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6)
00026 나는…… 흔들린다?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변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불이 났다. 아주 큰 불이.
박현정 막공에 참가한 이들이 레이드 포털 게시판에서 보호막 능력을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갖가지 인증샷이 올라오고, 실제 참가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마침내 믿게 되었다.
레이드 게시판은 당연히 불을 지핀 듯이 난리가 났다.
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계획해도 사망자는 나온다. 레이드 도중 사망한 숫자는 한국에서만 일주일에 10명 정도다.
또 많지는 않지만 몇 달에 한 번씩 공격대 전멸 소식이 간간이 들린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심각한 수치는 아니나 당사자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결국 그들은 언제나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호막 능력자가 공격대에 끼어 있다면 사망 가능성, 전멸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 탱커들이 웅성거리며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딜러는 조금 달랐다.
―정말로 세금이 면제되나요?
―그렇다니까요. 혹시나 해서 집에 와서 세무 신고 하려고 보니까 국세청에서 면세라고 뜨더라고요. 여기 인증샷.
―와, 원래 내야 할 세금에서 30%는 챙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요. 솔직히 그 분 덕에 면세되는 거라 다 가져가셔도 우리는 할 말 없는데, 30%나 양보하시더라고요.
―그럼 그 분은 레이드 한 번 뛰면 대체 얼마를 버시는 거예요?
―거의 9억 넘게 가져가시던데요? 감정가가 31억이었어요.
―와, 진짜 쩐다.
탱커와 달리 딜러들은 생존 가능성 증가보다는 그 부분에 더욱 주목했다. 보통 딜러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가난하다. 세금도 엄청나게 뜯어가고, 상위 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서 장비에 돈을 쏟아 붓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원래 내야 할 세금의 일정량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에 흥분했다.
―면세 혜택이 다가 아니에요. 우리 1탱 4힐 체제로 했는데도 굉장히 쉽게 잡았어요.
―와, 그럼 딜러에게 돌아가는 몫이 더 늘어나는 거 아닌가요?
탱커와 힐러는 딜러보다 1.5배 가량까지 더 많이 받는다. 탱커와 힐러 수가 감소하는 것은 곧 딜러 개개인의 몫이 증가함을 뜻한다. 물론 큰 차이는 아니겠지만, 돈에 골골대는 딜러들에게는 그 작은 차이도 소중했다.
―그 사람이랑 레이드를 가야겠어!
―어떡하면 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지?
―혹시 그 사람 ID 아시는 분 없어요? 쪽지라도 보내게.
국내 레이드 포털 게시판은 통합적으로 관리된다. 국가에서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즉 네트워크가 단일화되어 있기에 ID만 알면 대화하는 것이 비교적 간편했다.
―모르는데…….
―그 분 ID가 대체 뭐죠?
공개한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없다. 현재로서는 박현정이 유일했지만 그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섣불리 퍼트릴 리가 없었다.
그렇게 레이드 게시판이 들끓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그 사실이 알려졌다. 언제나 사망의 위험을 안고 있는 탱커, 특히 공격대장을 잡는 탱커들은 유지웅의 정보를 알고 싶어 했다.
능력자들이 애타게 알고 싶어 할 때 마침내 그에 관한 다른 소식이 올라왔다. 힐러이자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한 막공장의 막공에 갔다 온 공격대원들이 올린 소식이었다.
―오늘 소문만 무성하던 그 분을 막공에서 뵈었습니다. 여자친구분도 같이 오셨더라고요. 1탱 4힐 체제로 출발했습니다.
―결과는요? 결과는 어땠나요?
―대단했어요. 1탱이라서 좀 불안했는데 어그로가 튈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딜러가 많아서 오히려 레이드는 더 빨리 끝났구요. 세금을 안 내도 돼서, 평소보다 천만 원 넘게 더 분배받고 끝났어요.
―와아, 부럽네요.
―보호막이라는 거, 정말 디게 신기하더라고요. 왜 탱커들이 목메는지 알 거 같아요.
그 뒤로도 몇 번 더 유지웅과 함께 레이드를 갔다 왔다는, 막공 참가 능력자들의 인증글이 올라왔다. 유지웅의 유명세는 의심할 것 없이 거세게 타올랐다. 모두가 그를 알고 싶어 했고, 그와 함께 레이드를 가고 싶어 했다.
―그 분 ID 좀 알려줘요!
