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86)
00186 식량 파동? =========================================================================
놀란 정효주도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게 얼마짜리인데 다 사라져 버려? 그녀는 급한 나머지 전화기를 뺏어 들었다.
“남 국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전화 줘 봐! 마저 물어봐야겠어!”
“다 잡아놓은 괴수들이 사라져요? 아니, 대체 왜요? 뭐 때문에 사라졌다는 거예요?”
“전화기 좀 줘보라니까!”
“누가 훔쳐 갔어요? 아니면 브라우니가 혹시 먹었어요? 정말 그런 거예요?”
밤새 서로를 탐닉하느라 잠도 못 잔 젊은 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패닉 상태로 하루를 맞이했다. 둘이 전화기를 놓고 다투는 바람에 남기철은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 * *
“누가 훔쳐 간 게 아닙니다. 또 다른 괴수가 와서 먹어치운 것도 아닙니다.”
정부는 군 병력을 동원해서 호남과 논산평야 일대를 밤새 감시했다. 외부의 소행은 절대로 아니었다. 무려 2천 마리가 넘는 숫자다. 군병력의 경계망을 피해 그 많은 것들을 훔쳐갈 수도 없거니와 다른 괴수가 몰래 와서 먹어치운 것도 아니다.
새벽녘에 경계를 섰다는 몇 몇 병사의 증언과 현장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근무교대를 하기 전이었습니다. 분명히 괴수 사체가 눈앞에 있었는데 갑자기 연기로 변하더라고요. 그리고 흩어지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치 땅에 흡수된 것 같았어요. 서둘러 보고했습니다만 졸다가 헛것을 본 거 아니냐고 오히려 혼났습니다.”
유지웅 부부도 V-23을 타고 현장으로 날아왔다. 둘은 하루아침에 깨끗해진 평야를 보고 망연자실해졌다. 몇 조 원이나 되는 돈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정효주는 멍해져서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급히 달려온 결정체 과학자들은 고가의 장비를 통해 괴수 사체가 있던 부분을 샅샅이 점검했다. 감정 장비까지 동원해서 조사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괴수 사체가 있던 땅에서 희미한 결정도 수치가 잡혔습니다.”
노학자의 설명에 남기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사님, 그럼 설마?”
“괴수 사체가 자연적으로 분해되며 결정체 에너지가 땅으로 흡수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저희도 처음입니다. 이런 사례가 보고되었다는 것은 전혀 듣지 못했어요.”
놀란 유지웅도 얼른 끼어들었다.
“겨우 하룻밤 놔뒀다고 죽은 옐로 몹이 분해된다고요? 그럼 결정체 추출 공정은 어떻게 되는데요? 죽은 거 창고에 놔두기도 할 텐데 그건 문제없는 건가요?”
“그게 그렇지 않아요. 괴수 사체는 매입한 그 날 바로 처리하는 게 관행입니다.”
“예?”
“공정장비가 고장이 나지 않으면 바로 바로 처리하는 게 낫습니다. 절대로 하루 이상 보관하지 않아요. 늦어도 그날 자정이 지나기 전에 사후처리를 마치는 게 정석입니다.”
유통업체는 괴수 사체를 매입하면 즉시 처리공장으로 운반해서 결정체 추출 작업을 한다. 최종 처리가 끝나면 약간의 부산물과 조그만 그린 결정체만 남는다. 회사 입장에서는 결정체 형태로 보관하는 게 비용도 적기 때문에 즉시 처리하는 것이다.
“처리 과정에서 신체를 구성한 대부분의 조직이 연기로 변해 사라집니다. 결정체에 자연스럽게 흡수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아무튼 결정체와 약간의 부산물을 제외하면, 피나 내장, 가죽 같은 게 거의 남지 않죠.”
옐로 몹과 달리 레드 몹은 죽은 즉시 신체를 구성한 모든 성분이 에너지로 변해 결정체에 흡수된다. 또한 부산물 같은 것도 전혀 남지 않는다.
“그러니까 박사님 말씀은 잡은 즉시 처리를 하지 않아서 결정체 에너지가 자연 분해 현상을 일으켰다는 거군요?”
