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98)
00298 바다의 황제 =========================================================================
중국과 한국은 육로로 연결되어 있다. 또 일본은 해로로 연결되어 있다. 해양 괴수가 동해까지 침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식량 수송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씨를 뿌리면 일주일이면 수확을 맺을 수 있다. 대규모 재배를 단기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도 이미 갖춰진 상태였다. 말 그대로 대규모 임상 실험의 조건 빼고는 전부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일본과 중국(정확히는 각 자치구역 정부)이 기꺼이 임상 실험국이 되어주겠다고 나섰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굶어 죽는 것보다는 정체불명의 곡식이라도 먹고 살아남는 게 이득이었다.
“아빠, 일본이랑 중국이 쌀이랑 아무튼 다 산대. 그냥 사람이 먹는 거 막 심어. 채소든 밀이든 쌀이든 막 심어. 옥수수랑 콩도 심고.”
“근데 이거 팔아도 되는 거다니? 아직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거라면서?”
“괜찮대. 먹고 이상 일으킨 동물들도 없잖아.”
“그래도 듣자니까 오래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직 모른다던데…….”
“자기들이 그거 감수하고 먹겠다잖아. 그리고 굶어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그 정도냐?”
“응. 당장 이거라도 없으면 전 국민이 굶어죽는 처지래. 그러니 이거라도 먹어야지.”
성급하게 과수원을 팔고 할 게 없어서 놀고 있던 유재석 부부는 어쨌든 반색을 했다. 할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사실 일을 할 필요는 없는데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왔다 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좀이 쑤셨다.
이런 일은 또 김장호가 전문이다. 그는 농업 법인을 설립하는 등 모든 절차적인 부분을 처리했다. 유재석은 사람을 대거 고용하고 중장비를 도입했다. 그 돈은 전부 유지웅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래봐야 바다에서 물 한 바가지 퍼낸 수준이었다.
“우리도 미국식 농법을 도입해야 해. 언제 이앙기로 모 심고 있어?”
호남평야는 벼농사를 지을 때 물이 필요 없다. 그냥 맨땅에 볍씨를 뿌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미국식 파종 방법을 따르는 게 좋다.
유지웅은 경비행기를 몇 대 사들이고 조종사도 고용했다. 그리고 비행기로 하늘에서 씨를 뿌렸다. 직접 봐야겠다며 현장에 나온 유재석은 눈처럼 내리는 볍씨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내 살아생전 이런 식으로 벼농사를 짓는 건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가장 소비가 큰 쌀은 비행기를 이용해서 파종을 했다. 그 외 옥수수와, 콩, 채소, 기타 작물은 기계를 이용해 파종했다. 옥수수와 콩은 가축 사료 제조에 필요한 재료였다.
호남평야를 이용한 대규모 경작은 놀라웠다. 그냥 맨땅에 씨만 뿌렸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모든 작물이 성장하고 열매를 맺은 것이다. 줄기가 부러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큼직한 알갱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 방대한 수확물을 거두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농업법인 (주)유정은 대규모 인력을 고용해서 수확에 나섰다. 현대 농사는 기계가 다 한다지만 투입 기계가 많아지면 그만큼 다룰 사람도 필요했고, 또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중요한 건 가격 대비 효율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씨를 뿌리고 일주일 만에 수확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씨를 뿌려야 한다. 고용 비용의 효율을 생각할 때가 아닌 것이다.
땅은 넓고 사람은 많이 필요했다. (주)유정은 사실상 실직상태인, 과거 호남 소유주였던 농민들을 대거 고용했다. 그들의 생계 지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정부로서는 두통거리가 간단하게 해결된 셈이었다.
농업 관련 공장들은 때 아닌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어마어마한 곡물의 가공 때문에 할 일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벼를 도정해야했고, 포장해야 했고, 가축 사료도 만들어야 했다.
또 그 많은 물량을 항구로 실어 나르느라 운송업계도 때 아닌 호황을 이루었다. 인근 항구는 식량을 실어 나르기 위한 배들이 몰려 있어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이 먹을 쌀, 채소, 식료품을 제조할 콩과 옥수수, 육류 공급을 위해 가축을 먹일 사료 등 엄청난 양의 식량이 해로를 통해 일본으로, 중국으로 들어갔다.
