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02)
00302 금수저를 물고 =========================================================================
성탄절 파티는 엉망이 되었다. 양수가 터진 정효주는 배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여자애들은 술이 확 깨서 그녀를 살폈다. 소식을 들은 주치의가 구급차를 거느리고 급히 달려왔다.
테레사가 나섰다. 힘이 가장 좋은 그녀는 정효주를 업고 구급차에 실었다. 유지웅이 급히 타려고 하자 정효주가 신음 하는 중에도 말렸다.
“넌 아직 오지 마.”
“무슨 소리야? 양수 터졌는데 내가 왜 안 가?”
“당장 애 나올 건 아니니까 여기는 수습하고 와. 기다리고 있을게.”
“하지만…….”
“그렇게 해 줘. 난 괜찮아.”
정효주는 애가 나오려는 와중에도 그것부터 걱정했다. 파티가 엉망이 된 와중에 유지웅마저 자리를 비우면 자리를 수습할 사람이 없어진다. 그도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이해했다.
“금방 갈게.”
“응.”
땀투성이 얼굴을 쓸어 넘기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유지웅은 물러났다. 구급차가 인근 병원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다들 술이 확 깬 얼굴이었다. 특히 여자애들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언니 괜찮은 걸까?”
“내년 3월이 예정일 아니었어?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
다들 그것 때문에 근심이 가득했다. 안 그래도 유지웅도 놀란 가슴에 걱정까지 더해져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을 상대했다.
“괜찮아. 별 일 없을 거야. 더 놀래? 아니면 그만 쉴래?”
“저희가 무슨 염치로 더 놀겠어요. 그보다 효주 누나 문병 가면 안 돼요?”
“얘는. 지금이 문병 갈 때가 아니잖아.”
눈치 빠른 여자애가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무려 3개월이나 빨리 양수가 터졌다.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이 대인원이 우르르 문병을 간다고? 결례도 그만한 게 없다.
“문병은 나중에 좀 진정되면 와 줘. 더 못 놀 거 같으면 그만 들어가서 쉴래?”
“네.”
유지웅은 가정부들을 시켜 손님용 공간인 2층에 아이들을 일일이 안내했다. 대저택의 2층은 층 전부가 손님을 위한 공간이다. 각방 하나하나가 마치 오피스텔처럼 되어 있어, 몇 날 며칠이고 머물러도 된다.
수능이 끝난 자유를 만끽하고 있던 정혜주도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왔다.
“형부! 언니 병원에 갔다면서요?”
“어. 나도 이제 가보려고.”
“괜찮은 거예요? 아직 예정일 3월이나 남았잖아요?”
“몰라. 가봐야 알지.”
유지웅은 세스토 엘레멘토를 꺼냈다. 정혜주도 얼른 조수석에 탔다. 한밤중에 세스토 엘레멘토가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정문을 지키는 경호원들의 표정도 긴장감이 가득했다.
아직 30분도 채 안 지났다. 설마 30분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겠지? 유지웅은 초조한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형부! 조심해요! 사고 나겠어요!”
정혜주의 외침에 유지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하마터면 가드레일을 박을 뻔했다.
“진정해요. 별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언니는 탱커잖아요?”
“그래. 별 일 없어야지. 없어야 돼.”
그렇게 홀린 듯이 중얼거리며 유지웅은 급히 액셀을 밟았다. 정혜주는 걱정스럽게 응시했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둘은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 주차 관리 요원은 굉음을 내며 들어선 세스토 엘레멘토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유지웅은 급히 주치의를 찾았다. 이 병원은 정효주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오는 곳이다. 분만실로 급히 이동했는데 우렁찬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아닌가?”
설마 벌써 태어났을 리는 없을 테고, 이 시간에도 산통을 느끼고 실려 온 다른 산모가 있는 걸까?
순간 유지웅은 주치의를 발견했다. 그녀는 피가 묻은 가운을 입고 분만실을 나서고 있었다. 그를 알아본 그녀가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산모는 건강합니다. 하지만 아드님이 워낙 미숙아인 관계로 일단 인큐베이터로 옮겼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온 거죠? 위험한 건 아닌가요?”
“탱커는 출산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기네스북에는 출산에 3분이 걸린 여성 탱커도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인큐베이터로 옮긴 것이지, 아직 위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자세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안심하세요.”
머리가 멍해졌다. 병원에 오자마자 아빠가 되었다는 감격보다는, 처음으로 얻은 아이가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산모에게는 일단 비밀로 해주세요.”
정효주는 병실로 옮겨졌다. 땀에 젖은 얼굴은 잔뜩 지쳐 보였다. 그렇게나 튼튼한 탱커도 출산은 힘든가 보다. 유지웅은 말없이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수고했어.”
