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92)
00192 땅부자가 되었어요 =========================================================================
아침햇살이 눈꺼풀을 때렸다. 정효주가 가만히 쓰다듬는 게 느껴진다. 일어나라는 무언의 재촉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아기처럼 더욱 이불을 끌어안고 파고들었다.
“지웅아, 일어나.”
그는 눈을 뜨지 못한 채 겨우 대답했다.
“왜에…….”
“차례하러 가야지. 일어나.”
“5분만 더…….”
“안 돼. 지금부터 일어나야 돼.”
잠결이지만 탱커는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똑같이 새벽까지 어울려서 뒹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저렇게 쌩쌩한 걸 보니 말이다.
그는 아예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미 품을 파고드는 강아지처럼. 그녀가 토닥거리면서 부드럽게 계속 불렀다.
“일어나야지?”
“……그냥 가지 말자.”
“얘는. 설인데 어떻게 안 갈 수 있어?”
“졸려……. 가기 싫어…….”
그녀는 어르고 달래서 겨우 깨운 뒤 욕실로 보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온다. 기다리다 못해 그녀는 직접 안에 들어갔다. 그는 욕실 바닥에 뻗어서 자고 있는 중이었다.
“자지 말고 일어나. 어서 씻어야지.”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고 그녀는 혀를 찼다. 그러게 일찍 자지 뭐 하러 새벽까지 뒹군답시고. 그놈의 남자의 자존심이란.
할 수 없이 그녀가 손수 씻기고 머리도 감겼다. 만약 그녀가 딜러나 힐러였으면 어림도 없었다. 힘도 세고 튼튼한 탱커니까 가능한 짓이었다. 다 씻긴 뒤에는 업고 나와서 옷까지 싹 갈아입혔다. 그리고 자기도 외출 준비를 했다.
준비를 다 마치고 나니 벌써 7시였다.
“늦겠네.”
외출 준비를 마쳐놓은 신랑은 아직도 뻗어 있었다. 할 수 없이 그녀가 직접 업고 내려왔다. 치마 정장을 입고 남자를 업고 있는 꼴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고용인을 마주치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아마 창피해서 해고했을지도.
“언니. 차례 하러 가?”
“응. 너는 안 가?”
“여잔데 뭐 하러 가. 나 하나 안 가도 뭐라고 안 해. 한두 번도 아니고.”
“……좋겠다.”
“그러게 뭐 하러 시집 그렇게 빨리 갔어.”
정혜주는 하품을 하며 등을 돌렸다.
차고에 들어선 정효주는 그녀 소유인 페라리 조수석에 잠든 신랑을 눕히고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도 운전석에 탔다. 차고를 나선 페라리는 정원에 난 도로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했다. 경호팀이 주인의 외출을 확인하고 정문을 열었다.
“다 왔어. 일어나.”
“……벌써?”
큰집에 도착해서 깨우자 유지웅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는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긴 했지만 큰집이라서 사력을 쓰는 모양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지나가던 주민들이 힐끔거렸다. 5억이 넘는 고가 페라리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 볼 수 있는 차량이 아니라서 더욱 눈에 띄었다.
두 신혼부부는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유지웅은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그러게 너 나한테 안 된다니까.”
정효주가 놀리듯이 말했다. 유지웅은 분한 듯이 이를 갈았다.
“내가 탱커여야 했어.”
“그랬으면 너 여기저기 바람 피고 다녔을 걸?”
“안 그러거든? 난 성실한 남편이거든?”
티격태격 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정효주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저희 왔어요.”
문이 열렸다. 차례상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지 음식 냄새가 코를 질렀다. 먼저 도착한 시집 식구들이 거실에 있다가 둘을 맞이했다.
“이제 왔니? 조금 늦었네.”
“그이가 영국에 갔다 왔거든요. 새벽에 왔어요.”
차마 홈구장 건설 현장을 보려고 당일치기로 갔다 왔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그렇게 둘러댔다.
“저도 도울게요.”
“됐어. 니들은 아직 애기인데 뭐. 앉아 있어라.”
본래라면 집안 며느리인 정효주도 와서 차례상 음식 차리는 것을 거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스물 한 살인 둘은 집안 어른들이 보기에는 한참 애였다. 그래서 굳이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아무리 집안 어른이라지만, 현금 자산만 40조가 넘어가는 조카의 처를 겨우 차례상 음식 차리라고 함부로 부르기도 부담스러웠다. 원래 베갯머리송사가 무섭다고 했다. 일부러 밉보일 순 없지 않은가?
“형. 에버튼 대승했더라?”
한 살 터울의 사촌동생, 유진석이 슬쩍 옆에 앉으며 말했다. 유지웅은 기분이 좋아서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그럼, 누구 클럽인데.”
“아직까지 전승 행진이지?”
“야, 스쿼드를 봐라. 지면 그게 이상한 거야.”
