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59)
00159 외환 =========================================================================
“꼭 우리가 나서야 해?”
히카리 상륙 정보가 알려지고 한국은 바빠졌다. 급히 공격대가 소집되었고 당연히 제니스 공격대 멤버도 포함돼 있었다.
유지웅은 그게 싫었다. 전에 히카리와 싸우다가 정효주가 죽을 뻔했다. 그런데 또 싸워야 한다. 아무리 레이드 능력자에게 부과된 병역 의무라지만, 사랑하는 와이프가 또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어찌 반발심이 안 들까.
그거 때문에 정부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물론 그도 안다. 이게 다 투정이라는 것을. 하지만 투정을 부리는 게 뭐가 나쁜가? 목숨 걸고 싸우는 건 이쪽인데 말이다.
“기운 내. 잘할 수 있을 거야.”
오히려 정효주가 그를 달랬다.
“어차피 히카리를 안 잡을 순 없잖아.”
히카리는 단순히 일본만의 위기가 아니었다. 일본이 멸망하면 그 다음은 한국일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한국을 향해 진격 중이지 않은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보호막 치고 우리 둘만이라도 살아남자.’
유지웅은 남 몰래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나라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그에게는 정효주가 더 중요했다. 정효주를 잃는다면 다른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두 분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십시오. 다른 건 전부 버려도 됩니다.”
“네?”
남 몰래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있던 유지웅은 남기철이 다른 이들 몰래 넌지시 말하자 깜짝 놀랐다.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상부의 결정입니다.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두 분의 능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희생되어서는 안 됩니다. 꼭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도망칠 마음을 품고 있던 게 미안해지잖아.
그래도 덕분에 유지웅은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대응 작전에 임할 수 있었다.
“브라우니도 데려갈게요.”
“네? 브라우니를요?”
“훈련 성과도 어느 정도 나타났고 하니까 써먹어야겠어요.”
“하지만 목표는 레드 몹입니다! 섣불리 투입했다가 위험해지는 게 아닐까요?”
“여기서 더 위험해질 것도 없어요. 저번에 우리 효주 죽을 뻔한 거 기억 안 나세요?”
“…….”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에요.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쓸 거예요. 브라우니를 데려가야겠어요.”
옐로 몹 레이드에 데리고 다니면서 어느 정도 브라우니를 훈련시키긴 했지만, 아직은 불안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이 방법을 가릴 땐가. 살아남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으면 무엇이든 닥치고 해야 할 때였다. 뒷일은 나중에.
정부도 반대하지 못하고 브라우니 투입을 승인했다. 그렇게 브라우니의 첫 실전 투입이 결정되었다.
브라우니를 어떻게 이송할 것인지가 문제였는데 다행히 쉽게 해결되었다.
“잘 따라와. 알았지?”
말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눈치코치로 어느 정도 정효주의 뜻은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브라우니는 날개를 펼치고, 유지웅 부부가 탄 V-23을 부지런히 따라왔다. 브라우니 통제를 위해서 V-23 후방문을 열어두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이번엔 다를 거야. 퍼플 결정체도 있잖아.”
정효주는 나름 자신감에 차 있었다. 훈련을 통해 퍼플 결정체의 힘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섬광 궁극기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충분히 무찌를 수 있으리라.
그 점은 유지웅도 이해한다. 저번처럼 맥없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예상 외로 쉽게 잡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녀를 잃을 뻔했던 트라우마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어차피 우리 밖에 잡을 사람은 없어.”
“……알아. 그래도 피하고 싶어.”
“기운 내. 잘할 수 있을 거야. 난 우리 신랑 믿어.”
히카리가 부산 쪽에 어느 정도 근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UN 연합 공격대도 한창 한국을 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연합 공격대가 제때 도착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워낙 시일이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상황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습니다.」
“원래 심각하지 않았어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필사적인 것 같습니다. 일본 정부가 피해 내역을 적극 은폐하고 있는 것도 수상하고요.」
“신경 안 써요. 지금 그런 건 알 바 아니에요. 근데 왜 히카리는 자꾸 한국으로 오는 거죠? 저번에도 그랬는데.”
「글쎄요. 저희도 알고 싶습니다.」
한반도에 꿀이라도 발라놨나?
그때 정효주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며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어쩌면 혹시?
‘퍼플 결정체에 반응하는 건가?’
괴수가 다른 괴수, 혹은 다른 결정체를 먹어치우면서 강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히카리는 블랙 몹이라고 했다. 아마 상상할 수 없는 투쟁을 거치면서 블랙 몹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어쩌면 녀석은 먼 거리에 있는 퍼플 결정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서둘러 진형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브리핑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동원 공격대라고 하지만 태반이 제니스 공격대였다. 저마다 얼굴 가득 긴장감과 불안,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대원들의 얼굴을 보자 유지웅은 무거운 책임감이 들었다.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장례시장에서 장난감 차를 갖고 놀던 이정희 딜러의 아들이 생각났다.
또 다시 그런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불안해하는 대원들을 보자 그런 막중한 사명감이 느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불안감이 책임감에 밀려났다.
“쿤겐이 있으면 좋을 텐데.”
쿤겐이 미국에 있다는 게 아쉬웠다. 그녀가 있으면 원거리 저격 공격으로 쉽게 히카리를 끌어올 수 있었으리라.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정효주가 샐쭉했다.
“나도 가능해. 알잖아?”
“아, 맞다.”
유지웅은 무릎을 탁 쳤다. 깜박 잊고 있었다.
