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08)
00208 땅따먹기 =========================================================================
유지웅이 승낙을 선언하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미국은 행여나 그의 마음이 바뀔까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속도로 일을 처리했다.
급히 UN평화유지군이 조직되었다. 사실상 제니스 호위 병력인 셈이다. 거기에 더해 이해관계를 가지는 여러 선진국의 감사단도 파견되었다. 유지웅은 자신한테 관심을 갖는 나라가 이렇게 많은지 이때 처음 알았다. 영국, 중국, 프랑스, 독일 등등 10여 개가 넘는 쟁쟁한 나라들이 감사단을 파견한 것이다.
제니스도 일단 전원이 방어장비와 충전장비를 챙겨서 한국을 출발했다. S급 방어장비와 S급 충전장비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블랙 몹을 잡으러 가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평화유지군이 먼저 출발했고 때를 맞춰 제니스 공격대가 A3를 타고 이동했다.
미국 정부는 몬테나 주의 공항 하나를 완전히 비웠다. A3가 공항에 내리자 미리 도착한 평화유지군이 맞이했다.
“Welcome to USA. Thank you.”
몬테나 주까지 미 대통령이 손수 환영을 나왔다. 그와 악수를 나누자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환대에 감사합니다만 시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서둘러 괴수를 퇴치하러 가겠습니다.”
통역관이 말을 전달하자 대통령의 얼굴이 환해졌다.
“브라우니, 가자.”
정효주가 A3 격납고에 있던 브라우니를 끌고 나왔다. 녀석은 어딘지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며 질질 끌려 나왔다. 제니스 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고, 다시 UN군이 맨 뒤를 따랐다.
제니스 대원들은 미리 대기한 헬기 편대에 차례차례 탔다. UN군은 전투지역에서 3km 밖 포인트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수송 헬기가 떠올라 이동했고, 브라우니가 날개를 펄럭이며 유지웅 커플이 탄 헬기를 뒤따라갔다.
마지막까지 배웅을 나온 대통령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니 정말 대단하군. 레드 몹을 길들일 생각을 하다니, 미스터 유가 아니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각하. 우리가 반드시 그를 회유해야 할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의 호남평야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한국은 어렵지 않게 조기 진압에 성공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대통령도 보고받았다. 브라우니, 코드명 진돗개가 해당 지역을 순찰하면서 식물 괴수가 생기는 족족 잡아 죽인 덕분이다.
덕분에 지금 호남평야는 식물 괴수가 거의 출현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통령은 한국이 부러웠다. 저 힘이 미국의 것이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브라우니뿐만이 아닙니다. 미시즈 정의 체내에는 적어도 5만 이상의 결정체 에너지가 응집돼 있습니다. 그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만 있다면…….”
“그런 욕심은 접게. 미스터 유는 설령 미국 시민이 되어도 자기 와이프의 신체검사를 허락하지 않을 걸세.”
“하지만 각하.”
“지금은 하나만 생각해야 할 때야.”
대통령의 단호한 말에 수석 참모는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지금은 미국의 젖줄을 오염시키는 식물 군단을 처치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친분을 쌓아나가며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결정체 5만의 신체? 탐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을 규명하면 놀라운 기술을 독점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부려서는 안 될 욕심이었다. 그는 절대로 자기 아내에 대한 연구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 * *
“꽤 신사적인데? 괜히 걱정하던 게 바보 짓 같아.”
헬기 안에서 유지웅이 말하자 정효주도 피식 웃었다.
“그래도 조심하자. 일이 끝나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걱정하지 마. UN군도 호위로 데리고 있고, 다국적 감시단도 함께 있는데 서툰 짓은 못할 거야. 여차하면 브라우니 시켜서 다 쓸어버리면 되고.”
“맞아. 브라우니가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몰디브에서 안 죽이고 길들인 게 잘한 짓 같아. 그때는 정부가 왜 그런 바보짓을 하나 생각했는데.”
“근데 브라우니 요즘 좀 이상하다던데. 자꾸 밖으로 나가서 잘 안 들어오고 그런데.”
“그래?”
유지웅은 의아해서 뒤따라오고 있는 브라우니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흠칫 놀라는 것 같다. 꼭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 반응이다. 괜한 생각인가?
“레드 몹 열 마리 미만에 옐로 몹은 셀 수 없다라…….”
디지털 전술화면을 주시하며 유지웅은 턱을 매만졌다.
“써, 이렇게 다수 개체가 분포해 있어서야 제니스가 아니면 잡는 건 불가능하겠습니다.”
“호남평야에서 할 때처럼 해야죠. 광역 보호막 치고 안에서 딜러들이 딜 난사하고, 메인 탱커가 썰고 다니면 쉽게 잡을 거예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가 관건이지.”
