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0)
00020 너는 귀족이다 =========================================================================
괴수의 사체가 비싼 이유는 사체 내부의 희귀 물질이 산업 여러 분야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그 희귀 물질을 ‘크래프트 결정체’, 간단하게 흔히 ‘결정체’라고 부른다. 결정체는 대체 연료부터 신약 재료까지 그 이용 분야는 넓고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전 세계 자동차의 대부분은 이미 결정체를 연료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결정체는 초능력자들의 딜을 강화하는 장비 제작에도 사용된다. 그래서 딜러들은 더 좋은 장비를 구입하는데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을 쓴다. 힐러와 탱커들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연금도 붓고 사치도 하고, 아무튼 풍족하게 지내는 것에 비해 딜러들이 가난을 못 벗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장비가 좋아야 딜이 세진다. 딜이 세야 레이드에 갈 수 있다. 레이드에 갈 수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순환 구조 때문에 딜러들은 악착같이 벌어들인 돈을 장비 업그레이드에 쏟아 붓게 되는 것이다.
“장비 대여하러 가자!”
정부 인물들이 돌아간 후 유지웅과 정효주는 중앙 장비 관리 센터로 달려갔다. 유지웅은 담당자에게, 오늘 아침 정부 인물들이 주고 간 신분 카드를 내밀었다.
“장비 대여하러 왔는데요.”
“네, 잠시만요. 출입 허가되었습니다.”
단번에 통과되었다. 둘은 손을 꼭 잡은 채 센터를 쇼핑하듯이 거닐었다. 웬만한 대형 백화점보다 큰 센터는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장비들로 가득했다.
국가 직영인 장비 센터는 장비를 대여하기도 하고, 또는 팔기도 한다. 이문이 많이 남는 사업이기에 민간에는 영업 허가를 내주지 않고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한다.
장비는 C, B, A, 그리고 S급으로 나뉜다. 웬만큼 레이드 경험이 있는 딜러들은 C급 장비를 갖고 있다. 정공에 소속된 딜러들은 대부분 B급 장비를 갖고 있다. 그리고 파라곤이나 엔시디아 같은 최상급 정공에 소속된 딜러들 정도 되어야 A급 장비를 갖출 수 있다. A급 장비의 경우, 그 가격이 최신 탱크에 버금간다.
S급 장비는 ‘그런 게 있더라.’하는 소문이 무성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가격인지, 어느 정도의 성능인지는 공표되지 않았고, 또 일반 시중에서는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당장 이 국가 직영 장비 센터에만 해도 A급 장비가 최고 수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지점장 정형준이라고 합니다. 귀한 분이 오신 줄 알았으면 제가 직접 안내를 해드리는 건데…….”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자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헐레벌떡 왔다. 그는 유지웅의 능력이나 신원은 잘 모르지만, 얼마 안 되는 특별 등급 카드로 출입한 것은 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정부에서 잘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렇다면 나라에서 대단히 신경 쓰는 중요 인물이라는 뜻이다. 어떻게든 잘 보여야 했다.
“여기는 하층이라 선생님의 마음에 드는 좋은 장비를 찾기 어려우실 겁니다. 최상층으로 가시죠.”
그렇게 정형준은 유지웅 커플을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최상층은 깔끔하고 넓었다. 그리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꽤 많은 딜러들이 북적이던 하층에 비하면 조용했다. 그리고 장비 개수도 얼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비를 잘 모르는 유지웅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특별히 원하시는 장비가 있습니까?”
“가장 좋은 장비요.”
“가장 좋은 장비…… 음…….”
다소 난감했는지 정형준은 말을 흐렸다. 가장 좋은 장비를 골라주는 게 곤란해서가 아니었다. 최상층에 있는 장비들은 전부 손꼽히는 A급이라 그 중 하나를 꼽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장비들은 전부 A급 장비들입니다. 그 성능이나 가치가 거의 막상막하죠. 약간의 개성 차이만 있을 뿐 딱히 어느 게 더 좋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시죠.”
“골라 봐.”
“으, 응.”
정효주는 얼굴이 상기된 채 진열된 장비들을 구경했다. 소총, 활, 대포, 권총, 칼 등 형태가 매우 다양했다. 하나같이 번쩍거리는 게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다. 그 중 하나만 고르라는 게 정말로 어려웠다.