「예상 도착 시간까지 약 18분 남았습니다.」
보고가 계속해서 들어왔다. 전투를 앞두고 대원들의 긴장도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명이나 사망자를 냈던 녀석이다 보니, 다들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저들 중 좋아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레이드 능력자의 숙명이었다. 뛰어난 능력자일수록 국가 위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여기 있는 분들 중 원해서 자발적으로 이곳에 오신 분들은 없을 겁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유지웅이 말을 꺼냈다. 모두의 눈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히카리를 막지 않으면 이 땅이 엉망이 될 겁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입니다. 그러니 긍지를 가지고 싸우죠. 이미 우리는 한 번 이겼습니다. 또 이기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제니스 공격대 만세!”
“만세! 만세!”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다고!”
함성이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확 타올랐다. 대원들의 얼굴에서 불안감이 지워지고 사기가 고취되었다.
오히려 유지웅이 얼떨떨했다. 다들 굳어 있는 게 안 되어 보여서, 그래도 공격대장 입장으로서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래서 사기가 중요하다는 걸까?
“말 잘하는데?”
정효주도 흐뭇하게 웃으며 어깨를 쿡 찔렀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대답했다.
“아니 난 그냥……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잘했어. 덕분에 다들 기운을 차렸어.”
솔직히 반쯤은 거짓말이었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좆같죠? 저도 좆같아요.’였다. 대놓고 그리 말할 수 없어서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을 뿐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순화가 아니라 거의 날조 수준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공격대는 기운을 차렸고 사기도 올라갔다. 날카로운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히카리 도착까지 약 2분 이하!」
2분 이하라면 충분히 오차 범위 안이다.
그때였다. 웅크리고 있던 브라우니가 고개를 휙 쳐들었다. 거의 동시에 정효주도 눈을 들었다.
“뭔가 보여?”
“응.”
정효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브 탱커들은 늦게 반응했다. 어느 탱커가 외쳤다.
“온다! 옵니다! 와요!”
「메인 탱커, 어그로 끌 준비를 하세요.」
장태준은 저번 히카리 레이드 때 쿤겐이 했던 역할을 정효주에게 맡겼다. 그는 현재 정효주가 S급 강화 장비를 보유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퍼플 결정체의 힘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유지웅이 그렇게 거짓을 섞어 설명했던 것이다.
“지웅아.”
그녀가 유지웅을 돌아보았다. 그가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보호막이 걸린 순간 그녀는 튕겨지듯이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모두 전투 준비.」
지시가 떨어졌다. 정효주는 순식간에 공격대 본진에서 벗어나 레이드 예정지로 정한 공터로 향했다. 저번에 싸웠던 바로 그 장소였다. 본진과 거리를 벌린 그녀는 저 멀리 히카리를 향해서 맞잡은 두 손을 겨누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번쩍!
거대한 섬광이 단숨에 하늘을 향해 뻗어 올랐다. 그녀는 아주 조금이지만 기대감을 품었다. 혹시 맞지 않았을까?
「빗나갔습니다! 목표, 공격 인식! 내려옵니다!」
안타까웠다. 그녀도 똑똑히 보았다. 섬광 궁극기는 히카리를 스치기는커녕 한참이나 빗나갔다. 거리가 먼 탓도 있고 제어도 정교하지 않은 탓이었다.
장검을 빼들고 그녀는 대비했다. 날개 달린 거대한 사자 형태를 한 히카리가 내려앉자 땅이 흔들렸다.
갑자기 히카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놀라운 속도로 히카리가 달려든 것이다.
가까스로 몸을 날려 겨우 피했다. 중심을 잡고 일어선 그녀는 눈앞이 번쩍이는 것을 느꼈다. 발밑의 땅이 사라진 느낌과 함께 하늘이 보였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날고 있음을, 아니 나가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탱커 부상! 힐러진, 힐하세요!」
「보호막 완전 소멸! 부상도 3!」
단 한 방에 3단계 보호막이 찢어지고 부상도 3에 달하는 중상을 입었다. 부상도 3은 탱커가 행동에 제약을 받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다. 일반적으로, 보통 탱커가 보호막 없이 레드 몹을 상대로 레이드할 때 최소 부상도 3 이상을 보인다. 부상도 3은 레이드 난해, 부상도 4는 레이드 불가 판정을 받는다.
저번과 똑같았다. 정효주가 제대로 반응하기 어려운 놀라운 속도와 3단계 보호막을 한 방에 찢어버리고 부상도 3의 부상을 입히는 막강한 공격력까지.
아마 정효주 대신 일반 탱커를 내세운다면 부상도 2 정도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탱커는 어그로 확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반 탱커는 레드 몹만 되어도 어그로 먹는 것을 힘겨워 한다. 하물며 블랙 몹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흐윽!”
힐이 들어오자 정효주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또다시 눈앞이 번쩍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히카리의 돌진이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어떻게 저 큰 몸집에서 저런 스피드가 나오는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녀의 공격은 히카리에게 박히지 않는다. 방어막이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이다. 방어막을 뚫고 신체에 아픔을 주지 못하면 어그로를 확보할 수 없다. 딜러진이 딜을 시작하는 순간 히카리는 딜러진을 볼 것이다.
쿤겐이 없는 지금 그녀가 직접 섬광 궁극기를 사용해서 방어막을 뚫고 부상을 입혀야 한다. 하지만 저렇게 빨라서는 섬광 궁극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최소한 정신을 집중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는가.
―캬아아아!
몸을 낮춘 히카리가 낮게 포효했다. 맹수의 눈동자가 사납게 노려보고 있다. 마치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사라졌던 앞발이 어느새 재생되어 있었다.
그녀는 똑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배에 힘을 주고 외쳤다.
“브라우니!”
날카로운 고음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확성기를 사용한 것처럼 엄청나게 큰 소리였다. 그에 화답하듯이 저 멀리서 브라우니가 깨애앵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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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토스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