의식을 차리고 회복한 경우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김호는 이 대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머리가 아팠다.
계엄 선포를 통해 겨우 정국을 휘어잡을 수 있었는데, 하필 이런 난관에 처하다니.
표정을 살피던 국정원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각하, 이건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