그녀는 탱커이기 때문에 장비 의존도가 낮다. 탱커는 딜을 강화해서 어그로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장비를 든다. 달리 말하면 어그로에 자신이 있는 탱커는 장비를 안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실력 있는 탱커일수록, 딜러만큼은 아니어도 장비를 꽤나 선호하는 편이다.
“이걸로 할래.”
“오, 아제로스의 쌍날검을 고르셨군요. 대단히 좋은 장비죠. 근접 공격시 공격 능력을 85% 증폭시켜주는 장비입니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쌍검을 쥐고, 정효주는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둘러보았다. 꽤나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근데 저거 사려면 가격이 얼마죠?”
“82억입니다.”
“……으아.”
A급 장비는 최신 전차 값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유지웅은 왜 딜러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장비 값이 저 따위니, 상위 공격대를 다니고 벌이가 좋다 해도 장비 값으로 다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등급 차이가 날수록 가격 차이가 껑충 뛰어오릅니다. 공격력 증폭치가 30% 이하인 장비를 C급 장비라 하는데, 비싸봐야 10억 정도죠. B급은 증폭치가 30% 초과 60% 이하인데 가격 상한선이 50억입니다. A급은 증폭치가 90% 이하인데 보통 90억 이하에 판매됩니다.”
“그럼 S급은요?”
“그건 저도 한 번도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부르는 게 값이 아닐까요?”
“S급 장비를 사용하는 공격대가 있긴 하나요?”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유지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효주에게 한 발 다가갔다.
“마음에 들어?”
“응.”
“그럼 그걸로 하자. 지점장님, 이거 말고 또 다른 장비는 없나요? 원거리 계열이면 더 좋겠는데요. 이 센터에서 가장 비싼 장비로요.”
“이건 어떠신지요?”
정형준이 눈짓하자 수행원 중 한 명이 부리나케 어떤 장비를 가져왔다. 주먹만 한 붉은 구슬이었다. 귀금속으로 보이긴 했으나 강력한 장비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 센터에서 가장 비싼 장비입니다. 부자왕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죠. 공격력을 82% 증가시켜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82%면 아제로스의 쌍날검보다는 못하네요.”
“대신 아제로스의 쌍날검은 근접 공격에만 특화되어 있죠. 이 부자왕의 눈물은 클래스를 가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화염 속성이든, 빙계 속성이든, 물리 속성이든 간에 차이점을 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지웅이 가장 원하던 기능이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끄덕였다.
“좋아요. 저는 그걸로 할게요.”
대여비용을 지불할 때 유지웅은 정부에서 발급한 카드로 긁었다. 웃는 낯으로 확인하던 담당자는 대여 기간이 무기한으로 뜨는 것에 기겁을 하고 놀랐다.
“또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정형준이 입구까지 나와서 깍듯하게 배웅했다. 정효주는 집에 오는 동안에도 아제로스의 쌍날검을 꼭 껴안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유지웅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에 들어?”
“응.”
“내일 바로……아니다. 아직 점심도 안 됐으니 한 번 레이드 가볼까? 장비도 시험해 볼 겸 말이야.”
어제 AFK 정공에서 그런 맹활약을 보였으니 이미 레이드계에 소문이 쫙 났겠지? 오후에 출발하는 막공에 바로 끼어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탱커 하나 힐러 하나가 비어서 출발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막공은 널리고 널렸다.
딱히 돈 때문은 아니고, 비싼 장비를 얻었으니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근질근질했다. 테스트 증후군이랄까? 딜러들 중에서도 장비를 새로 바꿀 때마다 레이드를 가고 싶어 미치겠다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 기분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집에 오자마자 유지웅은 컴퓨터를 켜고 레이드 모집 게시판으로 접속했다.
―앱서버입니다.
―그게 뭔데요?
―……모르세요? 저 앱서버인데.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유지웅은 당황했다. 근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앱서버 자체가 뭔지를 몰랐다. 그는 의아해서 통합 소식 게시판을 들렀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앱서버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는 AFK 정공 홈페이지를 들렀다. 어제부터 올라온 모든 글을 다 뒤졌지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연히 AFK 정공에서 자체 홍보를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조용했다. 유지웅은 당혹스러웠다.
“왜 그래?”
“그게…….”
자초지종을 듣고 난 정효주는 잠시 생각하더니 알겠다는 듯이 무릎을 탁 쳤다.