정효주는 겉옷을 벗고는 부리나케 일손을 돕는다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치마 아래로 뻗은 종아리는 가늘면서도 희었다. 유진석은 부러운 듯이 정효주를 흘끔 바라봤다.
사촌형은 진짜 전생에 행성을 구했나? 돈 많은 건 안 부러운데 저런 색시 얻은 것은 너무 부러웠다. 예쁘지, 헌신적이지, 착하지, 뭐를 더 바랄까.
“형, 돈 얼마나 모았어? 나 디게 궁금한데.”
“나도 모르겠다. 40조 넘어가고부터는 그냥 안 헤아리고 통장에 넣기만 해.”
“돈 그렇게 많으면 나 일 억쯤 줘도 티도 안 나겠다.”
“돈 많다고 대가 없이 퍼주면 좋을 거 없어. 바랄 걸 바래라. 너는 지금 사는 집 빌려준 것만 해도 어디야? 그 집 얼만지나 알아? 30억이 넘어.”
“누가 돈 달라고 했나? 그냥 일 억 갖고는 티도 안 나겠다 뭐 그런 거지.”
유진석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옛날 유지웅이 살던 고급 주택은 지금 작은집 아들인 유진석이 살고 있었다. 친척들이 죽는 소리를 할 때마다 유지웅 부모는 ‘그 집 임대료가 얼만지나 아느냐’며 큰소리를 쳤다. 처분하기 곤란했던 집 하나 처리하고 생색은 낼 대로 내고 있었다. 덕분에 돈 달라는 소리가 언젠가부터 나오지 않았다.
“자기야. 도련님. 준비 다 됐어요.”
정효주가 둘을 불렀다. 여자들이 한쪽으로 비켜서고 남자들이 줄을 지어서 절을 올렸다. 유지웅 부모는 폭설 때문에 과수원이 난리가 나서 오지 않았다. 사람을 쓴다고는 하지만 직접 감독하느라 시간을 못 냈던 것이다.
유지웅을 필두로 사촌형제들은 전원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게 세배를 올렸다.
“새해에는 공부 열심히 하고.”
“지민이도 좋은 대학 가야지. 지민이가 이제 고2이지?”
“네에.”
“지혜도 대학생이라고 놀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가벼운 덕담과 세뱃돈을 받고 물러났다. 그런데 사촌형제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제 대1인 유지혜가 유지웅의 팔꿈치를 가만히 잡아당겼다.
“오빠, 세배 안 받아?”
“세배? 내가 왜 세배를 받아?”
“우리한테 받아야지.”
“야, 니네랑 나랑 한 살이랑 세 살 차인데 무슨 세배야?”
“돈 잘 버니까 세배 받아주라. 응? 제발?”
유지웅은 살짝 당혹스러웠다. 이 녀석이 언제부터 그렇게 살가웠다고?
“그래. 받아 줘. 결혼했으니까 자기도 이제 어른이잖아.”
보아하니 어른들도 말리지는 않는 눈치다. 정효주가 얼른 그렇게 중재를 나섰다. 할 수 없이 끄덕인 유지웅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래, 세배 좀 해 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회를 놓칠 세라 사촌형제들은 얼른 세배를 했다. 셋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뭔가 묘하다. 나쁘지는 않은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유진석과 유지혜는 겨우 한 살 차이고 유지민도 세 살 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런 사촌형제들의 세배를 받자니 낯이 간지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 세뱃돈이 어디 보자…….”
유지웅은 지갑을 뒤져 보고 멈칫 했다. 백만 원짜리 수표 밖에 없다. 현금 자산만 40조 원이 넘는 그에게 백만 원은 잔돈이나 마찬가지지만, 어른들의 눈치가 조금 부담스럽다. 어른들도 세뱃돈으로 10만 원 정도 밖에 안 줬는데, 자신이 이런 걸 떡하니 줘도 될까?
“괜찮다. 얼마 주든 마음이 중요하지 액수가 뭐가 중요하냐.”
그런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큰아버지가 나섰다. 저렇게까지 말을 했으니 괜찮겠지? 유지웅은 수표 한 장씩을 꺼내서 사촌 형제들에게 내밀었다. 형제들의 입이 바로 귀에 걸렸다.
“우와, 형 고마워!”
“오빠 최고!”
사촌형제들은 좋아서 방방 뛰고 난리였다. 어른들도 돈 많이 줬다고 썩 기분 나쁜 것 같진 않았다.
차례가 끝나고 어른들 간의 회심탄회한 집안 대소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본래라면 유지웅은 사촌형제들과 같이 빠졌을 텐데, 어쩌다 보니 와이프랑 같이 이야기에 끼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산소 다시 정돈해야 한다니까. 돌도 너무 낡았고 주변도 너저분해. 날 잡아서 한 번 제대로 정리를 해야지 나중에 저승 가서 명목이 서지.”