“현재로서는 그게 유력한 추론이군요. 한두 마리도 아니고 이천 마리가 넘게 사라졌습니다. 병사의 목격 증언도 있고요. 그리고 사체가 있던 곳에서 감정 장비가 반응도 보였죠.”
“결정체 에너지가 대지에 흡수됐다면, 그럼 이 땅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노학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이 땅에 함부로 농사를 짓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괴수 사체가 분해돼서 흡수된 땅이니,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어떤 현상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예상할 수 없죠. 전례가 없으니까요. 예측할 수 없기에 위험한 겁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온 강우석 의원도 노학자의 말뜻을 이해하고 끄덕였다. 괴수 사체가 자그마치 2천 마리가 넘게 죽어서 흡수된 대지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 이상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땅에 섣불리 작물을 심었다가 무슨 일이 날지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럼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강우석의 질문에 노교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꾸준히 조사와 분석을 해야 합니다.”
“무기한 활용 금지라는 거군요. 이 넓은 평야 전부가.”
“그렇습니다.”
강우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노교수도 쓴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내후년부터 쌀 대란이 일어날 겁니다.”
올해는 이미 추수가 끝났으니 내년 쌀 소비는 상관없다. 하지만 내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내년에 농사를 짓지 못하면 내후년을 위한 쌀 물량을 확보할 수 없다.
가뜩이나 한국은 쌀 자급률이 8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인데, 호남평야와 논산평야가 못쓰게 되었다. 그것도 한 해 반짝 쉬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일지 장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농산물 시장에 폭풍이 닥칠 것이다.
대지에 흡수된 결정체 에너지가 어떤 작용을 끼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런 불안한 땅에 벼를 심을 수는 없다.
“큰일이네요.”
레이드 주역이다 보니 유지웅 부부도 함께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유지웅은 별로 실감이 안 났다. 내후년부터 쌀 공급에 심각한 타격이 있으리라는 것만 알 뿐이다.
일반 국민은 큰 타격을 입겠지만 유지웅 같은 부자한테는 거의 영향력이 없다. 그래서인지 ‘어, 큰일 났네.’라는 생각은 들어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안달나진 않았다. 자기 잘못으로 일이 이렇게 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옐로 몹 잡아달라고 해서 잡아줬다. 피땀 흘려서 싹 쓸어버렸다. 그러니까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제니스는 부여된 책임을 제대로 완수했다.
* * *
논산, 호남평야가 못쓰게 되었다는 것은 비밀로 붙여졌다. 물론 유지웅도 비밀을 지켜줄 것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비밀 유지는 얼마 못 갈 것이다. 봄이 오면 유지하고 싶어도 유지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아무래도 쌀을 사야겠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유지웅은 건조를 마친 볍씨 상태의 국산쌀을 매입했다. 사재기를 한 건 아니고 자기 가족이랑 고용인들이 몇 년 먹을 물량만 샀다. 그리고 빈 창고에 보관했다. 전체 시중 물량에 비추어보면 개미 눈물만큼도 안 되는 물량이라 시중가격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
정효주가 못내 걱정스러워 했다.
“내후년부터 쌀 파동 일어나면 큰일 아니니?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가 왜? 우리 잘못도 아닌데.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있잖아. 우리가 미리 나서서 뭔가 대비하면 좋지 않을까?”
“사회적 책임이라…….”
그 말에는 유지웅도 못내 걸렸다. 사실 그도 조금 찝찝하기는 했다. 곡창지대가 못 쓰게 되었다는 게 내년부터 알려지면 그때부터 혼란이 일어나고, 내후년부터 식량 파동이 일어날 걸 뻔히 아는데 가만히 있기도 그랬다.
그렇다고 자기 재산을 탈탈 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효주도 나눠주는 것은 몰라도 털어주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린 결정체 수천 개가 날아간 거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지금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받아내야 할 빚이 있다고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돈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블루 결정체나 몇 개 줄까? 저걸로 식량이라도 사라고. 장식용으로 모아둔 거 많잖아?”
“그럴까?”
“좋네. 어차피 우리한텐 흔한 거니까. 생색도 낼 수 있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강우석이 저택을 찾아왔다.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그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유지웅도 반쯤 예상했다.
