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72)
00272 재주는 불곰이 넘고 =========================================================================
“여기가 우리 제니스 사무실이에요. 좀 작죠?”
제니스는 현재 고층 빌딩의 4개 층을 임대해서 쓰고 있었다. 현재 제니스 사옥을 한창 짓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따로 쓰던 사무소가 있었는데 공격대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지금 건물로 당분간 이사한 상태였다. 신사옥이 완공되기 전까지만.
“아니에요. 정말 멋져요.”
“좀 좁아서 소개하기 창피한데……. 아직 신사옥이 다 지어지지 않아서요.”
원래 공격대 사옥을 세종시 연구단지에 짓자는 계획도 있었는데 곧 무산되었다. 유지웅의 거처가 현재 서울이기 때문이다. 공격대장과 공격대원 대부분이 서울에 살고 있는데, 공격대 사옥을 세종시에 지을 이유가 없다.
말은 좁다고 하지만 시내 중심가의 고층 빌딩이다. 임대비용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하면 보통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겸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넌센스다.
“이 분들은 누구입니까?”
출근해 있던 장태준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는 아직 메이의 존재를 듣지 못했다.
“이쪽은 쉔, 중국 출신 탱커입니다. 이쪽은 메이, 쉔의 여동생이죠. 메이는 저와 같은 비TDH 능력자인데 그 능력의 가치를 높이 사서 제가 이번에 제니스에 영입했어요.”
“비TDH 능력자요?”
장태준은 살짝 긴장했다. 통상 비TDH 능력자는 그 수가 많지도 않을 뿐더러 레이드에 별 쓸모가 없다. 그래서 그런 계열이 있다는 걸 잘 모르는 레이더도 많다.
그런 비TDH 능력자를, 그것도 중국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유지웅이 영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메이는 괴수 약화 능력자예요. 단일 대상에 디버프를 걸어서 이동 속도, 공격 능력 등 전체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어요.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능력자라 판단해서 제가 제니스에 영구 가입시켰습니다.”
“괴수 약화라고요?”
장태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간결한 설명이었지만 그는 바로 그 가치를 깨달았다. 유지웅이 탱커를 강하게 만들어서 레드 몹 레이드의 시대를 열었다면, 메이는 괴수를 약하게 만들어서 똑같은 전철을 열 것이다.
물론 강화장비의 효능을 받고, 또 안전지대 설치 능력까지 얻은 유지웅의 현재 지위를 위협할 존재는 못 된다. 하지만 눈 밖에 두는 것보다는 손안에 쥐고 있는 게 안심이 된다.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를 왔다 갔다 한 게 아마 이 소녀를 영입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저는 레이드 지원팀장 장태준이라고 합니다.”
“메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한국말을 대단히 잘하시는군요.”
“……좀 배웠어요.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서…….”
부끄러운지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보니 천상 소녀였다.
장태준은 쉔과도 인사를 나눴다. 유지웅은 사무실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국과 러시아 전쟁 등에 얽힌 정치적인 비화는 빼고, 자신이 직접 본 메이의 능력을 위주로 설명했다. 지원팀장으로서 메이의 능력을 자세히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지원팀은 전부 종신 고용인 거군요?”
쉔은 특히 제니스의 직원 복지 처우 등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일개 지원팀 직원의 연봉이 꽤 높다는 것을 듣고 놀랐다.
“중국에는 지원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상상이 안 갑니다.”
“사실 한국도 지원팀의 개념은 좀 희박한 편입니다. 하지만 영미권은 다르죠. 그들은 공격대의 안전과 효율을 위해 국가에서 전문적으로 지원팀을 육성하고, 또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공이라면 전문 지원팀을 필수로 거느리고 있고요.”
“그런데 왜 아시아권은 지원팀을 소홀히 했던 겁니까?”
“안전과 효율에 대한 인식이 낮은 거죠. 지원팀을 운용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드니 그것도 문제가 되었고요. 또 지원팀이 없어도 레이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지원팀이 있으면 사고 두 번 날 걸 한 번으로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공격대 사고 건수 절대수치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어서…….”
쉔 남매는 제니스의 규모와 지원장비 등을 전부 둘러보는데 꼬박 하루를 소모했다. 특히 쉔은 시외 공군기지 격납고에 보관 중인 6기의 신형 조기경보기 호크아이를 보고 무척 감동했다. 가격이 대당 조가 넘어가는 경보기를 한 기도 아니고 무려 6기나 보유하고 있다니, 제니스의 저력과 위상을 알 것 같았다.
* * *
중국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국내 국민들까지 매일 같이 중국 문제로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개강을 한 유지웅은 학교에서 학과 학생들이 중국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솔직히 놀랐다. 정작 일을 여기까지 야기한 그는 목적한 바를 달성하고 관심을 끊었기 때문이다.
“형, 형은 뭐 좀 들으신 거 없으세요?”
“글쎄? 뭘 말하는 건데?”
“중국이 정말 여러 개로 분열될까요? 그럼 그 많은 레이더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걸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힐러들 흡수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일까요?”
결정체학과다 보니 아무래도 결정체와 유지웅을 시발점으로 해서 일어난 중국 문제에 다들 관심이 많았다. 유지웅은 솔직하게 말했다.
“몰라.”
“아, 모르세요? 형은 그래도 좀 아실 줄 알았는데.”
“알려고 들면 알 수 있는데, 관심 없어. 내 일 아니니까.”
“하긴, 형 그런 건 확실하시더라. 선 긋는 거.”
