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11)
00311 천재들의 유희 =========================================================================
어느 날 데머샤가 말했다.
「친구, 네가 이겼어.」
「뭘?」
「블루 결정체의 상위 등급, 보라색이 맞았어. 네 가설이 옳았어.」
「설마 그걸 확인한 거야? 무슨 재주로?」
둘이 내기를 하고 꽤 시일이 흘렀다. 한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최윤은 내기한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데머샤가 말을 꺼내니까 그제야 생각이 났다.
데머샤는 헛소리를 할 이가 아니다. 그가 확인했다면 분명히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블루 결정체의 상위 등급을 보았다는 뜻이다. 대체 어떻게?
‘설마 직접 만든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최윤은 분했다.
‘젠장! 나도 대학 갈 걸! 그럼 먼저 만들어볼 수 있었는데!’
촉망받는 영재라 하나 대외적인 신분은 일개 과학고 수석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결정 에너지를 인공적으로 응집하는 실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못 된다. 연구 자금이며 연구 설비를 과연 누가 대주겠는가?
그런데 데머샤가 뭔가 평소와 달랐다.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최윤은 느낄 수 있었다.
「넌 정말 대단해.」
「안 그래.」
「아니야.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너는 정말 대단해. 다음 세대 결정체 산업은 한국이 쥐고 흔들 거야. 분명해.」
「갑자기 왜 그래? 사람 민망하게.」
데머샤가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거나 추켜세운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진솔하게, 그리고 진지한 무게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괜히 어색했다.
「친구, 널 미국에 초대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날 미국에?」
「멕아른 연구소의 정식 연구원으로 널 초청하고 싶은데, 미국에 오지 않겠어?」
「멕아른 연구소?」
멕아른 연구소는 미국의 유명한 결정체 기초 과학 연구소다. 결정체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최윤은 괜히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데머샤는 결코 헛된 말을 하는 이가 아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을 멕아른 연구소, 세계 제일의 권위를 가진 그 기관에 초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멕아른에는 휘버 박사를 포함해서 저명한 학자들이 많아. 네 미래를 빛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장담해. 물론 연주대학교 연구소를 모욕할 마음은 없어. 네가 지금 근무하는 곳도 좋은 곳이지만…….」
「응? 무슨 소리야?」
「연주대학교 교수지? 너 정도의 학식과 통찰력이면 아마 유명한 교수일 거야.」
최윤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데머샤가 자신을 한참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교수는커녕 이제 고등학생인데.
「나 교수 아니야. 그냥 학생이야.」
「정말이야?」
「난 그런 걸로 거짓말 안 해. 학생이야.」
「더 대단한데. 그 정도 학식이라면 당연히 이미 한국에서 유망주로 꼽히는 학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더욱 너를 미국에 초대하고 싶어졌어.」
「데머샤, 너는 그럼 멕아른 연구소에 다녀?」
「응. 나름대로 연구소를 움직일 힘은 갖고 있어.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연구원으로 영입할 수 있어.」
「학생인데도?」
「상관없어. 미국은 인재를 감별하는데 나이를 보지 않아.」
「……고등학생인데도? 만으로 열여섯…….」
「고등학생?」
그 말을 하고 데머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비록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얼마나 놀랐을지 또렷하게 느껴졌다. 한참 후에야 겨우 메신저에 문장이 떠올랐다.
「왜 한국은 너 같은 천재를 못 알아보고 있는 거지?」
「나 그래도 장학생으로 과학고 다니는데? 과학고가 어떤 곳이냐면…….」
「그래봤자 보물을 고등학교에 썩혀두고 있는 게 변하지 않아. 어떤 말도 한국의 눈이 형편없는 걸 변호할 순 없어.」
짧은 말이다. 하지만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 실망과 환희가 공존하는 탄식. 실망은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것이며, 환희는 세상에서 자신만이 그 천재를 알아보았다는 것.
「만나자. 널 만나고 싶어.」
「난 지금이 더 편한데…….」
「너에게 반드시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내가 아까 내기에서 네가 이겼다고 했지?」
「그랬지.」
「증거를 확인하고 싶지 않아?」
문득 최윤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데머샤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설마 멕아른 연구소가 합성에 성공한 거야?」
「그래. 세계 최초의 퍼플 결정체, 녹서스의 돌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
「녹서스의 돌?」
「너의 승리를 경애하는 뜻에서 이 퍼플 결정체를 녹서스의 돌이라 부르기로 했어.」
보고 싶다. 최윤은 강한 갈망이 일어났다. 하지만 고등학생의 신분은 제약이 많았다. 외국에 사는 친구를 한 번 만나는 게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만나러 갈게. 녹서스의 돌을 네게 꼭 보여주고 싶어. 네가 아니었으면 이 녀석은 태어나지 못했을 거야.」
「나도 꼭 보고 싶어.」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데머샤는 약속 장소에 나오지 못했고,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 * *
“……그랬군요.”