“그럴 돈이 어딨어요. 요새 산소 정리하는 것도 비용이 장난 아니잖아요.”
“제, 제가 할게요.”
유지웅은 얼른 나섰다. 왠지 나서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될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정돈하는데 돈이 들어봐야 얼마나 들겠나? 설마 1억 넘겠어?
“아니다. 이런 건 다 같이 모아서 해야지. 지웅이 너도 머릿수로 나눠서 내거라. 경제활동하니까 너네 부모님 대신해서 그 정돈 할 수 있지?”
“그럼요.”
조부모님 산소 정돈에 돈 쓰는 것쯤이야 혼자 부담해도 아무렇지 않다. 그 정도로는 40조 원에 티끌도 못 낸다.
“근데 지웅이 너, 집에 처제랑 같이 산다면서?”
“네? 그렇긴 한데요…….”
“지혜도 너네 집에 같이 살게 하면 안 되겠니? 여자애가 혼자 하숙하고 그러니까 안쓰러워서 말이야.”
대학생인 지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다. 근데 아직도 자취를 하고 있었나? 유진석에게 예전 살던 고급 주택을 빌려줬기에 유지혜도 거기 사는 줄 알았다.
“진석이랑 같이 살면 되죠. 거기 방도 많은데.”
“얘는. 아무리 그래도 남녀가 유별한데 어떻게 다 큰 애들을 한 집에 둘만 살게 할 수 있니? 너네야 부부고 또 집에 고용인들까지 여럿 사니까 괜찮지만. 말 나온 김에 너네 집에 좀 살게 하자. 어떠니?”
“저희 집에요?”
정효주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썩 싫은 눈치였지만 필사적으로 감췄다.
“지혜를요?”
유지웅도 내키지 않았다. 그는 한 살 터울의 사촌여동생과 별로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혜주야 원체 어려서부터 효주랑 친하게 지내면서 친동생처럼 같이 엉키고 그래서 스스럼이 없다. 게다가 혜주는 예쁜 외모에 어울리게 애교도 많고 남자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재주를 듬뿍 지녔다.
그에 비해서 유지혜는 생긴 건 괜찮긴 하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고, 유대감도 없고, 이젠 머리도 굵어서 편하지도 않다. 자신도 불편한데 효주는 어떨까?
“솔직히 지혜랑 저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한집에 같이 살면 여러 가지로 불편할 거 같아요.”
너무 솔직한 말에 정효주의 얼굴이 다 새파래졌다. 그녀는 어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어른들의 안색도 불편해졌다.
“그냥 진석이랑 같이 살라구 해요. 정원도 있고 3층짜리 고급 주택인데 진석이 혼자 살기에는 아깝죠. 제가 옛날에 큰아버지 댁에서 신세 진 거 생각해서, 애들 살게 하려고 저도 일부러 그 집 안 팔고 나둔 거거든요. 저는 지혜도 거기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지혜가 아무래도 진석이랑 같은 집에서 사는 건 좀 불편하다고 해서…….”
“지혜도 한 번 집 보면 생각 바뀔 거예요. 하숙집보다는 만 배 나아요. 그 집 30억이나 주고 산 건데.”
“얘, 얘기는 해보마.”
어른들은 헛기침을 했다.
사실 유지웅이 ‘친하지도 않은데 왜 한집에 살죠?’라고 직구를 날릴 줄은 몰랐다. 보통은 어른들 눈치 봐서 최대한 돌려 말하거나, 혹은 다른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예의는 지키더라도 자기 생각을 굳이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항렬, 연륜에 눌려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쩔쩔매지는 않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완성된 것이다.
설 행사가 끝나고 유지웅 부부는 귀가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효주가 문득 말했다.
“어른들한테 그렇게 말씀드려도 될까? 조금 걱정되는데.”
“왜? 대든 것도 아니고 그냥 솔직히 말씀드린 건데. 오히려 말도 안 되는 핑계 대는 게 더 실례지. 혜주는 친해서 데리고 살 수 있어도 지혜는 서먹서먹하다구.”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금만 더 순화했음 좋겠어. 너무 솔직해서 내 얼굴이 다 빨개지더라.”
“생각해볼게.”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강우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설날부터 웬일이지? 하고 유지웅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설은 잘 쇠셨습니까?」
“덕분에 잘 했어요. 지금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하하, 다행이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의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렇게 잠시 서로 덕담을 몇 마디 주고받고 나서 강우석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지금요?”
「예. 시간이 되신다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설날 점심부터 무슨 일이지? 유지웅은 의아하면서도 승낙했다.
“예. 그럼 저희 집에 오세요.”
============================ 작품 후기 ============================
실탄의 ㅅ은 성실의 ㅅ
3시간 늦긴 했지만 올리긴 했습니다.
아 일일연재는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닌 듯. 피가 마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