―막공장들 치사하다! 그 분이 레이드에 참가했으면 ID도 알 텐데 공개를 안 하네! 쪽지라도 보내고 싶은데!
“일이 잘 안 풀리네.”
침대에 앉은 유지웅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과일을 깎아서 옆에 내려놓으며 정효주가 은근슬쩍 몸을 기댔다.
“왜? 뭐가 안 좋아?”
“이렇게 유명해졌는데 엔시디아에서 왜 소식이 없지?”
“치. 겨우 복수 때문에?”
“어허,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다고.”
엔시디아 힐러에게 막공에서 겪은 치욕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그래서 좋게 거절할 수 있는 영입 제안을 일부러 여운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던 박지원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내일 레이드 시간 되세요?
―제가 내일 레이드 팀을 짜볼까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오늘 같이 레이드 갔던 막공장입니다. 혹시 모레는 스케쥴이 어떻게 되시나요?
쪽지함에는 여러 개의 쪽지가 와 있었다. 쪽지함이 터질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었다. 그의 ID를 아는 막공장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ID는 앱서버로 각성한 뒤에 새로 등록한 ID였다. 과거와 결별하는 의미에서.
그때 박현정이 보낸 쪽지가 가장 눈에 띄었다.
―내일 레이드 오실 수 있나요?
마침 그녀는 접속 중이었다. 유지웅은 그녀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그녀는 몇 초 기다리지 않아 바로 수락했다.
―님이그걸왜굴려요 : 안녕하세요.
―나만귀족 : 네. 안녕하세요. 내일 시간 될 것 같아요.
―님이그걸왜굴려요 : 앗, 그럼 오실 수 있는 거죠? 그럼 그렇게 알고 팀 구성해놓을 게요. 3힐 괜찮으신가요?
―나만귀족 : 네. 괜찮습니다.
잠시 조용하더니 박현정이 다시 질문했다.
―님이그걸왜굴려요 : 저…… 엔시디아 일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만귀족 : 글쎄요. 아직 아무 말도 없네요.
―님이그걸왜굴려요 : 들어가실 건가요?
―나만귀족 : 사실 저 사람 애태우는 거 원래 안 좋아해서 지금 그렇게 좋은 인상은 못 받고 있네요.
둘이 친해 보이긴 하지만 이 정도 어필은 상관없겠다 싶어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그녀 입장에서도 자신이 엔시디아와 친밀해지는 것은 반기지 않을 것이다.
―님이그걸왜굴려요 : 그럼 내일 봬요! 좋은 밤 보내세요!
괜한 느낌일까? 그녀의 어투가 꽤 활기차 보인다.
유지웅은 레이드 게시판을 좀 더 훑어보다가 노트북을 끄고 한쪽에 밀었다. 정효주는 하얀 레이스 잠옷을 입고 비스듬하게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치맛단 아래로 뻗은 하얀 다리가 참으로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다리를 두 팔로 껴안듯이 어루만졌다. 정효주가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았다.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잘까?”
“응.”
언젠가부터 그녀는 그의 집에 와서 살고 있다. 거의 동거 수준이다.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이 아침을 맞는다.
얼굴이 가까워지며 입술이 닿는다. 천장의 불이 꺼지고 대신 은은한 스탠드등이 켜졌다.
다음날 정효주와 유지웅은 레이드를 위해 나섰다. 둘을 제외한 공격대원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상당수는 아는 얼굴이었지만 모르는 얼굴도 꽤 있었다.
“저 분이에요?”
“네. 그래요.”
“와…… 신기하다.”
모르는 대원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말로만 듣던 보호막 능력자를 보니 감개가 무량한 모양이다. 유지웅은 어깨가 으쓱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굳이 비싸 보이려고 굴지 않아도 자신은 이미 충분히 비싸다.
레이드가 시작되었고, 별 탈 없이 무사히 종료했다.
“27억입니다.”
평소 박현정 고정 팀의 결과를 생각하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쁘진 않은 가격이다. 막공으로 잡는 괴수는 보통 25억 정도가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박현정 고정 팀의 수준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규 공격대가 아닌 공격대는 통틀어서 막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막공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대원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을 막 모은 팀과, 대원의 대부분이 고정 멤버로 갖춰져 있고 일부만 그때그때 모집하는 팀.
후자를 고정 팀, 혹은 고정 막공이라고 한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월등히 수준이 높고 손발도 잘 맞는다.
