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1)
00031 나는 화나지 않았다 =========================================================================
유지웅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간만에 정효주와 분위기 좋았는데 방해받았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도 한편으로는 장태수가 안 되게 느껴졌다.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가 이끄는 공격대의 힐러가 잘못한 것이다.
솔직히 자신은 크게 한 번 쏘아붙인 걸로 끝내려 했다. 그냥 다음에 혹시라도 레이드에서 만나면 같이 안 가야겠다, 정도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런데 장태수는 그걸 굳이 대신 사과하겠다고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유지웅은 힐러에게 유감이 많다. 정확히는 힐러라고 거드름을 피우고 다른 이들을 깔보는 이들에게 반감이 강하다. 한지연과 화해할 마음은 지금도 없다. 별 거 아닌 걸로 먼저 시비를 건 사람과 왜 굳이 화해를 해야 할까.
그러나 한지연을 향한 반감을 장태수에게까지 돌리는 것은 과한 처사다.
“저는 맺고 끊는 게 좀 확실합니다. 혹시 앞뒤 사정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아시나요?”
“……지연이가 무례를 저질렀다고…….”
“제가 막공 합류에 조금 늦었습니다. 길을 잘 몰라서 헤맸거든요. 늦은 것 때문에 사과를 했습니다만, 말을 좀 과하게 하시더라고요.”
“네. 죄송합니다.”
“뭐 제가 잘한 건 없으니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넘어갔습니다. 솔직히 기분 나빴어요. 그런데 레이드가 끝나고 나서 갑자기 저 분이 아까는 미안했다고 사과하시더군요. 제가 보호막 능력자라서 사과를 하시더라고요. 그 사과가 진심인가요?”
“…….”
“저도 치사하게 더 따지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제가 저 분이 무릎을 꿇기라도 바래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말 그대로,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 남남이니 그냥 그렇게 넘어가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유감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 상황에서 유감이 없다면 오히려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건 저 분에 한정된 거예요. 그 일을 다른 분이나 휴머닉 공격대까지 확장할 마음은 없어요. 저는 솔직히 왜 당사자도 아닌 장태수 씨가, 굳이 사과하러 오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장태수는 그가 한지연 때문에 휴머닉 정공에까지 악감정을 품는 건 아닌지 우려했었다. 실제로 그런 힐러들이 아주 많다. 공격대 구성원과의 다툼을 정공까지 확대 적용하는 인물들 말이다. 그래서 놀라서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다른 분에게는 유감 없습니다. 휴머닉 정공에도 유감 없습니다. 그냥 저 분한테만 좀 화가 났습니다. 앞으로 저 분이 레이드에서 좀 더 겸손했으면 합니다. 그게 답니다.”
“제가 혼자 확장해석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러실 것 없다니까요. 그런데.”
유지웅은 추궁하듯이 물었다.
“제 집은 어떻게 아셨죠?”
“그, 그건…….”
장태수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찔리는 게 있나 보다. 유지웅은 여지를 주지 않고 재차 추궁했다.
“어떻게 아셨는데요?”
“저기, 그건…… 정규 공격대에서 인맥 좀 있는 웬만한 공격대장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남의 집 주소를 조사한단 건가요?”
“그게…… 오래 된 관행 같은 겁니다. 유명하거나 실력 있는 힐러들은 어느 정도 정보를 조사하고 공유하거나 합니다. 딱히 불법도 아니고요. 요즘 세상에 주소 정도 알아내는 것이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지금 세상은 초능력이 일상화 된 상태이다. 초능력자의 거주지 정도는 딱히 비밀도 아니다. 알아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사생활에 불과하다. 초능력자 부대에 종사하는 초능력자라면 기밀 관련 문제 때문에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유지웅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보호막 능력자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이 대외비로 해야 할 국가 기밀은 아니다. 국가 입장에서 그는 레이드의 안전성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초능력자일 뿐이다. 기밀로 지정하고 숨겨야 할 전략 무기 따위가 아니다.
유지웅은 기분이 묘했다. 실력 있는 힐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다. 헌데 막상 자신이 그런 대상이 되었다는 게 좀 낯설었다.
“저어, 저기요…….”
한지연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 때문에 마음 상하신 거 다른 분들이나 정공에까지 안 돌리시는 것은 고마운데요…… 이왕이면 제 사과도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유지웅이 빤히 쳐다보자 한지연은 울 듯한 표정으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정말 잘못했어요! 제가 감히 몰라 뵈었어요! 한 번만! 딱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한지연 씨라고 하셨죠?”