식물 군단은 두 종류로 나뉜다. 꽃이 핀 거대한 선인장처럼 생긴 모개체와, 성인키의 두 배에 달하는 묘목처럼 생긴 자개체였다. 모개체는 아마 레드 몹, 자개체는 옐로 몹 정도의 결정도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옐로 몹이 선공을 하지 않는 것에 비해 자개체는 선공 패턴을 보였다. 아마 모개체의 명령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자개체는 모개체로부터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어 그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했다. 반면 모개체가 분열하는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개체마저 빠른 속도로 분열한다면 답이 없었을 것이다.
수송 편대는 제니스 공격대를 점령지에 내려놓고 이탈했다. 안전을 위해 지원팀은 공중에 호버링 중인 대형 지원 헬기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 사용하는 시야 확보용 무인 헬기는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미군 원거리 촬영 장비와 통합 링크를 갖추었다.
“야, 장난 아닌데. 괜찮겠지?”
“호남에서도 잘 해냈잖아. 걱정하지 마.”
“그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제니스 대원들은 전원 방어장비를 착용하며 긴장한 눈으로 전방을 흘끔거렸다.
넓은 초원에는 지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새끼 묘목의 형태를 한 괴수들이 끝없이 퍼져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치 인간을 침공하기 위한 괴수 군대 같은 모습이었다. 어떤 대원이 어림잡아 헤아려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메인 탱커, 전진.」
지시가 떨어지자 정효주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유지웅이 그녀에게 보호막을 걸었다. 빠른 속도로 식물 군단 떼로 뛰어든 정효주는 주장비를 힘차게 횡으로 그었다.
―키에에엑!
―캬아아악!
붉은 빛이 번쩍이는 칼날이 베고 지나갈 때마다 새끼 묘목 괴수들은 두 조각으로 절단돼서 쓰러졌다.
정효주의 존재를 알아차린 새끼 괴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게 칼을 휘두르며 한 번에 몇 마리씩 베어나갔다.
브라우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새끼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넘어서 단숨에 가장 가까운 모개체를 공격해 들어갔다.
푸욱!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박아 넣자 모개체가 유리 긁는 듯한 귀곡성을 터트리며 부르르 떨었다. 주변에 있던 새끼 괴수들이 마구 달려들며 브라우니의 온몸을 덮었다. 브라우니가 귀찮은 듯이 날개를 세차게 털자 새끼 괴수들은 저 멀리 떨어져 나갔다.
―캬악!
물 만난 물고기처럼 브라우니는 신이 나서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 주변에 몰려든 새끼 괴수들을 물어뜯었다. 부리로 물어다가 던지기도 하고, 발톱으로 조여서 두 동강을 내기도 했다.
본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광역 보호막을 치고 전진하면서, 안에서 포화를 퍼부어댔다. 근접 딜러들은 방어장비와 보호막을 믿고 밖에 나가서 정효주처럼 직접 새끼 괴수들을 타격했다.
“보호막 손실되는지 잘 봐요! 아무리 지원팀이 체크하고 있어도, 멀리서 영상 카메라로 보는 거랑 자기가 직접 챙기는 거는 다르니까! 보호막 없어지면 죽습니다!”
“딜 퍼붓는 건 좋은데 낭비하지는 마요! 충전장비도 한계는 있습니다! 허공에 불 날리지 말고 정확하게 괴수만 딜하세요!”
제니스는 지금 정원 40명 외에 한국에서 추가로 모집해서 데려온 원거리 딜러 50명이 임시로 합세한 상태였다. 본래 미국은 자국 딜러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안전을 위해서 신원이 확실한 한국 레이더를 고르고 골라서 데려온 것이다.
광역 보호막에 둘러싸인 본진은 조금씩 진형을 갉아먹으며 괴수 군단의 중심을 돌파하고 있었다. 정효주와 브라우니는 본진과 상관없이 뛰어다니며 짚단 베듯이 새끼 괴수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특히 정효주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녀가 한 번 칼질을 할 때마다 여러 마리의 새끼 괴수들이 한꺼번에 죽어 나갔다. 갈색 빛이 감도는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괴수를 베어 넘기는 모습은 살벌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브라우니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브라우니가 잡은 숫자는 그녀보다는 적었지만, 벌써 모개체를 두 마리나 잡았다. 정효주는 새끼 괴수들에 막혀 모개체에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브라우니는 하늘을 날며 자유롭게 이동했기 때문이다.
정작 공격대 본진이 사냥한 괴수 숫자가 가장 적었다. 어그로 걱정 없이 딜을 퍼붓는다 해도, 괴수 방어막을 깎기 전에는 타격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90명도 안 되는 딜러 수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본진은 미끼로서 오히려 톡톡한 역할을 했다. 느리지만 거대한 돔형 보호막을 보고, 강한 위협을 느낀 모개체가 새끼 괴수들을 계속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새끼 괴수들은 불꽃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처럼 두려움 없이 뛰어들었다. 덕분에 정효주가 처리하는데 한결 편리했다.