“일부러 소문을 안 낸 거 같아.”
“일부러? 왜?”
“지웅이 네가 너무 유명해지면 나중에 같이 레이드 가기 힘들어지잖아? 그러니 굳이 여기저기 알릴 필요가 없지. 좋은 정보는 자기들만 알고 있는 게 유리하니까. 정규 공격대가 원래 좀 그런 경향이 있어.”
“끄응…….”
유지웅은 혀를 찼다. 이래서야 원점이 아닌가?
어떡할까 고심하던 그의 어깨 너머로 정효주가 대신 모집글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가 감탄사를 냈다.
“이 사람 어때?”
“님이그걸왜굴려요? ID가 뭐 이래?”
“이 사람, 디게 유명한 정공 힐러래. 어느 정공인지는 모르지만 실력이나 장비 보면 분명히 톱클래스 정공일 거야.”
“근데 왜 막공을 모아?”
“정공이 레이드 쉬는 날에도 꾸준히 막공을 모아서 레이드를 간대. 그래서 딜러진, 힐러진도 굉장히 빵빵하대.”
“근데 왜 아직도 출발을 안 했어?”
“막공을 모아도 사람을 좀 엄격하게 검사하고 받는대.”
“오호, 그래?”
엄격하게 검사하고 받는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가소로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뢰가 갔다. 네가 아무리 엄격해봐야, 감히 나를 거부할 수 있겠어? 라는 그런 자신감이었다.
“근데 비는 게 딜러 3자리와 힐러 1자리인데?”
“……내가 딜러로 가면 안 될까?”
“네가 딜러로?”
정효주는 반쪽짜리 탱커이자 딜러였다. 즉 딜도 탱도 어느 정도 된다. 뒤집어 말하면 딜은 다른 딜러에 비해 구리다. 유지웅과 함께 하면 탱커로서는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만.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몸을 꼬았다.
“나, 사실 딜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 마침 좋은 장비도 생겼잖아?”
“……그래도.”
차마 여자친구에게 ‘네 딜은 쓰레기잖아?’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한 번만 딜러로 참가해보자. 응? 장비빨도 있으니까 웬만한 딜러 만큼은 딜이 나올 거야.”
이게 A급 장비의 위력인가? 탱커도 딜을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주술이라도 걸려 있나?
‘이해가 될 것 같기도.’
유지웅도 딜러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A급 장비를 갖고 있으니 딜을 하고 싶어 조금 근질거렸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딜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 내 이름을 알려야 뭐를 해도 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충격 흡수 능력이 월등하고, 그래서 나라에서 자신한테 갖가지 면세 혜택 등을 주었다 해도,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AFK 정공에 홍보를 기대했는데, 그들이 좋은 정보를 독점하려고 한다면 이제 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다.
「님이그걸왜굴려요」
현직 정공 힐러로서, 막공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주관하는 막공에 참가해서 실력을 알린다면, 꽤나 괜찮은 출발이다. 유지웅은 결심을 굳혔다.
「안녕하세요. 딜러 한 자리, 힐러 한 자리를 지원하고 싶습니다.」
유지웅은 고심하다가 그렇게 정중하게 의사를 타진했다. 엄밀히 말해서 힐러는 아니지만, 보호막은 굳이 우기자면 예방힐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힐러로 설명한 것이다.
「장비 상태를 알 수 있을까요?」
「딜러가 A급 장비를 갖고 있습니다. 아제로스의 쌍날검이라고 하던 거 같은데 제가 장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는…….」
―님이그걸왜굴려요 님이 당신을 초대했습니다.
유지웅은 엉겁결에 초대를 받아 들어갔다. 공격대는 딜러 한 자리를 남겨놓고 풀이었다. 곧이어 화상 채팅 신청이 날아왔다.
「지금 딜러분 같이 계신가요? 장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상대 화면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20대 중반의 여성이 있었다. 꽤나 차분하고 단아한 느낌의 여자였다. 얼핏 보면 냉정하고 차가워도 보인다.
화상 카메라로 정효주가 쥔 아제로스의 쌍날검을 확인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제로스의 쌍날검 맞네요. 딜러분 ID 좀 불러주세요. 바로 초대하고, 공격대 구성 등록하겠어요.」
유지웅은 왜 딜러들이 장비에 목을 매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딜러에게 좋은 장비란 하이패스 통과 카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