유지웅은 27억 중 8억 이상을 챙겼다. 그러나 딜러들 중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들도 본래 받아야 할 몫보다 천만 원 이상 더 받았기 때문이었다.
정산이 끝나고 정효주와 유지웅은 차로 향했다. 그의 차는 최신형 수퍼카였다.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차지만 레이드 한두 번만 가면 차 값을 뽑을 수 있기에 샀다.
다른 딜러들은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카를 타고 다니는 것은 힐러진뿐이었다. 딜러들은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그럴 돈이 있으면 장비에 쏟아 붓는다. 그래야 레이드 가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내부 경쟁이 쓸데없이 과도해. 딜러만 참 안 됐어.”
유지웅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도 한때 딜러였기 때문에 그런 불균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바꾸려고 총대를 메야 할 의무도 없었다.
막 출발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누군가 확인해보니 박지원이었다.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가슴이 쿵쾅거렸으나 그는 태연한 척 했다. 그는 일부러 전화벨이 한껏 울리기를 기다렸다가, 의도적으로 늦게 받았다.
“여보세요.”
「저, 박지원입니다. 안녕하셨어요?」
“아, 네. 잘 지냈죠 뭐. 박지원 씨는요?”
「염려해주신 덕분에 저도 잘 지냈습니다. 레이드 가셨나 봐요? 다 끝나셨나요?」
“네.”
「잘 됐네요. 혹시 바로 뵐 수 없을까요? 전에 말씀드린 그 문제 때문에 그래요.」
“글쎄요.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
「어디 계신지 알려주시면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그럼 장비 센터 앞에서 볼까요?”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유지웅은 굳은 미소를 띠었다. 정효주가 기대된다는 듯이 물었다.
“엔시디아 부힐러장이야?
“응. 오늘 드디어 말하려나 봐.”
“나도 같이 가도 돼?”
“그럼.”
유지웅은 장비 센터로 차를 몰았다. 잠시 후 박지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로 장비 센터 앞에 있는 커다란 카페를 선택했다.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후 박지원이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유지웅을 발견하고 걸어오다가 정효주를 보고 살짝 흠칫했다.
“잘 지내셨어요?”
“네. 멀지 않으셨나 몰라요.”
“하하, 멀어도 달려가야지요.”
며칠 사이에 박지원의 안색은 조금 야윈 것 같았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었나, 싶었다.
“실례지만 두 분 관계가 어찌 되는지 물어도 될까요? 단순한 친구라기에는 많이 친밀해 보여서…….”
“애인이에요.”
“아, 그렇군요. 어쩐지 많이 다정하다 했습니다.”
의례적인 말을 입에 담으면서 박지원은 상당히 난처해하고 있었다. 유지웅은 그런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의아했다. 왜 저러는 거지?
“사실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많이 늦어졌어요.”
“문제요?”
유지웅은 저도 모르게 정효주와 눈을 마주쳤다. 문제가 생겼다면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영입 협상을 빌미로 해서, 그 힐러에게 골탕을 먹여주겠다는 자그마한 복수가 말이다.
“사원총회에서 저와 의견이 조금 갈렸습니다. 그거 때문에 저도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박지원이 보기에 유지웅과 정효주는 상당히 친밀해 보였다. 게다가 지금 확인받지 않았던가? 애인 사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사원총회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그는 거듭해서 반대했다. 처음에는 탱커진과 힐러장의 의견에 반대했고, 다음에는 가결 사항의 시행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사실 그의 뜻이 아니었다.
“먼저 저희 정공에서는 유지웅 씨 귀하를 반드시 영입하고 싶어 합니다. 그만큼 보호막 능력의 가치를 높이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지웅은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예상했던 대로다. 그럴 거면서 무슨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거지?
“하지만…… 저희 정공에서 원하는 건 유지웅 씨 한 분입니다.”
“……저기, 뭐라고요?”
“……저는 계속 반대했습니다. 두 분을 동시에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모든 걸 없던 걸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가결 사항이라 어쩔 수 없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결코 제 뜻이 아닙니다.”
박지원의 얼굴은 무거웠다. 그는 정말 이런 말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유지웅 한 명에게만 영입 제안을 하다니,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유지웅 씨 한 분만 영입한다는 게 엔시디아의 결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전달해서.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유지웅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잠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굳어 있는 정효주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박지원이 착잡하게 그를 응시했다.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시기 바래요.”
“……죄송합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유지웅은 기분 좋게 웃으며 덧붙였다.
“안 들어가면 그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