“아이는? 괜찮은 거니?”
“응. 괜찮아. 몇 가지 검사할 게 있어서 당장은 볼 수 없대. 나중에 보게 해줄게.”
“정말 괜찮은 거지?”
언뜻 불안함을 느끼는지 그녀가 재차 물었다. 핼쑥한 낯빛에 마음이 아팠지만 유지웅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래를 저었다.
“아니야. 진짜 간단한 검사만 하는 거야.”
병원은 난리가 났다. 다른 이도 아닌 제니스 회장이 처음으로 얻은 아들이다. 병원 최고의 의료진이 동원돼서 미숙아로 태어난 부작용은 없는지 철저히 검사했다.
진료는 밤새 계속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체격이 작은 것을 빼면 호흡도 잘했고 산소 부족 현상 등 특별한 문제점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 무렵에는 인큐베이터를 이용할 필요도 없는 건강한 신생아라는 진단이 내려서, 겨우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안아보시겠어요?”
간호사가 포대기에 감싸인 아이를 내밀었다. 밤새 걱정하게 만들었던 아기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눈을 감은 채 자고 있었다. 피부도 쭈글쭈글하고, 온몸에 피가 묻어서 그렇게 못 생겨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객관적인 시각에 불과했다. 유지웅의 눈에는 천사처럼 예뻐 보였다.
아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는데 몸이 떨려 왔다. 겨우 수kg의 자그마한 무게. 하지만 만금처럼 커다란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되었음을, 한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음을 실감케 하는 촉감이다. 무게다.
링겔을 꽂고 누워 있던 정효주는 유지웅이 아이를 안고 들어오자 반색을 하며 손을 뻗었다. 그녀는 지난 밤에 아이를 보고 싶어서 한숨도 못 잤다. 신랑은 괜찮다고 했지만, 미숙아로 태어나서 잘못된 것은 아닌지 안절부절 했다.
유지웅이 아이를 내밀었다. 정효주는 조심스럽게 포대기를 감싸 안았다. 하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손가락을 문 채 잠든 아이를 보는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실감이 안 나.”
“뭐가?”
“이 아기가 어제까지만 해도 내 뱃속에 있었다는 게. 신기해. 실감이 안 나.”
정효주는 조심스럽게 아기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엄마의 손길을 느낀 것일까. 아이가 우렁찬 울음을 터트렸다. 초보 엄마는 괜히 잘 자는 아이를 깨운 걸까 싶어 깜짝 놀랐다.
“아드님이 배가 고픈가 봅니다. 젖을 물려 주세요.”
“그,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정효주는 조심스럽게 가슴을 풀었다. 유지웅을 제외하면 병실에 남자는 없었다. 유두를 입 근처에 가져가자 눈을 감은 채로 어떻게 알아보고 바로 덥석 문다. 짜르르 울리는 감촉이 기분 좋은 감촉을 선사했다. 신랑이 입으로 해줄 때와는 다른, 쾌감과는 미묘하게 다른 짜릿함이 간지럽혔다.
“왜 울어?”
“……내가?”
“그래. 우네.”
“어, 그래? 이상하네. 내가 왜 울지…….”
주치의가 눈짓을 해서 간호사들을 데리고 나갔다. 병실에는 유지웅 가족 셋만 남았다. 정효주는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로 작게 훌쩍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우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조그맣게 훌쩍이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울지 마. 애도 건강하다는데 왜 울어.”
“그러게. 좋은 일만 생겼는데 왜 눈물 날까.”
“애기, 어제만 해도 디게 못 생겼는데 이제 좀 낫다.”
“아들이라고 어른들 좋아하시지?”
“무슨 상관? 요즘 세상에 누가 아들 딸 따져? 우리 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 그런 분들 아니시잖아.”
“말은 그리 하셔도 내심 첫째는 아들이길 바라실 걸?”
그런 부분에서 어른들은 아무래도 그런 점이 있다. 평범한 집안이었으면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텐데, 유지웅이 세계 제일의 부자라는 점 때문에 더욱 아들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정말로 그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됐어. 건강하게 잘 나왔으면 됐지. 나도 미숙아라서 디게 걱정했는데 체구 좀 작은 거 빼면 건강하니까 다행이야.”
“응. 정말 다행이야.”
“그나저나 이름은 뭐로 짓지…….”
그때 밖이 시끌시끌해졌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 유지웅은 들어오라고 말을 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정재진 부부가 들어섰다. 그들은 아침에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유 서방! 아이는? 산모는 건강한가?”
“네, 보다시피 둘 다 아주 건강해요. 한 번 안아보시겠어요?”
“아이고, 내 새끼. 고생 많았다. 엄마가 돼서 딸이 애 낳는데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고…….”