좋은 소리만 나온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의 지식인층에서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인체 실험이라며 자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어찌 검증되지 않은 식료품을 수입해서 공급할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비판론자들도 ‘그럼 굶어죽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나?’라는 반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 정말 그랬다. 일본이나 중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럽과 중동 국가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특히 중동국가는 아메리카 대륙과 해로가 막혀 있어 일본이나 중국과 식량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곡물은 정말 괜찮은 건가?」
안슐도 식량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UAE 국민들을 책임져야 하는 왕족이었다. 당연히 호남에서 생산되는 곡물에 관심을 보였다.
“사실 저도 몰라요. 하지만 지난 몇 달 간 동물을 상대로 계속 먹여왔는데 아무 이상 조짐은 없었어요. 성분 검사에서도 특별한 점은 없었고요. 좀 알이 굵고 영양소가 풍부할 뿐인 일반 곡식으로 판명됐거든요.”
「흠.」
“그래도,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라서 인간 식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뿐이죠.”
「일본과 중국을 좀 더 지켜보다가 이상이 없으면 우리가 좀 매입을 해도 되겠나?」
“매입이라니요. 원하신다면 UAE에는 무상으로 공급해드릴게요. 하지만 안전성은 저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그동안 받은 게 얼만데 이런 걸 가지고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안슐도 굳이 돈을 주겠다고 나서진 않았다. 둘 사이에서 이 정도는 채무 축에도 못 드는, 그냥 가볍게 사는 술 한 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체실험을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먼저 식량 대금은 차관으로 해결한다. 그것도 조건부다. 장기적으로 상환을 하되, 만약 식량 때문에 이상이 발생하면 대금 채무를 탕감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또한 그 동안 호남에서 생산한 곡물을 실험 가축에 먹였을 때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실험 결과와, 곡물의 성분을 분석한 데이터를 전격 공개했다. 유지웅의 말처럼, 성분상 일반 곡물보다 영양소가 풍부할 뿐인 평범한 곡물에 지나지 않았다. 결정 에너지 같은 것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드디어 일본이 첫 시식회를 열었다. 수상을 비롯한 내각 각료들이 제일 먼저 호남산 곡물 및 채소,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의 육류를 국민들 앞에서 먹기로 한 것이다.
“국민 여러분, 호남에서 생산된 이 쌀과 채소는 안전합니다. 또한 그 곡물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의 고기 역시 안전합니다.”
총리는 그렇게 말하며 호남산 쌀로 지은 밥과 채소를 시식했다. 각료들도 웃는 얼굴로 젓가락을 들었다. 그들은 쌀과 채소뿐만 아니라 고기도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그 과정이 생생하게 일본과 한국 내에 중계되었다. 서방 기자들도 깊은 관심을 갖고 참석했다.
극우파들은 총리를 비롯한 내각 전원이 곧 탈을 일으켜 죽을 것이라고 비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식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아무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내각은 아예 점심과 저녁을 정부 청사에서 호남산 쌀과 고기로 함께 해결하며, 그 과정을 전국에 생생하게 보도했다.
긴가민가하던 일본 국민들은 정부 관료들이 매일 호남산 곡물을 먹자 하나둘씩 손을 대기 시작했다. 원래 처음 한 번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그 뒤는 쉽다. 호남산 곡물은 순식간에 일본 전역에 보급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식량이 바닥난 일본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중국의 경우는 더 쉽게 진행되었다. 레이더가 일으킨 혁명, 레이더의 대량 이탈, 러시아와의 갈등 등으로 대분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중국은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당연히 물류와 사람의 이동은 철저히 틀어 막혔고, 각 구역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을 도모해야만 했다.
식량이 부족해서 굶는 사람이 속출하는 판이다. 일본처럼 지도층이 공개 시식을 하지 않았는데도 너도 나도 호남산 곡물을 찾기 바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간혹 호남산 곡물을 먹고 죽거나 병에 걸렸다는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부 근거 없는 음해임이 밝혀졌다. 어디에서도 호남산 곡물과 육류를 먹고 탈이 났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 * *
제니스 공격대에 신규 부서가 생겼다. 바로 사육한 괴수를 전담하는 관리팀이었다. 본래는 제니스가 정부에 위탁하는 식으로 인력 운용을 해왔는데, 유지웅이 아예 그들을 흡수해 버린 것이다.