“네!”
“레이드는 대원 모두가 한 마음 한 몸으로 하는 겁니다. 시작 전부터 누가 뭘 잘못했느니 잘했느니를 놓고 분열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
“그럼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아뇨, 충고하는 겁니다.”
더 질질 끌어봐야 생산성도 없는 주제를 떠드는 것 자체가 유지웅은 피곤했다. 한지연의 사과는 결국 자신이 보호막 능력자이기 때문에 하는, 약자의 굴복이다. 굴복은 힘의 열세를 인정하는 것이지 잘못을 인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걸 떠들어봐야 이들이 이해할 것 같지도 않다. 유지웅은 그만 마무리짓기로 했다.
“저는 휴머닉 정공에는 아무런 유감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과를 받을 것도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저도 곧 식사해야 하고요.”
끝까지 사과를 받아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기준으로, 한지연은 사과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만 굴복했을 뿐이다.
“무슨 일이래?”
식탁에 마주앉아 수저를 뜨면서 정효주가 물었다.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유지웅은 가볍게 답했다.
“그냥 오늘 막공 갔다가 정공 힐러 하나가 깝치더니 내가 보호막 능력자인 거 알고 사과하더라. 그리고 공격대장이라는 사람까지 와서 사과하네.”
“받아주지.”
“정공한테는 유감이 없다고 했지.”
“공대장이라는 사람도 안 됐네. 인맥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고개 숙이고 다녀야 하니.”
원래 공대장이라는 게 그렇다. 대형 공격대라면 모를까 정규 공격대라도 소규모라면, 중소기업 사장이나 마찬가지다. 비유하자면, 하청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고개 숙이러 다니기 바쁘다.
“그냥 그 힐러 다시 안 보면 그만이야. 길가다가 시비 붙은 사람까지 일일이 신경 쓰면서 살 거 없잖아? 그런 거야.”
“그런 거 치고는 표정이 꽤 무섭다, 너?”
“천민 시절이 생각나서 그래. 윽, 정말 슬펐던 기억이다. 어떻게 그 험한 시절을 보냈을까? 신기해.”
한지연의 경우는 그가 딜러 시절, 그리고 반쪽짜리 힐러 시절, 힐러들에게 받았던 모욕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건방 떠는 힐러들은 좀 밟혀도 돼.”
“딜러나 탱커는 괜찮구?”
“딜러는 좀 봐줘도 돼. 그리고 딜러는 애초에 그렇게 건방도 안 떨어.”
아침이다.
곤히 잠든 정효주를 침실에 두고, 유지웅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하는 아침 조깅이다. 힐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그만두었다가 재개한 것이다.
그때는 이웃에 사는 딜러들이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조깅을 나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얼굴만 아는 근처 이웃이 조깅하다가 인사를 건네기에 그도 대꾸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헌데 유지웅이 인사를 받아주자 이웃은 바짝 옆에 붙었다.
“운동하시는 거예요?”
“그냥 조깅하는 거예요.”
귀여운 여자도 아니고 동갑내기 남자였지만, 유지웅은 예의바르게 대답해주었다. 이 동네에 사는 걸 보면 아마도 능력자일 테고, 사근사근한 걸 보면 힐러는 아닐 것이다.
“저어, 혹시 오늘도 레이드 가시나요?”
역시 이거 때문이었나? 유지웅은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옛날 자신도 저랬던 적이 있었는데, 하는 아련함이 가슴을 스쳤다. 어떻게든 한 번 레이드를 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던 초보 시절이 말이다.
건방진 힐러를 보면 화가 나지만, 신기하게도 딜러는 레이드 때문에 좀 귀찮게 굴어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들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딜러는 레이드계에서 철저한 약자일 수밖에 없다.
“갈 생각인데요.”
“저기, 괜찮으시면 저도 좀 데려가주시면 안 될까요? 폐는 끼치지 않겠습니다. 딜은 정말 자신 있어요!”
“죄송해요. 저는 친구하고만 조촐하게 다니는 게 편해서요.”
유지웅은 웃는 낯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했다. 어떻게든 레이드 한 번 가고 싶은 처지는 그도 이해했다. 안 됐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을 대뜸 끼워서 참가할 수는 없다. 그의 실력에 대한 도의적인 보증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한 번 부탁을 받아주면 그 뒤로도 그런 부탁들이 무수히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안 되는구나…….”
