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96)
00296 바다의 황제 =========================================================================
테레사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난 제니스 대원이야. 죽을 때까지 제니스와 함께 할 거야. 제니스에 해가 되는 일은 할 수 없어.”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야. 포획 괴수의 소유권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뿐이야. 충분한 대가는 지불할 거야. 이미 미 정부와도 이야기가 되어 있어.”
“…….”
“놀랐지? 나도 테레사 너한테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그만큼 가문 사정이 절박하다는 건 알아주렴.”
“……거짓말은 아니지?”
“언니가 그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어, 동생아.”
Sister라고 부르는 게 거슬렸지만 지금은 거기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테레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잠겼다. 카타리나는 다시 호소했다.
“제니스 회장님은 널 매우 신뢰한다고 들었어. 네 부탁이라면 생각을 바꾸실 지도 몰라.”
“제니스에 손해가 되는 일은 할 수 없어.”
“알아. 그저 부탁만 해달라는 거야. 안 되겠니?”
“……부탁은 해줄 수 있어. 하지만 거짓말은 할 수 없어. 사실 그대로를 말할 거야.”
“그래. 고마워.”
쓸쓸하게 미소 짓는 카타리나의 모습이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 * *
테레사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돌아왔다. 실타래가 잔뜩 엉킨 것처럼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이런 경험은 한 번도 없는 그녀는 고민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부탁을 꺼내긴 해야겠는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테레사는 유지웅이 체류하는 스위트룸의 벨을 눌렀다.
“쿤겐? 들어와요.”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있던 유지웅이 문을 열어주었다. 거실에 노트북을 펼친 게 보였다. 아마 게임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녀가 알기로 그는 게임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임을 하다가 방해받으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도 괜히 그를 방해한 것은 아닐까? 때를 잘못 맞춰서 찾아온 것은 아닐까?
“써. 저어…….”
어렵사리 말을 꺼내며 눈을 마주친 테레사는 힘들게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그래요?”
유지웅은 유지웅대로 당황했다. 갑자기 테레사가 찾아와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건 대체 무슨 반응? 저 유혹하는 듯한 미소는 또 뭐지? 설마 그새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았다며 대망의 고백이라도 하려는 건가?
“면목이 없습니다만 써가 필요합니다.”
“제, 제가 필요하다고요?”
유지웅은 기겁을 해서 저도 모르게 반 발짝 물러났다. 그는 순간적으로 계산했다. 탱커인 그녀에게 힘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테레사가 작정하고 덮치면 자신은 정절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아, 설마 이렇게 아내에 대한 정조를 지킬 수 없게 되는 건가…….
“네, 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응? 뭐라고요?”
“어려운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비장하기까지 한 진중한 태도에 유지웅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매우 부끄러워졌다. 그러니까 혼자 오해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한 셈이다. 젠장, 괜히 기대했다.
얼떨떨한 마음을 다스린 유지웅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민망함을 억지 미소로 감추고 물었다.
“부탁이 뭔데요? 말해 봐요.”
“저어, 사실은…….”
테레사는 우물쭈물해 하며 카타리나가 말한 부탁을 전했다.말을 하면서 그녀는 몇 번이나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잠자코 듣기만 했다.
“……입니다.”
“그렇군요.”
대답이 너무 짧다. 테레사는 불안해졌다. 보스가 화가 난 것은 아닐까? 주제 넘는 부탁을 했다고? 역시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 했나?
“일단은 생각을 좀 해볼게요.”
“아닙니다. 제가 주제넘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안 되겠다 싶은 테레사는 이제라도 수습하려 했다. 그러자 유지웅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왜 그래요? 부탁한 건 쿤겐이잖아요?”
“제가 어려운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지웅은 그녀가 저러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이미 브라우니와 병아리, 고래 가족 5마리를 거느린 그에게 새끼 상어 괴수는 있으나 마나다. 테레사의 부탁이라면 기꺼이 양보해줄 의향이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제니스와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오해하지 말아요. 쿤겐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죠.”
“네? 정말인가요?”
“그럼요. 쿤겐한테 목숨빚 진 것도 있는데 그런 사소한 부탁 하나 못 들어주겠어요? 생각을 해본다는 건 자세한 사정도 파악하고 또 조언도 들어본다는 뜻이에요. 이번 문제는 미국, 아니 카네기에 양보할 테니까 마음 편히 가져요.”
“써, 정말 감사합니다.”
테레사는 감격했다. 그녀도 세상 물정을 아는지라 포획한 괴수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는 인식했다. 아무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지만 양보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다.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죄를 기분이었는데, 그런 큰 양보를 선뜻 해주겠다니.
그만큼 자신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로 이해한 테레사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원래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다지 않은가?
“카네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을 볼게요. 염려하지 말고 돌아가서 쉬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또 다른 부탁할 게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언제든지 이야기해요. 안 그래도 별로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한데.”
“아닙니다. 저 같이 보잘것없는 레이더를 영입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가서 쉬어요.”
“예. 편히 쉬십시오.”
테레사는 허리를 구십 도로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 바람에 가슴골이 언뜻 보였다. 티가 아래로 살짝 늘어지자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가슴이 드러났다.