“말씀하세요. 일단 듣고 생각해볼게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최대 평야에서 곡물 경작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게 몇 년이나 이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는데 쌀 자급률마저 뚝 떨어지면 정말 재앙이 닥칩니다. 안 그래도 미국도 그레이트 플레인스 지역에 나타난 레드 몹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고요.”
“네.”
“원래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조금 간접 피해를 입더라도, 이 기회에 한미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이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유지웅 대장님한테 미국 원조를 급하게 부탁하지 않았던 겁니다.”
“저, 어차피 미국은 갈 마음 없었는데요.”
강우석은 가볍게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은 아직 유지웅 대장님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지요.”
유지웅은 잠시 말이 없었다. 옆에 앉은 정효주가 얼른 나서서 말했다.
“저희도 사실 이 위기 해결을 거들어야 한다고 어느 정도 도덕적 사명감은 느끼고 있어요. 일단 부자잖아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다행히 저희가 수집한 블루 결정체가 있어요. 그 중 열 개 정도는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심심할 때마다 수집한 블루 결정체는 20개 가까이 되었다. 그 중 절반이면 매각비만 10조 원 가까이 된다. 비록 둘에게 흔해빠진 물건이긴 하지만, 남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고가품이다.
“금전적인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정부도 그렇게까지 염치가 없진 않습니다.”
“그럼요?”
유지웅은 살짝 불안해졌다. 아니, 10조 원이나 되는 물건을 거부해? 대체 얼마나 황당한 요구를 하려고?
“미국은 그레이트 플레인스에 나타난 레드 몹을 처리하지 못해 쩔쩔 매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은 최후의 수단으로 핵을 사용할 수도 없는 구역입니다. 미국 최대의 곡창지대니까요.”
“저기, 의원님. 설마?”
“만약 제니스 공격대가 그 괴수를 처치해준다면 그 대가로 초원지대의 일정 면적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국 안 간다고 했잖아요. 한 번 미국한테 뒤통수를 맞았다고요.”
“저희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것을 걸고, 미국이 유지웅 대장님에게 부당한 짓을 못하도록 막겠습니다. 만약 해결책을 낸다면 미국에 가주시겠습니까?”
강우석은 간곡한 어조로 설득했다. 그러나 유지웅은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뒤에도 유지웅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정효주는 걱정 반 불안함 반을 품고 그를 기다렸다.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 그가 안쓰러워 보여서 뒤에서 가만히 안아 주었다.
“블루 결정체 20개면 한 10조쯤 하지? 일 년에 20개만 모아서 주면 그럭저럭 쌀은 사올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이 곡창지대를 지켜내면 가능하지 않겠니?”
“만약 못 지키면?”
“식량 시장이 엉망이 되겠지.”
“…….”
그렇게 되면 돈을 주고 식량을 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블루 결정체는 전략 물자에 가깝다. 블루 결정체로 직접 매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식량 자급률이 최악이긴 하지만, 미국 레드 몹 사태에 대응할 길은 여러 개 있었다. 그러나 옐로 몹 무리 때문에 평야지대가 오염되면서 한국 입장도 다급해졌다.
강우석은 미국 요청을 들어주는 대신 경작지를 요구할 거라고 했다. 세계적인 식량 부족 현상이 심화된다면 탁월한 생존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보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레드 몹, 블랙 몹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미국이, 제 품에 들어온 황금을 순순히 놓아줄까? 강우석은 반드시 해결책을 찾겠다고 했지만, 그게 과연 미국에 통한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이거 고민이네.”
딱 잘라 거절하기에는 평야지대가 오염된 게 너무 심각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미국 땅을 밟기에는 위험했다.
평야지대가 오염된 게 자기 잘못도 아니고, 반드시 어떻게 해줘야겠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근데 내 일 아니라고 마냥 한쪽 눈을 감기에는 마음 한 구석에 조금 찜찜함이 남는다고 할까?
“효주 네 생각은 어때?”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우면 좋겠지만, 우리가 위험해지는 건 싫어.”
“역시 그렇지?”
그녀는 미국에 가기 싫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그 부분은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남기철을 통해 정부에 통보했다.
그리고 통보 후 불과 하루가 지난 때였다.
「……해서 해결책을 위해 함께 진지한 의논을 했으면 합니다. 언제라도 편한 시간대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직접 연락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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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그럼 미국쌀 먹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