그 이웃은 실망했다.
약수터에 도착한 유지웅은 스트레칭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를 보며 수군거린다. 모르는 체 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보호막 어쩌고 이야기하고 있다.
원래 발 없는 말이 천리 길을 간다. 이 동네는 능력자들이 몰려 사는 곳이고, 주민들은 어느 집에 어떤 힐러가 살더라, 어떤 딜러가 살더라 하는 것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처음에는 이웃들도 유지웅이 보호막 능력자라는 것을 몰랐지만, 그의 레이드 참가가 늘어날수록 서서히 알게 된 것이다. 애초에 차가 국산차에서 단숨에 람보르기니로 바뀌었는데 모를 수가 없다.
“저 분이 보호막 능력자래.”
“어머, 정말? 왠일이니. 저 사람, 원래 반쪽짜리 힐러 아니었어?”
“그런 소문도 있더라고. 아무튼 보호막 능력자래. 내 옆집에 사는 종식이 알지? 걔가 레이드에서 봤대.”
“어떻대?”
“진짜 대단하다던데? 애인이 탱커라는데 어글을 기가 막히게 잘 먹는데. 근데 그거 알아?”
“뭐가?”
“저 분 애인이 그 반쪽짜리 탱커로 유명한 정효주 탱커래.”
“어머, 정말?”
“그렇다니까! 원래 정효주가 딜이 좋아서 어글은 잘 먹는데 맷집이 안 됐잖아? 근데 보호막으로 데미지 흡수하니까 메인 탱커로는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거야! 어그로가 단단하니까 레이드가 그만큼 안정적이고.”
“완전히 천생연분이네. 와, 어떡하면 그런 인연이 될 수 있을까?”
“부럽다. 나도 보호막 능력 같은 거 있으면 좋을 텐데.”
“난 한 번이라도 좋으니 같이 막공 가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정도면 유명 정공에서 내버려두질 않을 텐데, 왜 주로 막공만 다니는 거야?”
“막공이 편한 거지. 원래 힐러들도 정공 안 가고 막공만 다니는 사람들 많잖아. 편하니까.”
“하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훔쳐 듣고 있으니 낯이 뜨거워졌다. 유지웅은 스트레칭을 대강 마치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정효주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왔어?”
“응. 야, 맛있겠다.”
“손 씻구 와.”
둘은 마주보고 앉아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유지웅은 패드컴퓨터로 레이드 게시판에 접속했다.
레이드 게시판은 레이드 모집뿐만 아니라, 레이드에 관한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갖가지 사건사고라든가, 정부의 주요 관련 정책, 보도 기사들도 실시간으로 소개된다. 외국 레이드 게시판의 주요 공고나 소식, 기사도 실시간으로 번역되어 외국 코너에 올라온다. 인력의 한계가 있어 모집글이라든가 일반 회원의 글까지 번역되지는 않는다.
「님이그걸왜굴려요 님이 1:1채팅을 신청했습니다.」
접속해 있던 박현정이 채팅 신청을 했다. 레이드 가자는 권유인가? 유지웅은 대수롭지 않게 수락했다.
―님이그걸왜굴려요 : 지웅 씨! 그거 들으셨어요?
―나만귀족 : 네? 뭘요?
―님이그걸왜굴려요 : 아이참, 아직 못 보셨구나! 동해에 레드몹이 나타났어요! 그거 때문에 지금 난리가 났어요!
유지중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나만귀족 : 레드몹이라고요? 정말요?
―님이그걸왜굴려요 : 네. 그거 때문에 지금 한일 정부 간에 긴장 사태가 고조되고 있대요.
유지웅이 놀란 것은 이유가 있다. 레드몹은 선공 습성을 가진 괴수를 말한다. 일반적인 괴수는 사람이 공격하기 전까지는 공격 본능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레드몹은 다르다. 먼저 다가와서 사람을 공격하고, 활동 반경도 넓다. 때문에 레드몹이 출현하면 인근지역은 난리가 나기 마련이다.
유지웅은 급히 레이드 게시판의 기사란을 뒤졌다. 가장 최신란에 큼지막하게 「독도 해역에 레드 타입 괴수 출현!」이라는 글이 떠올라 있었다.
============================ 작품 후기 ============================
애초에 와우 하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가벼운 소설입니다. 심각한 주제나 풍자 의식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손가락 가는 데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