신정애는 딸의 손을 덥석 잡으며 좋아했다. 정재진은 포대기에 감싸인 손자를 안고 얼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뒤늦게 따라온 정혜주는 뒷짐을 지고 구석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소식을 듣고 유재석 부부도 일도 내팽개치고 호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급행으로 보낸 V-23 덕분에 왕복에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수고했다. 장하구나.”
유재석은 며느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김남희도 둘 다 건강하다는 말에 좋아했다. 특히 아들이라는 말에 더욱 좋아했다.
“장하다. 역시 첫째는 아들이어야지. 암.”
“……엄마는 그런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너희가 돈이 오죽 많으니까 그렇지. 딸이면 더 골치 아파. 나중에 시집 갈 때 문제야.”
“에이, 요즘 세상이 뭐 그런가. 상속권 어차피 다 똑같이 갖는데.”
“그래도 장손이 든든하게 버티는 거랑은 다르지.”
“엄마 아빠도 옛날 사람 맞네.”
“유 서방, 사실 그건 우리도 사돈어른들이랑 같은 생각이야.”
유지웅은 머쓱했다. 나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건가? 이거 보니까 정효주도 여태껏 말은 그리 해놓고 내심으로는 아들을 조금 더 선호한 것 같은 눈치다. 진짜 자신은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었는데.
아이를 서로 먼저 안아본다고 보이지 않는 다툼이 일어났다. 또 이름을 뭐로 지을지를 놓고 다툼이 일어났다. 사돈 간이라도 그런 다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제니스 그룹의 후계자 탄생은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국내 언론뿐만이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했다. 특히 국내 언론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고귀한 혈통이라며 요란법석을 떨었다.
정재계에서 축하 선물이라며 온갖 꽃과 산모의 몸에 좋은 보양식을 보내왔다. 병실을 채우고도 모자라 복도까지 차지한 화환과 선물꾸러미가 제니스의 위상을 말해주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도 탄생석과 화환을 보내왔을 정도였다.
“휴, 정신이 없네. 미안해요, 쿤겐. 고생만 엄청 하고.”
“아닙니다. 집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저어…….”
테레사는 몹시 망설이는 눈치였다. 유지웅은 의아해서 물었다.
“왜 그래요?”
“아드님을 제가 한 번 안아 봐도 될런지요?”
물어보는 태도가 너무 조심스럽다. 유지웅은 흔쾌히 수락했다.
“예뻐해 주면 나야 고맙죠. 많이 챙겨주세요.”
아이를 토닥이고 있던 정효주가 테레사에게 아이를 건넸다. 테레사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들었다.
순간 아이가 눈을 번쩍 떴다. 어머니 품 냄새와 다른 여자 냄새에 반응이라도 한 것일까. 정효주가 신기하게 여겼다.
“어머? 우리 금동이 눈 떴네?”
“그러게. 지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이 건드리면 눈 감고 자는 척하던 녀석이.”
하마터면 ‘어린놈이 벌써부터 이쁜 여자는 알아보고.’라고 말을 할 뻔했다. 테레사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큰일 난다.
테레사는 신기한 듯이 아이를 살며시 안았다. 옹알이를 하듯이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테레사의 가슴을 덥석 움켜쥐었다. 엄마 가슴과 착각한 것일까? 옷 위로 가슴을 쪽쪽 빨기 시작했다.
“아드님이 배가 고픈가 봅니다.”
“아닌데. 방금 배불리 먹이고 트림도 시켜서 안 고플 거예요.”
“그럼 왜 이러는 거죠?”
“쿤겐이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닐까요?”
“그래요? 하지만 전 여자가 아니라서 젖이 안 나오는데…….”
그때였다. 고사리 같은 손이 테레사의 옷을 잡고 그대로 잡아 뜯었다. 덕분에 옷이 북 찢어졌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아이의 악력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힘이었다. 덕분에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고, 아이는 엄마 젖을 빨듯이 덥석 물고는 쪽쪽 빨아대기 시작했다.
유지웅 커플은 놀라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주시했다. 테레사도 우두커니 굳어 있었다. 조용한 병실에는 빈 젖을 쪽쪽 빠는 소리만 울렸다. 한참을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우렁찬 울음을 터트렸다.
“이, 이리 주세요.”
“네, 네. 알았습니다.”
테레사도 당황한 채 아이를 넘겼다. 정효주는 테레사한테 미안함 반, 놀람 반으로 가슴을 풀어 젖을 물렸다. 테레사가 옷을 추스르고는 황급히 병실을 나섰다. 언뜻 본 목덜미가 빨갛게 변해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들아, 이게 무슨 짓이냐?
-플레그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