문을 닫으며 유지웅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머리를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으아! 창피해! 내가 왜 그런 상상을! 그리고 뭐? 괜히 기대했다고? 으아악! 효주가 알면 죽은 목숨이다!”
미국에 머무른 지 꽤 되었다. 즉 효주와 섹스를 못한 지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안 그래도 혈기 왕성한 나이에 예쁜 와이프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날이 길어지다 보니, 별 괴상망측한 상상을 다해버렸다.
“에휴, 됐다. 차라리 잘 됐어. 괴수는 미국, 아니 카네기 주고 빨리 돌아가야지.”
중요한 재산 처분 문제는 정효주와 의논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괴수 소유권이 중요한 재산 문제일까? 유지웅은 잠시 고민했다. 재산 규모가 커지다 보니 뭐가 중요한 재산 처분이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 재산 처분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유지웅은 노트북을 켜고 정효주와 화상 통화를 시작했다. 대략적인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녀도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쿤겐이 아쉬운 소리를 한 건 처음 아니니?」
“그렇지, 뭐.”
「내 생각해도 그냥 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치?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니지. 중요한 건 맞는데 쿤겐이 부탁한 거니까 특별히 들어주는 거지.」
“엎어치나 매치나지. 알았어.”
「근데 그런 큰 부자 가문도 파산 위기를 겪는구나. 우리도 진짜 재산관리 잘해야겠다.」
“괜찮아. 우리는 사업 같은 거 안 벌이니까. 나 그럼 지금 바로 돌아갈게. 아마 세 시간쯤 걸릴 거 같아.”
「세 시간?」
정효주의 얼굴에도 묘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살짝 붉어진 표정이 흡족했다. 유지웅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벗어볼래?”
「……여기서?」
“응. 지금 보고 싶어. 니 찌찌.”
「해킹당하면 어떡해?」
“누가 해킹을 한다고? 감히 내 노트북을?”
그의 노트북은 미 펜타곤보다 더한 보안을 자랑한다. 웬만한 해커는 침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정효주는 불안한 눈치였다. 보여주기 싫은 게 아니라 보여줬는데 해킹당해서 영상이 유출되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 아닌가. 아무리 보안 시스템을 둘둘 둘렀어도 여자로서 불안한 건 당연하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럴 때를 위해서 철벽 보안망 둘러놨다고.”
「정말 괜찮은 거지?」
“응. 빨리 보여줘.”
망설이던 정효주는 입술을 꼭 깨물고는 등에 손을 가져갔다. 지퍼를 내리고 서서히 옷을 끌러 내린다. 천천히 움직이는 손길에는 남자를 유혹하는 마력이 녹아 있다. 애를 태우듯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흐름을 끊지 않으며 옷을 벗는다.
하얀 어깨와 보기 좋게 도드라진 쇄골이 드러났다. 유지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늘 보아왔던 살결이지만 이렇게 화상 채팅을 통해서 보고 있으니 색다르다. 흡사 효주의 얼굴을 한 다른 여자의 몸을 보는 기분이다.
“브래지어는? 빨리 벗어 줘.”
「그냥 여기까지만 보여주면 안 돼?」
“빨리. 빨리.”
일부러 한 번 튕겨본 듯 그녀는 배시시 웃고는 브래지어를 끌러 내렸다. 마치 놀리는 것처럼 느릿한 손놀림이다. 유지웅은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보기 좋게 부푼 하얀 가슴이 나타났다. 늘 봐왔던 가슴인데 마치 남의 것처럼 색다르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신기했다. 저게 내 것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마치 눈앞에 있는 가슴을 쥐어보듯이 황홀한 눈으로 허공을 더듬던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슬프다…….”
「왜?」
“이런 예쁜 가슴을 더 이상 나만 독점할 수 없다는 게 슬퍼.”
「설마 아이한테 질투하는 거니?」
“왜 이러셔. 나도 애라고.”
「네가 무슨 애야.」
“남자는 영원한 아이라는 말, 몰라? 난 아빠 돼도 영원히 애 할 거야.”
「그래, 그래. 그럼 난 애 둘 키운다 생각하면 되겠다.」
“지금 A3 준비 중이야. 서방님 세 시간이면 간다. 몸을 정갈히 하고 기다리거라.”
「소녀, 잘 알겠사오니 서둘러 오시지요.」
“오냐, 금방 가마.”
적절한 음담패설과 야한 몸짓을 섞어가며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유지웅은 A3가 준비 되었다는 비서의 보고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A3는 초음속 여객기답게 태평양을 세 시간 만에 주파해서 서울에 도착했다.
“마누라! 서방님 왔다!”
그는 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침실에 들어섰다. 방안은 은은하고 어두운 조명으로 가득했다. 침대에 드리워진 반투명한 실크천 너머로 정효주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비쳤다. 천을 걷고 얼굴을 들이밀자, 하얀 타월을 걸치고 있는 그녀가 비스듬하게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머릿결과 살짝 불그스름한 홍조가 깃든 피부. 유지웅은 흥분이 최고조에 달해서 그대로 다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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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는 부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