원래 그들의 주력 임무는 브라우니와 새끼를 관리하고 보살피는 일이었다. 헌데 고래 괴수 가족도 포획하자 자문단에서는 이참에 전문관리팀을 신설할 것을 조언했고, 그 방안으로 정부 인력을 흡수하기를 권했다. 그렇게 약 50여 명으로 구성된 괴수 관리부서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컷 고래 괴수에게 새끼를 보여주게 되었다. 그간 훈련을 통해 수컷 고래 괴수가 짝을 볼모로 잡힌 처지를 인정하고,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판명났기 때문이었다. 채찍이 있다면 당근도 주어져야 하는 법이다.
암컷 고래와 새끼들이 머무르는 저수지와 바다 사이에 수로를 뚫고 몇 겹의 수문을 두었다. 브라우니가 눈을 부릅뜨고 동석한 가운데 가족의 면회가 허락되었다. 수문이 열리고, 수컷 고래 괴수는 드디어 저수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컷은 어미의 주변을 떠돌며 젖을 빨거나 몸을 비비는 세 마리의 작은 새끼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관리부서 사람들은 그 순간의 감동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괴수가 우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 저는 말문이 막혔어요.”
새끼들을 본 순간 수컷 괴수는 말 그대로 눈물을 흘렸다. 끄응끄응 거리며 새끼들한테 머리를 비비기도 했다. 새끼들은 아비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서워서 움츠러들기만 하다가, 어미가 괜찮다는 듯이 밀어대자 곧 신기한 듯이 아비한테 접근해서 주변을 뱅글뱅글 맴돌았다.
나름 의미를 부여할 만한 감동스러운 가족 상봉이었다. 몇 몇 여성 직원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아무리 위험한 괴수라 해도 새끼는 귀여운 법이고, 이산가족의 상봉은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요? 울더라고요?”
“네, 회장님. 정말 신비한 일이었습니다. 고래, 그것도 괴수가 눈물을 흘리다니…….”
“좋네요. 말은 잘 듣겠네.”
“네?”
“자기 새끼 알아보고, 새끼 때문에 울 정도라면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다는 거 아니겠어요? 부성 본능도 강할 테고. 다루기는 쉽겠다. 어디 보자, 그럼 몇 번째 안을 채택하는 게 가장 좋으려나…….”
유지웅은 자문단이 올린 ‘해양괴수 활용방안’ 제안서를 뒤적거렸다. 보고자는 얼이 빠진 채 응시했다. 아니, 조만간 애아빠 된다는 사람이 왜 저리 매정해? 가슴도 없나? 눈물이 말라붙기라도 했어?
말이 나온 김에 유지웅은 직접 괴수를 보기로 했다. 마침 괴수 사육소에 나와 있던 터였다. V-23을 타고 저수지로 이동한 유지웅은 새끼들과 놀아주고 있는 수컷 괴수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고 서먹해했다던데, 괴수라 해도 핏줄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인지 금세 친해졌다.
저수지 변두리에서는 브라우니가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수심이 수십 미터도 채 되지 않는 얕은 저수지다. 당연히 고래 괴수들은 브라우니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결정도도 훨씬 딸리니.
브라우니의 머리 위에는 노란 깃털을 가진 새끼가 편하게 앉아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속을 유영하는 새끼 고래와 부모 고래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특히 병아리 새끼는 새끼 고래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끼리 뭔가 동질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고 유지웅은 손뼉을 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네?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인질을 이용한 협박은 한계가 있어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진심으로 친해지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
“원래 아이들은 쉽게 친해지는 법이죠.”
한참은 더 커야 쓸모가 생길 줄 알았는데, 이거 병아리 새끼가 할 일이 벌써 생겼다.
============================ 작품 후기 ============================
후쿠시마산보다 10억배쯤 안전한 호남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