한편 영상화면 링크를 통해 지켜보던 대통령 및 참모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앱서버의 힘인가?”
“너무 대단합니다. 왜 한국 정부가 호남평야 전투 기록 제공을 거절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니스의 힘은 시뮬레이션보다 더욱 경이로웠다. 묵직한 거북이처럼 차근차근 진형을 갉아먹으며 돌파하는 본진, 본진을 보고 달려드는 새끼 괴수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기는 정효주, 그리고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강습 공격을 가하는 브라우니까지.
마치 인간과 괴수의 전쟁을 테마로 다룬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만약 미국 공격대를 투입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전투 시작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전멸했을 겁니다. 괴수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은 까닭에 탱커들이 전부 어그로를 잡는 게 불가능합니다. 탱커들이 놓친 개체들이 힐러진과 딜러진을 습격할 테고, 당연히 본진은 붕괴합니다. 마지막으로 탱커들도 힐러가 없으니 사망하겠죠.”
“음…….”
“저렇게 엄청난 숫자가 몰려 있는데 일반적인 레이드처럼 어그로를 확보해서 사냥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보신 바와 같이 제니스도 어그로를 무시하고 보호막에 의지해서 순수한 공격력으로 밀어붙이고 있을 뿐입니다.”
대통령은 왜 저 힘을 미국이 가져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다. 고급 결정체 확보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미국의 안보를 괴수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저 힘을 가져야만 한다.
그게 그를 미국 시민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든, 아니면 그와 친분을 쌓아 공조체계를 만드는 것이든 간에.
몇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전투는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괴수 군단은 원래 넓게 퍼진 채로 땅을 침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일일이 처치하러 다녔다면 하루 이틀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를 느낀 모개체들은 거듭해서 제니스 본진을 습격하라 명령을 내렸고, 새끼 괴수들이 알아서 몰려주는 바람에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모개체들은 계속해서 새끼 괴수들을 낳아 습격시키고 있었으나 새끼를 퍼트리는 속도보다 처치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캬아악!
마침내 마지막 남은 모개체가 정효주의 칼날에 쓰러졌다. 그러자 겁을 집어 먹은 새끼 괴수들이 우르르 흩어져 달아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브라우니가 빠르게 날아 새끼 괴수들의 뒤에 이빨이나 발톱을 박아 넣었다. 몇 십 마리도 되지 않는 새끼 개체들도 그렇게 쓰러졌다.
“후우…….”
정효주가 털썩 주저앉자 유지웅이 다가가서 어깨를 안았다.
“힘들었지? 리타이어 했어?”
“아니. 하기 직전이야. 한 20%쯤 남은 거 같아.”
“고생했어. 그래도 S급 충전장비가 효과가 좋긴 좋아. 그치?”
유지웅은 본진 눈치를 슬쩍 살폈다. 거리는 약 20미터 정도. 그는 재빨리 정효주와 입을 맞췄다. 몇 초의 키스 후 그녀가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그를 밀어냈다.
“얘는, 사람들 다 보잖니.”
“안 보는 거 확인하고 했어. 그리고 좀 보면 어때. 우리가 무슨 사인지 모르는 사람 있어?”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초원에는 죽은 괴수가 가득히 쌓여 있어 지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피와 내장이 보이지 않기에 기괴하다는 느낌은 있어도 끔찍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브라우니가 블루 결정체 잘 챙겼나 모르겠어.”
“이 많은 몹들 다 가공하려면 미국 유통업체들 죽어나겠네. 빨리 처리 안 하면 사체 다 사라지고 호남평야 꼴 날 텐데.”
“일으켜 줘. 피곤해.”
유지웅이 뻗은 손을 잡고 정효주가 영차 일어났다.
그때였다. 사방에 널려 있던 괴수 시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뜻밖의 현상에 당혹스러워할 틈도 없이, 수많은 촉수처럼 뻗쳐 오른 빛이 뭉쳐지더니 그대로 땅에 흡수되었다. 놀란 브라우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얼른 날아올랐다.
「이탈! 이탈하세요!」
장태준이 급히 외쳤다. 대원들은 혼비백산해서 등을 돌렸다. 유지웅 커플도 서로를 부축하며 뛰었다.
순간 땅이 거칠게 흔들리더니, 유지웅 커플이 밟고 선 지점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미처 뛰어오를 틈도 없이 땅이 밑으로 푹 꺼졌고, 둘은 어두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거대한 갈색 잎사귀가 손짓을 하듯이 펄럭이며 둘을 삼킨 구멍을 덮었다.
땅에서 솟아난, 모개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잎사귀가 둘을 삼키고 구멍을 덮는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장태준은 주먹으로 기기를 거칠게 내리쳤다.
“젠장! 땅속에 본체가 따로 있었어!”
============================ 작품 후기 ============================
유언장도 안 써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