어쩌다 보니 장권재는 유지웅의 학교 교섭 창구로 알려졌다. 학생들이나 학생회 등에서 유지웅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는 주로 그를 통한다. 아무래도 세계적인 거물이다 보니 직접 이야기를 꺼내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유지웅과 정효주가 앉는 자리 근처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다. 하지만 ‘근처의 근처’에는 학생들이 항상 바글거린다. 가까이 접근하고 싶지만 너무 가까운 접근은 실례가 된다고 생각해서 알아서 자제하는 것이다.
개강 첫날 강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장권재가 다가왔다. 그의 뒤에 학생회 멤버 등 여러 명의 학생들이 서성거리면서 기다리는 게 보였다. 유지웅은 얼굴을 들었다.
“할 말 있어?”
“형, 오늘 개강총회 오실 거예요?”
“아, 개강총회 있구나.”
잠시 생각하던 유지웅은 옆에 앉은 정효주에게 물었다.
“갈 거야?”
“너는?”
“가서 나쁠 건 없는데데 너 술 먹으면 안 되잖아. 다들 술 먹는데 혼자 안 먹으면 심심하지 않아?”
“그렇긴 한데…….”
둘의 대화에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장권재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누나 몸 어디 안 좋아요?”
“아, 효주 애기 가졌거든. 지금 삼 개월.”
“우와, 정말요? 축하드려요.”
“고마워.”
정효주가 부끄러워하며 감사를 표했다.
“우와, 전혀 티 안 나요. 그럼 내년 봄에 두 분 엄마 아빠 되는 거네요?”
“뭐, 그렇지.”
“그럼 더더욱 개강총회 오셔야죠. 두 분 경사가 과 경사이기도 한데 축하도 받으시고 그러면 좋으실 것 같은데.”
“난 괜찮아.”
정효주가 그렇게 말하자 유지웅이 한 번 더 확인했다.
“너 그럼 나 몰래 술 먹으면 안 돼?”
“걱정 마. 안 먹어.”
“누가 먹인다고 억지로 먹어도 안 돼. 알았지?”
“에이, 형. 어떤 간 큰 학생이 감히 효주 누나한테 술을 먹이려고 하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남자 선배들은 정효주한테 이제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한다. 특히 이성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이들은 괜히 유지웅 눈 밖에 날까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이었다. 웬만해서는 그의 눈에 띄지도 않으려고 한다.
유지웅 커플은 장권재의 안내를 받아 개강총회가 열리는 장소로 갔다.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학과에서 하루 동안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보통 대학의 개강총회치고는 사치스럽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그게 또 아니란다.
“원래는 호텔을 빌리려고 했는데 다른 과 눈도 있고 해서 여기로 정한 거래요.”
결정체학과는 현재 유지웅이 자문단에 지원한 연구비도 있고 해서 학교에서 가장 돈이 많다고 한다. 하긴, 유지웅 커플이 입학할 때 각자 낸 기부금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니. 이 정도면 정말 다른 과 눈치 보고 최대한 격을 낮춘 것이다.
개강총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 결정체학 교수진 전원 참가는 물론이고, 이미 졸업해서 사회에 자리 잡은 선배들도 대다수가 참석했다. 특히 결정체 산업에 종사하는 임원급 인물들도 대거 왔다.
“경사가 있다는 말 들었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유지웅 군이 든든한 후계자를 두어야 제니스 그룹도 단단하게 안정화되겠지. 아, 그렇다고 불안정하다느니 뭐 그런 이야기는 아닐세.”
“그런데 그룹은 아닌데요?”
노교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야 유지웅 군 본인 생각이지. 대다수 사람들은 이미 제니스를 단순 공격대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보고 있네. 강의에서 그런 내용 안 나오던가? 정규 공격대는 세법상 기업으로 취급된다고 말이야.”
“아,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만 저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전 그냥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그렇게 부르는 건가 했는데.”
“요새는 회장님이라고 불리나?”
“네, 저번에 잠깐 통화했을 때 대통령도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해요.”
대통령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에 노교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들었나?”
“무슨 이야기요?”
“강희중 의원이 사임했다네. 아마 당에서 압박을 한 거 같아.”
“강희중 의원이요? 그게 누군데요?”
“개편될 결정체 관리본부에 민간 감시기구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의원이지 않나. 자네와도 한 번 부딪친 걸로 아는데. 그 자가 여러 곳에서 거액의 로비를 받고 그 일을 추진하다가 자네한테 엄중한 경고를 받은 거 때문에 당에서 그를 버렸다고 들었네.”
“아, 그 사람이요?”
유지웅은 그제야 기억났다. 노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일 때문에 지금 정계에서는 서로 몸을 사리느라 난리가 났는데, 정작 본인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당은 강희중을 버렸다. 그런데 본인은 기억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만약 강희중이 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지금 검찰에서 수사 중인데 로비 액수만 해도 600억에 이른다고 하네. 오히려 당에서 더 적극적으로 그를 몰아세우고 있어. 이제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고 봐도 좋지.”
“600억이요? 아닌데, 제가 듣기로는 1,500억쯤 된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인가?”
“네. 결정체 카르텔에 몸 담근 부패 정치가잖아요. 그런 인물이 능률이니 효율이니 들먹이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사퇴나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한 마디 했거든요. 그 뒤로 잊고 있었는데 당에서 사임시킨 모양이네요. 근데 저 그런 이야기 어디다 한 적도 없는데, 당에서는 어떻게 알았대요?”
무심코 던진 돌에 황소개구리가 맞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