긴 설명이 끝나고 유지웅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환희? 애석함? 통념? 가슴을 헤집는 이 요동을 과연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인가.
천재의 엉뚱함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블루 결정체의 상위 등급이 과연 무슨 색일까. 그것을 확인해야겠다는 천재들의 엉뚱한 다툼이, 세상을 뒤흔드는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세기의 대발견 뒤에 그런 우스운 비사가 숨어 있을 줄, 과연 누가 알았겠는가.
한편으로는 애석했다. 순수한 천재의 대발견이, 정치 논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그라져야 했다니.
“휘버 박사가 죽은 건 알고 있지요?”
“물론입니다. 그때 학계가 뒤집어질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데머샤는 휘버 박사였을 겁니다.”
“…….”
최윤은 의외로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지웅은 조용히 물었다.
“알고 있었나요? 아까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몰랐습니다. 다만…….”
“다만?”
“아까 회장님께서 휘버 박사를 아느냐고 물으셨을 때 어느 정도 각오는 했습니다. 데머샤가 휘버 박사였다면 납득할 만한 신분입니다. 그 풍부한 학식은 평범한 학자가 지닐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요.”
최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는 오래 전에 짐작했던 것은 아닐까. 직접 휘버 박사와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만이 가지는 촉감이라는 게 있으리라.
하지만 휘버가 데머샤라고 가정하면, 친구의 죽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외로운 천재에게 그것은 견디기 힘든 고독이리라. 풍부한 학식. 연락이 끊긴 친구. 이성으로는 예감을 하면서도, 마음은 필사적으로 외면한 것이다.
“휘버 박사는 세계 최초의 퍼플 결정체를 만들고 거기에 녹서스의 돌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체 융합 촉매제를 데머샤라고 명명했지요. 이것은 미국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사실입니다.”
“그렇군요. 데머샤는 결국…….”
“어떻게 된 건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아마 휘버 박사는 미국을 떠날 마음도, 배신할 마음도 없었을 거예요. 그저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녹서스의 돌은 휘버의 힘만으로 탄생한 게 아니다. 휘버는 최윤과 토론을 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그로 인해 이론을 정리해서 융합 촉매제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녹서스의 돌은 두 천재 친구의 합작으로 탄생했다고 봐야 한다.
휘버 암살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 이해가 갔다. 휘버는 그저 친구에게 녹서스의 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녹서스의 돌을 들고 미국을 나섰다. 빼돌릴 마음은 전혀 없었으리라.
그러나 녹서스의 돌 프로젝트는 록펠러를 비롯하여 미국 유수의 가문이 막대한 돈을 투입한 사업이다. CIA의 눈에는 휘버가 미국을 배반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암살을 해버린 것이고.
애석하고 안타까웠다. 녹서스의 돌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해외로 반출한다는 것을, 어떤 정부 인사가 믿어주겠는가. 휘버의 진심은 통하지 않았고, 세기의 대발견은 그렇게 묻혀 버렸다.
우울함이 번지는 최윤의 얼굴을 살피던 유지웅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친구 분의 일은 유감입니다만…… 세기의 대발견을 최 사장님이 다시 복원한 것은 큰 의의가 있는 일입니다. CIA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많은 이들이 최 사장님을 노릴 겁니다. 하지만 제가 도와드릴 테니 아무 것도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최 사장님은 그저 몸을 추스르고 연구를 완성하는 데만 집중해 주세요.”
“…….”
넋이 나간 그는 듣지 못했는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유지웅은 조용히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
적막 속에서 최윤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어둠 속에 나 혼자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 천재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는 익숙한 냄새다.
외로운 고독 속에서 겨우 건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소중한 친구였다. 연락이 끊겼을 때만 해도 바쁘겠지, 다른 일이 있겠지하고 애써 잊어왔다.
전공으로 결정체학을 선택한 것은 융합 촉매제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친구가 알아보고 찾아와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충전장비와 방어장비에 사용된 신소재 N시리즈는 융합 촉매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에 불과했다. 한성산업을 차린 것도, 유지웅의 그늘로 들어와 융합 촉매제 완성에 힘쓴 것도, 전부 친구를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알고 보니 휘버 박사란다. 오래 전에 죽은 이라고 한다. 다른 이유도 아닌, 자신에게 녹서스의 돌을 보여주려다가 어이없게 희생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죽음. 어렴풋이 가정하던 일이었다. 다만 마음만 그걸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을 뿐이다.
외로움은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토론하고, 논쟁을 즐길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렸음을 깨달은 지금의 외로움은, 앞으로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여, 내기는 자네가 이겼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친구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최윤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소리 없는 흐느낌이 바닥에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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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지한 분위기는 나귀족이 아니야ㅠㅠ
엉엉 손발이 오그리토그리.